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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갈 집을 알아보고 있는 친구가 자꾸만 욕심이 생겨 큰일이라며 고민을 토로했다. 아예 가당치도 않은 집은 넘볼 생각도 않지만, 자꾸 예산을 조금씩 넘는 집이 눈에 들어온다는 것. 그녀를 이해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고민을 말하던 친구는 이렇게 덧붙였다.  

"나란 여자, 너무도 인간적이야."

고민을 듣다 말고 무릎을 탁 쳤다. 그 유명한 자존감의 차이일까. 나라면 그녀와 달리 이렇게 말했을 것을 확신한다. '나란 인간은 왜 이 모양인지 몰라.' 어느 모로 보나 쓸데없는 자학일 뿐이다.  

내게 상처준 사람마저 아무런 원망 없이 끌어안는 천사표는 못되지만, 용서는 못하더라도 그 입장 이해하고 마는 게 나다. 너무도 부족한 나지만, 스스로에 대한 그 정도 믿음만은 갖는다. 그런 내가 가장 용납하지 못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다른 누구보다 나였다.
 
"(그런데) 놀라운 점이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그 누구도 나만큼 나를 못 믿는 이가 없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몇 배나 큰 신뢰감을 내게 보여주는 이들이 많다. 그럼에도 내가 나를 믿지 못하고 지독하게 괴롭혀서, 결국 나는 나 때문에 힘들다."(p47)
 
 <마음이 어렵습니다> 책표지
 <마음이 어렵습니다> 책표지
ⓒ 종이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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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이 나만은 아닌 듯하다. 안미영 작가의 옴니버스 마음치유 에세이 <마음이 어렵습니다>를 보며 나의 문제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내가 느낀 반가움은 악하지 않다고 믿는다. 아픔이 공유되고 서로를 어루만질 때, 우리는 치유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책엔 열 명의 인터뷰이의 이야기가 실렸다. 이들은 모두 치유되지 못한 아픔을 간직하고 있었다. 가족을 잃은 슬픔, 이혼의 상처, 실직의 충격, 엄마와의 갈등 등. 책은 이들의 아픔을 공유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이들이 어떻게 자기만의 치유법을 찾고 마음의 문제를 해결했는지 그 과정을 담고 있다.

몇 명의 이야기를 옮기면 이렇다. 아홉 살 때 당시 여섯 살이던 남동생을 교통사고로 눈앞에서 잃은 K. 그녀는 슬픔을 치유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다. 오직 그림을 그릴 때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었으므로 그녀는 일관되게 어린 아이의 그림만을 그렸다고 한다. 

서양화를 전공하긴 했지만 그림을 그리지 않으며 회사 생활을 하던 때. 그녀의 그림을 알아본 사람의 제안으로 아이 그림을 전시하게 되고 이를 통해 가족은 물론, 비슷한 아픔을 가진 이들과 공감하게 된다. 이로써 모든 상처가 치유되진 않았지만 슬픔을 마주함으로써 내면의 장애를 한 단계 넘어선다.

그녀는 자신처럼 상처를 간직한 사람들을 치유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미술치료 과정을 밟는다. 그런데 남을 돕기 위해 배운 미술치료가 오히려 그녀 자신의 마음을 더 잘 들여다볼 수 있게 도왔다고 한다. 그녀는 지금 주부이자 화가로서 살아가고 있다.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신념으로 엄마로서 최선을 다한 Y의 이야기도 있다. 사력을 다했지만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는 육아 때문에 스트레스와 분노가 극에 달했다고 한다. 접시를 깨고, 서랍을 부수는 등 폭력적인 행동을 할 정도였다고. 

그녀는 나쁜 엄마라는 죄책감으로 스스로를 비난하고 힘들어 하게 된다. 이때 그녀가 만난 것은 에니어그램이다. 이를 통해 자신의 성격과 본질을 이해하고 위안이 찾아왔다고 한다. 현재 그녀는 대학원에서 3년째 에니어그램을 공부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공부할 생각이다. 

이외에도 아픔을 느낀 이들이 찾은 다양한 마음 처방전이 나온다. 미술 치유나 명상, 명리는 해본 적은 없지만 들어본 적은 있다. 반면, 컬러테라피의 일종이라는 '오라소마', 춤의 종류인 '파이브리듬' 등은 무척 생소하다. 

나로선 그 개별적인 치유 방법보다 삶을 대하는 이들의 자세가 눈에 들어왔다. 열 명의 여성들 모두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알고 치유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로써 자신만의 도구를 찾아갈 수 있었다. 우연한 기회 또한 이들의 노력끝에 찾아왔다.

마음이 어려울 때, 나는 어떤 처방전을 택할 수 있을까. 특별하진 않아도, 나에게 잘 듣는 특효약을 상비하고 싶다. 그러나 우선, 내 마음의 상처를 직면하는 것이 먼저일 듯하다. 과장하지 않되 외면하지 말 것. 결국 내가 가장 아껴야 할 것은 나임이 분명하니까. 

또한, 반드시 혼자서 마음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얽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들의 치유 과정에는 꼭 다른 사람의 존재가 있었다는 것 또한 주목하고 싶다. 누가 그랬던가. 사람 인(人)자는 인간이 서로 기대어 살 수 밖에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의존이 아닌, 연결을 강조하고 싶다. 

자신의 아픔을 세상에 꺼내놓은 열 명의 인터뷰이와 그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낸 저자, 그리고 독자. 새삼,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을 생각한다. 열 가지 마음 처방전의 기본 성분은, 아무래도 응원임이 분명하다.
 
"문을 닫고 혼자만의 공간에 있을 때 편안함을 느낄지언정 그 시간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는 없다. '어차피 인간은 혼자'라는 인식에는 변함이 없더라도, 흔들릴 때는 바깥으로 나가 새로운 공기를 마시고 타인의 손을 잡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사람들 속으로 걸어나갔을 때 비로소 느낀다. 우리가 이렇게 연결돼 있고, 아픔을 공유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  6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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