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엄마. 엄마가 된 여성들은 자신의 이름보다 아이의 이름으로 불리는 데 더 익숙해집니다. 엄마는 자신의 고유한 이름으로 살아갈 수 없는 걸까요? '나다운' 엄마, 이름을 지키는 엄마로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봅니다.[편집자말]
2010년은 내게 매우 의미 있는 해였다. 2010년 3월 나는 한국상담심리학회에서 발행하는 상담심리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 해 여름엔 석사학위를 받았다. 유난히 화창하고 더웠던 8월. 학위수여식에 참석하며 눈가가 촉촉해졌던 기억이 난다.

출산 후 엄마로만 살았던 시기에는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시작을 하고 나니 어느새 새로운 곳에 도달해 있었다. 안 될 것은 없었다.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시작'이라는 행동으로 바꾸니 육아도, 시간과 체력 부족도 어떻게든 해결해 갈 수 있었다.

강요되는 모성신화
 
 당시 대중서들은 다른 요소들은 간과한 채 지나치게 어머니의 역할만을 강조하고 있었다.
 당시 대중서들은 다른 요소들은 간과한 채 지나치게 어머니의 역할만을 강조하고 있었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학위를 마친 후 곧바로 상담자로 일을 시작했다. 상담사로 첫 발을 내딛은 곳은 서울의 한 청소년 상담센터였다. 내담자가 연결된 시간에만 일을 하는 파트타임 자리였다. 아이를 봐주셨던 이모님은 내가 석사학위를 받을 때까지만 우리와 함께 하기로 하셨기에 이미 그만둔 상황이었다.

졸업과 동시에 아이를 안정적으로 맡길 곳이 없었다. 근무시간이 불규칙적인지라 다른 이모님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난 기회가 왔을 때 시작해야 한다고 믿었다. 일단 시작하면, 이 또한 해결해갈 수 있으리라.

아이는 상담이 있는 날마다 여기 저기 맡겨졌다. 가까운 곳에 이모가 살고 있어서 이모가 집으로 와주시기도 했고, 가끔은 시어머니나 이웃집 신세도 졌다. 어떤 날엔 아이와 함께 상담소에 나가기도 했다. 센터에서는 비어있는 놀이치료실에서 아이가 머물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하지만, 매번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는 게 영 마음이 불편하기는 했다.

게다가 그 시기엔 '애착'의 중요성을 알리는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애착이론은 어린 시절 1차 양육자와 맺는 관계가 한 사람의 심리적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요점으로 한다. 다른 모든 심리적 요소들과 마찬가지로 애착에도 다양한 맥락과 요소들이 관여한다. 하지만 당시 대중서들은 다른 요소들은 간과한 채 지나치게 어머니의 역할만을 강조하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서 만 3살까지 엄마와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애착은 향후 아이의 삶을  좌우한다. 이 시기 엄마가 아이 곁에 없으면 아이는 제대로된 애착형성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시기의 엄마들은 자신의 욕구는 내려놓고 오직 아이에게만 집중해야 한다.

마치 '애착'이라는 과학적 용어로 모성신화를 강요하는 듯 했다. 그 때 아이는 만 2살이었다. 이 책들에 따르면 지금 나는 파트타임으로 커리어를 쌓아보겠다고 아이를 망치고 있는 엄마였다. 왜곡된 부분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반복되는 메시지들은 나를 불안하게 했다. 아이에게 "엄마 시계가 이만큼 오면 돌아올게, 오늘은 여기서 놀고 있어"라고 이야기할 때마다 나쁜 엄마가 된 것만 같았다.

죄책감

이런 기분은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아동이나 청소년을 상담할 때에는 보호자인 부모와 상담하는 시간을 반드시 갖는다. 당시 나는 청소년 상담을 하고 있었고, 그들의 부모도 만났다. '부모' 상담 시간이었지만 어머니들만이 찾아왔다. 이 어머니들은 자녀가 상담을 받으러 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 하나 가득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제가 어릴 때 아이 돌보는 게 너무 힘이 들었어요. 아이가 귀찮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소리 지르고 짜증을 많이 부렸는데 그래서 아이가 저런가 봐요."
"제가 일한다고, 아이를 여기저기 맡겼어요. 일이 바쁠 땐 시댁에 아이를 맡기고 주말에만 만났어요. 그게 저희 아이한테 큰 상처였나봐요. 다 제 잘못이에요."


사연은 제각각 이었지만, 부모 상담에 온 엄마들이 찾은 문제의 원인은 한결 같았다. 바로 '엄마 자신'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들은 '여성이면 본능적으로 아이를 잘 돌봐야하며, 엄마 역할에서 기쁨을 느끼고 마땅히 헌신해야 한다'는 모성신화의 함정에 갇혀 있었다.

나는 이 어머니들에게 아이가 귀찮고 힘들다 느끼는 것은 정상이며,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당신은 좋은 엄마라고 끊임없이 말해줬다. 이 말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억울함
  
모성신화의 그림자는 '신화'를 충실히 따른 엄마와 아이들에게도 드리워져 있었다. 이 어머니들은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혹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직장을 그만두고 양육에 최선을 다했다. 아이의 모든 학습과 생활을 24시간 관리했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헌신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렇게 헌신하는 엄마를 둔 아이들 중 우울하고 무기력한 경우가 많았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얼 하고 싶은지 모르는 이 아이들은 생기 없는 일상을 살았다. 그렇지 않으면, 답답함에서 탈출하기 위해 가출을 하거나 비행에 가담했다. 늘 전교 1등을 하지만, 심리검사에서 우울이 심하다는 소견을 받은 한 여중생은 공부하는 이유를 묻자 "엄마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이런 아이들의 어머니들은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직장도 그만두고, 아이를 위해 15년을 올인 했어요. 제가 뭘 잘못했나요?"
"전 제 꿈을 다 접고 아이만 키웠어요. 아이가 성공하는 게 제 삶의 목표였는데 너무 억울하고, 모든 게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요."


엄마로서 '헌신'만을 강조하는 모성신화와 한국의 교육시스템이 만나 만들어낸 슬픈 현실이었다. 모성신화는 이렇게 엄마들을 죄책감에 짓눌리게 하거나, 아이와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을 방해했다. 아이들 역시 독립된 정체감을 획득하지 못한 채 여러 가지 심리적 증상을 나타내고 있었다.

모성신화 극복하기

내가 상담실에서 만난 이 어머니들은 내겐 엄마로서 선배이자 스승 같은 존재였다. 분명 모성신화는 내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아이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는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고, 다른 아이들을 상담한다고 내 아이는 방치하는 게 아닌지 자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생각들이 떠오를 때마다 상담실에서 만났던 어머니들을 떠올렸다. '내가 이러는 건 정상이야. 아이와 종일 함께한다고 아이가 잘 크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내 일을 한다고 해서 아이가 잘못될 일도 없어.'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모성신화를 인식하되, 그 안에 갇히지 않고 나의 일을 하자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24시간을 함께 했을 땐 힘들기만 했던 아이와의 시간이 점점 즐거워졌다. 일을 통해 얻은 생기는 아이와의 관계에 도움이 되었다. 엄마의 모든 욕구는 내려놓고, 아이에게만 헌신해야 한다는 모성신화는 옳지 않았다.

활기차고도 평온한 날들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퇴근한 남편이 무척 고무된 표정으로 들어왔다. "대구에 원하는 자리가 났어. 대구로 이사 가자." 남편은 싱글벙글 했다. 난 마음이 내려앉았다.

대구로 가게 된다면 일자리를 다시 구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게다가 나의 모든 인적 네트워크는 서울에 있었다. 나의 깊은 내면에선 'No'라고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안의 가부장은 자꾸만 이렇게 속삭였다.

'남편이 오랫동안 꿈꿔왔던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는데 따라가야지. 아내라면 당연히 남편 뒷바라지를 해야지. 서울에 남아 일하고 싶다고? 말도 안 돼!'

결국 난 나의 깊은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내 안의 가부장'의 말을 따랐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에도 실립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심리학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하며 평등과 생명존중을 담은 글을 쓰고 소통합니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