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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방면에 걸친 잡다한 지식들을 많이 알고 있다. '잡학다식하다'의 사전적 풀이입니다. 몰라도 별일없는 지식들이지만, 알면 보이지 않던 1cm가 보이죠. 정치에 숨은 1cm를 보여드립니다.[편집자말]
 8일 서울 중구 을지로 KEB하나은행 본점에서 열린 '은행 채용비리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한 청년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2018년 2월 8일 서울 중구 을지로 KEB하나은행 본점에서 열린 "은행 채용비리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한 청년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 조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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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①] 은행원 신규채용 지원자 A와 B. A는 임원면접점수 2.00점을 받았지만 면접 후 점수조정이 이뤄져 4.40점이 됐다. B는 임원면접에서 4.00점을 받았지만 조정 후 3.50점으로 떨어졌다. 점수조정 전 A는 불합격이었고 B는 합격이었지만, 최종 결과는 뒤바뀌었다. 둘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면 '출신학교'였다. A는 서울대를 나왔고, B는 건국대를 나왔다.

[사례 ②] 출신학교에 따른 차별에 관련한 무기명 설문조사가 진행됐는데 이런 사례가 접수됐다. "인사담당자에게 들었는데 사람을 뽑을 때 지방대 출신과 '인서울'(서울소재 대학) 출신을 나눠서 뽑는대요." "업무 성과가 좋은 동료가 있는데 지방대 출신이라 매번 승진에서 누락된다고 합니다." "'지방대 출신이라 일 못 한다'라는 말까지 들었어요."


사례①은 2018년 초 KEB하나은행 채용비리 의혹이 터진 뒤 금융감독원이 파악한 실제 사례입니다. 현재 이 사안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사례②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지난 5월 실시한 무기명 설문조사에 접수된 '출신학교 차별 사례' 중 일부고요.

'출신학교'로 대표되는 '학벌지상주의'를 근절하자는 내용이 담긴 법률 제정안이 지난 23일 발의됐습니다.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대전 유성구을)이 대표발의한 '고용상 출신학교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안'(아래 출신학교 차별금지법)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법률안을 꼼꼼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력서에 학교 이름 쓰지 마세요'라는 법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왼쪽 세번째)이 23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출신학교 차별금지법'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왼쪽 세번째)이 지난 23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출신학교 차별금지법"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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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법 테두리 안에서 학벌에 의한 차별을 방지하고자 하는 법안은 이미 존재합니다. 고용정책기본법이 대표적인데요. 사업주가 노동자를 모집 및 채용할 때 "성별, 신앙, 연령, 신체조건,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학력, 출신학교, 혼인·임신 또는 병력 등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법적 구속력이 약해 별도의 법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그간 제기돼 왔습니다.

이번에 이상민 의원이 발의한 '출신학교 차별금지법'은 노동 분야에서 벌어지는 학벌 차별 실태를 바로잡고자 만들어졌습니다. 입사 희망자가 겪는, 일하는 노동자가 직장 내에서 겪는 출신학교 차별을 규제하는 별도의 법안입니다. 이 의원의 법률 제정 이유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 출신학교가 합리적 근거 없이 개인 능력을 판단하는 확고한 기준이 됐다. ▲ 능력 계발을 위한 학교 선택보다는 명문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경쟁에 몰두한다. ▲ 국가 경쟁력이나 개인 성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법률 제정안에 따르면, 출신학교에 따른 차별을 막기 위한 방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습니다. 한번 살펴볼까요.
 
제9조(모집·채용에서의 출신학교등 차별금지) ① 사용자는 근로자를 모집·채용할 때 직무와 관련 없이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1. 업무의 정상적인 수행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합리적인 기준 이상의 출신학교 등을 요구하거나 학력별로 직급을 달리하여 모집하는 등 출신학교 등을 이유로 모집·채용의 기회를 제한하거나 거부하는 행위
2. 응시서류에 출신학교 등의 기재를 요구하거나 관련 서류를 제출하도록 하는 행위
3. 출신학교 등에 대한 내용의 질문을 하는 등 면접과정에서 출신학교 등에 관한 정보를 요구하는 행위
4. 특정 출신학교를 우대하거나 점수를 차등 부여하는 행위
5. 그 밖의 모집·채용 과정에서 응시자로부터 직접 또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출신학교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는 행위

일반 국민 입장에서 가장 크게 다가올만한 대목은 '응시서류상 출신학교 기재 요구 금지'일 듯합니다. 쉽게 말해 '이력서에 출신학교 쓰라고 하면 안된다', 이거죠.

이 법률안에는 임금·복리후생, 배치·전보·승진 등의 영역에서도 출신학교에 따른 차별이 이뤄져선 안된다는 조항도 들어가 있습니다.

나경원부터 이상민까지... 여야가 공감대 이룬 '출신학교 차별금지'

앞서 설명드린 고용정책기본법보다 더 명확하게 출신학교 차별을 막기 위한 시도는 20대 국회에서도 있어왔습니다.

이런 시도는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채용절차법) 개정안 발의로 터져 나왔습니다. 2016년 7월 박정 민주당 의원(경기 파주시을)이 "채용절차법에 학력 기재 요구 금지 조항을 신설하자"라면서 개정안 발의한 것을 시작으로 2016년 11월 이정미 정의당 의원(비례대표), 2017년 6월 김중로 바른미래당 의원(비례대표), 2018년 3월 박주민 민주당 의원(서울 은평구갑), 같은해 5월 심상정 정의당 의원(경기 고양시갑)이 채용절차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이들 개정안을 요약하면 '구인자는 구직자에게 출신학교 등을 채용서류에 작성케 하거나 면접시험 등에서 질문해선 안 된다' '고용노동부가 제작한 표준이력서 사용을 강제해야 한다'는 겁니다. 고용노동부가 만들어 배포하는 표준이력서에는 학력이나 출신학교를 기재하는 공간 자체가 없는데요. 현재 권고 수준에 그쳐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입니다.
 
 출신학교 혹은 학력에 따른 차별금지에 대한 별도의 법안을 만들자고 발의한 의원들. 왼쪽부터 오영훈 민주당 의원, 김해영 민주당 의원, 나경원 한국당 의원, 강길부 무소속 의원, 김부겸 민주당 의원, 이상민 민주당 의원(발의 일자 순).
 출신학교 혹은 학력에 따른 차별금지에 대한 별도의 법안을 만들자고 발의한 의원들. 왼쪽부터 오영훈 민주당 의원, 김해영 민주당 의원, 나경원 한국당 의원, 강길부 무소속 의원, 김부겸 민주당 의원, 이상민 민주당 의원(발의 일자 순).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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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법을 개정하는 것보다 더 높은 수위의 법안 발의도 있었습니다. '별도의 법을 새로 만들자'라는 건데요. 여기에는 여야가 따로 없었답니다. 

▲ 2016년 9월, '학력·출신학교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안' : 오영훈 민주당 의원 대표발의
▲ 2016년 9월, '공공기관의 학력차별금지 및 기회균등보장에 관한 법률안' : 김해영 의원 민주당 의원 대표발의
▲ 2016년 11월, '학력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안' :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 대표발의
▲ 2017년 2월, '학력차별금지 및 직무능력중심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안' : 강길부 무소속 의원 대표발의
▲ 2019년 5월, '학력·학벌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안' : 김부겸 민주당 의원 대표발의


김부겸 의원의 법률 제정안 발의 이후 나온 게 바로 이상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출신학교 차별금지법'입니다. 출신학교 차별금지법 발의 작업에 힘을 보탠 김은종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선임연구원은 "과거 발의 법안들과 이상민 의원 발의안의 가장 큰 차이는 고용 부문에 대한 출신학교 차별을 구체적으로 명시했고, 차별에 대한 처벌조항을 강화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가령 오영훈 의원안은 출신학교 차별을 한 자에게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해놓은 반면, 이상민 의원안은 "차별행위를 행하고 그 행위가 악의적인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라고 정해놨습니다.

또한 나경원 의원안은 학력 차별에 대한 문제 의식은 담겨 있지만, 출신학교 차별금지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상민 의원안은 차별금지의 방법에 대해 보다 명확하게 서술돼 있습니다.

명문대 입학했으면 업무능력도 있다? 과연 그럴까
 
 서울대학교 정문
 서울대학교 정문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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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사무처도 위 법안들에 대한 의견을 내놨습니다. '발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실제 입법은 신중히 하라'는 이야기입니다. 김부겸 의원 발의안에 대한 국회사무처 환경노동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의 검토보고 의견은 이랬습니다.

"학력은 성, 연령 등과 같이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부분이 아니라 선택과 노력에 따라 상당부분 성취 정도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합리적 차별요소로 보는 경향이 있다. (중략) 학력과 학벌에 대하여도 별도로 법률을 제정해 차별을 금지할 필요성이 있는지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의견에 대해 김은종 선임연구원은 "고용정책기본법상 출신학교를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해놨기 때문에 이미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고 봐야 한다"라며 "출신학교는 입학 성적에 대한 지표일 뿐 구직자나 노동자가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보여주지 않는다"라고 반박했습니다. 다시 말해 한 사람의 대학 입학 성적으로 그 사람의 근무 능력을 평가할 수 없다는 이야기죠.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까지 설명드린 법안들이 갖고 있는 치명적 문제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모두 계류중'이라는 점입니다. 법안 처리가 안 되고 환경노동위원회 등 상임위에서 떠돌고 있는 신세입니다.

출신학교 때문에 당락이 뒤바뀌고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승진에서 누락되는 일, 한국 사회에서 근절시킬 수 있을까요? 20대 국회 종료까지는 1년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그 안에 법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모두 폐기처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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