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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 시인의 학교詩끌'은, 학교가 폭력으로 시끌시끌하다는 뜻, 시(詩)로 학교를 끌어당기거나 끌어준다는 뜻, 결국에는 좋은 의미에서 학교가 시끌시끌했으면 좋겠다는 의미입니다. 이 글이 학교폭력 예방 문화를 만들어 나아가려는 모든 분께 진심으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기자 말

갑자기 문제가 터졌다. 수업태도가 좋지 않았던 요주의 학생 하나가 발로 책상을 걷어차면서 거세게 반항을 했다. 태도가 불량한 주변의 학생들이 너도나도 맞장구를 치면서 떠들기 시작했다. 난장판이었다. 불만으로 가득한 눈을 부라리면서, 여자 선생님을 똑바로 쳐다보던 그 학생의 눈빛을 아직도 잊지 못하겠다.

자신의 언행이 어떤 성질의 것인지 도무지 모르는 고집불통의 태도.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상황들. 그런 분위기를 만나면 어떤 선생님의 경우는 수업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그럴 때 나는 그 사이에 개입하지 않을 수가 없다.
 
 복도에서 반성의 시간을 갖고 있는 학생들.
 복도에서 반성의 시간을 갖고 있는 학생들.
ⓒ 김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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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닫은 마음속에 폭력이
폭탄처럼 도사리고 있을 때
더 이상 기다려서는 안 되겠지

위험을 감지하면 팔뚝의 털이 바짝 서는
스파이더맨의 감각처럼
나는 철문이라도 부수고 들어가야 할까

위에 언급한 사례처럼, 또 내가 쓴 시의 내용처럼, 거센 반항 때문에 대화조차 불가능한 학생을 자주 만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학생을 만나면 은근히 겁이 나기도 한다. 선생님이 폭행당하는 사건이 요즘 학교 안에서는 충분히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팔뚝의 털이 바짝 선다. 긴장하게 되고, 조심스럽다.

최근에 만났던 학생이 그랬다.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이 그 학생에게는 전혀 없었다. 반항심과 분노로만 가득 찬 것 같은 학생 하나가 나직이 내게 말했다.

"선생님, 저 소년원에 다녀온 학생인데요."

방어막을 치고 저 깊숙이 들어앉은, 쇠로 만들어진 마음의 주인에게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지 오래 막막했다. 일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학생의 말은 두서가 없었다.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많은 선생님들이 그 학생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았다. 그 이상 그 학생을 교육할 방법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음속에서 무언가 우두둑! 하고 절반으로 꺾이는 소리가 났다. 내 자만심이었다. 내가 좋은 선생이라고 생각했던 오만이었다. 마음이 아팠다. 그 학생이 명확하고도 유일하게 내게 전달한 한 문장이, '소년원에 다녀온 것'임을 스스로 밝히는 내용이었다는 점에서 나는 다시 마음이 아팠다.

학생의 마음을 천천히 헤아려볼 때마다, 어떤 삶에 대한 '자포자기'가 거기 묻어 있었기에, 나는 마음이 쓰렸다. 다수의 선생님이 자신을 이미 포기했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걸 아느냐고 그 학생은 나에게 되물은 것이다.

요즘 이 무례하고도 쓸쓸한 자포자기의 상태가 더 많은 학교로, 학교 밖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느낀다. 최근에 나온 한 정신건강의학관련 도서에 의하면, "이번 생은 망했습니다"라고 말하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는 수치심을 배웠고,
중학교 때는 외로움에 시달렸고,
고등학생 때는 온갖 불안에 휩싸였어요.

- '고등학교를 마치는 한 학생으로부터',  <요즘 아이들 마음고생의 비밀> 중에서
  
'이생망'을 외치는 이들은 어른들만이 아니었다

"더 힘들어하고 더 많이 포기하고 더 안 하려고 하는" 요즘의 학생들
"학생들은 왜 이 시대를 이렇게 괴로워하는가?"
"학생들의 짜증, 포기, 분노, 울분은 어디서 오는 걸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현수 선생님은 오해와 비난을 멈추고 우리 학생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던지는 질문은 우리사회의 본질을 건드리고 있다.

실제로 수치심, 외로움, 불안에 시달리는 학생들이 정말로 많다. 학생들의 주변을 둘러싼 공기들이 너무 차갑다. 평가받고 평가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시절 속에 가득하다. 스트레스를 풀 데가 없다. 어찌보면 요즘 학생들의 막무가내식 반항은, 수치와 외로움과 불안을 도무지 어디에다가 풀 수조차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발생하는 저항이라고 봐야할지도 모르겠다. 생각 없이 반항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살리기 위해서 학생들이 저항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학생들, 왜 그렇게 반항심을 가지고 있을까요?"

나는 힘겨웠던 한 학기 강의를 끝내놓고 담당 선생님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 안에 아픈 진주 같은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었다. 문제를 일으킨 학생들 다수가 어려운 가정환경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올바르게 그들을 이끌어갈 부모의 보살핌이 없는 상태에서 그들에게 올바르게 자라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그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까요?

나는 도무지 방법이 없다는 말을 하고 싶지가 않아서 고민을 멈추지 않고 있다. 마음이 힘들고, 거기서 탈출할 방법을 모르는 학생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을 최대한으로 찾아내고 싶어서 '스포큰워드'를 시작했다. 시적(詩的)이면서도 우리가 알고 있는 시보다 쉽다.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감상할 수 있는 장르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리듬을 담아 표현하는 언어예술이다.  
 
 스포큰워드 유투브 장면.
 스포큰워드 유투브 장면.
ⓒ 말하는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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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르지만, 본질적인 이야기
 
아무 말이나 막 던진다고 멋있어지는 건 아니야. 여자 선생님이 약하다고 우습게 본다는 걸 알아. 눈을 부라리고, 정당한 훈계 앞에서 욕설을 내뱉고 있지. 내가 건네는 말은 사소한 게 아니야. 내가 4년간 강의하면서 보고 들은 사실에 가까운 진짜.

사람은 예의가 있어야 해. 존중 속에는 땀이 있어. 우리는 그 땀방울 위에 앉아 있어. 선생님인 나와, 학생인 너희들이 이 교실에 있다는 건 사랑. 사랑이 있다는 증거. 존중 없이? 단 하루도 숨을 쉴 수가 없어. 너는 어때? 존중 없이? 마음껏 웃을 수 있어? 너는 존중 없는 공간에서 울 수 있어? 우리는 울 수조차 없어. 우리가 힘들 때 울 수 없어.

내가 좋아하는 힙합에서는 이렇게 표현해. 리스펙트. 내가 너를 존중하는 만큼 너도 나에게 존중을 주었으면 해. 그게 사람 사는 예의. 그게 사람 사는 진리. 그게 사람 사는 지구. 얼음처럼 차갑지 않았으면 해. 망치로 깨야만 얼음이 따뜻해지는 것은 아니야. 그 얼음을 입속에 넣고 녹이는 거야. 입김으로 살살 불어서 얼음을 녹이는 거야. 존중의 말들이 천천히 나오는 것 같아. 그럼 우리를 얼어붙게 했던 수치심, 모멸감, 분노와 불신이 사르르 녹기 시작할 거야.

우리가 힘들 때, 누군가 존중을 건넨다고 생각해 봐. 미소가 번지지 않을까? 나는 그런 걸 존중이라고 여겨. 나는 그런 걸 존중이라고 불러. 너도 존중에 목이 마르지 않고, 나도 존중에 목이 마르지 않지.

리스펙스. 오케이? 리스펙트! 잘해보자. (웃음)

-김승일 시인의 3번째 '스포큰워드'  'RESPECT', 유투브 '말하는 오후' 채널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학생들에게 스포큰워드를 보여주고 있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학생들에게 스포큰워드를 보여주고 있다.
ⓒ 김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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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심이나 자포자기의 감정에 매몰된 학생들에게 시적으로, 그러나 좀 더 쉽게, 색다른 메시지를 건네고 싶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과 존중에 대한 본질적인 이야기다. 마음이 아픈 학생들은 작은 입김에도 흔들리는 솜털 같지만, 그들의 마음이 약하기 때문에 그들의 언행은 더 거칠 수 있다고 생각해본다. 그러므로 나부터 강해져야 한다. 나부터 생각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너부터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게 된다.

시와 스포큰워드는 기다림의 아름다움을 가진 세계다. 나와 학생들의 변화를 기다리면서,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다가오는 삶의 의미들을 헤아리고 있다. 시적인 문맥들을 거느리고 있다보면, 그것이 학생들의 마음으로 건너가기도 할 것이다. 

실제적으로는 내가 쓴 시와 스포큰워드를 무대에 올리고 영상으로 촬영해 유투브에 계속 올릴 것이다. 수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학생들에게 영상으로 인사를 건네보는 일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계획해오던, 학교 교문 앞 스포큰워드 낭독에 도전할 것이다. 9월, 늦어도 올 10월에는 할 것 같다.

보이저호에 실린 금색 레코드판이 생각난다. 낯선 세계를 향한 인류의 인사처럼 그것은 지금도 차가운 우주 속을 담담하게 날아가고 있다. 대답이 바로 돌아오지 않을지라도, 낯설고 열악한 세계 가운데 소통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것. 거기에 가닿을 희망을 내려놓지 않는 것. 그것이 '사랑' 아니겠는가.

목소리에 슬픔과 분노를 묻힌 채, 자신은 소년원에 다녀왔노라고 말하며 학교생활을 자포자기했던 한 학생에게 가닿을 수 있을까. 그와 진심으로 대화를 나누고 싶은 내 마음 또한 사랑일까.

덧붙이는 글 | [김승일 시인의 학교詩끌]은 지난 7호부터 <오마이뉴스>에서만 연재하기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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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이 없는 학교를 소망합니다. 제 첫 시집 『프로메테우스』를 학교에서 낭독합니다.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피해학생들을 치유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강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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