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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티오피아 북서부 시골 길가의 아이들
 에티오피아 북서부 시골 길가의 아이들
ⓒ 최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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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계에 지문 안 찍어도 되나요?"
"지금 컴퓨터를 켤 수가 없어. 또 정전이거든. 언제 전기가 들어올지 몰라. 그냥 가."

국경 통제소의 정전 덕에 간단히 도장만 받고 에티오피아에 들어섰다. 이곳에는 식용유가 귀한 걸까.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감자나 토마토로 가득 찬 자루를 메고 수단에 가더니 커다란 식용유통을 가져왔다.

수단 국경에서부터 반갑게 맞이하며 에티오피아 국경 마을까지 따라 붙어 이것저것 필요 없는 조언을 하던 이는 염려했던 대로 호객꾼이었다. 정류장의 미니버스에 오르자 친절했던 표정을 싹 바꾸며 200비르(한화 8000원)를 요구했다.

미안하지만 필요 없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계속 따라와 놓고 결국 돈을 달라니, 나라별 국경별로 사기 수법은 참 다양하다. 어쩔 수 없이 남은 수단 돈과 에티오피아 돈 25비르(1000원)를 줬는데, 너무 적다며 수단 지폐를 찢어 버렸다.

거대한 아프리카 땅에서 제국주의 식민지를 겪지 않은 유일한 나라, '동아프리카의 뿔'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나라, 에티오피아에 도착한 설렘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붉은 바다 홍해를 건너 예맨에서 온 사업가 아흐메드(Ahmed)씨와 함께,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로 가는 중간 지점, 호수의 도시 바히르다르로 가는 미니버스를 탔다. 짐칸을 없애고 좌석을 최대로 늘린 승합차였다. 세 명이 앉을 좌석에 네 명을 태우고 다섯 명까지 밀어넣어도, 어느 누구 하나 싫은 소리 한 마디 하지 않았다. 꼼짝달싹 못한 채로 열두 시간을 이동했다. 허리와 무릎을 펼 수 없어 온몸이 저릿저릿했다. 컴컴한 시루 속에 다닥다닥 붙은 콩나물이 된 기분, 움직일 수 없는 고문을 당하는 느낌이었다.

에티오피아 장거리 미니버스에 비하면 과테말라의 치킨버스는 널찍한 편이었고, 브라질과 터키에서의 스물일곱 시간, 서른여섯 시간 거리 대형버스도 그럭저럭 탈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격렬한 고통도 까마득히 시간이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되곤 하는 것일까.

아흐메드씨는 아픔을 잊기 위해서인지 끊임없이 '까트(Khat)'라는 토종 식물을 씹었다. 까트는 에티오피아와 예맨 등지에서 널리 즐기는 식물로, 남미 페루와 볼리비아에서 흔히 먹는 코카잎처럼 환각 효과가 있다고 한다. 질겅질겅, 그는 끊임없이 옆자리 승객들에게도 까트를 권했지만, 나에게 까트 잎사귀는 아무런 치유와 안정의 효과가 없었다.

아프리카 대륙은 크게 지리적, 문화적으로 사하라 사막 이북과 이남으로 나뉜다. 이집트, 수단의 기나긴 사막 지대가 끝나고 드디어 에티오피아의 고산지대가 펼쳐졌다. '아마도' 세계 최고 밀도의 승합차가 오르락 내리락 산길을 빙빙 도니 엎친 데 덮친 격인지 멀미까지 찾아왔다. 한 사람 두 사람, 차장에게 봉지를 받아 토하기 시작했다.

우기답게 종일 폭우도 쏟아져, 버스 지붕에 묶어둔 배낭이 쫄딱 다 젖었다. 일 년 넘게 여행하며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별로 없었는데, 불현듯 고국의 정겹고 편안한 집이, 따듯한 가족과 친구들이, 못내 그리웠다. 하지만 곧, 나에게는 돌아갈 옥탑방이 사라졌고 친지들이 늘 따듯한 건 아니라는, 조금은 슬프고 아릿한 사실이 느껴졌다.

그 와중에 에티오피아 사람들 대부분은 평생 이런 힘겨운 버스를 타고 다닐 것이며, 불편함의 기준도 다르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런 색다른 고통 또한 '여행의 맛'이며 세계 곳곳 다양한 사회 문화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공포의 에티오피아 초고밀도 미니버스는 하루에 두어 시간 이상은 절대 다시 타고 싶지 않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에티오피아 북서부, 좁디 좁은 미니버스 내부
 에티오피아 북서부, 좁디 좁은 미니버스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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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티오피아 남부 국경마을 모얄레 시장. 토종식물 '까트 (Khat)' 를 다듬는 상인들
 에티오피아 남부 국경마을 모얄레 시장. 토종식물 "까트 (Khat)" 를 다듬는 상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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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의 땅, 가난의 풍경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니 여행자일 때가 좋았던 듯해요. 아프리카는 아직 갈 생각이 없어요. 왠지 아플 것 같아서요. 몸이든 마음이든..."

페루 티티카카 호수에서 만난 여행자 이동지씨의 얘기처럼, 에티오피아 북서부를 지나오는 동안 몸도 힘들었지만 마음도 아팠다. 몸의 피곤은 자고 나면 슬며시 사라지는데, 마음의 아픔은 조금 더 오래 기억 속에 자리잡곤 한다.

듬성듬성 나뭇가지와 흙으로 벽을 세우고 짚으로 덮은 집들은 폭우 속에 쓰러질 듯 했고, 전기도 수도도 신발도 없는지 맨발의 아이들이 우물에서 물을 길었다. 처마 밑에 가만히 선 가족들은 젖은 몸을 움츠린 채, 아스팔트 도로 위로 하염없이 흘러가는 차들을 바라보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조사해 발표하는 나라별 일인당 GDP 는 흔히 국가와 국민의 부를 판단하는 주요 기준이 된다. 일인당 GDP가 가장 많은 룩셈부르크는 11만2850달러, 29위인 남한은 3만1940달러, 168위인 에티오피아는 853달러다.

약 196개 국가 중 경제적으로 가장 가난한 나라들 상당수가 아프리카 대륙에 자리하고 있다. 수만 달러, 몇 백 달러라는 돈의 수치로 사회와 사람의 삶을 다 가늠할 수는 없지만, 너무나 커다란 차이와 불평등의 모습을 마주하니 먹먹함이 몰려왔다.

수단과의 국경에서 멀어져 도시에 들어서자 커다란 시멘트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고 집집마다 위성 안테나가 설치되어 있었다. 에티오피아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생활의 격차는 커 보였다.
 
 에티오피아 북동부 다나킬 저지대의 움막집
 에티오피아 북동부 다나킬 저지대의 움막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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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베드버그의 공포

에티오피아 횡단 정보를 찾다가 '에티오피아는 베드버그(빈대)로 유명하다'는 블로그를 읽었다. '빈대 주의' 소문이 도는 많은 나라들을 여행하는 동안 딱히 빈대에 시달린 적이 없어서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천만다행히도 내 몸은 빈대의 공격에 강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에티오피아에서 첫날 밤을 보내고 깨어난 새벽, 그동안은 내가 운이 좋아서 빈대에 제대로 물리지 않았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엉덩이에 오리온 별자리 모양으로 물린 빈대 자국은 일주일이 지나도록 엄청나게 가려웠다. 너무 긁어서 살이 부르트고 쓰라린데 또 너무 가려워서 긁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빈대는 낮에는 나오지 않고 침대나 옷의 솔기에 꼭꼭 숨어 있다가 새벽에 숙주의 피를 빨아 먹으며, 증식 속도가 빠르고 퇴치도 어렵다고 한다. 그야말로 보이지 않는 적의 치명적인 공격이다.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다인실 숙소(도미토리)에 도착해 뜨거운 물로 모든 옷가지를 세탁했다.

프랑스에서 온 NGO 활동가, 룸메이트 프람씨는 1년 동안 에티오피아 시골 마을에서 우물을 팠다고 한다. 시골에 빈대가 많지 않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바지를 내리고 셔츠를 들어 온몸에 가득한 빈대 자국을 보여주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에티오피아에 베드버그가 있냐고? 나는 빈대랑 같이 살아."

세상에는 참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 온몸이 빈대 자국 투성이면서도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는 프람을 보니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하는 옛말이 떠올랐다. '빈대 따위가 무서워 여행을 못 할소냐'라고 용기를 내고 싶었지만, 나는 정녕 빈대가 무섭다.

숙소를 옮길 때마다, 또 빈대에 물리면 어쩌나, 불안해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내내 침대와 이불과 옷을 탈탈 뒤져도 빈대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으나, 에티오피아에서 물린 수십 개의 빈대 흉터는 아직도 내 엉덩이 곳곳에 남아 있다.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소년. 옷의 솔기를 따라 빈대를 잡고 있다. ‘아디스 아바바 Addis Ababa’ 는 암하라어로 ‘새로운 꽃' 을 의미한다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소년. 옷의 솔기를 따라 빈대를 잡고 있다. ‘아디스 아바바 Addis Ababa’ 는 암하라어로 ‘새로운 꽃" 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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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달동네 생활영화인 늘샘. 남쪽 바다 미륵섬에서 자라, 지리산 골짜기 간디학교에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인디스페이스, 늘장, 로드스꼴라, 청년활동지원센터에서 활동. 영화를 만들고, 글을 쓰고, 노래합니다. 인디언식(式) 이름은 '땅을 치고 춤춰'.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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