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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컬럼비아대의 대학 교수 마크 릴라는 정치 철학을 연구하는 학자다. 그는 실망한 미국의 진보주의자로서 이 책 <더 나은 진보를 상상하라>를 썼다. 그는 진보적 관점에서 어떻게 그동안 미국의 민주당이 변화해왔고, 그들이 바라던 바가 점점 협소하고 왜곡된 방향으로 나아갔는지를 지적한다.  
 
 더나은진보를상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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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크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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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미국의 시대를 크게 두 시대로 구분한다.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대승하면서 장기집권의 시대를 연 이후의 민주당의 시대,  레이건이 공화당 압승 시대를 열면서 이룩한 레이건주의의 시대로 말이다. 전자는 미국을 연대의 나라로 만들었다. 루스벨트의 비전 안에는 언론, 신앙, 결핍, 공포로부터의 자유가 있었고 진보주의자들은 자신감과 희망, 자부심으로 비전을 채웠다. 

그러나 1970년 이후 루즈벨트의 미국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자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완전히 바뀌었다. 과도기 대통령 지미 카터가 한 번 당선된 후 결국 이 시대는 끝났다.

새로운 시대를 연 사람은 바로 로널드 레이건이었다. 그는 혼란한 마음 속에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허함을 레이건주의로 가득 채웠다. 레이건은 미국인들에겐 어떤 문제도 없고, 한 고개만 넘으면 황금시대의 행복을 획득할 수 있다는 비전을 주었다. 

지금은 어떤 시대일까. 트럼프가 대통령인 현재 레이건주의의 시대도 영향이 다했다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다. 저자는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힐러리를 이긴 사람이 아니라, 민주당과 공화당을 모두 꺾은 사람으로 본다. 비주류적인 트럼프가 당내의 쟁쟁한 후보와 치열한 다툼을 겪고 불화를 써내려간 이력을 생각해 보면 설득력 있는 말이다.

저자는 레이건주의가 효력을 다했어도, 새로운 시대를 열기에는 민주당에 부족한 점이 있다고 본다. 저자가 지적하는 가장 큰 문제는 그동안 민주당이 점점 작고 폐쇄적인 방향으로 정치를 해왔다는 점이다. 저자는 민주당이 점점 정체성 정치에 매몰되어 왔음을 비판한다. 1960년 이후 미국의 좌파는 점점 퇴각해서 대학교로 도주했다. 대학은 정치와 경제 양면에서 노동조합을 대체했다.

저자가 보기에 대학에서의 좌파 활동은 자아와 정체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는데, 고정된 자아란 없고 우리가 무엇을 자아라고 말하든 그것이 자아라는 식의 생각이 널리 퍼졌다. 이는 개인이 자신의 자아를 개인 브랜드와 유사하게 스스로에 의해 구성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음을 뜻한다.

덕분에 정치 시스템을 둔 공평한 대화의 장 대신 정체성과 자아에 기반한 사고가 진보적인 사람들을 지배하게 되었다. 저자는 결국 이런 정체성 진보주의자들이 개인주의가 강한 시대에 분리되어 있는 미국인들을 더욱 더 분리하고, 진보의 전통적 무기였던 연대와 공동체를 무력화시켰다고 본다.

미국 민주당 지지자들이 정체성을 강조하고, 대학 내부에서 점점 더 자신의 자아와 개인에 집중하라는 말을 들을 때, 공화당은 선거에 집중했다. 그 결과, 주 정부, 판사, 선거직의 요소요소는 모두 공화당이 장악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하지만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정치의식과 전략 수립이 필요한 시점에 정체성에 관한 상징적 드라마에 에너지를 소비하고, 표현 그 자체를 위한 운동들에 역량을 탕진했다. 저자는 항의 시위, 온라인 동원, 플래시몹, 대학 세미나, 워크숍을 비롯한 일련의 활동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선거 승리라고 본다. 어떤 운동 정치도 제도 정치를 통해 무효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70년대가 저물고 1980년대가 시작될 즈음에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운동 정치를 제도 정치의 보완물이라기보다 대안으로 보기 시작했다. 심지어 일부 진보주의자들은 운동 정치를 제도 정치보다 더 합법적인 것으로 보기 시작했다. (중략) 그러나 운동 정치의 그 어떤 성취도 제도 정치를 통해 무효화될 수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철칙이다. -113P
 
저자는 이러한 난국에서 벗어나는 길은 모두가 미국인으로서 공유하는 것인, '시민의 지위'에 호소하는 것이라고 본다. 시민의 지위는 정치적 지위이고, 정체성 집단과는 다르게 확대 가능한 의미를 지니며, 정체성에 대한 애착을 초월하여 연대를 이야기하는 데 필요한 정치적 언어를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책의 한국어판 해설은 정치권에서 오랜 세월 몸담고 현재는 국무총리 소통메시지 비서관으로 있는 유창오씨가 맡았다. 그는 자신의 오랜 정치 경험을 바탕으로 저자의 논의가 한국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밝히는데, 본편보다 재밌을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마크 릴라의 대안을 한국에도 적용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정체성 정치 중에서 인종을 제외한 여성과 성소수자 이슈는 지금 한국에서도 시민단체와 진보 언론을 중심으로 그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마치 태풍의 눈에 접근하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마크 릴라가 지적한 공동체 의식의 퇴조와 정치의 파편화는 한국 진보도 미국 진보와 똑같다. - 157P

유창오씨에 따르면, 진보는 다수를 위한 진보가 있고, 소수를 위한 진보가 있다. 다수를 위한 진보는 다수파 형성을 통한 현실적 변화를 지향하고, 소수를 위한 진보는 소수의 '진정한' 진보의 길을 지향하지만 수가 적어 진보의 가치와 신념을 사회에서 실현하지 못한다. 한국의 진보 중에도 정당은 업신여기고 나쁜 것으로 보고, 진보 운동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해설자의 생각이다. 해설자가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다수를 위한 진보다.

미국에서는 대중이 진보를 외면하고, 무당파나 보수층이 세력 분포에서 앞서 나가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평범하지만 단단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시민의 지위에 집중하자는 저자의 말은 설득력이 있다. 해설자가 말하는 진보에 대한 구분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진정 세상을 바꾸는 것은 무엇인가.

더 나은 진보를 상상하라 - 정체성 정치를 넘어

마크 릴라 지음, 전대호 옮김, 필로소픽(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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