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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집회만 하면 수십만은 기본이고 수백만도 어렵지 않게 사람들이 모인다. 검찰개혁을 외치는 서초동 집회와 조국 퇴진을 외치는 광화문 집회는 주최 측 추산으로는 수백만, 보수적으로 잡아도 수십만이 모인다. 불과 십년 전만 해도 대규모 집회를 할 때 수만이 모이면 성공적이라고 생각했고, 수십만이 모이면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백만이 넘어가면 혁명이 일어나고 역사책에 나올 만한 사회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2008년 미국산소고기수입반대 촛불집회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대치였고, 극히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이젠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는 집회가 동시에 수백 만 명을 모을 수 있다. 여러 조건이나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을 꼽아보자면 스마트폰과 SNS의 발달이다. SNS 덕분에 예전보다 대규모 집회가 열리는 소식을 접하기 쉽게 되었고, SNS의 알고리즘으로 우리는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의 존재를 확인하며 과거보다 더욱 거리낌 없이 집회 참여를 마음먹을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대규모 집회가 아니더라도, 단체에서 하는 많은 캠페인이 이제는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기획되고, 추진되고, 집행된다. 메신저를 통해 수시로 회의를 하고, 구글 드라이브를 이용해 성명서를 함께 쓰며, 집회 안내를 페이스북에 올리고,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들은 스마트폰으로 세상과 소통의 끈을 이어 나간다. 과학기술의 혁명적인 발전은 혁명 운동마저도 획기적으로 바꾸어 가고 있다. 변화의 속도가 워낙 빠르다보니 따라가는 것만도 벅차다.

웹포스터를 만드는 법을 배웠더니 어느 새 카드 뉴스를 만들어야 하는 세상이었고, 겨우겨우 카드뉴스 잘 만드는 법을 익혔더니 이제는 유튜브를 해야 한다나. 물론 활동가라면,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기 위한 노력을 중단하지 말아야 하지만, 이 속도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 기술의 발전을 따라잡기보다는 기술자 친구를 사귀는 것이 훨씬 더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새 기술 익히기에 지쳐가면서도, 그래도 기술의 발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기술 자체보다는 기술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두 권의 책을 읽어보았다. 

데이터 독점에 저항하라 <가상의 현실이다>
 
 <가상은 현실이다> 표지 이미지
 <가상은 현실이다> 표지 이미지
ⓒ 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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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은 현실이다>는 구글코리아에서 일하는 주영민 마케터가 쓴 책이다. IT 업계 최전선에 있는 사람답게 혁명적인 변화를 주도하는 핵심 기술로서 가상인격(페이스북), 가상두뇌(알파고), 가상화폐(비트코인)의 개념의 의미, 그리고 예측 가능한 수준에서 미래의 모습을 두루 알려준다. IT 업계 사람 특유의 과학기술에 대한 과장이 때때로 고개가 갸우뚱할 때도 있지만, 정교한 논리 덕분에 과장이 아니라 내가 잘 모르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가상(假想)'의 뜻은 '사실이 아니거나 사실 여부가 분명하지 않은 것을 사실이라고 가정하여 생각함'이다. 이 책에 나오는 가상의 것들을 사전적인 의미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가상인격은 우리의 가짜 인격 혹은 또 다른 인격의 차원이 아니라, 현실의 인격보다 오히려 더 우리의 본모습에 가까울 수도 있다고 한다.

가상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가상인격의 특성을 위해 우리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음식을 인스타에 올리는 게 아니라, 인스타에 올리기 위해 음식을 찾아다니는 형국이라고 하면 좀 더 이해가 빠르다. 가상두뇌 또한 인간을 대처하는 인공지능에 머무르지 않는다.

인공지능 기술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침투하느냐고 중요한 문제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철학적인 문제다. 사람들은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기계의 출현을 걱정하지만 오히려 우리가 더 걱정해야 하는 것은 기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의 출현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상화폐는 아주 적극적인 대안화폐이고 중앙집권적인 인터넷에 저항하는 자유 그 자체의 화신이라고 한다. 물론 늘 그렇듯 자유가 절대적으로 좋은 것은 아니며, 모든 기술이 그렇듯 가상화폐 또한 명과 암이 있다. 난민이나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안전을 지키면서 경제적인 활동을 유지할 수 있게도 해주지만, 마약 거래 등에 이용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이야기는 관심 분야가 아니라 지루하게 읽다가 그만 포기하려 했다. 하지만 저자의 가장 중요한 주장이 이 챕터 끝에 나왔다. 가상화폐를 가장 마지막 순서에 배치한 까닭을 책을 끝까지 읽어보면 알 수 있다. 가상인격, 즉 SNS에서 우리는 자발적으로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생산한다. 어디를 가고,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먹고,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좋아하는 영화와 책은 무엇이고, 비오는 날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야말로 세상 모든 것의 데이터를 입력하면, 가상두뇌가 서 말도 훨씬 넘는 이 구슬, 아니 데이터를 보배로 만든다.

과거 컴퓨터의 계산, 분석 능력이라면 우리가 SNS에 쏟아내는 잡다한 정보는 쓰레기나 다름없었겠지만 지금의 인공지능은 이 빅데이터를 통해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그렇게 분석한 정보를 기업과 국가가 독점하고 있는 시스템이 현재의 인터넷이다. 중국이 안면인식 기술을 이용해 사람들을 통제하는 것을 보면 저자의 이야기가 피부로 느껴진다.

그런 중앙집권적이고 독점적인 시스템에 저항하는 방식이 블록체인, 즉 비트코인의 기술이라는 것이다. 데이터 집중화에 맞서 데이터 주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고 그런 면에서 분산화에 기반을 둔 블록체인의 방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기술적인 면에 대한 서술은 완벽하게 이해가 가지는 않았지만 내가 파악하고 이해한 바로는 데이터의 수집, 분석을 독점하는 방식의 시스템에 저항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으로 읽혔다. 

과학기술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사람의 자리-과학의 마음에 닿다>
 
 <사람의 자리> 표지
 <사람의 자리> 표지
ⓒ 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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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자리>를 쓴 전치형 교수는 한겨레신문에 '과학의 언저리'를 연재했다. 올해 초 일본에서 킬러로봇에 반대하는 평화운동가, 연구자들의 세미나에 전쟁없는세상도 참석했는데 그 자리에 전치형 교수도 왔다고 해서 더욱 관심을 갖고 있는 저자이기도 하다.

<가상은 현실이다>가 주로 웹상의 가상화에 대한 이야기라면 <사람의 자리>는 더 폭넓은 영역에서 테크놀로지와 인간의 관계를 살펴본다. 우리는 흔히 과학기술을 떠올릴 때 4차산업혁명, 노벨상 같은 휘황찬란한 것들을 떠올리거나, 과장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떠올리기 쉬운데, 전치형 교수는 '지금, 여기서, 과학이 우리의 삶과 어떤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고, 맺어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2장 '자율적 인공지능과 타율적 인간'이다. 특히 자율주행자동차와 관련된 여러 편의 글은 자율주행이라는 신기하기 그지없는 테크놀로지만 볼 때는 알 수 없는 뼈를 때리는 감각들을 일깨워 주었다.

자율주행차가 아무리 대중화 되더라도 회장님들은 자율주행차를 타지 않을 것인데, 그 이유는 기술 때문이 아니라 '운전'이라는 사회적인 의미의 행동 때문이라고 한다. 즉 회장님에게 운전기사는 차를 모는 사람으로서 기능하는 면도 있지만, 회장님의 사회적 위신을 세워주는 역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차가 전자를 대처하더라도 후자의 사회적 기능을 대체할 수 없다면 회장님의 운전기사는 여전히 사람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자율주행차는 운전에 대한 사회적 고정관념을 뿌리째 흔들 수도 있다. 운전은 오랜 세월 동안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졌다. 요즘 들어 여성 운전자들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베테랑 운전기사나 대중교통 운전기사는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데 자율주행 기술의 발달은 이런 고정관념을 허물어버린다. 사람이 더 이상 운전하지 않는 차에서 남자가 주행을 잘하네, 여자는 주차를 못하네 같은 고정관념은 설 자리를 잃는다는 것이다. "자율적 기술은 인간 전체를 똑같이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자율의 역사와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방식으로 다가온다."는 말은 우리가 과학기술을 대할 때 지녀야 할 감각이 무엇인지 새삼 가르쳐준다. 

영상촬영 편집기술보다 중요한 것

솔직히 말하면, 요즘 나는 기술의 발달이 사회운동에 좋은 효과를 가져 오는지 잘 모르겠다. SNS 덕분에 대규모 집회는 가능해졌지만,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공론장은 오히려 더 파괴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유로운 의사개진이 아니라 가짜뉴스와 진영논리만 난무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기술을 익히거나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부족한 조그만 단체 활동가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

결국 나는 포토샵을 배우고, 카드뉴스를 만들고, SNS도 열심히 하다가 유튜브에 와서는 기술 배우기를 포기했다. 과연 이 속도를 언제까지 따라잡을 수 있겠나 싶었고, 지금 사회운동에 필요한 게 단순히 기술적인 측면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혁신적인 기술이 가져온 사회의 변화를 좀 더 근원적인 측면에서 이해하는 것이 우선해야할 것이라 생각하며 두 권의 책을 읽었다. 

새로운 사실과 정보,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 거 같아 기분이 무척 좋다. 예를 들면 평화운동에서는 과학기술이 군수산업과 만나 더 효과적으로 사람을 살상하는 무기를 만드는 것을 우려해왔다. 하지만 평화운동이 과학기술 관련해 진정 우려해야할 지점은 군산복합체뿐만 아니라 전쟁을 부추기는 가짜뉴스의 생산과 유통, 그를 통한 여론 조작이라는 <가상은 현실이다>의 저자 주영민의 말은 이 책들을 읽지 않았다면 생각도 못해봤을 것이다

인간과 사회가 과학기술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더 나아가 평화운동은 과학기술과 어떤 영향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지, 아직은 명쾌한 길이 보이지 않지만 이 두 권의 책 덕분에 나는 영상 편집 기술을 배우는 대신에 좀 더 오래 지속될 고민 방향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떙땡책협동조합의 블로그에도 올라가있습니다. https://brunch.co.kr/@00books/50


가상은 현실이다 - 페이스북, 알파고, 비트코인이 만든 새로운 질서

주영민 (지은이), 어크로스(2019)


사람의 자리 - 과학의 마음에 닿다

전치형 (지은이), 이음(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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