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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짐 현수막
 번짐 현수막
ⓒ 정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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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에 이사온 지 1년이 되어간다. 2014년 세월호 사건, 그때 잃어버린 아이들과 동갑인 딸아이 때문에 나도 꽤 힘들고 안타까운 시간을 보냈다. 안산으로 이사가 결정되던 날, 난 잃어버린 아이들의 어머니들이 떠올랐다. 언젠가 이 땅에 자식 낳아 키우는 같은 어머니의 입장에서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해왔다.

때마침 세월호 어머니들과 시민의 공동 참여 뜨개 전시회를 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뜨개 작품을 나무 둥지에 감싸 하늘로 떠난 아이들에게 그리운 마음을 표현하는 행사였다. 얼른 자원봉사 신청을 하고 '이웃'을 찾아갔다. 뜨개 작품에 손바느질로 이름표 다는 일을 함께했다.
 
 세월호엄마들의 그리움을 담은 엄마나무들
 세월호엄마들의 그리움을 담은 엄마나무들
ⓒ 정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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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엄마들의 치유와 뜻을 같이하는 시민의 참여로 만들어진 공동체, '이웃'에 들어섰을 때 처음 그 느낌은 잊을 수가 없었다. 뭔가 해보고 싶다는 내 마음과 다르게 분위기는 어색했다. 치유활동가와 엄마들만 모이는 시간이라고 했지만, 낯선 얼굴에 대한 묘한 경계심이랄까. 내가 너무 민감하게 느낀 것일 수도 있었다.

하기로 마음 먹은 일. 약간은 거리감을 느끼며 한땀 한땀 손바느질로 작가의 이름표를 작품디자인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 달았다. 뜨개질 프로젝트 '번짐'에 좀 일찍 참여했더라면 내 작품도 있었겠지만 곧 전시회가 열린다는 생각에 그런 것은 욕심일 뿐이었다. 내년을 기대하며 조용히 작품에 바느질을 하고 있는 엄마들을 보았다. 말을 걸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생각뿐 시간만이 흘렀다.
 
 뜨개작품에 이름표를 손바늘질로 달고 있는 모습
 뜨개작품에 이름표를 손바늘질로 달고 있는 모습
ⓒ 정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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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이름표 작업이 아니라 꽃을 달아야 하는 일이 생겼다. 뭔가 작품에 참여할 수 있겠다는 작은 기대가 있었지만 그 '이웃'의 어색함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일이었다. 사연은 이렇다.

작품 중에는 노란리본과 노란배가 디자인 된 것도 있었다. 치유활동가들은 세월호의 상징인 노란리본과 노란배를 큰 꽃을 떠서 가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500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 몇 개월에 걸쳐 떠서 보낸 작품 중 하나지만 '상징'을 가려야 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큰꽃을 떠서 세월호의 상징을 가리려고 한 작품
 큰꽃을 떠서 세월호의 상징을 가리려고 한 작품
ⓒ 정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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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아이들에게 그리움을 전하는 뜨개 전시회에서 세월호의 상징을 숨겨야 한다니... 이게 무슨 일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치유활동가가 한 이야기는 나를 더 당황하게 만들었다. 뜨개 작품이 전시되는 곳인 안산 화랑 유원지는 세월호의 희생자를 추념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기념 공원으로 선정된 후 지역주민의 갈등이 심한 곳이라 했다.

앞으로도 그 분쟁은 멈추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이란다. 지역주민들 중에는 세월호 노란리본만 보면 무작정 욕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 현수막이나 작품같은 야외 설치물을 뜯어내거나 훼손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그러니 우리는 세월호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노란배나 노란리본이 크게 보이는 작품에 시민 작가의 허락을 구해 큰꽃을 떠서 덮어야 하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화랑유원지 산책로에 시민들이 보내온 뜨개작품을 설치하고 있는 모습
 화랑유원지 산책로에 시민들이 보내온 뜨개작품을 설치하고 있는 모습
ⓒ 정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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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세월호 뜨개 전시회 준비에 참여한 첫날, 세월호가 가라앉듯 큰꽃속으로 침몰하는 노란배를 바라보아야 했고 내 옆에는 아이들을 하늘로 보낸 세월호 엄마들이 있었다.

혐오, 분노와 적대감을 받는 일은 세월호 엄마들에게는 계속되어왔던 일이었다. 내가 그 엄마였다면 노란 리본을 달고 안산의 길거리를 걸어다닐 수 있었을까? 물론 대부분의 시민이 그런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하지만 한 명이라도 길거리에서 욕을 하고 화를 낸다면 나는 어땠을까?

억울하고 화를 낼 수도 있겠지만 우선 드는 감정은 아마 공포와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엄마가 먼저 떠나 보낸 아이를 잊지 않기 위해 가방 한 켠에 달았던 노란 리본은 공격 대상이라는 표시일 수도 있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낯선 사람에게 보이는 일반적인 어색함을 넘어서 그 엄마들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그리고 낯선 사람이 두려움의 대상일 수 밖에 없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나라면 아마 노란리본과 노란배가 인쇄된 스티커를 가방에 붙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의 느낌은 나를 작품을 설치하는 날로 이끌었다. 그리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보게 되었다.
 
 시민들의 뜨개작품이 설치된 화랑유원지 산책로
 시민들의 뜨개작품이 설치된 화랑유원지 산책로
ⓒ 정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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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이름표를 달았던 뜨개 작품들이 물에 젖어 있었다. 한 켠에 빨래가 되버린 작품들을 보며 한숨부터 나왔다. 일찍 설치했던 작품을 누군가 떼어내 호수에 던져넣었던 것이다. 작품에 맺힌 물방울들은 눈물처럼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사람들은 다시 눈물젖은 뜨개 작품으로 나무를 감쌌다. 그 누구도 경찰 수사를 요청하지도 않았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담담하게 우리는 눈물을 씻어내고 있었다.
 
 누군가 설치된 뜨개작품을 호수에 빠뜨려 치유활동가들이 건져내어 말리고 있는 모습
 누군가 설치된 뜨개작품을 호수에 빠뜨려 치유활동가들이 건져내어 말리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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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감이 교차했다. 추모공원인지 안전공원인지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반대하는 사람들이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여러 이유로 의사 표시가 아니라 적대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 앞으로 이 공격 행위가 물질적으로 계속된다는 것이 두려웠다. 여기서 물러선다면 우리가 무섭고 두렵다는 것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되기에, 우리의 주장이 부당한 것이 되기에 다시 우리의 그리움은 나무를 감쌌다.
 
 뜨개작품
 뜨개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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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의 그 누군가는 아니 전국의 그 누군가는 세월호 아이들을 그리며 더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진실 규명을 위해 집회도 하고 글도 올리고 사진도 찍을 것이다. 노란리본과 노란배는 곳곳에 우리의 기억을 위해 달릴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들은 공격의 대상일 수도 있게 되었다. 혐오와 분노의 대상이 되었다. 감정의 분출구가 된 세월호의 상징물은 세월호의 엄마들과 지지하는 시민들은 언제든 공격받을 수 있다는 일상적인 두려움을 가질 수도 있었다.

세월호에 대한 가짜뉴스는 이 혐오와 분노를 부추겼다. 세월호 엄마들에게 '지겹다'라는 말을 하고 엄마들과 유족들을 '세금도둑'으로 불렀던 수많은 사람들...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이 말하지만 감정적인 이들을 설득하는 것은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다. 당연히 나에게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도 방법도 없다. 누구의 감정을 바꾸는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나와의 약속밖에 없다. 새로운 약속.
 
 뜨개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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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세월호 아이들과 동갑내기 딸을 둔 것때문에, 그리고 그 딸이 지금 내곁에 떠나 교환학생을 하고 있는 때라 딸에 대한 그리움을 섞어 이 전시회에 참여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이유로 세월호 아이들과 유가족, 시민들과 함께 작은 일이라도 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일로만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세월호를 지켜야 한다. 누군가의 감정으로부터 공격으로부터 지키는 일로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이다. 조금 더 튼튼해지고 의연해져야 하는 때이다.
 
 뜨개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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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를 꼭 지키겠다는 약속과 작은 실천. 누구를 설득하지 않고 멈추지 않고 내 뜻을 보여주는 작은 작품들. 내년에 내 이름이 붙은 뜨개 작품을 만들고 그곳에 노란리본과 노란배를 떠서 달겠다는 약속. 내 작품이 물에 빠지거나 찢어져도 절대 실망하지 않고 후년에도 또 참여하겠다는 약속. 이 약속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언젠가는 분노의 감정에 휩싸인 사람들이 마음을 열 것이라는 작은 기대를 가지고...

지켜야 기억하고 지켜야 바꾸고 지켜야 새로운 희망을, 더 이상 참사가 없고 안전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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