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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 전, 비틀거리며 걸어온 손님의 주문을 받았다.

"단 커피. 무조건 단 거. 설탕 팍팍! 넣어서!"

큰 산을 만난 기분. 숨을 깊게 들이마시던 찰나, 옆에 있던 일행이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 주세요"라고 말하면서 상황은 정리됐다. 카페에서 일하는 동안 주문을 '설탕 팍팍!'으로 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래, 커피는 기호 식품이니까. 커피는 철저한 개인의 취향이다. 설탕 팍팍이든 크림 팍팍이든.

곰곰이 생각해보면 커피 한 잔에 거쳐가는 손길이 참 많다. 일단 아라비카 원두인 경우,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 같은 지구 반대편 산 '노옾은' 곳에서 농부가 매일 커피나무를 돌봐 재배하고 씻기고 말리는 작업을 거친다. 그후 로스팅과 블랜딩 같은 후가공을 거친 후 마지막으로 바리스타의 손에서 한 잔의 커피가 완성된다(커피 머신 업계까지 따지면 수천 명의 결과물이 된다). 이렇듯 수많은 이의 공이 들어간, 식품에 "무조건 단 커피"라니.

호텔 로비에서나 '코히(커피의 옛말)'를 마실 수 있던 조선시대가 아니니 우리는 한 블록 건너에 있는 카페 어디에서든 커피를 마실 수 있다. 그래서일까. 여전히 업계 종사자가 아니라면 이 일을 '업'으로 종사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당연하게도 맛있는 커피를 준비하고 치열하게 더 친절해지는 수밖에.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당연하게도 맛있는 커피를 준비하고 치열하게 더 친절해지는 수밖에.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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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반 동안 해 온 바리스타. 나는 지금 잘 하고 있나? 이 일을 잘 선택한 게 맞나? 뼈를 묻겠다며 시작했던 처음 마음과 지금 마음이 같나? 근데 이 일을 왜 시작했더라, 처음엔 맛있는 커피를 내리는 기술직이지만 친절함과 편안함을 더하면 더 좋은 일이라 여기며 시작했던 것 같은데, 일 할수록 반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반대도 아니라 맛있는 커피는 부차적인 일이 된 건 아닌지. 오히려 친절함과 편안함 또 세심함 등등이 필수적인 것 같다. 지치면 안 되는 표정과 말투와 행동이 죄여오는 일. 그래 바리스타는 바로 '서.비.스.직'이었다.

이 일, 계속 할 수 있을까? 그런데 나는 왜 "무조건 단 커피!"를 외치던 손님을 보며 기분이 불쾌했던 걸까. 내 말은 듣지 않으려는 태도? 커피 맛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한 말? 난 아무래도 후자다. 손님은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커피 맛은 내게 꽤 중요하니까.

손님들은 직원이 친절하다거나 뜻밖의 호의를 받았거나 하는 일이 있을 때 칭찬 게시판에 글을 남긴다. 그럼 회사에서는 그 일을 크게 알리며 본받자고 이야기한다. 커피가 맛있다는 이야기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한때 바리스타 학원이 왕성하고 자격증을 공부하며 시험을 볼 때는, 바리스타가 기술직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다. 요리사처럼. 맛있는 커피를 만들 수 있다면 되는 일이라고.

그런데 요리사보다는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의사 쪽이 더 가까운 것 같다. 보수에서는 한참 거리가 있지만, 병원도 카페처럼 한 블록 건너 병원이, 넓게는 동네 하나마다 있으니까. 게다가 요즘에는 병원도 멀끔한 인테리어와 친절한 서비스를 잘 갖춰야 선택받을 수 있다고 하지 않나.

병원보다 널리고 널린 게 카페다. 요즘엔 홈카페도 유행이라 커피는 어디서든 마실 수 있는 음료가 됐다.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 이유다. 당장 주변을 둘러보면 상당한 음식점과 카페에서 키오스크를 도입했다. 친절한 서비스를 기대하지 않을 수 있는 기계를 택한 곳들이다. 몇몇 회사에서는 휴대폰으로 주문하는 'ㅇㅇ오더'를 도입했다. 손님이 편한 대로 주문을 할 수 있다.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당연하게도 맛있는 커피를 준비하고 치열하게 더 친절해지는 수밖에.

덧붙이는 글 | 제 네이버 블로그에도 중복 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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