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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한길문고 상주작가(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작가회의가 운영하는 '2019년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로 일합니다. 문학 코디네이터로 작은서점의 문학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자리를 만듭니다. 이 연재는 그 기록입니다. - 기자말
 
 군산 지곡동에서 카페 '음악이야기'를 하는 이현웅씨. 그는 글 쓰는 사람이다.
 군산 지곡동에서 카페 "음악이야기"를 하는 이현웅씨. 그는 글 쓰는 사람이다.
ⓒ 이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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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꿈은 즉석밥 같다. 전자레인지에 2~3분 돌리면 갓 지은 밥이 되는 것처럼, 어떤 자극을 받고나서는 생물처럼 꿈틀댄다. 먼지를 뒤집어 쓴 채로 딱딱하게 굳어있던 수십 년 전의 열망은 몽글몽글해진다.

이현웅씨에게도 그런 순간이 왔다. 음악 술집을 운영하는 이가 쓴 17년 분투기를 읽을 때였다. 혼자 가꾸다 내버려둔 그의 꿈이 갑자기 형체를 띠고 다가오는 것 같았다. 마침 현웅씨도 '음악이야기'라는 카페를 시작한 참이었다. 그는 긴 글을 썼다. 페이스북에 한 편씩 올릴 때마다 열렬하게 공감하는 댓글이 달렸다.

현웅씨와 나는 '랜선 친구'였다. 같은 도시에 살지만 진짜로 마주칠 일은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우리는 한길문고에서 만났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던 현웅씨는 카페 영업시간에 서점으로 왔다. 빤할 수도 있는, 상주작가의 글쓰기 강의에 귀를 기울였다.

'내 책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외면하지 않은 남자. 현웅씨는 자신의 일상이 흐트러져도 괜찮은가를 생각해봤다. 깊은 밤까지 카페에서 음악방송 DJ를 하고, 퇴근하고는 글을 쓰고, 해 뜨는 시간에야 잠자리에 드는 생활. 그는 격주 화요일마다 두세 시간만 자고 일어나서 한길문고에 오기로 했다. 에세이 쓰기 1기 회원이 되었다.
  
 카페 음악이야기. 현웅씨는 깊은 밤에는 디제이로 일하고, 퇴근하고는 글을 쓴다.
 카페 음악이야기. 현웅씨는 깊은 밤에는 디제이로 일하고, 퇴근하고는 글을 쓴다.
ⓒ 이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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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서점 한켠에 앉은 현웅씨는 난감했다. 고등학생이던 어느 날, 조퇴를 하고 탔던 버스가 떠올랐다. 하필 어느 여학교의 시험 기간이어서 여학생들만 있었다. 버스 안에서 어떤 자세로 서 있어야 하는지, 눈을 어디로 둬야 하는지 모르는 현웅 학생은 목적지까지 가지 못했다. 얼마 안 가서 내려버렸다. 에세이 쓰기 모임도 여성들뿐이었다.

"버스에서 내릴까 말까 망설이던 그때 마음하고 똑같았어요. 그래도 수업에 오면 배우는 게 많았어요. 일단 제 글에는 복문이 많다는 걸 알았어요. 접속사도 엄청나게 많이 썼고요. 불필요한 부분을 쳐내고, 문단의 위치도 바꾸면서 글이 심플해졌어요. 40여 년 동안 그런 걸 한 번도 의식하지 않고 써왔던 거예요."
     
현웅씨는 시골에서 눈에 띄는 아이였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혼자서 한글을 깨우치고는 열 살 많은 형의 교과서를 읽었다. '미래의 장관님'이라고 부르는 동네 어른들의 기대를 배반하지도 않았다. 또래 친구들보다 책을 많이 읽고, 예의바르고, 학교 공부를 잘하는 중학생으로 컸다.

책으로만 읽었던 상실을 직접 겪게 된 건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빛나는 미래를 꿈꾸던 소년의 미래는 뿌리까지 완전히 뽑혀버린 것 같았다. 느닷없이 전혀 다른 세계에 내던져진 것처럼 외롭고 불안하고 막막했다.

"너무 슬퍼가지고 공부를 할 수가 없었어요. 그때부터 한 달에 한 권씩 대학노트에 글을 썼어요."
 

현웅씨는 글을 써서 신춘문예에 도전하는 어른이 되었다. 결혼을 하고, 아기 아빠가 되니까 먹고사는 게 먼저였다. 뒷전으로 미뤄도 되는 게 글쓰기였다. 그러나 헛헛했다. 현웅씨는 자꾸 뒤돌아봤다. 제켜놓은, 책을 쓰겠다는 꿈이 신경 쓰였다. 긴 세월을 돌고 돌아 에세이 쓰기 수업이라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는 A4 7장 넘게 쓴 글도 숙제로 냈다.

나는 처음에 현웅씨의 글을 읽으면서 '잘 쓰시네. 왜 수업에 나오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일기처럼 글을 쓰던 에세이 동료 준정씨는 현웅씨의 글을 읽고 나면 "나는 너희와 달라"라고 하는 게 느껴졌단다. 숙제를 모범적으로 하면서 눈에 띄게 성장하던 은경씨는 베레모를 쓰고 다니는 현웅씨의 중후함에 짓눌렸다고 했다. 선뜻 말 걸기가 어려웠단다.

드러내놓고 자기 이야기를 쓰게 되는 에세이.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한테는 특별함을 느낀다. 친밀한 사이로 발전한다. 친구 따라서 에세이 쓰기에 왔지만, 낙오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며 글을 쓰는 숙경씨는"세 아이 낳고 육아로 10년 보내느라 맞춤법도 가끔 헷갈려요. 근데 사실 저 국문과 나왔어요"라는 고백을 했다. 현웅씨도 한 가지를 실토했다. 중학교 시절 내내 '글 잘 쓰는 학생'이라는 인정을 받고 백일장에 나갔지만 상복은 크게 없었단다. 그랬는데 뒤늦게 사회에 나와 글 쓰고 상도 받았다.  

현웅씨는 에세이 쓰기 동료들 중에서 가장 먼저 매체에 글을 쓰게 됐다. <매거진군산>이라는 지역 월간지에 글을 쓰고, 카페이야기 '그곳에 그 카페'라는 글을 <오마이뉴스>에 연재하고 있다. 현웅씨는 지난 5월 새뉴스게릴라상도 받았다.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서는 딸아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 있다. 
 
 그는 여러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처음에는 군산에서 발간되는 월간지 <매거진군산>에 글을 싣게 됐다.
 그는 여러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처음에는 군산에서 발간되는 월간지 <매거진군산>에 글을 싣게 됐다.
ⓒ 이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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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웅씨가 탄 '한길문고 에세이 쓰기 1기' 버스는 지난 5월 말 종점에 도착했다. 몇몇 사람은 먼저 내려서 자기 길을 갔다. 흩어지는 게 순리인 것 같았다. 그러나 남은 사람들끼리 글을 써서 가볼 수 있는 데까지 함께 가보자고 했다.

두 달 뒤, 한길문고는'2019년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에 다시 선정됐다. 현웅씨와 일행들 앞에는 에세이 쓰기라는 공식적인 버스가 다시 온 셈이었다. 그래서 현웅씨는"내 글을 독자들이 읽어줄까? 좋아해줄까?" 의심하면서도 쓰는 사람이라는 자세를 잊지 않고 산다.

"저는 글 쓰고 말하는 걸로 내 남은 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어요. 삶에 지친 사람들한테 도움을 줄 때 가장 행복하거든요. 그래서 카페에서 마음 상담소랑 독서모임도 했고요. 다만, 글을 쓰기 위해 생각하고 예열하는 시간이 부족해요. 지금부터라도 제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해야죠. 책 한 권 분량이 될 때까지 써야지요."

현웅씨는 군산의 작은서점인 예스트서점과 우리문고에서 하는 작가 강연회도 꼬박꼬박 참석한다.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자신이 일상에서 놓쳐온 글감을 끄집어낸다. "나중에 책을 내고 강연할 때 내 모습은 어떨까?" 투영하기도 한다.

나는 안다. 현웅씨가 카페 영업시간에도 무리해서 강연회에 오는 까닭을. 멀리서 군산까지 와준 작가에 대한 예의라면서 그의 지인들까지 데려오는 건 첫 번째 이유가 못 된다. 그는 작가 강연회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한길문고 상주작가에 대한 우정과 의리를 모객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때마다 현웅씨는 소년 같은 허세를 부린다. 가진 건 돈뿐이라며 재력자랑을 한다. 작은서점에 강연하러 오시는 작가들에게 점심 한끼를 대접할 때 꼭 끼어든다. 나를 대신해서 밥값을 내고 있다. '밥 잘 사주는 예쁜 옵하'. 날씨 좋은 가을에 '웅언니', '만담가'라 불리는 현웅씨의 애칭이 하나 더 늘었다.
 
 상주작가가 진행하는 작은서점 강연회. 이현웅씨는 자는 시간을 쪼개서 일부러 온다. “나중에 책을 내고 강연할 때 내 모습은 어떨까?” 자신을 투영하기도 한다.
 상주작가가 진행하는 작은서점 강연회. 이현웅씨는 자는 시간을 쪼개서 일부러 온다. “나중에 책을 내고 강연할 때 내 모습은 어떨까?” 자신을 투영하기도 한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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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독립청춘>, <소년의 레시피>, <서울을 떠나는 삶을 권하다>를 썼습니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