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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랜트 진과 엠버 가이거의 포옹 (유튜브 갈무리)
 브랜트 진과 엠버 가이거의 포옹 (유튜브 갈무리)
ⓒ 뉴스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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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M=마이클 오 기자] 백인 경찰이 무고한 흑인 청년을 죽였다. 하지만 희생자의 동생은 용서를 선포하고 화해의 포옹을 나누었다. 참된 신앙의 실천이라는 찬사가 쏟아졌지만, 용서에 대한 논란도 뜨겁다.

근무 마친 백인 경찰, 자신의 아파트에서 총 맞은 흑인 청년

2018년 9월 6일, 근무를 마친 경찰 엠버 가이거(Amber Guyger)는 26세의 흑인 청년 보담 진(Botham Jean)의 아파트 문을 연다. 거실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던 보담은 영문도 모른 채 방문자를 맞으러 나가다 총에 맞아 사망하게 된다.

엠버 가이거는 자신의 아파트로 착각하고 문을 열었으며, 보담을 강도로 오인하여 총을 쏘았다고 진술했다. 총을 쏘기 전에 충분히 경고했으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도 하였다.

하지만 엠버 가이거의 진술은 법정에서 거짓으로 밝혀졌다. 맞은편에 살고 있던 조슈아 브라운(Joshua Brown)이 결정적인 증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매일 아침 보담이 부르는 복음 성가와 랩을 들었지만, 그날 밤에는 어떠한 고함이나 경고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주변 이웃도 같은 증언을 했다.

결국 지난 10월 2일 엠버 경관은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열린 법정에서 유죄 평결과 함께 10년 형을 받았다.

예상치 못한 용서와 포옹

판결을 지켜보던 보담 진의 동생 브랜트 진(Brandt Jean)은 판사에게 양해를 구한 뒤 엠버 가이거에게 용서를 선포하였다.

당신을 용서합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을 한 인간으로 사랑합니다.
당신에게 어떤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는 당신이 주님을 영접할 수 있다면,
그것이 보담 형이 당신을 위해 가장 바라는 일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브랜트 진은 이 말과 함께 엠버 가이거에게 다가가 포옹을 하였고, 둘은 소리 없이 몇 분간 눈물을 흘렸다.

이를 지켜보던 판사 테미 켐프(Tammy Kemp)도 눈물을 흘리는 살인자에게 다가가 성경책을 전해주었고 두 팔로 안고 작은 소리로 기도를 해 주었다.

용서를 둘러싼 갑론을박

이 장면을 지켜본 네티즌은 다양한 반응을 내어놓고 있다. 특히 브랜트 진이 용서를 선포하고 엠버 가이거를 포옹하는 [ABC News] 유튜브 영상에는 4,300개가 넘는 댓글이 올라왔다. 찬사와 칭찬을 아끼지 않는 반응이 넘쳐났다.
 
 네티즌의 갈라진 반응들 (유튜브 갈무리)
 네티즌의 갈라진 반응들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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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아!"
"만약 타인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용서받지 못해.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야."
"하나님의 권능 말고 어떤 설명이 가능하겠어?"
"난 아이처럼 울었어. 이 젊은이가 댈러스를 혼돈으로부터 구한 거야!"


부조리한 현실에 동떨어진 용서라는 반응도 쏟아지고 있다.

"만약에 흑인이 백인 경찰을 죽였다면 얼마만큼의 용서가 나타났을지 궁금하군."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어. 우리는 계속 용서하지만 나아지는 것은 하나도 없잖아."
"… 이건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야. 세뇌당한 유색 인종이 백인 예수를 따르는 것뿐이라고!"


이 일을 바라보는 논객의 반응도 극명하게 갈라졌다.

<크리스채니티 투데이 Christianity Today> 편집자 에드 스테츨(Ed Stetzer)은 판결 다음 날, 칼럼 "형을 죽인 살인자를 안아주다: 보담의 포옹에서 드러난 복음의 능력"을 통해 찬사를 보냈다.

"이름 '보담'이 담고 있는 의미는 '넓은 골짜기에 사는 자'라는 뜻이다. 밑바닥 혹은 좌절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의 삶은 생명을 주는 복음 가장 꼭대기에서 외치고 있다. 동생 브렌트의 증언을 통해, 형 보담 진의 삶은 생명을 살리는 길, 더 나은 길, 바로 예수의 길을 가리키고 있다."

에드스테츨은 이번 사건을 둘러싸고 정의나 인종 차별, 백인 우월주의 등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하면서도, "이 두 형제의 삶 가운데 가득 찬 용서의 마음을 잊지 말자"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용서는 결국 복음의 권능을 보여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같은 날, <워싱턴 포스트> 칼럼니스트 제말 티스비(Jemar Tisby)도 "백인 그리스도인이여, 보담 진의 동생이 보여준 포옹과 용서의 메시지를 싸구려로 만들지 말라!"라는 칼럼을 기고하였다. 그는 "브랜트의 용서가 모든 이에게 귀감이 될 만한 행동"이었으며, "잠시나마 인종 문제로 갈라진 틈을 사랑과 은혜로 메웠다"고 평가하였다.

하지만 그는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다양한 반응을 보이는 가운데, 유독 백인 그리스도인은 찬사 일색"이라고 지적하였다. "잘못을 재빨리 덮고 번듯한 화해 장면을 보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떤 이는 적당량의 동정심으로 피부색을 지울 수 있을 것이라 믿는 것 같다. 하지만 '섬김과 보호'의 역할을 맡은 사람이 또다시 흑인을 살해했다면, 누구도 용서를 요구할 수 없고, 기대해서도 안된다."

그는 이번 살인 사건과 용서를 인종 문제를 키우는 미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월한 백인 권력 위에 형성된 사회는 백인 순결에 대한 믿음에 의해 떠받쳐진다. 백인은 도덕적이며 그들의 모든 의도는 순수한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백인 순결은 곧장 흑인의 용서를 당연한 것처럼 요구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브랜트의 용서에 환호하는 것이다. 이런 정서가 존경받을 만한 기독교 신앙의 실천으로 부추겨지는 것이다."

또한 브랜트의 용서가 단지 개인 차원에서 이루어 질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브랜트는 분명 개인의 신앙과 의식에 따라 용서를 베풀었을 것이다. 하지만 백인 경찰에 의한 흑인 살해는 단순히 한 개인이나 가족 차원에 머무를 수 없는 문제다. 흑인 공동체 전체가 이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다… 만약 백인이 모든 흑인에게 브랜트와 같이 신속한 용서를 기대한다면, 그들은 흑인이 누구인지 또 그들의 고통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용서와 정의는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도 지적하였다.

"또한 성급한 용서의 해악은 이 사건의 부조리에 대해 쏟아야 할 충분한 관심과 고민을 빼앗아 버린다는 것이다… 용서를 주장하는 성경은 정의에 대한 요구도 포함하고 있다.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이사야 1:17)'
… 흑인 용서에 대한 최상의 응답은 바로 용서해야 할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다."


증인 조슈아 브라운 살인 사건
 
 엠버 가이거의 판결 다음날 의문의 살해를 당한 증인 죠슈아 브라운 (유튜브 갈무리)
 엠버 가이거의 판결 다음날 의문의 살해를 당한 증인 죠슈아 브라운 (유튜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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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랜트 진이 보여준 용서를 희망적으로 말할 수 없는 사건이 바로 다음 날 일어났다.

용서와 화해의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또 다른 흑인이 주검으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희생자는 살인자의 거짓말에 묻힐 뻔했던 진실을 밝혀준 결정적인 증인 조슈아 브라운이다.

댈러스 경찰은 사건 4일 만에 용의자 3명을 검거한 뒤, 마약 거래 과정에서 일어난 총격 사건으로 서둘러 결론 지었다. 용의자는 300마일 떨어진 루이지애나 주 알렉산드리아시에서 왔다고 한다. 조슈아 브라운의 집에서 다량의 마약과 현금도 발견했다고 한다.

조슈아 브라운 유가족의 변호사는 댈러스 경찰이 아닌 독립 기관에서 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보담 진 재판 증언과의 연관성과 수사 과정 가운데 제기된 의혹 때문이다.

주변의 반응도 경찰의 발표가 다소 황당한 것이라고 한다. 특히 마약을 구하기 위해 300마일을 운전해 온 용의자의 행동을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부 네티즌들은 조슈아 브라운이 죽은 모습에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입과 총에 각각 한발씩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는 것이다. 다툼에 의한 총격이라기보다는 원한에 의한 전형적인 처형 방식이라는 것이다.

용서와 정의

[아시안화해평화사역 ReconciliAsian] 공동 대표 허현 목사에게 용서의 의미를 물어보았다. 기독교적 용서가 실행되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측면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용서는 개인적인 차원과 함께 구조적인 차원이 있다. 개인적인 용서의 행위만으로는 진정한 의미가 실현되기 힘들다. 정의와 공의 혹은 평화를 함께 이야기하고 또 추구해야 한다. 인종차별이나 원주민 말살, 위안부나 세월호 참사와 같이 용서를 정의와 공의 또 평화와 함께 바라보고 이해하는 구조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용서를 이야기하는 것은 성서의 정신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

"이번 브랜트 진의 용서도 그런 측면에서 논란이 되는 거 같다. 개인 차원의 용서가 그 자체로 아름다운 행위이긴 하지만, 그와 함께 따라와야 할 정의와 공의에 대한 이야기 없이 용서만 부각되는 저널리즘 때문에 일어나는 논란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위안부 문제나 세월호 이야기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피해자가 납득할 만한 사죄나 보상 혹은 진실 규명 없이 일방적으로 용서를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 많은 경우 피해자에게 먼저 용서를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용서라는 이데올로기지 진정한 의미의 용서가 아니다."

"한국과 이민 교회 가운데 용서에 대한 이해가 빈약한 부분이 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용서를 이야기한다. 개인적인 차원과 함께 구조적인 차원에서 정의와 평화를 위한 노력도 함께 이야기 해야 한다. 이런 노력과 이해 없이는 피해자에게 일방적인 용서를 강요하기 쉽다. 이것은 언제나 용서를 가장한 폭력이 될 위험을 안고 있다."

관련자료:

https://www.youtube.com/watch?v=NkoE_GQsbNA

https://www.christianitytoday.com/edstetzer/2019/october/forgiveness-power-of-gospel-and-botham-jeans-brothers-act-o.html

https://www.washingtonpost.com/religion/2019/10/03/white-christians-do-not-cheapen-hug-message-forgiveness-botham-jeans-brother/

https://www.washingtonpost.com/nation/2019/10/08/three-suspects-identified-shooting-death-amber-guyger-witness-joshua-brown-police-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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