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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작가회의에서는 '2019 대전방문의 해'를 기념하여 연속기고를 시작합니다. 대전의 볼거리와 즐길거리, 추억담을 독자들과 나누고 대전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커피는 복잡한 생각을 멈추고 싶을 때, 위안받고 싶을 때, 외롭지 않은 혼자이고 싶을 때, 사소한 즐거움이 고플 때 언제나 가장 좋은 파트너가 되어 준다
 커피 자료사진.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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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어딘가에 지친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잠시 쉴 데가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나로서는 '꼬씨꼬씨'가 그렇다. '꼬씨꼬씨'는 대림빌딩 맞은편 현대갤러리 바로 옆쪽에서 동원식당과 골목 입구를 나누어 쓰고 있는 아담하고 조용한 무인 카페다. 작업실을 코앞에 두고 오락가락, TJB '화첩 기행'에 초창기부터 계속 출연 중인 박석신 화백이 이 카페의 손님 같은(?) 주인이다.

왜 손님 같은 주인일까? 주인은 대개 손님보다 먼저 와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손님을 맞게 마련이지만, 넉넉하게 잘 볶아둔 커피를 갈아 내려놓고 홀짝이다 보면 늘 뒤늦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무인 카페이다 보니 끝내 주인의 얼굴을 마주치지 못할 때도 있다. 운이 좋으면 주인장이 손수 그려주는, 액자를 만들어 걸어두어도 좋을 만한 어여쁜 글씨 그림을 얻을 수도 있다. 즉석에서 이름을 물어 특징을 잡아 그려주는 그림이다.

카페 공간보다 조금 더 큰 갤러리에서는 자주 전시회가 열린다. 항상 꿈을 꾸어왔지만 발치에 놓여있는 현실에 매어있다 보니 늦깎이로 입문한 주부들도 있다. 그 분들의 작품을 전시하게 되었을 때는 정작 작가보다 주인장 스스로가 더 큰 감동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한 번은 들렀더니 많은 외국인들이 와 있었다. 전시 작품들을 둘러보며 차를 마시거나 과일과 바삭한 쿠키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키 큰 사람, 코 큰 사람, 희거나 검은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다른 언어로 미술 작품을 사이에 두고 소통 중이었다. 화단에는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오종종 몰려 피어나 그들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대흥동과 은행동

언제부턴가 오래되어 낡고 색 바랜 대흥동 거리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지정되고 난 후가 아니었나 싶다. 실제로 '대전부르스'나 '내집', '광천식당', '진로집', '아리랑'같은 막걸리집들이나, 뮤직비디오가 있는 '카우보이' 등등의 호프집에 가면 화가들, 연극인들, 그리고 여러 문학인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요즘은 은행동 스카이로드를 중심으로 분주했던 학생들이 대흥동으로 많이 넘어온 것 같다. 미리 대흥동을 접수(?)했던 예술가들은 '우리는 어디로 가라고 쟤네들이 다 이리로 오느냐?'며 가벼운 한숨 곁들인 농담을 하기도 한다.

60년대 생 내 또래들도 역시 예전에는 은행동을 중심으로 모였었다. 그 때에는 음악다방이 유행이었는데, 홍명상가 근처에 '은모래'가 있었고, 건너 편 뒤쪽에도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음악다방이 또 있었다. 잘생긴 DJ에게 긴 긴 쪽지를 쓰고 듣고 싶은 노래를 신청하곤 했었다. DJ는 한껏 말솜씨를 뽐내며 음악이 흐르는 동안 사연을 읽어보고 공부나 하라고 구박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신청자의 심정을 헤아려 적절한 위로도 보내주었다. 분위기와 음악에 취해 아득해하다가 나오는 길에는 붕어빵을 물고 버스를 기다렸다.

학력고사가 끝나자마자 미팅을 여러 번 했던 기억도 있다. 각자 개성 넘치는 소지품을 꺼내놓고 고르게 하거나 다른 색깔의 캔디를 양 쪽에 나눠주고 같은 색깔을 고른 친구들이 그날 미팅의 짝이 되도록 하기도 했다. 실제로 미팅 후 결혼까지 골인한 경우도 있다. 운 없게도 나로서는 늘 안됐으면 하고 바라는 애가 짝이 되곤 했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동양백화점(현, NC백화점)과 대전극장 주변이 특히 중심지가 되었는데, '검은 돛배', '예스터데이'도 잘 가던 커피숍이었다. 좀 더 대담한 친구들은 '코파'에 가서 콜라를 마시고 춤을 추며 남학생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동양백화점 건너편은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사계'가 있었고 가끔 미팅 후 애프터 신청을 받거나 마음 맞는 여학생들끼리 어울려 들어가서 조용히 수다를 떨곤 했었다.

동양백화점 뒤에는 돈가스가 맛있는 경양식집 '시나브로'도 또한 인기였는데 어린 마음에 순수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된 곳이기도 했다. 지하상가를 돌아다니며 예쁜 옷을 고르고 대학생들 틈에 몰래 끼어들어서 19금 영화를 보러 다니기도 했다. '무릎과 무릎 사이', '늑대', 리차드 기어가 나오는 '브레드리스 러브' 등이 그 무렵에 본 것들이다. 교복을 입고 교문 수위 아저씨의 눈을 피하기 위해 실내화를 신고서, 그러니까 니체의 '위험하게 살아라!'라는 말을 실천하는 중이었다고나 할까?

잠시 옛 시간들을 들추다 보니 두 갈래 머리를 땋아 내린 여고생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 마음이 설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만은 늘 청춘'이라던 은발의 어르신들 말씀도 실감난다. 우리를 물끄러미 보시면서, '참 좋을 때다' 하셨는데...... 이제 어느 결엔가 우리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 학생들이 끼리끼리 어울려 소란스레 지나가는 걸 보면 절로 좋을 때구나 싶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꿈 덩어리들이지만 모두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다. 벌써 그런 나이가 되었다.

한 번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대흥동에서 작가들이 모여서 출판기념회 겸 송년회를 가졌다. 세 번째 장소를 찾아 이동하는데, 젊은 남녀들이 키득거리며 흔들거리며 성심당 케이크를 하나씩 들고 다니는 것이었다. 순간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함께 가던 선배에게 졸라서 길 건너까지 가 보니 줄이 길었다. 한참을 기다려 초코 케이크 하나를 사서 나누어 먹었다. 어찌나 부드럽고 달콤하던지......

성심당은 부추빵과 튀김 소보루로 유명해서 먼 데서 오는 분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몇 봉지씩 사가기도 한다. 대전에 사는 젊은이들은 다른 빵을 더 많이 즐기는 것 같다.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매고 다니는 지금의 우리도 세월이 흐르고 나면 그 때 참 좋았었는데, 하고 추억하겠지. 바로 엊그제만 해도 무얼 하느라, 무슨 할 얘기가 그리 많아 한밤중까지 돌아다녔는지 원.

꽃씨를 심는 마음으로

우리는 누구나 이런 저런 사람들과 수많은 에피소드를 만들면서 사회적 관계망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행복을 위해 타인들과 잘 어우러지는 삶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끔은 일부러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어 자신과의 만남을 가져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느낌이 들 때 선뜻 생각나는 곳이 '꼬씨꼬씨'라는 거다. 봄에는 매의 발톱이나 꿩의 다리, 섬초롱이 조랑조랑 피고, 여름에는 소나기 소리가 시원한 곳. 80년 된 전통 가옥이다 보니 그리 말쑥하지만은 않지만 여기 저기 화가의 손길이 닿으니 꽤 운치가 있다. 폐타이어에 그림을 그려 넣어 지붕 위에 던져둔 것도 독특한데, 그 척박한 틈새로 꽃씨가 날아와 꽃을 피우고 풀들이 자란다.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소품들도 자리를 차지하고 스스로 빛나고 있다.

쇼펜하우어는 일찍이 '친구나 다른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는 온전히 자기 자신과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모든 관계를 끊고 늘 고독하게 혼자서 지내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생각이든 시간이든 모든 흐르는 것들을 잠시 세워 놓고 온전히 혼자가 되어 나 자신과 관계를 맺는 것도 가끔은 필요할 것 같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혹은 말하지 않아도 되는 자신과의 내밀한 만남, 자신과의 관계 맺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부대끼며 정을 쌓아가는 것만큼 흥이 나는 게 있을까? 올 겨울 눈 내리는 날에는 난로가 있는 '꼬씨꼬씨'의 동그만 마당에서 입술이 까매지도록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편한 사람들과 훈훈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말과 눈빛으로 서로를 돌아보며 아집이 강한 독선적인 어른이 되지 않도록 챙겨주는 것도 좋겠다. 눈 위에 첫 발자국을 남기며 이듬해 봄, 아니 때때로 찾아올 인생의 봄을 위해 꽃씨를 심는 마음으로, 그렇게.

이미숙 : 충남 논산 출생
2007년 「문학마당」시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피아니스트와 게와 나』가 있음
현재 대전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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