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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경의선숲길에서 작은 책방을 1년 반 넘게 운영해 오며 책과 사람에 관해 경험한 이야기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 기자말
 
 1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도서정가제를 폐지하자는 청원이 올라왔다.
 1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도서정가제를 폐지하자는 청원이 올라왔다.
ⓒ 청와대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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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도서정가제를 폐지하자는 청원이 올라왔다. 28일 현재, 15만여 명의 동의를 얻었다(청원 보기).

청원 내용는 이렇다. 도서정가제가 시행될 당시 '동네서점 살리기'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지만 정작 지역서점은 2014년 1625개에서 2017년 1535개로 줄었다. 또한 오프라인 서점도 2009년 2846개, 2013년 2331개, 2017년 2050개로 감소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다음의 자료를 근거로 제시했다.
 
-독서 인구는 2011(61.8%)→2013(62.4%)→2015(56.2%)→2017(54.9%)' 감소
- 2014년 평균 책값 15600원→2017년 16000원
- 2014년 출판사 매출 규모 4조 2300억 원→2016년 3조 9600억 원
- 2014년 도서 초판 평균 발행 부수 1979부→2017년 1401부  
  
청원인은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내용이라면서 "도서 정책의 기본 방향은 결국 책 읽기를 권장하는 쪽이어야 하는데 현행 도서정가제는 국민들의 책에 대한 접근성을 오히려 떨어뜨리고 있다"는 인용도 덧붙였다.

누가 도서정가제 폐지를 바라나

결국 책을 더 싸게 사고 싶은데 도서정가제 때문에 할인을 받을 수 없고, 그렇다고 책을 만드는 출판사나 서점에도 별도움이 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이 같은 정책을 왜 지속하느냐는 질타겠다.

서점 감소, 출판사 매출 감소, 책값 상승의 원인이 도서정가제 때문일까? 도서정가제를 폐지하면 이 같은 문제가 줄어들거나 사라질까? 책값이 높으면 책값을 낮추자고 해야지 할인을 할 수 있게 정가제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곰곰 생각해 보아도 이해하기 어렵다.

오히려 돈이 없어도 책을 읽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도서관을 더 많이 짓고, 도서구입 예산을 늘려서 다양한 책을 보유하도록 해 도서관 접근성을 높이자고 주장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이성헌 의원이 이야기했다는 도서 정책의 기본 방향과도 맞는다.

그런데 도서정가제를 폐지하면 서점은 줄지 않고 출판사 매출은 증가하고 책값은 상승을 멈출까? 내 예상은 '아니오'다.

심리학을 다루는 책 가운데 소비 심리를 다룬 책들이 꽤 많다. 그 가운데 가격 정책은 마케팅의 기초에 해당된다. 같은 상품에 같은 가격이면 사람들은 할인된 가격의 상품을 산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책을 1만 원에 산다면, 사람들은 정가로 1만 원이 매겨진 상품과 정가 2만 원짜리를 50% 할인해 1만 원이라고 표기한 상품 중 후자를 지금, 당장 사고 싶은 심리를 갖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내가 출판사 직원이고 도서 정가제가 폐지된다면 책값을 낮출 수 있을까? 작가 인세, 종이값, 인쇄비, 편집과 디자인, 마케팅 등에 쓰이는 인건비, 사무실 임대료, 유통관리비 등 어느 것 하나 오르지 않는 게 없는데 책값을 무슨 수로 낮출까.

책값은 예상 판매량과 이런 경비들의 합으로 손익분기를 정하고 책정된다.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하면 적자인 것이고, 넘기는 순간부터 이익이 발생한다. 기본적으로 가격이 높을수록 가격저항이 생기기 때문에 소수만을 겨냥한 책이 아니라면 누구도 책값을 높게 책정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단 500원 때문에 그 책을 사는 데 주저하는 독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청원인은 2014년 평균 책값 15600원이 2017년에는 16000원으로 올랐다며 소폭의 책값 상승까지 근거로 내세웠지만, 최저임금 상승과만 비교해 보아도 이 폭이 얼마나 미미한지 알 수 있다. 2014년 최저임금은 5210원, 2017년 6470원이었고, 2020년엔 8590원이다. 임대료는 어떨까? 종이값은?

기본 경비가 줄어들 턱이 없는 이 세계에서 도서정가제가 있든 없든 책값은 오르고, 우리가 사는 책값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게 팩트다.

문제는 불완전한 도서정가제다

그렇다면 도서정가제를 폐지하면 서점이나 출판사에는 어떤 도움이 될까? 대형 출판사나 서점은 자본력과 비축해 놓은 힘이 있으니 어떻게든 비용을 전가시켜 살아남겠지만 출판 생태계를 다채롭게 만들고 있는 작은 출판사나 서점들은 청원인이 내놓은 데이터의 몇 배속으로 감소할 것이다.

현재 도서정가제는 불완전하다. 담배값처럼 어디서나 같은 값이 아니다. 온라인 서점에서는 정가의 10% 가격 할인에 5%적립까지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작은 책방이 정가에 책을 팔면 비싸다고 느낀다. 책을 보고 만지고 찍고 좋아하지만 금세 폰을 열어 온라인 서점에서 주문을 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씁쓸하다. 온라인 서점의 쇼윈도 역할을 작은 책방들이 해주는 건가 싶은 것이다. 값이 같다면, 마음에 드는 책 앞에 섰을 때, 독자는 그 자리에서 책을 살 것이다. 그 책이 나를 선택한 딱 그 시간에. 그렇게 팔린 책들이 작은 책방을 지속시키는 한 축이 되어주지 않을까.

책을 팔 수 없다면 책방이 아니다

현재와 같은 불완전한 도서정가제 하에서 작은 책방은 경쟁력이 없다. 조금만 참으면, 당일 무료 배송에 15% 할인을 받을 수 있는데 여기서 살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책방은 당연히 수입이 없으니 문을 닫게 된다. 책방이 문을 닫는 가장 큰 이유는 임대료 때문이겠지만 책조차 팔리지 않으면 그 자체로 존재할 이유도 사라진다.

사람들은 책방을 좋아하지만 책방이 지속되는 것과 손익 사이에서 언제나 나의 이익을 먼저 챙긴다. 그것은 매우 합리적인 일이지만 책방은 그래서 사라질 것이고, 여기엔 불완전한 도서정가제가 한몫하고 있다.

청원한 이가 분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도서 정가제 폐지가 아니라 온전한 도서정가제의 시행이다.

책 생태계가 살아 있으려면 책과 사람의 접촉면이 많아야 한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책이 놓이는 것, 세상에서 가장 작은 책방의 시작은 거기였다. 어딜 작정하고 가야만 있는 게 아니라, 어딜 가든 책방이 있고, 어디서든 손해보는 느낌 없이 책을 구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 생태계를 조금은 더 지속시킬 수 있지 않을까.

독자가 더 싼 책값을 검색하는 데 시간을 들이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보다 책을 쓰고 만들고 알리고 팔고 읽는 이들 모두 오롯이 책에 집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떤 굿즈로 독자들을 유혹할지 고민하는 시간에 책이 어디에 놓이면 좋을지, 누구에게 어떤 책을 전하면 좋을지, 책에 시선을 주고 머물게 할지 궁리하는 시간이 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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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Table.Book.Store. 세상에서.가장.작은.책방. 경의선숲길 번화한 거리, 새하얀 카페 본주르에 테이블 하나 놓고 덜컥, 책방을 열었다. 책에 과도하게 가치를 부여하는 건 ‘그닥’이어서 무심히, 툭, 던지는 느낌으로 ‘옛따’책방이라 이름 붙였다. 책과 사람, 공간과 사건이 만들어내는 세계를 끼적대며 일상과 이상을 넘나들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