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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삼병
 전삼병
ⓒ 이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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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아냐
나의 붉은 심장이
뛰고 있잖아
- 전삼병 디카시 <퇴출>


놀라운 것은 이 작품이 82세 할머니가 지었다는 데 있다. 전삼병 할머니는 경남 고성에 소재한 고성여고 1회 졸업생이다. 그렇지만 평범한 시골의 할머니시다.

올해 한국디카시연구소의 '일상의 예술화, 예술의 일상화'라는 디카시 창작 프로젝트가 경남문화예술진흥원에서 선정되어 고성의 어르신들에게 디카시를 가르치고 있다. 전삼병 할머니도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즐겁게 디카시 창작 수업을 하고 있다. 뜻밖의 결실로 전삼병 할머니는 2019 제3회 황순원 디카시공모전에서 디카시 <퇴출>로 입선의 영예를 안았다.

지난 10월 19일에는 합천의 경남문화예술진흥원에서 개최된 성과 발표회에 전삼병 할머니의 디카시 <퇴출>도 전시되었는데, 그 작품을 보고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디카시의 작품성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어떤 전문 시인의 디카시 작품 못지 않는 수준을 보여주었다. 사진과 문자가 한 덩어리로 시가 되는 전형성을 드러낸다.

"아직은 아냐/ 나의 붉은 심장이/ 뛰고 있잖아"라는 언술 몇 마디가 어쩜 이렇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인가. 물론 사진과 하나의 텍스토로 읽을 때 그렇다. 디카시는 시인의 의도를 넘어설 때가 많다. 침묵하는 듯한 영상 자체가 때로는 의도하지 않는말을 스스로 하기 때문이다.

이 디카시가 그렇다. 시인은 길바닥에 떨어진 장미꽃을 보며 순간 자신을 투사하였다. 길바닥에 떨어져 시들어가는 장미꽃은 생의 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그 깊은 의미를 시인은 다 읽지는 못했을 거지만 즉흥적 영감으로 그것이 바로 자신의 실존임을 선험적으로 인식하고 언술한 것이다.
 
 전삼병 할머니가 자신의 디카시 <퇴출> 전시 액자(위쪽)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전삼병 할머니가 자신의 디카시 <퇴출> 전시 액자(위쪽)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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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바닥에 떨어져 있는 장미꽃! 갓 떨어져 아직 시들지 않는 한 송이 장미꽃이 전경화되고, 나머지 두 개의 꽃 잎은 더 많이 시들어가고 또 한 잎은 장미꽃이라 보기 힘들 만큼 바래져버렸다. 일련의 장미꽃은 나무에서 떨어져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여운처럼 보여준다.

시인은 아직 떨어졌지만 시들지 않는 한 송이 장미꽃을 전경화하며 자신을 투영한 것이다. 제목은 퇴출이라고 하지만 아직 붉은 심장이 뛰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화자는 83세의 할머니시다. 장미꽃이 환기하는 여성성은 이미 퇴출이라는 제목이 환기하듯 사라져버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다. 화자 자신도 그렇게 여겼을 터이다.    

떨어져 누운 장미꽃 붉은 자태를 경이롭게 응시

그러나 반전이 일어난다. 떨어져 누운 장미꽃 한 송이가 여전히 붉은 자태를 보이는 광경에 경이롭게 아, 아직 붉은 심장이 뛰고 있다는 언술을 발하며 존재를 재발견하며 스스로 경탄한다. 장미꽃을 굳이 여성성으로 한정할 이유는 없다. 그것은 꿈이고 이상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무엇일 수도 있다. 시인은 단지 길바닥의 떨어진 장미꽃에 자신을 투사한 것뿐인데, 영상은 화자의 말과 하나의 텍스트가 되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깊은 생의 함의를 충만하게 드러낸다. 이게 바로 디카시의 매혹이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디지털카메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을 포착하여 찍은 영상과 함께 문자를 한 덩어리의 시로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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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로서 계간 '디카시' 발행인 겸 편집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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