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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아래'는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청년 그룹입니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한국 사회에 공론화한 '미안해요 베트남' 20년을 맞이하여 <연꽃아래 진실은 아직 '확인 중'>이라는 기획 연재를 진행합니다. -기자 말

한국 정부, 그들이 듣지 않은 목소리
 
"'베트남 정부가 한국의 사과를 원하지 않는다'라는 이야기를 한국 정부가 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그 누구도 우리에게 찾아와 사과를 원하는지 묻지 않았다."
 
2019년 4월 4일, 하미 학살의 피해자인 응우옌티탄씨와 퐁니, 퐁넛 학살 피해 생존자인 응우옌티탄씨는 청와대 앞에 섰다. 이들은 막 베트남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도착한 참이었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묻는 시민평화법정의 증인으로 출석한 바 있는 두 생존자는 대한민국 정부에 청원을 넣기 위해 한국행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번에 두 사람만 한국에 도착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103인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 및 유가족과 함께하고 있었다. 기자회견 참가자의 손에는 103인의 생존자가 함께 쓴 청원서가 들려있었다.

이들은 50년 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던 한국 정부에 왜 우리의 가족이 희생당했는지, 왜 한국군은 우리의 가족, 친구, 이웃에게 총을 겨눴는지 물었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이 직접 청와대에 청원을 제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103인의 청원인들은 대한민국 정부에 진상규명과 사과를 요구했다.
 
 2019년 9월 26일, 시민단체들이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규탄하고 있다.
 2019년 9월 26일, 시민단체들이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규탄하고 있다.
ⓒ 한베평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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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월 후, 국방부는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의 청원에 답변했다. 청와대가 청원을 국방부로 이관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공식 답변 기한인 90일을 훌쩍 넘긴 이후였다.
 
"진상조사를 실시해야 하나, 국방부에 보유하고 있는 자료에는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관련 내용은 확인되지 않고 있음. 따라서 이 문제는 한국과 베트남이 공동으로 조사해야 하나, 공동조사 여건이 아직 조성되지 않고 있음." 

해당 답변이 나온 이후 한베평화재단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연꽃아래 등 60개 시민사회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이미 수십 년 간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의 증언이 있었음에도 이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고, 군사 작전 기록과 민간인 학살 증언을 교차 검증하지 않는 공식 입장을 비판했다.

또한 중앙정보부가 전쟁 당시 퐁니, 퐁넛 학살에 대해 참전군인들을 조사했음에도 이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문제제기도 함께 나왔다. 이들은 국방부의 답변은 사실상 진상규명의 의지가 없음을 표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증거는 있었다

진상조사가 불가하다는 내용을 담은 국방부의 답변은 우리 사회가 아직 베트남 전쟁에 대한 진실을 밝혀내지 못했음을 증명한다. 베트남 전쟁 시기의 학살 문제에는 첨예하게 대립하는 주장들이 존재한다. 아예 민간인을 죽인 적 없다는 주장부터, 전쟁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는 민간인 사상자가 나온 것뿐이라는 주장, 학살이 조직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주장까지 존재한다.

그러나 학살 문제의 증거는 이미 예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한국에 가장 잘 알려진 학살은 퐁니, 퐁넛 마을의 학살이었다. 가장 증거자료가 많으며, 역사적인 사실이 뒤얽혀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퐁니, 퐁넛 학살이 처음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은 베트남 인민군대 신문의 1968년 4월 17일 기사에서였다. 해당 기사에는 "미국과 박정희 용병 무리 적들의 야만스러운 새로운 죄악-그들은 꽝응아이와 꽝남에서 1200명 이상의 우리 동포들을 살해했다"라고 기록돼 있다. 또 퐁니 마을과 퐁넛 마을의 학살을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베트남 인민군대신문 1968년 4월호
 베트남 인민군대신문 1968년 4월호
ⓒ 한베평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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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인 68년 4월 29일, 주월미군사령관이었던 W.C.웨스트몰랜드는 주월한국군 사령관 채명신에게 퐁니, 퐁넛 마을에서 찍힌 학살 직후의 사진들과 증언들을 모아 진상규명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낸다. 채명신 사령관은 이 사안에 대해 "대량학살은 음모이며 공산주의자들이 무차별적으로 일으킨 것이라는 논리적 결정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진실에 대한 공방이 진행되고 있던 와중에도 학살 피해 당사자들은 끊임 없이 노력했다. 학살 피해 1년 후인 1969년 2월, 퐁니, 퐁넛 마을 사건 피해자들의 가족들은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남베트남 하원 의장에게 보낸다. "시민권을 가지고 있고, 4000년 전의 문명을 지닌 67명의 베트남인들이 일개 곤충 취급을 받았습니다." 피해자들이 탄원서를 보낸 시기는 밀라이 학살 문제가 미국 사회에 공론화된 시기이기도 했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와 유가족들이 보낸 탄원서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와 유가족들이 보낸 탄원서
ⓒ 한베평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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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해당 문제가 다시 재조명되는 것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 사안이 한국 사회에 다시 등장한 것은 30년이 흐른 이후였다. 2000년, <주월미군사령부 감찰부의 한국군 학살 관련 보고서>가 기밀 해제되었다. 1969년 12월에 작성된 해당 보고서에는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한 사진 증거와 어떤 부대에서 학살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정황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후, 한국 사회에는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이 진행되었다.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민들은 성금 모으기에 참여했고, 역사학자와 기자들은 연일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해 보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을 인정하지 않기 위한 시도들도 이어졌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를 보도한 <한겨레>는 참전 군인들의 난동으로 난장판이 되었고, 학살 피해자가 한국을 방문할 때 어김없이 참전 군인들의 집회가 함께 열렸다. 전쟁이 끝난 지 수십년 후, 대한민국에서는 '기억의 전쟁'이 진행되고 있었다.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이 진행되며 새로운 증거들도 발견되었다. 1972년 발간된 파월한국군전사 4권에서는 1968년 2월 12일 괴룡 1호 작전에서 청룡부대 2대대 1중대가 퐁니, 퐁넛 마을에서 작전했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었고, 청룡부대 괴룡 1호 작전 지도에는 퐁니, 퐁넛, 퐁룩으로 한국군이 진입한 동선이 표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날짜는 정확히 퐁니, 퐁넛 학살 피해자들이 주장하는 학살의 날짜와 일치했다.
 
 청룡부대 괴룡 1호 작전 지도. 지도에는 퐁니, 퐁넛, 퐁룩으로 한국군이 진입한 동선이 표시되어 있다.
 청룡부대 괴룡 1호 작전 지도. 지도에는 퐁니, 퐁넛, 퐁룩으로 한국군이 진입한 동선이 표시되어 있다.
ⓒ 한베평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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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진행된 '기억의 전쟁'에 분기점을 찍은 것은 2018년의 일이었다. 김영란 전 대법관이 재판관으로 참여하고, 실제 법조인 및 시민사회 단체 연구자들이 참여한 시민평화법정이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개최됐다. 몇 달 동안의 사전 조사 작업과 이틀 동안의 재판으로 대한민국에 유죄가 선고됐다.
 
"피고 대한민국은 배상금을 지급하고 원고들의 존엄과 명예가 회복되도록 책임을 인정하라."
 
 2019년 4월 21일 <시민평화법정> 첫 날, 참전군인의 증언이 이어졌다.
 2019년 4월 21일 <시민평화법정> 첫 날, 참전군인의 증언이 이어졌다.
ⓒ 연꽃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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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판결은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 당사자의 증언을 중요한 증거로 채택했다. 공식 문건을 증거 자료로 요구하면서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의 증언을 인정하지 않았던 관례를 뒤엎는 사건이었다.

시민평화법정은 증거는 언제나 살아 숨쉬는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고, 가장 중요하게 참고해야 하는 사람은 피해자이며, 이들의 증언이 진상규명을 열어 나가는 열쇠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시민평화법정 이후, 진상규명 2라운드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는 우리 사회 속에서 언제나 '확인 중'의 문제였다. 이 문제를 부정하고 싶은 이들은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주장했다. 이 문제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는 이들은, 증거 자료의 엄밀성을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때로는 공식 문서와 보고서의 존재 여부 자체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지기도 했다.

참전 50년이 훌쩍 넘은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여전히 기억의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 시민평화법정 이후 진상규명 2라운드를 맞은 지금, 학살 문제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이들은 증거 채택의 '기준'을 묻는다. 어떠한 증거가 채택되는지, 어떠한 증거가 엄밀한 증거로 여겨지는지, 그 기준은 무엇인지 이들은 묻고 있다. 공식적 증거인 문헌 속의 증거와 비공식적인 증거로 여겨지는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의 주장 양측이 부정되는 상황은 이 기준이 얼마나 자의적인지를 폭로하고 있다.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이 진행된 지 20년 후, 여기 '확인 중'이라는 이름의 전시회를 준비하는 사람이 있다. 국가에 의해 채택되지 못한 증거, 그럼에도 명확하게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는 증거, 그렇기에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 증거들이 해당 전시회에서 전시된다.

연꽃아래는 이 전시회의 기획자인 구수정 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를 만나보았다. <연꽃아래의 진실은 아직 '확인 중'> 2부에서는 그와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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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정치공동체 <너머> 대표이자 기본소득당 서울 창준위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