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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 대에 접어드니 지나온 시간이 이제야 제대로 보입니다. 서른과 마흔 사이에서 방황하던 삼십 대의 나에게 들려주고픈, 지나갔지만 늦진 않은 후회입니다.[편집자말]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왠지 껄끄럽고 무안할 것 같은 사람이 있나요?"

이 질문에 순간 스치는 사람의 얼굴이 있을 것이다. 없다면 정말 잘 살아온 것일 테고.

나에게는 그런 사람이 있다. 그러면서도 궁금하고, 왠지 미안해지는 사람이기도 하다. 풀어야 할 것, 아니 내 쪽에서 풀고 싶은 게 있는데, 굳이 지난날을 파헤치기에는 시간이 많이 지나버려서 그냥 과거의 일로 덮고 싶은 인연 말이다.

존경하던 회사 선배가 있었다. 편집자로서 경력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팀장이 된 나는 총괄 부장이었던 선배를 많이 의지했다. 처음에는 말도 없고 일만 묵묵히 해서 어려웠는데, 옆에서 오래 지켜본 결과, 따뜻하고 인격적인 상사였다. 무엇보다 탁월한 실력자였다.

나는 한 달에 한 번 있는 마감 때마다 선배에게 최종 점검을 부탁했고, 가끔 점심을 같이 먹자고 제안하며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당시 어딘가 기댈 곳이 필요하기도 했고, 좋은 사람에게 배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선배는 늘 사람 좋은 웃음을 하고 성실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든든하고 안심이 됐다.

그런데 사장님께서 회사 개국공신인 선배를 우회적으로 내치는 바람에 선배와의 인연은 길지 못했다. 내가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물러나는 선배의 모습을 보며 회사 생활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내 체력의 한계와 정신적으로 더 버티기 어렵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결국 나도 얼마 안 있다가 사표를 냈다.

만남부터 이별까지
 
 당시 선배는 작은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일손이 필요한 눈치였다. 사정이 넉넉하지 않으니 와서 일하라는 말을 하지 못하다가 어느 날,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당시 선배는 작은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일손이 필요한 눈치였다. 사정이 넉넉하지 않으니 와서 일하라는 말을 하지 못하다가 어느 날,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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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를 다시 만난 건, 내가 퇴사한 뒤 1년 동안 캐나다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돌아온 뒤였다. 중간에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다가 귀국하자마자 선배를 찾아갔다.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가장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 선배였다.

당시 선배는 작은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일손이 필요한 눈치였다. 사정이 넉넉하지 않으니 와서 일하라는 말을 하지 못하다가 어느 날,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소영씨가 괜찮으면 같이 일하고 싶은데, 지금 막 출발한 잡지사여서 사정이 좋지 않아요. 월급을 제대로 줄 수가 없어서 오라고 하기가 어려워요."

그 말을 듣고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덥석 잡았다. 내가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할 때 손잡아주셨으니 나도 선배가 어려울 때 갚고 싶었다.

"돈은 상관없어요."

선배와 같이 일한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선배의 실력을 알거니와 사정은 곧 나아질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돈은 괜찮다'던 나의 호의와 '곧 나아질 거다'라는 근거 없는 낙관은 현실에 부딪히면서 균열이 일어났다. 몇 달이 지나도 형편은 좋아지지 않았고, 선배가 말한 교통비 명목의 돈도 미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내 재정 상태가 안 좋아지자 투덜거리는 마음과 실망이 먼지처럼 쌓여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목돈이 들어갈 일이 생기기까지 했다. 내 형편이 궁지에 몰리니 선배와 같이 일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했던 마음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괜찮던 것들이 괜찮지 않아진 것이다. 얄팍하기 짝이 없는 호의였다.

아마 선배도 그때의 내 마음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렇다고 중간에 탈출하는 배신녀가 되고 싶진 않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끙끙 앓던 차에 마침 책을 편집하는 일이 외주로 들어왔다. 한 권당 작업비가 200만 원이었다. 당시의 내 형편으로는 절실한 돈이었다. 선배 회사의 일을 하면서 짬짬이 하면 되겠다 싶어서 수락했다. 당시 나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기회였지만, 그게 파국의 원인이 될 줄은 그땐 꿈에도 몰랐다.

외주 일과 회사 일의 마감이 겹치면서 내 마음의 중요도는 외주 일로 점점 기울기 시작했다. 출퇴근하는 시간이 아까워졌고, 급기야 내가 쓴 원고를 사정없이 수정한 선배에게 마음이 상했다.

'나는 별로 회사에 도움이 안 되는 존재구나. 여기 있을 이유가 있나?'

빠져나갈 핑곗거리가 필요했던 나는 기분을 상하게 하는 (평소라면 아무 일도 아니었을) 사소한 일을 뻥튀기처럼 부풀려서 그만두어도 되는 이유로 만들어 버렸다.

며칠을 잠 못 자며 망설이다가 어렵게 그만두겠다는 말을 꺼냈다. 선배 입장에서 말릴 상황은 아니었을 테니 알았다고 했다. 워낙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사람이어서 나에게 전과 다르게 행동하진 않았지만 분명 선배도 실망하고 상처받았으리라. 마지막 출근하던 날, 마감이 끝나면 같이 밥 한번 먹자며 인사했지만, 그게 끝이었다. 난 그 이후로 다시는 선배를 보지 못했다.

좋게 헤어지는 법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헤어지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면서 자랐다. 그래서 어떤 관계든 가급적 좋게 헤어지려 노력했다. 정말 보기 싫었던 사람과도 잘 헤어지기 위해 노력했으면서 정작 내가 끝까지 잘 지키고 싶었던 인연을 이렇게 잃어버리다니. 일로서나 인생 선배로서나 존경스러운 사람을 눈앞의 현실에 굴복해 싹둑 잘라버리는 실수를 해버린 것이다. 그것도 그 사람이 어려울 때 말이다. 내 인간관계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다.

내 편에서 변명을 하자면, 더 헌신하고 인내하는 데 필요한 친밀도가 덜 쌓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애초에 선배를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마음보다 나를 도와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마음이 더 크기도 했다.

선배가 차린 회사에 들어갈 때 선배를 돕고 싶다는 선의도 있었지만, 따지고 보면 내 일자리가 필요했던 참에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아는 사람에게 부비대고 싶은 계산도 있었다. 또 마흔을 앞두고 현실의 압박을 견디기엔 나도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돈 앞에서 의리 없이 외면해 버린 건 아무리 생각해도 딱 내 수준을 드러낸 창피한 도망이었다.

그 이후로 필름을 몇 번이나 돌려봤다. 솔직하지 못했다. 선배의 성정상 내 사정을 제대로 이야기했다면 분명 이해했을 텐데. 돈 때문이면서 구차해질까봐 결국 내 도망의 원인을 선배에게 돌렸다. 내가 그만두는 건 선배 탓이 조금 더 크다는 비겁한 변명이자 매정한 항변이었던 셈이다.

선배를 생각할 때마다 그때의 내 행동을 변명하고 사과하고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주워 담을 방법이 없었다. 어느 정도 경제적인 희생을 감수할 수 있을 정도의 신뢰와 친밀함이 쌓이지 않았다면, 섣불리 도와주겠다는 호기를 부려선 안 되는 것이었다. 사람은 돈 앞에서 얼마든지 치사하고 이기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걸 그땐 몰랐다. 그래서 지키고 싶은 관계일수록 가급적 '돈'이 개입돼서는 안 된다는 걸 뼈아프게 체득했다.

사실 선배와의 일은 그동안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꺼내지 못했다. 내가 이렇게 치사한 배신을 하고 도망친 인간이란 걸 드러내기 부끄럽기도 했고, 굴욕스러운 과거를 지우고 싶기도 했던 탓이다.

그러다 지금 꺼내는 이유가 있다. 얼마 전 그 선배의 소식을 뜻하지 않은 자리에서 우연히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내가 마음만 먹으면 연락이 닿을 수 있는 사람을 통해서. 그에게서 선배의 최신 근황을 들으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선배는 나를 잊었을지도 모르는데 나 혼자 마음이 다가갔다 도망갔다 분주해졌다.

그 사람과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 선배와의 일이 다시 소환되면서 쓸쓸해졌다. 그때의 난 왜 그리 성급하고 서툴렀을까. 사람과 나쁘게 헤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중요하다.

선을 지킬 줄 아는 사람
 
 지금까지 내 곁에 남아 있는 고마운 사람들은 잘 지키고 싶다.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그저 우연히 만났을 때 피하지 않고 반갑게 인사할 수 있을 정도만이라도 되었으면. 아니, 다 필요 없고 선이나 잘 지키자.
 지금까지 내 곁에 남아 있는 고마운 사람들은 잘 지키고 싶다.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그저 우연히 만났을 때 피하지 않고 반갑게 인사할 수 있을 정도만이라도 되었으면. 아니, 다 필요 없고 선이나 잘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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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적당한 거리와 선이었다. 내 필요를 채우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던 나는 선배와의 관계에서 가장 적정한 선을 넘었고, 친한 척, 믿을 수 있는 오른팔인 척 '오버'를 하다가 스스로 튕겨져 나갔다. 그때 가장 최선의 거리는 그냥 조용히 선배를 지켜봐 주거나 내가 도울 수 있는 기준을 정하는 것이었다.

사람과의 관계는 나이를 먹어도 어렵다. 갈수록 누군가와 친해지는 것도 어려워지지만,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 또 엉킨 관계를 푸는 건 훨씬 더 어렵다. 푼다 해도 다시 옛날처럼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굳이 뭘~" 하며 자꾸 덮어버리고 싶어 더 그렇다.

사실 지나간 인연, 그것도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는 끊어져도 그렇게까지 아쉽진 않다. 그래도 선배하고는 길 가다가 마주치면 반가워할 수 있기만 해도 좋겠다는 바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것도 욕심일까. 아니면 때린 사람이 잠 못 자는 심리일까. 점점 인간관계에 대한 기대가 소박해진다.

지금까지 내 곁에 남아 있는 고마운 사람들은 잘 지키고 싶다.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그저 우연히 만났을 때 피하지 않고 반갑게 인사할 수 있을 정도만이라도 되었으면. 아니, 다 필요 없고 선이나 잘 지키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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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