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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교육관계 장관회의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교육관계 장관회의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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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수능 정시 비중 확대'를 공언한 후 오늘(25일) 교육개혁관계장관회의(아래 관계장관회의)가 열렸다. 유은혜 교육부장관의 브리핑에 따르면 대입제도와 관련하여 회의 결과의 핵심은 '학생부종합전형(아래 학종) 획기적 개선' '서울 소재 대학 정시 확대' 등이다. 매우 유감이다.

정시 확대는 자유한국당의 입장이기도 하다. 한국당에서는 2017년 조경태 의원에 이어 올해 9월 김재원 의원까지 정시확대 법안을 제출했다. 애초에 두 의원의 법안은 정부여당이 입장을 바꾸지 않는 한 통과가 어렵다고 여겨졌다. 게다가 청와대와 정부가 지난해에 2022년부터 최소 30%로 정시를 확대하기로 한 마당이라 해당 법안이 힘을 받을 일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대통령 시정연설 직후 한국당은 '정시 50% 확대'를 당론으로 채택하고 법안을 발의했다. 여기에 대통령이 주재한 관계장관회의에서 정시확대를 본격화하기로 결정했으니 대안 취급도 못 받던 정시 확대가 갑자기 날개를 달았다. 조국 사태로 불거진 불공정 문제에 대한 정부와 한국당의 답이 똑같다. 난감하다.

'공정한 경쟁'은 공정한가 
  
정시 확대는 시험을 잘 치르는 학생들에게 유리한 전형이다. 나 같은 학력고사 세대들이 누구보다 잘 안다. 한 번의 시험으로 1등부터 꼴찌까지 학생들의 서열이 정해진다. 커트라인이 있고, 합격과 불합격이 명확하다. 복잡할 것 없다. 깔끔하다.

원하는 게 이것이라면, 대통령이 말하는 공정은 '경쟁의 공정', 그러니까 '공정한 경쟁'이다. 가진 것 많고, 연줄도 짱짱한 특권 계급이라도 시험에 개입할 수는 없다. 그럴 때 개천에서 용 난다.

문 대통령이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임명장 수여식에서 '고교 서열화와 대입 공정성 등 기회의 공정부터 살피고 교육개혁을 강력 추진'하겠다고 한 이후 정시 확대 여론이 꽤 높았던 것도 이런 인식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정한 경쟁'은 충분히 공정한가. 특권 계급 부모가 시험장에 함께 들어갈 수는 없다. 하지만 아예 개입할 수 없는 건 아니다. 다 알지 않나. 돈 많고 인맥 좋은 부모가 좋은 교육 환경을 제공한다는 건 상식이다. 강남 8학군이 범접 못할 위세를 가졌던 것도, 자사고나 특목고가 맹위를 떨쳤던 것도 같은 문제다.

정시를 확대하자는 주장은 입시가 좀 단순했으면 좋겠고, 무엇보다도 투명하기 바라는 마음을 반영한 것이다. '금수저'에 유리한 현재의 입시제도를 꼭 고쳐야 한다는 요구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유은혜 장관의 브리핑에서도 "정시 수능 위주 비율 상향 조정은 투명하고 신뢰도 높은 입시를 갈망하는 국민들의 뜻을 존중한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정시 확대가 이러한 요구에 대한 올바른 대답인가 하는 점이다.

정시 확대는 강남과 한국당이 원하는 방향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가 실시된 4일 오전, 대구 경북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치르고 있다. 이번 시험은 전국 2053개 고등학교와 425개 지정학원에서 동시에 치러진다. 6월 모의고사에 응시한 수험생은 54만183명이고 오는 11월에 실시될 2020학년도 수능시험과 시험의 성격, 문항 수 등은 동일하다. 2019.6.4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가 실시된 지난 6월 4일 오전, 대구 경북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치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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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은 보도자료를 통해 관련 논문 등 몇 가지 자료를 제시하며 대통령의 정시확대 발언을 반박했는데, 핵심은 이렇다. 

우선, 고소득자·고학력 가구의 자녀가 수능 점수를 높게 받는다는 사실은 연구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건국대 최필선 교수와 경희대 민인식 교수가 쓴 논문에 따르면, 고소득층의 자녀가 저소득층보다 수능에서 높은 등급을 받는 비율이 5배 가까이 차이난다(최필선·민인식, <부모의 교육과 소득수준이 세대간 이동성과 기회불균등에 미치는 영향>, 사회과학연구 제22권 제3호, 동국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2015년 9월).

학력에 따른 차이는 또 어떤가. 같은 논문에서 전문대졸 이상 고학력자의 자녀는 1·2등급에 속하는 비율이 20.8%이지만 고졸 미만 저학력자의 자녀는 1·2등급 비율이 0.8%다. 그 차이가 무려 26배인 것으로 확인됐다.

확실히 소득과 학력이 높을수록 수능을 선호한다. 2018년 한국교육개발원 여론조사 결과, 월 평균 600만 원 이상 소득층의 40% 가까이가 '대학입학전형에서 가장 많이 반영돼야 하는 것'으로 '수능 성적'을 1순위로 뽑았다. 반면 200만 원 미만 소득자는 '특기적성'이 30%가량으로 1순위를 차지했다.

지금도 정시는 강남 지역 학생이 강세다. 박경미 민주당 의원의 2019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서울대 입학생 중 강남구 출신 학생은 수시 일반전형(5.6%)이나 지역균형선발(2.4%)보다 정시를 통해 들어온 비율(11.9%)이 훨씬 높았다.

비슷한 내용은 다른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서울 강남 3구와 목동까지 범위를 넓히면 2016년에서 2018년 사이, 서울대 정시모집 입학생 중 24.5%가 이들 지역에 속했다(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대입제도 개선연구단,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대입제도 개선방안 연구>, 2019년).

정시가 확대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2018년 서울대는 '서울대학교 정시모집 확대(안) 검토 결과'라는 문서를 작성했었다. 이를 2018년 5월 10일에 <국민일보>가 보도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정시를 40%로 늘릴 경우 강남 3구 학생이 1.5배 정도, 50%로 늘릴 경우 2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정시 확대는 투명하고 단순한 입시를 바라는 사람도 원하지만, 고소득층과 고학력자들 그리고 한국당과 강남이 더 원한다.

촛불이 원했던 '공정'

촛불이 원했던 공정이 경쟁의 공정이었나. 신자유주의가 모든 사회 구성원의 '경쟁력 강화'를 우리 사회의 원리인 것처럼 금과옥조로 삼은 이래, 양극화도 불공정도 심해졌다.

공정한 경쟁은 공정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경쟁을 위한 것이다. 바로 그 공정한 경쟁이 양극화를 부추긴다. 세상에 완벽히 공정한 경쟁이란 없으며 애초에 자원동원력에서 열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경쟁의 공정이란 허구다. 체급이 다른 이들이 동일한 경기 규칙으로 맞붙으면 게임은 하나마나다.

이런 식으로 양극화된 사회에서, 부자들의 부의 세습, 인적네트워크를 통한 기회의 세습은 불법적인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게 바로 특권의 다른 이름이다. 체급 차이는 더 커진다. 지금까지 봐온 그대로다.

시험이 능력을 우선시하고 대물림을 없애는 방안일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사회에서 시험은 계급을 재생산하는 시스템에 불과하다. 정유라가 말했듯이 '부모 잘 만난 것도 능력'인 사회는,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가 아니라 개천에서 용쓰다 끝나는 사회다. 촛불이 원했던 공정은 이 현실을 뛰어넘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학종이냐, 정시 확대냐'가 아니다 
 
교육시민단체들 "특권 귀족학교, 자사고 폐지" 전교조, 참교육학부모회 등 교육시민단체 회원들이 27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광장에서 '특권학교, 차별교육 반대! 자사고(자율형사립고) 폐지-일반고 전환 공약 이행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가난한 학생들을 배제하는 귀족학교, 교육 기회균등의 훼손, 고교서열화 체제 강화, 입시 학원화, 교육비 부담 증가, 사교육 팽창 등 자사고 정책이 낳은 결과는 참담하다'며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며 100대 국정과제 중의 하나인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촉구했다.
 전교조, 참교육학부모회 등 교육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6월 27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광장에서 "특권학교, 차별교육 반대! 자사고(자율형사립고) 폐지-일반고 전환 공약 이행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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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 확대냐, 학종이냐의 대결로 가면 안 된다. 잘못된 대결구도다. 지금 학종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1980년대로 돌아간다면 학력고사를 비판했을 것이다.

수시 학종이나 정시 수능은 모두 부모의 영향력이 작동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돈 많은 집, 인맥과 정보가 많은 부모, 학력 좋은 집안 분위기 속에서 교육은 불평등할 수밖에 없다.

부모의 영향력만큼 학종 수상경력을 쌓을 수 있고, 사교육에 돈을 쓴 만큼 정시 수능성적을 얻는 법이다. 학종이 확대되면 학생들은 고등학교 3년 내내 비교과까지 챙기느라 힘들고, 정시가 확대되면 학생들은 똑같은 3년 동안 죽어라 문제만 풀어야 한다. 노예에게는 해방이 중요한 것이지, 채찍으로 맞을지 몽둥이로 맞을지 선택하는 건 의미가 없다. 비유가 너무 거친가. 아니다, 현실이 더 거칠다.

게다가 정시·수시 논쟁 자체는 서울 주요 대학에게만 해당하는 논쟁이다. 수도권 학교가 학종을 통한 선발 비중이 높다. 최근 교육부가 학종 운영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진행하고 있는 실태조사가 수도권 대학을 위주로 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니 유은혜 교육부장관이 관계장관회의 결과로 "서울소재 대학에 대해서 정시 수능 위주 전형의 비율을 상향 조정"하겠다고 밝힌 것은, 그냥 '정시를 확대하겠다'는 말의 다른 표현으로 봐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종과 정시 중 선택을 해야 한다면, 일단은 대학입시의 '금수저 요인'을 없애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입시에서 부모의 스펙이 학생의 실력으로 직결되는 요인들부터 손보자. 학종에서 부모의 스펙이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은 제거해야 한다. 학생부에 수상경력은 기재를 금지하고, 자기소개서는 폐지해야 한다.

지역과 계층 및 사회적 약자 학생 등에게 적극적으로 우대조치를 취해야 한다. 관련 전형이 없는 건 아니다. 더 확대해야 의미가 있다. 외고·국제고·자사고 등은 없애자. 어쨌거나 정시 확대는 답이 아니다.

지금, 대학 평준화의 기회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19대 대선후보 공약집 중 '중장기적 대학네트워크 구축' 등이 언급돼 있는 부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19대 대선후보 공약집 중 "중장기적 대학네트워크 구축" 등이 언급돼 있는 부분.
ⓒ 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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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대학서열을 해체하는 것이다. 고등학교 서열화의 원인은 대학 서열화인데, 더러운 윗물을 놔두고 아랫물 근처에서 아무리 수질 개선하려고 노력해봐야 무슨 소용인가.

지금이 대학평준화의 기회다. 이렇게 불공정에 대한 분노가 높고, 대학입시제도 개선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뜨거울 때 정부는 과감한 교육개혁에 나서야 한다.

대통령이 공약을 지키면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 직전 대학평준화를 주장했다. 공약집에는 '중장기적 대학네트워크 구축' '공영형 사립대 신설' 등이 포함돼 있었다. 약속대로 하면 된다.

이를 위해 문 대통령은 '국공립대 공동운영체제'를 만들고, '국공립대간 기능별(연구중심·교육중심·직업중심 등), 중점 분야별 특화'를 추진하며, 국공립대 네트워크 구축 이후에는 '혁신강소대학 네트워크'를 만들겠다고도 했다.

원래 대학평준화를 위한 국공립대통합네트워크는 같이 뽑고, 같은 내용으로 공부하고, 같은 학위를 받는 것이 골자다. '통합전형, 공동교육과정, 공동학위'가 핵심이라는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 때 이 점을 강조했었다. 그러나 공약집에는 통합전형, 공동학위는 없이 공동교육과정만 포함시켰다. 국공립대 공동운영체제, 기능별, 중점분야별 특화 등이 그 내용이다.

문제는 그마저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국공립대 네트워크 관련 정책 연구는 없고, 추진되는 사업은 국공립대간 통합 네트워크를 만들기보다는 대학간 단순한 교류협력을 유도할 목적의 지원에 머물고 있다고 평가된다. 공영형 사립대는 내년까지 연속으로 2년 동안 예산을 전혀 배정하지 않았다.

나는 진정으로 개혁적인 대통령을 보고 싶다
 
시정연설 마치고 국회 떠나는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0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친 뒤 떠나고 있다.
▲ 시정연설 마치고 국회 떠나는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0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친 뒤 떠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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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대통령 공약집에 담았던 공약보다도 더 개혁적인 안, 그러니까 온전한 의미의 대학평준화를 이야기해야 할 때다. 어떤 입시제도도 결국 불평등을 양산했다는 뼈저린 반성 속에서 나왔던 대학평준화를 이런 상황에서조차 말하지 않는다면 과연 촛불의 의미는 무엇이었나.

교육부가 이런저런 방안을 검토할 때, 대통령이 대입 공정성에 문제가 없는지 지시 했으면 제일 먼저 '교과서'를 볼 일이었다.

대통령이 만든 교과서, 그러니까 공약집을 보면 힌트가 있으니 교과서에만 충실하면 낙제는 면할 수 있는 일이었다는 이야기다. 공약대로만 했다면 어쩌면 대학평준화의 초석이 놓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예 대통령이 공약을 무시하고 있다.

게다가 관계장관회의의 결과는 "2028학년도 대입제도가 대한민국의 미래교육을 열어갈 새로운 대입제도가 되도록 준비에 착수하겠다"는 것뿐이었다. 새로운 대입제도의 실체는 무엇인가. 왜 대통령과 관계장관회의는 새로운 대입제도의 핵심을 과거에 이미 대통령이 언급했고, 공약집에 일부 싣기도 했었다는 점을 얘기하지 않나.

불공정한 사회는 국가가 교정해야 한다. 국가는 경쟁을 부추기라고 있는 게 아니다. 하나뿐인 길 위에서 핸들을 이리 저리 움직여 봐야 결국 같은 곳에 도착한다. 길을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새로운 길을 내는 것이다. 대학평준화가 새로운 길이다.

나는 진정으로 개혁적인 대통령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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