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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으로 청산해야 할 적폐가 있지만, 국민의 약 70%가 거주하는 아파트의 적폐도 만만치 않습니다. 경험해보니 국가 적폐보다 마을(아파트) 적폐의 청산이 더 힘들게 느껴집니다. 4년간 아파트 회장을 하면서 겪었던 파란만장한 경험과 성취한 작은 성공의 이야기들을 시민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 기자말

회장 임기를 시작하던 2015년 10월 중순부터 한두 달 동안엔 별문제 없어 보였던 관리소장이 본색을 드러낸 건 두 달이 조금 넘은 2016년 초였다. 회장 남기업 해임동의서를 작성하는 일도, 해임동의서 서명을 받는 일에 경비원을 동원하는 일도, 부당한 해임투표를 막기 위해 회장인 내가 청구한 가처분 재판에서 채무자(피고)로 지정된 동대표들을 대신해서 법원에 제출할 서류를 작성하는 일도, 이리처럼 회의 시간마다 나를 물어뜯었던 동대표들에게 공격의 재료를 제공하는 일도 관리소장이 한 일이 명백했다. 그는 심지어 회장인 나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밤길 조심해"라며 겁박하기도 했다.

한편 관리소장은 우리 아파트에서 네 번 정도 회장을 했고, 나와 회장 선거에서 겨뤘던 사람, 즉 나를 괴롭히는 못된 동대표들의 우두머리와 한 몸으로 움직였다. 그 우두머리는 거의 매일같이 관리사무소에 출근하다시피 했다. '회장 남기업 괴롭혀서 쫓아내기' 작전의 실행계획이 관리소장에게서 나오면 '우두머리'는 그것을 동대표들에게 전달하고 각자에게 역할을 배분해주는 것으로 보였다. 나를 돕는 입주민들과 논의 끝에 이 '악마의 분업체계'를 깨려면 관리소장을 내보내는 게 필수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소장을 내보낼 방법이 없어서 우리는 답답해 하고 있었다.
  
관리소장의 사문서위조 사건이 터지다

그러던 중 회장인 나의 동의 없이 회장 직인을 찍어 대외적 의사표시를 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2016년 2월 남기업 회장 해임투표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나는 압도적 다수의 '못된' 동대표들이 주동한 회장해임투표에서 '해임반대'가 많이 나와 회장직에 힘겹게 복귀했다. 회장이기 때문에 회의의 사회권은 당연히 회장인 나에게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2월 정기회의 때 나의 사회권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겁박과 야유로 회의장에서 쫓아냈다. 왜 저렇게 무리한 짓을 할까, 나는 분하면서도 한편으론 참 의아해 했었다.

그 까닭은 '회의 안건'에서 확인되었다. 수원시에서 재정 보조를 일부 받아 아파트 내 보도블록과 경계석 공사를 한다는 안건을 다루는 회의였다. 공사를, 그것도 큰 공사를 너무나도 하고팠던 그들은 전원 찬성해서 수원시에 사업 신청을 하기로 의결했는데, 만약 그 회의를 내가 주재했다면 의결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이 불법 회의에서 의결된 사항을 이행할 목적으로 관리소장은 회장의 직인을 찍어 수원시에 신청서를 보내버렸다. 수원시도 불법 회의라고 규정했고, 회장인 내가 분명히 보내지 말라고 했으며, 불법 회의에서 의결된 건 무효이므로 결재할 수 없다고 서류에 명기했는데도 말이다.

나는 소장의 이 황당한 불법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놓고 나를 돕는 입주민들과 의논했다. 논의 결과 소장을 형사 고소하자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관리소장과 나를 몰아내려는 못된 동대표들의 만행에 분노한 30년 경찰 생활 경력이 있는 입주민이 가장 강경했는데, 그는 고소장 초고를 직접 써주는 수고를 마다치 않았다. 법무법인 <에셀>의 오재욱 변호사도 회장의 동의를 득하지 않고 도장을 찍은 것은 '사문서위조'에 해당하고 그 위조된 문서를 수원시에 발송한 것, 즉 대외적 의사표시를 한 것은 '위조사문서행사'라고 조언해주었다.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관리소장에게 벌금 100만 원의 기소처분을 내렸는데 결국 형사재판까지 가게 되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회장이 "불법 회의 의결사항이므로 결재할 수 없다"라고 결재 서류에 자필로 의사표시를 했음에도 회장 직인을 찍어서 수원시에 보냈다는 점을 들어 유죄를 인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회장이 "불법 회의 의결사항이므로 결재할 수 없다"라고 결재 서류에 자필로 의사표시를 했음에도 회장 직인을 찍어서 수원시에 보냈다는 점을 들어 유죄를 인정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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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소장, 전과자가 되다

   
형사재판에서 담당 검사가 나를 증인으로 신청하여 관리소장과 나는 법정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나는 검사 측 증인으로 그는 피고로. 그는 시종일관 억울하다고 판사에게 항변했는데 내용은 이러했다.

'관리소장의 역할은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의결된 사항을 이행하는 것인데, 수원시 지원사업에 응모하는 것을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의결했고 나는 의결된 사항이므로 관행대로 회장의 직인을 찍어서 수원시에 보낸 것이다.' '회장의 사회권이 박탈된 건 동대표들 간의 갈등 때문이어서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고 나는 의결된 걸 단지 수동적으로 이행했을 뿐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그가 불법 회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점, 더구나 불법 회의라고 규정한 수원시 공문을 확인했다는 점, 회장이 "불법 회의 의결사항이므로 결재할 수 없다"라고 결재 서류에 자필로 의사표시를 했음에도 회장 직인을 찍어서 수원시에 보냈다는 점을 들어 유죄를 인정했다. 한마디로 말해 '전과자'가 된 것이다.
  
그러나 유죄 판결을 받았다고 해서 당장 그를 내보낼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하려면 회의를 거쳐야 했는데 못된 동대표들이 다수를 차지한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관리소장 교체안건이 통과될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하여 나는 관리회사가 교체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교체된 관리회사가 관리소장을 유임시킬 수 없도록 만드는 작전을 기획한 것이다.
  
기막힌 관리소장 내보내기 작전
  
2016년 12월 20일 정기회의에 위탁관리업체를 교체하는 안건이 상정되었고, 입찰을 거쳤지만 당연히 저들이 원하는 업체가 선정되었다. 새로 선정된 업체의 사장과 못된 동대표들의 '우두머리'와 관리소장은 오래전부터 알던 관계였고, 서로 밀고 끌어주는 끈끈한 사이였다.

그러나 관리업체 사장과 계약을 하는 사람은 회장인 나였다. 나를 돕는 입주민들과 논의 끝에 계약서에 새로운 조항을 넣기로 결정했다. 관리소장이 유죄판결 받은 것을 이용하기 위해 "을은 아파트관리업무와 관련하여 형사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자를 관리사무소장으로 배치하여서는 아니된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넣은 것이다.

그러나 이 작전은 극도의 보안을 유지해야 했다. 관리소장과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신설된 조항의 내용을 계약 전에 미리 알아버리면 그들이 물리력을 행사해서라도 계약 자체를 막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나는 내가 수정한 계약서를 보내주면 복사해서 준비해놓겠다는 관리사무소 직원에게 내가 직접 프린트해서 가지고 갈 테니 준비할 건 따로 없다고 답해놓았다.

2017년 1월 10일 아침 신설 조항을 삽입한 계약서를 들고 위탁관리업체 사장과 계약을 하러 관리사무소로 향했다. 정말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관리소장의 근무 현장인 관리사무실에서 계약하는 건 부담스러워 나는 사장에게 접견실로 가서 계약서 서명을 하자고 했다. 접견실에서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내가 수정하고 신설한 부분이 있으니 검토해 보라고 하면서 계약서 한 부를 사장에게 건넸다. 상대방이 모르게 조항을 신설해 놓는 것은 상대방을 속이는 것이기 때문에 할 수가 없었다.
  
부주의한 관리업체 사장
   
 나를 계약서에 새로운 조항을 넣기로 했다. 관리소장이 유죄판결 받은 것을 이용하기 위해 "을은 아파트관리업무와 관련하여 형사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자를 관리사무소장으로 배치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넣은 것이다. 그러나 적폐세력과 친한 관리업체 사장은 수정·신설한 부분이 어디냐 묻지 않고 바로 서명을 한 후 도장을 찍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나를 계약서에 새로운 조항을 넣기로 했다. 관리소장이 유죄판결 받은 것을 이용하기 위해 "을은 아파트관리업무와 관련하여 형사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자를 관리사무소장으로 배치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넣은 것이다. 그러나 적폐세력과 친한 관리업체 사장은 수정·신설한 부분이 어디냐 묻지 않고 바로 서명을 한 후 도장을 찍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 김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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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는 수정·신설한 부분이 어디냐 묻지 않고 바로 서명을 한 후 도장을 찍자고 하는 게 아닌가.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만약에 신설된 조항이 뭐냐고 묻고 그 내용을 그가 알았다면 그 즉시 관리소장에게 그 내용을 알렸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관리소장이 나에게 어떤 해를 가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또 아파트에는 못된 동대표들이 포진하고 있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계약서에 신설 조항을 넣는 것은 위험을 무릅쓴 모험이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사장과 인사를 나눈 후 관리사무소를 유유히 빠져나왔다. 그리고 관리사무소 직원에게, 계약서 효력을 둘러싼 시비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오늘 서명한 계약서를 홈페이지에 바로 올리고 입주민에게 즉시 공고할 것을 주문했다.
  
며칠 후 관리회사 사장을 내가 근무하는 서울 신촌 연구소 근처에서 만났다. 나는 계약서와 관리소장이 유죄판결 받았다는 서류를 보여주면서 계약서에 따르면 현 관리소장을 우리 아파트에 근무시키면 안 된다고 했다. 사장은 당황했다. 그런 신설 조항이 들어 있는지 몰랐다는 것이다. 하여 계약 당시 수정·신설 조항이 있으니 검토하라고 분명히 말했고 계약 자유의 원칙에 따라 계약했기 때문에 계약서는 유효하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제대로 된 관리회사라면 전과자를 근무시키면 안 되는 게 아니냐고 압박하기도 했다.

이 사실을 관리업체 사장에게 전달받은 관리소장은 바로 나에게 전화를 해왔다. 입에 담기 힘든 욕을 해댔고, 나를 사기죄로 고소하겠다고 윽박질렀다. 또 이 사실을 접한 못된 동대표들은 정기회의에서 계약이 사기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재계약해야 한다며 난리를 쳤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계약서 서명은 적법하게 이루어졌고, 계약서의 신설 조항은 누가 봐도 우리 아파트를 위한 조항이라는 논리로 맞섰다. 나는 그들에게 지나가는 입주민들을 붙들고 전과자가 우리 아파트 소장을 하는 게 좋은지 안 좋은지 한번 물어보라고 하기도 했다.

관리소장, 드디어 아파트에서 내보내다

못된 동대표들의 기획자 역할을 했던 관리소장이 아파트를 떠난다는 것은 저들이 가진 전력의 절반 이상을 상실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들은 1달 이상 거의 광기에 가까운 행태를 보였다. 회의에서의 고함과 욕설은 기본이었다. 하지만 나는 견뎠다. 내가 물러서지 않는 것을 확인한 관리회사는 결국 관리소장을 교체했다. 계약서를 이행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관리소장이 교체되자 저들의 전력은 급감했다. 나를 향한 공격의 칼날은 무뎌졌고 회의 때 손발이 안 맞는 모습도 자주 노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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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자유연구소(landliberty.or.kr) 소장. 토지 불로소득을 완전히 환수하는 토지공개념과 기본소득, 그리고 통일을 염두에 둔 대안 국가모델에 관심을 갖고 연구와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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