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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항에서  통영과 한산도를 오가는 여객선의 선실에서 아네와 함께
▲ 통영항에서  통영과 한산도를 오가는 여객선의 선실에서 아네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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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6일 가족과 함께 경남 통영시를 찾았다. 내 건강문제 때문에 모든 운전을 딸이 도맡았다. 우선 부두로 가서 여객선에 승용차를 싣고 한산도로 갔다. 평일인데도 한산도를 찾는 여행객이 여럿이었다. 주말에는 모든 배가 만선을 이룬다고 했다.

한산도에 도착한 후 배에서 내려진 차에 올라 섬 일부를 돌아본 다음 차를 부두에다 대놓고 조금 걷기를 했다. 나는 3년 여 동안 병고를 겪으면서 지속적으로 수면제를 복용한 탓에 다리 근육이 예전 상태가 아니었다. 나는 중도에서 걷기를 포기하고 아내와 딸만 "승제당"(수루)까지 다녀왔다.

비록 수루에는 앉아 보지 못했지만 바닷가에 앉아 자주 튀어 오르는 숭어들을 보며 삼도수군통제영 시절의 한산도를 떠올려보았다. 그 당시에도 이렇게 밀물 때에는 숭어들이 튀어 올랐겠지 통제영 병사들은 틈틈이 고기를 잡아 자급자족에 보탰고…

우리 가족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자취를 조금이나마 체감하기 위해 남해 여행을 하게 된 것은 2005년에 제작 방영됐던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다시 보게 된 것이 계기였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에 대한 남다른 이해와 존경심을 지니고 있는 딸이 채널 74번에서 <불멸의 이순신>이 재방되고 있음을 알려주고, 또 외장하드에 저장해놓은 드라마를 다시 보는 방법을 알려준 덕이었다. 우리 가족은 그 대하드라마를 거듭 다시 보면서 이순신 장군과 새롭게 일체감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일찍부터 이순신 장군이 '구국의 영웅', '민족의 성웅'임을 익히 알고 있었다. 4~5년 전 건강한 다리로 시국미사와 세월호 추모미사 등에 참례키 위해 서울 광화문 광장에 갈 적마다 태평로 한복판에 우둑 서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을 보면서 존경심과 친밀감을 가슴에 아로새기곤 했었다.  

고뇌와 고난의 삶
 
한산해전도 한산도에서 보게 된 한산대첩도
▲ 한산해전도 한산도에서 보게 된 한산대첩도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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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 장군에게는 왜군만이 적이 아니었다. 매우 무능하고 용렬했던 군주 선조가 어느 모로는 가장 큰 적이었다. 선조의 왕답지 못한 질투와 시기, 감시와 핍박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 더욱 힘든 일이었다.

조정의 지원이 전혀 없는 가운데 스스로 전함들과 무기들을 만들고 군량미를 확보해가며 군사들을 훈련시키는 것 등 그 모든 것이 악조건과의 싸움이었다. 암군(暗君) 선조의 패악에 가까운 이순신에 대한 폭거는 조선을 멸망케 할 뻔했다. 만약 삼도수군통제사 직에서 파직되고 추포된 이순신 장군이 모진 고문 끝에 목숨을 잃었다면, 조선은 곧바로 멸망의 길로 들어섰을 것이다.

원균의 칠천량 대패로 조선 수군이 거의 전멸한 상황에서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순신 장군이, 수군 재건에 주력하면서 13척의 전선으로 왜선 337척과 싸워 이긴 진도 명량해전은 곧바로 조선을 멸망 위기에서 구해낸 기적 같은 일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조선은 이미 임진왜란 초기에 일본군에 바닷길을 내주어 곧바로 패망을 맞이했을 터였다.

세계의 역사학자들과 군사학 전문가들은 이순신 장군의 지략에 탄복하면서 세계 최고의 명장으로 꼽기도 한다. 또 어떤 학자는 이순신 장군과 17세기 최강의 스페인 함대를 격파한 영국의 넬슨 제독을 비교하면서, 넬슨 제독은 국왕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승리할 수 있었지만, 이순신 장군은 정부의 지원이 전혀 없고 오히려 왕의 핍박이 자심한 상황에서 23전 23승을 이뤄냈기에, 이순신 장군과 넬슨 제독은 비교할 수조차 없다고도 한다.

또 1904년 러시아 함대를 격파함으로서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 해군의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도 자신은 이순신 장군의 발밑에도 따라갈 수 없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순신 장군을 떠올리면 암군 선조의 모습이 겹쳐 떠올라서 괜히 분노가 끓어오르기도 했다. 선조에 대한 분통 속에서 이순신 장군이 한없이 가엾어지는 마음을 안고 한산도 앞의 밀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임진왜란 때도 당파의 이익에 몰두했던 벼슬아치들  
 
진도 훌돌목의 물 흐름새 부부 함깨 물 가기이로 내려가 울돌목의 미묘헌 소리도 들었다.
▲ 진도 훌돌목의 물 흐름새 부부 함깨 물 가기이로 내려가 울돌목의 미묘헌 소리도 들었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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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바닷가의 한 호텔에서 일박한 다음 우리 가족은 다음날(27일) 오전 진도로 이동했다. 남해안고속도를 이용했지만, 꽤 먼 길이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13척의 전선으로 337척의 왜군을 물리쳤던 진도의 울돌목에서는 올해의 명량축제가 시작되고 있었다.

축제장을 둘러보며 울돌목으로 내려가 굽이치고 소용돌이치는 물살을 내려다보자니 다시 장엄했던 명량해전 장면이 떠올랐다. 물살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소리에 야릇한 전율을 느끼기도 했다.

우리 가족은 오후에 귀로에 올랐다. 운전을 하는 딸과 함께 우리 가족은 충무공에 관해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었다. 대화중에 아내가 재미있는 말을 했다.

"나는 묘하게도 병역을 기피한 정치인들이 떠오르데요. 또 전란 중에도 당파의 이익에만 집착하는 간신배들을 떠올리노라면 오늘의 정치배들이 떠올라요."

그 말을 듣고 나도 한마디 했다.

"병역을 기피한 주제들이 걸핏하면 '안보타령'을 해대는데, 케케묵은 안보 타령은 토착왜구들의 전매품이야. 우리나라엔 애석하게도 토착왜구들이 너무 많아."

내 말에 가족 모두 동의를 표하며 함께 웃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다시 충무공 얘기에 열중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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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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