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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바람이 차서 아이에게 점퍼를 입히는데 목까지 오는 지퍼가 불편하다고 한다. 지퍼를 살짝 목 아래까지 내리니 그건 또 싫단다. 꼭 끝까지 올리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아이는 완전히 다 내리거나 끝까지 올리거나 둘 중 하나를 해야 한다. 그게 아이가 정한 점퍼 입는 자신만의 규칙이다.

지금보다 어린 3~4살때부터 동글이는 엄마 말을 잘 듣는 아이였다. 이건 이렇게 해야 하는 거라고 알려주면 그걸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착하고 순한 아이여서 유치원에 가서도 별 탈없이 적응했다. 새로운 친구가 전학을 오기 전까지는.

작년에 학기 중간에 원에 편입한 A와 동글이가 자주 다퉜다. 갈등의 원인은 유치원 규칙. 아직 새로운 유치원 규칙을 잘 모르는 A에게 동글이가 잔소리를 한 것이다. 규칙을 꼭 지켜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동글이와 달리 A는 '그게 뭐? 그냥 좀 편하면 어때?'라는 성향이었다. 다행히 A가 유치원에 적응하고 난 뒤에는 갈등이 해결되었다.

동글이는 사회 규칙이건 자기가 만든 자신만의 규칙이건 규칙을 좋아한다. 무언가 정해져 있는 것에 안정감을 찾고 정해져 있지 않은 걸 불안해 하는 성향을 가졌다. 이런 아이를 보면 내 안의 답답이를 보는 것 같아 안쓰러운데 아이가 잠자리 책으로 자꾸 <규칙이 있는 집>을 가져온다. 또 하나의 답답이가 나오는 책이라 엄마는 멀리하고 싶은데 아이는 가져오고 어쩔 수 없이 읽어주지만 마뜩잖다. 얘는 이게 왜 재미있을까?
 
 <규칙이 있는 집> 겉표지.
 <규칙이 있는 집> 겉표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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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늘 규칙을 지켰어요. 지금은 '언제나 칫솔을 챙길 것'이라는 규칙을 지키는 중이지요.  "규칙은 꼭 지켜야 해." 이안은 항상 그렇게 말했어요. 진짜 그렇게 생각하니까요. 이안의 누나 제니는 절대 규칙을 지키지 않았어요. 툭하면 이안을 꼬집었죠.  어느 날 통나무집에 캠핑을 갔어요. 그 곳에는 '통나무집의 규칙'이 적혀 있었죠.

1. 진흙 묻은 신발은 밖에서 벗고 들어올 것.
2. 욕조를 쓴 뒤에는 배수구를 청소할 것.
3. 땔감을 다 쓰면 채워 노흘 것.
4. 빨간색 문을 절대로 열지 말 것.

이안과 제니와 아빠는 숲에서 하이킹을 하고 수영도 하고 나무에도 올라갔어요. 물론 이안은 지도를 보고 걷고, 음식을 먹은 뒤 한 시간 후에 물에 들어가고 자기 키보다 큰 가지에는 올라가지 않았죠. 집에 돌아와서부터 제니는 규칙을 어기기 시작했어요. 러그 위에 진흙 발자국을 남기고, 벽난로에 마시멜로를 구워 먹은 뒤 땔깜을 모으지 않았어요. 

"누나, 지금 규칙을 어기고 있어."
"이안, 제발 저리 좀 갈래?"

이안은 벽에 걸린 규칙 액자를 가리키며 누나에게 말했어요. 제나는 이안에게 답답이라며 자꾸 그러면 빨간색 문을 열겠다고 협박했어요. 이안은 "규칙은 원래 지켜야 하는 거라고!" 외쳤고, 제나는 문을 열었어요.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날 밤이 되자 곰가죽으로 만든 러그가 진흙투성이가 된 몸으로 침실 문을 두드렸어요. 다음 번엔 욕조가, 마지막엔 배고픈 난로가 왔어요. 이들은 규칙을 어긴 제나를 저녁으로 먹어야겠다고 했어요. 이안은 쌤통이라고 생각하며 칫솔을 쥐고 바깥으로 도망쳤어요. 나무뿌리를 뛰어넘고 몸을 숙여 나뭇가지 밑을 지나다가 이안은 멈췄어요.

'누나가 괴물들에게 잡아먹히게 되면 반드시 구할 것'

이런 규칙은 없지만 그렇게 해야겠다고 결심했지요. 통나무 집으로 돌아온 이안은 괴물들에게 누나를 잡아먹지 말라고 소리쳤어요. 자신은 규칙을 지켰으니 괴물들이 잡아먹지 못할 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괴물들에겐 누구는 먹고, 누구는 먹을 수 없는지에 대한 규칙은 없었어요. 이안을 잡아 먹으러 다가왔죠. 그때 이안이 칫솔을 내밀자 괴물들이 멈췄어요.

"그게 뭐지?"
"밥을 먹고 나서 이를 닦기 위해 쓰는 거. 언제나 칫솔을 챙길 것. 이건 누구나 지켜야 하는 규칙이라고."

이안이 괴물들에게 규칙을 설명하고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큰 괴물에게 잡아 먹힌다고 시침을 떼며 말했어요. '거짓말하지 말 것'이라는 규칙이 생각났지만 금방 잊혔지요. 몰래 뒤에서 겁에 질린 괴물들 팔꿈치를 제나가 꼬집자 괴물들은 칫솔이 없는 자신들을 잡아먹으러 큰 괴물이 나타난 줄 알고 도망쳤어요.

"이안 고마워. 너 날 위해서 거짓말 한 건 알고 있니?"
"그래서?"
"그건 규칙을 어긴 거 아니야?"
"어휴 답답이!"

이안의 말에 누나가 꼬집었지만 이번엔 하나도 아프지 않았어요.


누나에게 늘 듣던 답답이라는 말을 이안이 돌려주면서 끝나는 <규칙이 있는 집>은 상반된 성격의 남매가 괴물을 물리치면서 우애를 회복하는 이야기다. 규칙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기보다 남매의 갈등과 화해를 '규칙지키기'라는 금기를 통해 보여주는 책이다. 

표지에 칫솔을 들고 도망가는 이안이 나오는 데 재난 상황에서도 신발끈 매고 모자 쓰고 금 밟지 않고 뛰어가는 사람처럼 보인다. 살아가다보면 규칙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보여주는 <규칙이 있는 집>은 인생의 중요한 규칙을 말해주고 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근무하던 학교에서 방과 후 보충 수업에 대한 회의를 하면서 화가 났다. 학습 부진을 겪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당연한 교사의 의무라고 생각한 나는 원칙을 이야기하며 회의에서 강력하게 발언했다. 다른 교사 몇몇이 하루 일과 분배를 이야기하며 반대하면서 학습 부진 개선을 위한 방과 후 수업이 개설되지 못 했다. 

"작은 학교에, 대안교육을 지향하는 이곳에 온 거면 이 정도는 각오했어야 하는 거아냐? 교사로서 본분을 지켜야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퇴근 일찍해서 집에 가겠다는 거 아냐."

회의 후 분을 삭이지 못해 씩씩 거리는 내게 40대 중반 선생님이 "선생님은 원론적인 걸 강조하는 분인 것 같아요"라고 이야기했다. 그때만해도 그게 내가 옳다는 이야기라고 말해 주는 줄 알았다.

10여 년이 흐르고 결혼을 한 뒤 아이를 낳고 방과 후 수업을 반대했던 선생님들 나이가 되어 보니 그때 보이지 않던 게 보인다. 방과 후 수업을 운영하기에 당시의 학교는 구조에 문제가 있었다. 학습 부진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교사 충원 없이 방과 후 수업만을 강요했던 구조가 무리였다. 교사로서 사명도 중요하지만 가정도 돌봐야했던 선생님들의 삶도 이제는 안다.

원칙을 중시하고 규칙을 잘 지키기 때문에 내가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면서 많은 갈등을 겪었고,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때라는 마음으로 편히 자유롭게 사는 삶을 동경하게 된 나는 이안을 보면 지난 날 내가 보여서 싫다. 안 그래도 아이가 이안처럼 규칙을 지키는 답답이인 게 안쓰러운데, 규칙을 잘 지켜야 된다는 게 강조될까 봐 읽어주기 싫었다. 싫지만 읽어주다 오늘은 이 책이 왜 좋은지 아이에게 물었다. 

러그와 욕조, 난로가 괴물로 변하는 이야기가 재미있는 걸까? 어느 부분이 재미있는지 왜 재미있는지 묻자 아이가 가리킨 장면은 마지막 장면이었다. 이안이 누나에게 '답답이'라고 말하는 장면. 답답이였던 이안이 규칙을 어기면서 누나에게 되받아치는 유머가 담긴 이 장면을 고른 아이를 보며 규칙을 넘어서는 즐거움을 아이도 알고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이안이 규칙을 잘 지키잖아. 이거 보면 동글이 같아?"
"응."


규칙을 지키는 이안이가 외면하고 싶은 내 모습이었던 것과 달리 아이는 책 속 주인공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위로받고 있었다. 

"그림책 속에 나오는 말썽꾸러기, 떼쓰는 아이, 사고치는 아이를 보면서 아이들은 자신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렇다는 걸 보게 되고 안심하게 된다. 아이 행동과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책은 아이 감정을 공감해 주는 책이다"라고 평소 그림책에 대해 설파하고 다녔던 나인데 스스로는 놓치고 있었다.

아이가 자꾸 <규칙이 있는 집>을 꺼내오는 건 그 안에 있는 자신을 보며 위로 받기 위해서 라는 걸, 점퍼 지퍼를 목 끝까지 올리는 아이를 보며 답답이라고 생각하는 엄마에게 공감받지 못한 아이 마음을 책 속 이안이는 알아주고 있었다는 걸 놓치고 있었다.

규칙을 넘어서고 싶은 마음은 40년 인생을 살아본 어른의 마음이고, 7살인 아이는 책 속에서 있는 규칙을 잘 지키는 사람을 보며 안심한다. 어른의 마음으로 짐작하고 평가하고 꺼려하던 내가 잘못 했다. 앞으로도 잘 모르겠으면 아이에게 물어야겠다. 아이 마음을 알려면 물어보는 게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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