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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로마의 생활 중심지 포로  로마노 모습
 고대 로마의 생활 중심지 포로 로마노 모습
ⓒ 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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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피돌리오 광장 전망대에서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니 마치 전쟁으로 폭격을 맞은 듯 도시 전체가 파괴되어 있는 모습이다. 온전한 건물이라곤 보이질 않는다. 파괴된 건물들과 신전의 기둥만 남은 처참한 모습이다. 여기가 바로 포로 로마노이다.

비록 많이 파괴는 되었지만 도시 전체 구조는 웅장하면서도 평화로운 모습이다. 언덕 위에서 보면 건물 잔해만 남아 있는 볼품없는 모습이지만, 로마 제국이 영화를 누렸던 당시의 모습이 연상되어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밑으로 내려가 금방이라도 한번 거닐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고대 로마의 시작 포로 로마노

포로 로마노는 처음에는 비가 오면 물이 괴는 습지였다. 그러나 하수시설을 확충하고부터는 포로 로마노는 고대 로마의 생활 중심지로, 정치, 종교, 경제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곳이다.

주변에는 언덕들이 마주하고 있어 지형적으로 적들의 침입을 방어하기에도 좋은 입지조건이다. 이런 제반 여건이 충족되어 포로 로마노는 로마 제국의 심장 역할을 하게 된다.
 
 폐허의 도시로 변한  포로 로마노의 모습
 폐허의 도시로 변한 포로 로마노의 모습
ⓒ 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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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 로마노가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6세기경 로마 공화국이 건설되면서부터다. 로마가 지중해를 지배하기 시작한 기원전 3세기 말 2세기 초에 기념비적인 건축이 이루어졌다.

그 후 강력한 세계제국으로 나아가는 시저와 아우구스티누스 시대에 최고의 영화를 누렸다. 그러다 서기 4세기경부터 포로 로마노는 점점 쇠퇴하고 그에 따라 대제국 로마도 차츰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

포로 로마노는 서로마제국 멸망 뒤부터 방치되어 도시 전체가 토사에 묻혀있던 곳이었다. 포로 로마노는 19세기부터 발굴을 시작해 지금까지도 발굴과 복원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이런 노력으로 예전의 번성했던 로마제국의 모습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게 되었다.

포로 로마노의 도시 구조

포로 로마노는 언뜻 보면 복잡한 도시 구조로 되어 있는 것 같지만 크게 3가지로 나누어서 보면 이해하기가 더 쉬워진다. 그게 바로 개선문, 신전, 공공건물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포로 로마노에는 3개의 개선문이 있다. 지어진 시대순으로 보면 티투스, 세베루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순이다. 티투스 개선문은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개선문으로 티투스 황제가 예루살렘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세운 것이다.

로물루스 묘 앞에는 세베루스 황제가 동방 원정에서 전승을 거둔 기념으로 세운 세베루스 황제의 개선문이 있다. 그리고 3개의 개선문 중 콜로세움 바로 옆에 위치한 건축물이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이다. 서기 312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밀비오 다리에서 막센티우스와 전투를 벌여 승리하고 로마로 귀환한 다음 전승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파리 개선문을 세울 때 참고 모델이 된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모습
 파리 개선문을 세울 때 참고 모델이 된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모습
ⓒ 한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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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21m, 폭이 25m이며 3개의 아치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상단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업적과 전쟁 장면을 새긴 부조가 있다.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세웠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은 파리 샤를 드골 광장에 있는 나폴레옹의 개선문을 세울 때 참고 모델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은 신전이다. 포로 로마노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신전이 비너스와 로마 신전이다. 그 외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신전, 베스타 신전 등 많은 신전들이 파괴된 상태로 현재까지 남아 있다. 그중에서 포로 로마노에서 가장 신성시했던 신전 가운데 하나가 성화를 숭배하는 신앙의 전당인 베스타 신전(Tempio di Vesta)이다.

로마의 여러 신전 가운데 불의 신을 모시던 '베스타 신전'은 포로 로마노의 중심에 있다. 베스타 여신의 모습 자체가 '불'이었기 때문에 이 신전에 모셔졌던 신성한 불은 '베스탈'이라 불리던 6인의 무녀들에 의하여 지켜졌다.

베스탈들이 살았던 집은 3층 규모의 건물에 50개의 방이 있었다. 미루어 짐작하건데 여성적인 분위기가 가득한 아름다운 건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지금은 중앙정원과 연못 그리고 주변에 조각상들만 남아 있다.

베스타 신전의 제관들은 6명의 처녀들로 6세부터 10세 사이의 귀족의 딸 가운데 선발되었다. 선발된 베스탈들은 30년 동안 순결을 지키며 베스타 여신 숭배 의식을 집전했으며 성화를 목숨 걸고 지키는 일을 해야 했다. 만약 성화의 불씨를 꺼트리면 가혹하리만큼 큰 벌을 받는다. 이를 지키지 못하는 경우에는 성 밖 '악의 들판'이라고 불리는 곳에 생매장을 당하는 중형을 받기도 했다.

성스러운 길로 불리는 포로 로마노의 중심인 비아 사크라(Via Sacra)거리를 걸어가면, 수호신인 베스타 신전과 오늘날 국회에 해당하는 공화정 최고의 정치기관인 원로원, 금융과 상업 그리고 회합의 중심인 바실리카(공회당)가 줄지어 서 있다.
  
 포로 로마노 팔라티노 언덕 전망대 모습
 포로 로마노 팔라티노 언덕 전망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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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티노 언덕 위에는 황궁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 전망대에서 관광객들은 그때 당시 자기가 마치 황제가 된 기분으로 포로 로마노 전체의 모습을 한눈에 다 담을 수 있어 언덕 위에는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맞은편에는 대전차 경기장인 치르코 마시모와 카라칼라 황제가 만든 대욕장이 있는데 동시에 1600명이 입장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로마 사람들은 카라칼라 대욕장을 찾아 피로를 풀고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삶을 즐겼다. 이 모두가 로마의 시가지 한곳에서 가능했다. 말하자면 정치와 경제활동 그리고 사회활동과 여흥까지 도시의 시스템 안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포로 로마노는 대부분의 건물 모습이 웅장하게 보인다. 거기다 미적 감각까지 겸비한 조각상들까지 한마디로 고대 로마의 영광을 한눈에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파괴된 건물과 함께 쇠락한 제국의 모습을 쳐다보니 안타깝기 그지없는 느낌이었다.

[참고문헌]
최도성 <일생은 한 번은 이탈리아를 만나라>
권순금 <유럽 도시에서 길을 찾다>
최상운 <잊지 못할 30일간의 유럽 예술기행>
조영자 <지중해 3국과 유럽>
김지선 <바티칸 박물관 여행>
정보상 <유럽에서 꼭 가봐야 할 여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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