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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편에서는 윤동주의 한국(연희전문학교)에서의 학창 시절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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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영화에는 안 나왔지만... 지금의 윤동주를 만든 사람 (http://omn.kr/1lbp2)

이어 일본에서 윤동주의 학창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윤동주의 유학 시절은 크게 도쿄에서의 생활(릿쿄대학, 立敎大學)과 교토에서의 생활(도시샤대학, 同志社大學)로 나뉜다. [도쿄편⑦]과 [도쿄편⑧]에서는 릿쿄대학 재학 시절의 흔적을 찾아가 보았다.

도쿄, 미션스쿨 릿쿄대학에 입학한 윤동주

윤동주는 고종사촌이자 단짝인 송몽규와 함께, 1942년 1월에 교토제국대학(현재 교토대학)에 입시 시험을 본다. 그러나 송몽규만 합격하고, 윤동주는 떨어진다.

윤동주는 차선으로 릿쿄대학의 입시를 다시 보고, 릿쿄대학의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한다.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붙어 있었던 윤동주와 송몽규가 유학 입시로 인해 처음으로 떨어지게 된 것이다.

릿쿄대학은 기독교 신교의 한 교파인 '성공회(聖公會)'에서 경영하는 미션스쿨이다. 송우혜의 저서 <윤동주의 평전>(2014, 시정시학)에 의하면, '성공회'는 당시 통치자였던 쇼와(昭和) 일왕의 친동생 중 한 명이 영국 유학 중에 성공회 신자가 되어 돌아옴으로써 황실의 배경을 갖게 되었다.

때문에 '성공회(聖公會)'는 신사(神社)와 황실(皇室)이 숭상되고 불교(佛敎)가 치성인 일본에서도 큰 세력을 가지게 되었고, 릿쿄대학은 이런 튼튼한 배경 아래 경영되고 있는 좋은 대학이었다.
 
릿쿄대학 전경 .
▲ 릿쿄대학 전경 .
ⓒ 심오선(snap the5/Right45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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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윤동주가 실질적으로 릿쿄대학에 다닌 기간은 매우 짧다. 릿쿄대학의 학적부를 보면 '1942년 12월 퇴학'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본은 봄학기가 4월 시작, 가을학기가 10월인 것을 생각하면, 한 학기만 다니고 학교를 그만둔 것이다. 실제로 1942년 가을학기(10월)부터는 교토에 있는 미션스쿨인 도시샤대학에 다니기 시작한다.

윤동주는 7월 하순, 여름방학을 맞아 약 2주간 북간도 용정 집으로 돌아왔다. 당시 윤동주의 모친이 병환 중이었는데, 모친의 병석 가까이에서 이야기 동무를 해 드리고 있을 때, 일본에서 전보가 왔다고 한다. 도호쿠제국대학(현재, 도호쿠 대학)에 재학 중인 친구(한국인)가 본인 대학의 편입 수속을 치르러 오라는 전보였다.

편입 시험 등 각종 수속을 치르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는지, 윤동주는 급히 일본으로 떠났다고 한다. 처음부터 윤동주는 릿쿄대에 계속 다닐 의사는 없었던 것이다. 당시 일본의 공식 나라명은 '대일본제국(大日本帝國)'으로 대학 이름에 '제국(帝國)'이 들어가면 명문국립대학이었다. 명문 학벌에 대한 선망이 만연했던 당시, 윤동주의 부친은 윤동주가 제국대학 중 하나에 다니길 바랐다.

그러나 윤동주가 옮겨 간 곳은 교토에 있는 사립 미션스쿨인 도시샤대학이었고, 전보를 받은 윤동주 부친은 노여워했다고 한다. 윤동주는 북간도 집으로 가기 전부터 도시샤대학에 전학 갈 예정이었으나, 제국대학에 들어가길 희망하는 부친에게 차마 말을 못 꺼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7월 하순, 윤동주의 도쿄 하숙집을 방문한 문익환 목사의 증언에 의하면, 윤동주는 교토로 내려갈 이삿짐을 꾸렸다고 한다.

윤동주가 릿쿄대학을 떠난 사연, '교련 수업 거부'

윤동주 왜 이토록 급하게 릿쿄대학을 떠났을까? 릿쿄대학도 좋은 사립 미션스쿨이기에 또 다른 사립 미션스쿨인 도시샤대학으로 굳이 전학을 갈 필요가 없었다. 윤동주가 교토에 있는 학교로 옮겨간 이유로는 교토제국대학에 다니는 송몽규의 영향을 많이 꼽는다. 물론 송몽규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교련 수업 거부'로 보인다.

윤동주의 릿쿄대학 후배이자 연구자인 야나기하라 야스코(楊原泰子)씨는 1942년 4월 10일 자 <릿쿄대학 신문>으로부터, '學部斷髮令四月中旬實施'(학부 단발령 4월 중순 실시)라는 기사를 발견했다.

그녀는 조사에 의하면, '조선인 학생 중에서 교련을 거부한 학생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군국주의 사상이 세간을 지배하고 있을 때, '교련 수업 거부'는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행동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영화 <동주>에서도 '교련 수업 거부'로 반삭발을 당하는 윤동주가 묘사된다. 실제로 윤동주가 거행한 '교련 수업 거부'는 교련복을 입지 않은 채, 교련 수업에 출석한 것이었다.
 
 영화 ‘동주’ 속 교련 수업 거부로 반삭발 당하는 윤동주(강하늘 역)
 영화 ‘동주’ 속 교련 수업 거부로 반삭발 당하는 윤동주(강하늘 역)
ⓒ (주)루스이소니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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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가을, 육군 대좌 이지마 노부유키(飯島信之)가 릿쿄대학의 군사훈련 담당 교관으로 배속된다. 남학생들은 누구나 매주 1시간씩 군사 훈련을 받아야 했다. 송우혜의 저서 <윤동주의 평전>(2014, 시정시학)에 의하면, 그는 릿쿄대학에 오기 전에 같은 기독교 학교인 메이지대학(明治大學)에 배속되어 있었다.

그런데, 메이지대학에 있을 때도 어찌나 횡포가 심했는지, 그가 릿쿄대학으로 옮겨갈 때 메이지대학에서 축배를 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릿쿄대학의 학생 중, 이지마 대좌에게 미움을 사 '교련 출석 정지' 조치를 당하고 '징병 연기'가 취소되어, 군대에 입대한 학생들이 꽤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군국주의가 일본의 모든 대학에 만연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7월 하순, 윤동주가 고향집 북간도를 방문했을 때, 송몽규도 맞추어서 일시 귀향한다. 이때, 윤동주와 송몽규는 다른 친지들과 함께 1942년 8월 4일에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사진 속에 반삭발한 사람은 윤동주뿐이 없다. 윤동주가 이토록 급히 릿쿄대를 떠난 것은 '교련 수업'에 대한 반감으로, '교련 수업'이 거행되지 않는 교토 지역으로 옮겨 간 것으로 보인다.
 
 1942년 8월 4일, 마지막 귀향 때, 남긴 사진. 뒷줄 오른쪽 반삭발 머리가 윤동주, 앞줄 가운데 안경을 낀 사람이 송몽규다. 송우혜의 저서 <윤동주의 평전>(2014, 시정시학)에 올려진 사진 재촬영.
 1942년 8월 4일, 마지막 귀향 때, 남긴 사진. 뒷줄 오른쪽 반삭발 머리가 윤동주, 앞줄 가운데 안경을 낀 사람이 송몽규다. 송우혜의 저서 <윤동주의 평전>(2014, 시정시학)에 올려진 사진 재촬영.
ⓒ 시정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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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가 애정한 과목 <동양철학사>, 1104호 교실

릿쿄대학에서 윤동주가 이수한 과목을 살펴보면 봄학기에 <영문학 연습-85점>,<동양철학사-80점>으로 단 두 과목만 이수한 것을 알 수 있다. 릿쿄대학에서 수강한 과목 중, <동양철학사>는 윤동주가 가장 애정한 수업으로 알려져 있다.

윤동주가 동양철학사를 들은 교실은 릿대교대학 정문에서 보이는 건물 1층에 있는 1104호 교실이다. 릿쿄대학 교목 김대원 신부님의 설명에 의하면, 현재의 1104호 교실은 당시의 작은 교실 2개를 이어 넓게 만든 것이라고 하니, 윤동주가 재학할 당시의 1104호 교실은 지금의 약 절반 정도의 작은 규모였을 것이다.
 
윤동주가 <동양철학사> 수업을 들은 릿쿄대학의 1104호 교실 .
▲ 윤동주가 <동양철학사> 수업을 들은 릿쿄대학의 1104호 교실 .
ⓒ 심오선(snap the5/Right45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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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는 일본 유학 시절 한국에서 있었을 때보다, 더 많은 시를 지었을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1944년에 '치안유지법 제5조 위반 <독립운동> 죄'로 체포되었을 당시, 거의 모든 시가 압수되어 처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학 시절 습유작품(拾遺作品)으로는 '흰 그림자' '사랑스런 追憶(추억)' '흐르는 거리' '쉽게 씌여진 詩(시)' '봄' 이렇게 5편의 시가 있다. 5편의 시 모두, 릿쿄대학 재학 시절에 적은 시이다. 위의 5편의 시가 압수되지 않은 이유는, 위의 시만 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에 재학 당시, 친우였던 강처중에게 한국으로 우송(郵送)하였기 때문이다.

윤동주의 유학 시절 습유작품 중, '쉽게 씌여진 시'에는 '노교수의 수업을 들으러 간다'는 구절이 있다. 연구자 야나기하라 씨는, 시 속의 '노교수'는 <동양철학사>를 가르친 우노 데쓰토(宇野哲人) 교수라고 밝혔다. 우노 교수는 일본 동양철학계의 거목이자 도쿄제국대학의 명예교수로, 당시 릿쿄대학에 초빙교수로 강의를 하였다.

이쯤해서 영화 <동주>를 본 사람이라면 '영화 속에 나온 교수는 누가인가?'라는 궁금증이 생길 것이다. 그 뒤, 이야기는 [도쿄편⑧]에서 이어가고자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광양시민신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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