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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빨래 건조대 발목이 부러졌다. 건조대의 스테인리스 봉을 지탱해주던 플라스틱 이음새에서 작은 조각이 떨어져버린 거다. 4인 가족 빨래를 건사해야 할 녀석이건만 빨래를 얹을 때마다 중심을 잃고 힘없이 쓰러졌다.

버릴까 살까. 고심 끝에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새 빨래 건조대를 들이지 않고 있다. 대신 부러진 발목에 투명 테이프를 감아 베란다 창문에 기대어 쓴다. 물론 불편하지 않다. 창문에 기대는 법도 몇 번 해보니 제법 손에 익어 어렵지 않았다.

발목 부러진 빨래 건조대를 쓰는 일. 이건 궁상일까, 절약일까. 나는 고민하지 않는다. 궁상인지 절약인지를 가늠하는 과정은 남들 눈에 비춰 비루해 보이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할 뿐이었다. 타인의 시선보다 나의 선택을 존중하고자 한다.

처음부터 '궁상'과 '고상' 사이에서 중심을 잡았던 건 아니다. 체면 소비로부터 당당히 독립하는 데까지 3년이 걸렸다.

최소한의 소비, 그 시작 
 
 빈곤은 누적된 개인의 게으름으로 여겨지기 일쑤다.
 빈곤은 누적된 개인의 게으름으로 여겨지기 일쑤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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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덜 쓰는 삶을 시작한 건 4년 전, 첫 아이를 낳고부터다. 아이를 돌보기 위해 일을 쉬었고, 자연히 버는 돈이 줄었다. 그런데 소득이 줄어도 소비는 줄이지 못했다. 육아의 고단함을 모두 돈으로 메웠기 때문이다.

'육아는 아이템빨이다!'를 외치며 육아용품을 사들였다. 분유 온도를 맞춰주는 분유 포트기, 아기 옷만 따로 삶아주는 아기 세탁기, 아기 물건을 소독해주는 소독기에 뒤집기 방지 쿠션까지.

소비로 영위하던 윤택한 삶에 도취되어 큰 아이 6개월, 꿈이 생겼다. 바로 40대에 10억 부자가 되는 것이었다. 결심 후 봉투 한 장마다, 만 원 씩 꽂아놓고 봉투 속 돈으로만 하루 살림을 사는 생활을 시작했다. 한 푼이 아쉬웠다. 그런데 지갑을 닫고 허리띠를 조를수록 표정은 어두워지고 생기를 잃었다. 문제의 원인은 소비로 누리던 편의보다 타인의 시선에 있었다.

돈 쓰는 이야기를 꺼내기는 쉬웠지만, 돈 안 쓴 이야기는 늘 입 안에서 맴돌았다. 친구들을 만나면 어디 카페의 디저트가 맛있다거나, 새로 나온 토끼 모자가 '어린이집 인싸템'이라는 둥 소비 위주의 수다가 이어졌다.

하지만 장화를 살까 말까 하다가 집에 있던 방수 등산화를 신는다거나, 주말 가족 나들이에 외식 대신 식빵과 잼을 간단히 챙겨나가는 이야기는 목울대 안으로 삼키기 일쑤였다.

궁색해 보이는 걸 경계한 이유는 한국에서 빈곤이란 '누적된 개인의 게으름에 대한 일종의 처벌'로 빈번히 여겨지기 때문이다. 빈곤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만 물을 수 없을 만큼, 계층의 상방-하방 이동 경직성에 대한 연구결과가 속속들이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사회 주류 담론은 여전히 빈곤의 책임을 개인에게 청구했다.

'어떻게 살고 있느냐는 친구의 물음에 OOO(고급 자동차)로 대답했습니다'와 같은 광고가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 세상이다. 잘 살고 있음을 방증하려면 무슨 책을 읽었는지보다 비싼 물건을 내미는 게 우선이었다.

뿐만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복도식 작은 임대 아파트는 걸핏하면 인터넷에서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휴거(휴먼시아 거지)'라는 말을 비롯해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 분양동과 임대동 사이에 철조망을 치는 일은 지극한 현실이었다.

나도 잘 살고 있다고 대답하려 애썼다. 어떻게 살고 있냐는 친구의 물음에 SES 유진 딸 로희의 헤어 밴드와 북유럽 풍 아기옷, 유명 외국 브랜드 아기띠, 기저귀 가방으로 썼던 프라다 가죽 가방으로 대답했다.

아이는 헤어밴드를 귀찮아했고, 가죽 가방은 무거웠다. 그럼에도 기꺼이 견뎠다. 마치 이 물건들이 나를 설명해주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남부럽지 않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타인의 기준에 맞춰 낭비한 인생의 대가는 텅 빈 계좌로 쉽게 드러났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책을 들었다. 그간 파묻혀 살던 재테크 책의 비율을 점점 줄여갔다. 책들은 이구동성으로 같은 말을 했다.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으려고 했으니, 삶은 그처럼 소중한 것이다. - <월든> 중.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나와 남의 삶에 거리를 두자 새로운 사실들이 보였다. 미디어에 비치는 삶이 '보통'이고 '평균'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미디어는 자본의 힘으로 운영되기 마련이었고, 소비를 부추겼다. 텔레비전 속 가난한 여주인공 방에 있는 예쁜 가구들과 최신 휴대폰은 '가난한' 그녀가 마련할 만큼 합리적인 가격이 아니었다.

상상 속 남들의 삶이 포장되었음을 깨달았다. 미디어와 SNS는 월세와 전세로 사는 다수의 삶을 배제했다. 대신 임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거지'로 표현하는 몰상식과 무례함이 만연했다. 많이 벌어 많이 써야 한다던 집단의 의견이 왜곡되었음을, 집단에서 한 발짝 나와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집단의 의견보다 내 삶에 중심을 잡기로 했다. 개인주의자로 산다면 절약도 그리 어렵거나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최소한의 소비'를 택했다. 여윳돈이 남았고 저축을 했다. 더디지만 어제보다 오늘이 좋았고, 오늘보다 내일이 나으리란 희망도 생겼다. 절약이 몸에 익자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서는 무급 육아 휴직을 연장했다. 적은 돈으로도 잘 살 자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소비 대신 책을 들었더니 벌어진 일
 
 최신의 장난감을 자랑하기보다, 아이의 콩알 놀이를 SNS에 자랑한다.
 최신의 장난감을 자랑하기보다, 아이의 콩알 놀이를 SNS에 자랑한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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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 절약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과시하느라 애쓰는 '있어빌리티'의 홍수 속에 정면으로 뛰어들었다. 나는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블로그에 하루 식비 15,000원 살림을 기록하고, 고장난 빨래 건조대를 소개했다. 친환경 무선 청소기라면서 빗자루 사진을 올렸고, 구멍 난 옷을 기워 입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블로그 이웃들은 평범한 우리 삶에 용기를 가졌다며, 그간 화려하게 꾸며진 쇼윈도 같은 남들 삶에 상처받았던 시간을 회복했다며, 함께 기뻐해주었고, 절약을 응원해주었다.

올해 봄부터는 절약 모임도 만들었다. 거대한 쇼핑센터나 다름없는 한국에서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우아한 절약 모임이었다. 절약한다고 비참해질 필요는 없었다. 그저 과시용 소비를 줄이고, 삶을 더 단정하게 만드는 데 돈을 쓰자며 다짐했다. 우리는 돈 한 푼 안 쓸수록 박수받았다. 돈이 최고라던 바깥세상과 다른 목소리를 내며, 매주 한 번 모여 자존감을 회복해 나갔다.

돈 쓰는 삶이든, 덜 쓰는 삶이든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했다. 개인의 삶이 집단의 목소리에 짓눌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내가 그러했듯, 절약하는 삶을 집단의 잣대, 그 중에서도 SNS와 미디어의 잣대에 비추어 괴로워하는 사람이 줄어들길 바랐다.

절약을 자랑하며 산다. 나는 무난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잃었다. 하지만 경제적 자립과 아이와 함께 하는 행복을 얻었다. 고장난 빨래 건조대를 써도 궁상인지 절약인지 검열하지 않는 게 절약의 첫 걸음임을 알았다.

타인에게 인정받으려 애쓰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먼저 사랑하는데 온 힘을 쏟는다. 그래도 우리의 삶은 둥글게 잘 굴러간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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