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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피아골에도 단풍이 진하게 들었다.
 지리산 피아골에도 단풍이 진하게 들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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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홍소

흰 구름 맑은 내는 골골이 잠겼는데
가을에 붉은 단풍 봄꽃보다 고와라
천공이 나를 위해 뫼빛을 꾸몄으니
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조차 붉어라.

남명 조식 선생이 지리산 피아골 직전계곡 삼홍소(三紅沼) 경치를 예찬하며 읊은 시입니다. "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조차 붉어라"에서 딴 이름이 바로 '삼홍소'입니다. 산이 붉게 물들어 '산홍(山紅)'이고, 맑은 물에 비친 붉은 단풍이 '수홍(水紅)'이며, 계곡에 있는 사람까지 붉게 물들어 '인홍(人紅)'입니다.

천지인(天地人)이 절묘하게 어울린 풍경이지요. 이런 풍경 표현은 아공(我空) 법공(法空) 구공(俱空)을 깨친 도통 도인이어야 가능하지 싶습니다. 왜냐면 본성에 들어, 천지자연과 하나 된 물아일체(物我一體) 상태여야만, 인의예지 사단(四端)이 발현되는 게 도의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어째야 쓸까. 그 유명하다는 지리산 피아골 단풍은 제대로 한 번 못 봤습니다. 피아골 아랫마을에서 연곡사는 3년여 동안 다녔던 터라 단풍을 끼고 있습니다만 직전마을과 피아골 대피소 등은 이름만 들었습니다. 이즘에서 깨달은 조선의 선비 조식 선생이 극찬해 마지않는 지리산 피아골 붉은 단풍쯤은 봐야 예의지요. 지난 9일 동료들과 함께 피아골을 향했습니다.
    
 지리산 피아골이 불타고 있었지요. 단풍 속에는 춘생추살이란 자연의 섭리가 들어 있습니다.
 지리산 피아골이 불타고 있었지요. 단풍 속에는 춘생추살이란 자연의 섭리가 들어 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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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골 단풍 물에 내려 앉았습니다. 조식 선생께선 이를 '수홍'이라 했지요.
 피아골 단풍 물에 내려 앉았습니다. 조식 선생께선 이를 "수홍"이라 했지요.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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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생추살(春生秋殺)', 자연의 정신이 깃든 단풍

"와~, 단풍 보러 온 보람이 있네. 천천히 즐기며 올라가세!"

단풍 참 곱습니다. 마음을 활짝 여니 모든 게 아름답습니다. 사실, 단풍 속에는 처절한 자연의 비밀이 숨겨 있습니다. '춘생추살(春生秋殺)'. 봄은 만물을 살아나게 합니다. 그렇지만 가을은 불필요한 것들을 가차 없이 쳐내 혹독한 겨울을 대비하는 우주의 이치가 담겨 있습니다. 자연은 때에 따라 사랑하고 벌한다는 게죠. 그러니까 단풍은 활엽수들이 겨울을 이겨내기 위한 처절한 몸짓입니다.

피아골에는 가슴 아픈 유래가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전쟁의 역사 속에 죽은 이의 피가 골짜기를 물들였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다른 쪽에서는 "직전마을에서 오곡 중의 하나인 피를 많이 재배했기에 붙여진 이름"이라도 합니다. '피밭골'이 '피아골'로 변했다는 거죠. 어쨌거나 아름다운 단풍만큼이나 아름다운 역사로 남길 바라봅니다.
 
 단풍은 비단풍과 어울려야 빛이 납니다. 인간도 마찬가집니다. 서로 더불어 함께해야 빛이 나는 법이지요.
 단풍은 비단풍과 어울려야 빛이 납니다. 인간도 마찬가집니다. 서로 더불어 함께해야 빛이 나는 법이지요.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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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지리산 피아골 단풍 산행에 나선 일행입니다. 예비 신랑 신부 포함입니다. 누굴까?
 함께 지리산 피아골 단풍 산행에 나선 일행입니다. 예비 신랑 신부 포함입니다. 누굴까?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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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은 운동부족을 절감하는 나태와 게으름의 결과

"나 여기서 사진 한 장 찍어줘."
  

여심(女心)은 역시 여심(餘心)입니다. 단풍을 즐기는 사이 땀이 흐릅니다. 하나둘 옷을 벗습니다. 비우고 가볍게 가야 하는데 등에 짐을 잔뜩 짊어진 탓입니다.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으며 운동 부족을 한탄합니다. 나태와 게으름의 결과지요. 아무튼, 땀은 자연과 산과 단풍이 무지를 나무라는 행태입니다. 특히 땀은 제 아둔함을 꾸짖는 몸의 야단침입니다. 반성은 언제 어디서든 필요합니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은 역시 지리산입니다. 공기 자체가 다릅니다. 도심의 공기가 오염에 찌든 탁한 것이라면 산속의 공기는 청정하다 못해 맑고 맑은 청경지수 같은 신선함 자체입니다. 이러니 어느 정도 나이 들면 환장해 산으로 향하는 게지요. 연식이 들면 등산이 바로 자신을 맑히는 법이라는 걸 은연중 아는 겁니다.

계곡 물소리가 계속 따라옵니다. 소리가 다양합니다. '졸졸졸' 했다가도 '솰솰솰', '쫠쫠쫠' 등의 소리에 정신이 바짝 차려집니다. 하늘에선 까마귀 노랫소리가 가득합니다. 근데 까마귀가 내는 소리를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아둔한 건지, 언어의 한계인지 모를 일입니다. 하여간 예서 떠올린 게 남명 선생이 늘 몸에 차고 다녔다는 '경의검(敬義劍)'과 '성성자(惺惺子)'입니다. 왜 이를 떠올렸을까?
 
 피아골, 계곡 물소리가 계속 동행합니다. 여기서 경의검과 성성자를 떠올렸지요.
 피아골, 계곡 물소리가 계속 동행합니다. 여기서 경의검과 성성자를 떠올렸지요.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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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골의 곱디 고운 단풍과 놀다 보니 어느 덧 하산할 때가 오더군요. 만나면 헤어지는 이치와 같은 게지요.
 피아골의 곱디 고운 단풍과 놀다 보니 어느 덧 하산할 때가 오더군요. 만나면 헤어지는 이치와 같은 게지요.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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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골서 조식 선생의 경의검과 성성자를 떠올린 까닭

"내명자경 외단자의(內明者敬 外斷者義)."

남명 선생이 경의검에 새긴 글입니다. "안으로 마음을 밝히는 것은 경(敬)이요, 밖으로 행동을 결단하는 것은 의(義)다"란 뜻입니다. '경(敬)'은 본성(本性)을 밝혀 항상 '허령지각(虛靈知覺)' 또는 '참나(진아, 眞我)'와 함께 깨어있길 바라는 양심과 선정의 마음입니다. 선생은 인의예지(仁義禮智) 4단 중 '의(義)'. 즉, 실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성자는 조식 선생께서 옆구리에 차고 다닌 방울 한 쌍입니다. 현인(賢人)은 왜 시끄러운 방울을 차고 다녔을까? 자신이 거동할 때 방울 소리를 통해 혼침에서 벗어나 늘 깨어 있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경의검과 성성자로 보면, 선생이 얼마나 알아차리며 깨어있길 원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깨어 있는 자만이 지혜를 얻는 걸 체득했기 때문입니다.

지리산 직전마을에서 피아골을 오르다 남명 선생의 경의검과 성성자를 떠올린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겐 까마귀 노래가 경의검이요, 피아골 계곡의 물소리가 성성자였던 셈입니다. 늘 알아차려 깨어 있게 하는 자체는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하나의 방편일 뿐이지요. 이렇게 남명 선생과 하나 되는 영광을 누렸지요.

예비 신랑과 신부의 배신에서 사랑 놀음을 보다

 
 지리산 피아골 계곡은 마음 쉼이 있는 곳이더군요.
 지리산 피아골 계곡은 마음 쉼이 있는 곳이더군요.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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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피아골 대피소에서 인증샷!
 지리산 피아골 대피소에서 인증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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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골 대피소까지 얼마나 남았어요?"
"힘내세요. 조금만 가면 됩니다."


산에 오를 때면 언제나 나오는 한결같은 물음과 답변입니다.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는 한계지요. 그러면서 모르는 사람과 인연 맺습니다. 어라? 어떤 분은 맨발입니다. 벌써 세 명쨉니다. 신발 들고 맨발로 지리산에 도전하는 용기가 가상합니다. "발 안 아프세요" 했더니 "견딜 만 해요" 합니다. 지리산은, 자연은, 철없는 인간에게 모든 것을 내려놓게 합니다.

"고소공포증이 심하게 있어서 철다리를 못가요. 여기 있을게요. 놀다 오세요."

앗, 배신을 하다니. 내년 2월에 결혼 날 잡은 예비 신부를 위한 예비 신랑의 문자. 그러려니 합니다. 결혼 날 잡아 본 사람들이라면, 이미 결혼한 사람들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지요. 해본 가락이 있으니까. 사랑놀이는 내 남자와 내 여자가 생긴다는 걸 넘어 '사랑' 그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결혼 축하드립니다!

나를 깨우는 소리, 멍~ 때리니 맑아집니다!
 
 뻔히 알면서 미련하게 짊어지고 가는 이유는 이런 보람 때문이지요. 정어리 젓에 배추쌈이라니...
 뻔히 알면서 미련하게 짊어지고 가는 이유는 이런 보람 때문이지요. 정어리 젓에 배추쌈이라니...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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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풍은 낙엽되어 떨어졌습니다. 이 모든 건 다가 올 봄을 기약하는 행위입니다. 인간에게 미래가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단풍은 낙엽되어 떨어졌습니다. 이 모든 건 다가 올 봄을 기약하는 행위입니다. 인간에게 미래가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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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더 이상 못가!"

선발대가 문자를 날렸습니다.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같은 마음입니다. 2시간여 만에 도착한 피아골 대피소. 먼저 도착한 일행은 벌써 밥상을 펼쳤습니다. 모과차, 김밥, 돼지 수육, 배추쌈, 정어리젓. 사실 배추쌈에 젓갈이면 게임 끝입니다. 담당으로 가져오시는 분 덕분입니다. 산에서 맛보는 호강이지요. 그러는 사이 출발점에서 못 올라올 것 같았던 60대 후반의 부부도 도착했습니다. 역시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내려오는 길. 여전히 계곡 물소리가 생생합니다. 멍~ 때리니 청(淸)해집니다. 이를 '멍청'이라고 하대요. "몰라" 하는 가운데서도 나를 깨우는 소리를 들으니 맑아진 거죠. 깨친 선비의 올곧은 정신을 드러낸 조식 선생의 시로 마무리합니다.
 
욕천 - 시냇물에서 목욕하며

사십년간 온몸에 묻은 허물을
천 섬 맑은 못에 씻어 좋게 하리라
그래도 티끌이 오장에 남는다면
당장 배를 갈라 물에 흘려보내리라
 
 지리산이 날보고 웃고 있습니다. 고맙다며 같이 웃었지요. 삶이란...
 지리산이 날보고 웃고 있습니다. 고맙다며 같이 웃었지요. 삶이란...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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