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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불평등 문제를 다룰 때 우리가 흔히 놓치기 쉬운 것은 특정 집단이나 계층이 속한 공간이 어디냐는 것이다. 지역 간 보건의료 서비스 격차, 시스템 부재에 따른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공간상의 위계가 건강 격차를 낳는 것은 또 다른 지점이 있다. 바로 일하는 곳에 따라 건강 진단 및 관리를 받는 수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내가 일하는 작업장·사업장의 노동환경·조건이 어떠한가가 나의 건강 수준에 많은 영향을 끼침에도, 건강불평등 해소를 논의할 때는 일하는 공간에서의 건강관리 서비스 및 시스템을 개선 및 강화하려는 노력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이러한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 간의 건강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대표적인 제도로 '근로자건강센터'를 10여 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다. 앞으로 노동자들의 건강 불평등 개선에 있어 근로자건강센터의 역할에 대해 지난 10월 28일 서울 근로자건강센터의 정최경희 센터장을 만나 얘기를 나눠보았다.

안전보건체제 사각지대인 소규모 사업장 지원사업의 중요성

근로자건강센터는 안전보건 관련 법 제도에서 사각지대에 놓인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건강관리를 지원하기 위해 제도화되었다. 소규모 사업장은 산업안전보건법 제3조 안전보건관리 체제 규정에서 면제됨에 따라 노동자의 안전보건 문제를 관리할 담당자가 부재하다. 그래서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지원을 받아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소규모 사업장의 재정 상황에 비춰볼 때, 민간기관에 비용을 지불하기에는 여러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근로자건강센터는 소규모사업장 노동자의 건강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공단에서 안전보건관리를 위한 비용 및 물품이나 의료적 지원을 해왔다.

"서울 근로자건강센터에서 하는 사업은 크게 두 개로 나눠집니다. 사업장에 나가서 하는 이동업무와 노동자들이 센터에 내방했을 때 하는 업무입니다. 주요사업으로는 뇌심혈관계 질환 및 근골격계질환 예방관리, 고혈압·당뇨·과로 등 직업병 관련 상담 및 건강검진, 직무스트레스 평가 및 감정노동자상담·치유, 작업장 위험성평가와 안전보건 정보제공 및 상담 등이 있어요. 예컨대 만성질환의 경우 진단 후 노동자 스스로 관리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관리계획을 함께 세우는 걸 돕는 식이죠.

공공기관이나 기업에서 운영하는 콜센터에서 하청업체를 통해 고용되어 일하는 콜센터 직원들에게 근로자건강센터를 통해 집단으로 상담 및 관리를 요청해오기도 했어요. 이 경우엔 직무스트레스 조사나 감정노동 관련 상담을 진행했었죠. 일터괴롭힘이나 직장갑질에 대해서도 상담을 했었고요.

산업위생기사도 센터에 상주하고 있어서 소규모 사업장에 직접 나가서 작업환경을 점검하고 향후 개선 및 관리에 대해 컨설팅도 해드리고 있어요. 현재 서울 근로자건강센터에서 새롭게 준비하고 있는 사업은 개인 보호구 착용 관련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사업장 단위별로 작업환경 개선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설비 개선 등은 비용과 시간이 들기 때문에 영세한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컨설팅을 해드려도 실제로 실행에 옮기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그럴 경우에는 차선책으로라도 보호구를 잘 착용하는 것이 중요하죠. 물론 보호구 착용은 안전보건 조치에서 최후의 수단이죠. 그렇지만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잖아요. 더구나 노동자들에게 보호구가 잘 지급되지 않는 경우도 많고 보호구가 있더라도 어떻게 착용해야 할지, 착용한 채로 어떻게 일해야 할지 잘 모르는 분들도 많아요.

나아가 어떤 보호구가 더 좋은지 정보도 없으시고요. 그런 점에서 노동자들이 스스로 보호구를 잘 활용하고, 자신과 작업장 환경에 맞는 적합한 보호구를 고를 수 있도록 도와드리려고 해요. 다른 근로자건강센터에서 하고 있기도 해서, 이를 도입해서 시도해보려 합니다."


     
 일하는 사람 모두의 건강을 위해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근로자건강센터
 일하는 사람 모두의 건강을 위해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근로자건강센터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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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 또는 유인의 부재: 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마주하는 문제

근로자건강센터 사업의 핵심적인 문제는 지원 서비스를 주고받는 과정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규모 사업장을 제도적으로 포괄하기 위해선 지원 프로그램에 노동자들이 각자 알아서 찾아오는 방식이 아닌 소규모 사업장 단위인 '집단'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근로자건강센터와 소규모 사업장이 MOU 등 협약을 체결해 집단 수준에서 진단 및 관리를 받는 방식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이러한 집단적 관리방식의 일환으로 '사업장 건강주치의' 프로그램이 마련되었지만 이용률은 그리 높지 않다. 이는 근로자건강센터의 지원 서비스를 받는 이들에게 참여할 유인이 적기 때문이다. 소규모 사업장의 사업주는 안전보건 관련 문제를 책임지고 관리해야 할 의무를 지지 않으려 한다.

노동자들이 근로자건강센터의 프로그램을 이용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업주의 협조가 중요한데 시간과 비용을 들여 할 정도의 관심과 열의가 있는 사업주가 아닌 이상, 일정 정도 이윤손실을 감수하면서 노동자들이 건강검진과 상담을 받도록 해주는 사업주는 거의 없다. 노동자가 필요하거나 방문하고 싶어도 찾아갈 시간을 내지 못하는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 노동자들 또한 근로자건강센터의 효용에 대한 인식이 없고, 사업장 내 안전보건에 대한 문제의식이 낮아서 근로자건강센터를 이용하려는 욕구 또한 적다.

"그나마 안전보건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업주가 있는 사업장이라면 모를까 집단으로 노동자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아요. 노동자가 자신의 건강을 걱정해서 상담받고 싶어서 여기저기 수소문해 보다가 혼자 찾아오는 경우도 꽤 됩니다. 서울 근로자건강센터의 경우 아파트형 공장으로 되어 있어서, 근로자건강센터가 있는 빌딩과 그 주변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이 알음알음 찾아오세요.

여전히 근로자건강센터가 있다는 것, 근로자건강센터를 통해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다는 것도 모르는 분들이 많은 상황이죠. 그래서 근로자건강센터의 활동을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더 많이 알려야 해요. 그래도 긍정적인 점은 근로자건강센터 프로그램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는 거예요. 센터가 있는 빌딩의 환경미화원분들이 오셔서 집단 프로그램을 받고 있는데 처음에는 잘 모르셨다가 프로그램을 받고는 건강이 개선된 분들이 많으세요.

만족도가 높으신 거죠. 그런데도 문제는 이분들조차 센터에 시간 내서 오시는 게 힘들다는 거예요. 정말 센터가 있는 지역 인근에서 오시는 것이죠. 그나마도 짧은 점심시간 활용해서 오세요. 오전 오후 업무 시간에 내방하시는 분들은 그나마 사업장의 재정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이에요. 일반 소규모 민간 사업장에서는 거의 오지 못하세요."


개인이 알아서 찾아오는 경우도 많지만, 집단 서비스 제공을 위해 센터에서 직접 대상 사업장들에 연락도 돌린다. 하지만 사업장에서는 민간 회사들의 판촉이라 여겨서 일방적으로 끊어버리는 경우도 다반사다. 만약 특수건강검진 사후관리를 하라고 안전보건공단에서 명단이 내려와 대상 사업장에 공문을 보내고 연락하면, 그나마 성공률이 20% 정도다. 그때야 비로소 사업장에 방문해서 현장에서 직접 건강진단 및 상담 등을 진행할 수가 있다. 어렵사리 사업장에 가더라도 일하다 나온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서비스를 제공하기란 쉽지 않고 노동자 입장에서도 다시 일하러 가야 하는 상황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결국 소규모 사업장에도 안전보건 관리 의무를 부과하거나 노동자 건강관리에 따른 각종 유인을 제공해야 하며, 노동자들에게 유급으로 시간을 보장해줘서 근로자건강센터를 방문할 수 있도록 하는 노동환경 또한 조성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운영시스템 체계의 필요성과 남은 과제들

현재 전국에 21개 센터, 21개 분소가 있고 2020년 운영 10주기를 앞두고 있지만, 아직도 근로자건강센터의 운영을 기획 및 조정하는 중앙 근로자건강센터가 없다. 정부가 시행 중인 다른 센터 사업의 경우엔 광역 단위 이상의 규모를 갖춘 경우에 중앙관리조직을 두고, 시군구 규모를 가진 경우엔 광역관리조직을 두고 있다.

다양한 사업들을 평가 및 조정, 근로자건강센터 관련 데이터를 취합 및 생산, 기존 사업 개선 및 신규 사업 기획을 중앙부처 관료나 공단 직원 몇 명이 전적으로 부담하는 것은 근로자건강센터 운영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일이며, 그들에게도 과중한 업무를 부과하는 일이다. 만약 안전보건시스템 구축 차원에서 근로자건강센터의 역할을 제대로 정립하고 장기적인 로드맵을 갖추려 한다면 중앙관리조직을 두는 게 필수적이다.

"근로자건강센터 모델에 대해 많이 고민해요. 그때 제가 떠올리는 건 보건소예요. 노동자들의 보건소가 근로자건강센터어야 하지 않을까요? 공공보건 영역에서 시민들에게 직접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 그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창구죠. 정부의 손발 역할을 하는 곳이란 말이죠. 근로자건강센터도 노동안전보건 영역에서 손발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두뇌와 심장도 있어야 하겠죠. 그게 중앙관리조직일 테죠. 하지만 중앙관리조직을 갖추는 것만큼 중요한 게 손발이 제대로 역할을 할 만큼 충분한 인력과 예산이 확보되고 있는가를 돌아봐야 해요.

보건소와 근로자건강센터의 인력 및 예산을 비교해보면 명확히 드러나죠. 더구나 21개 센터와 21개 분소가 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 소규모 사업장 숫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에요. 센터의 양적 확대뿐만 아니라 지역 간 배치 또한 적절하게 조정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나아가 위치한 지역의 특성에 적합하게 특성화된 프로그램을 갖춰야겠죠. 장기적으론 보건소처럼 아니 모세혈관과 같이 노동안전보건 영역에서 건강관리 서비스를 촘촘하게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를 위해 센터 운영의 체계를 갖추는 것만큼이나 인력의 질적 역량도 높아져야 하지만, 민간위탁 방식의 센터 운영은 고용 안정성을 저해하여 인력 확보를 어렵게 한다. 우선 운영기관이 위탁사업을 지속하기 어려운 사유가 발생할 경우 재지정에서 탈락할 수 있어, 안정적 고용을 보장할 수 있는 위탁운영 기관이 적으며, 근로자건강센터를 제대로 운영할 만큼의 전문성을 갖춘 위탁운영 기관 또한 한정되어 있다. 더구나 수년째 예산 증액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 임금상승이 정체되고 있어서 인력 유출이 쉽고 유입은 어려운 실정이다. 장기적 고용의 필요성이 확인되는 지점이다. 민간위탁 방식의 시범사업형태에서 벗어나, 고용 책임성 및 사업 전문성을 확보하고 소규모 사업장 대상의 안전보건 사업을 양적으로 확장하고 질적으로 강화하기 위해서는 공공조직화, 즉 공단 직영 형태로 점차 전환하고 장기적으로는 독립법인을 설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근로자건강센터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날카로운 문제 제기가 많은 건, 우리 사회에서 근로자건강센터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 불평등 해소라는 지향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노동안전보건영역에서 제도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소규모 영세 사업장의 노동자들, 법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자신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받는 이들에게 직접 다가갈 수 있는 창구로서 더 잘해보고 싶은 마음인 거죠.

근로자건강센터가 설립되면서 내세웠던 목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어요. 그렇지만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만큼, 근로자건강센터가 우리 사회의 건강 불평등, 건강 격차 해소에 더 많이 기여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기획 / 평등해야 건강하다]
① "크게 본다면, 사회 부정의는 살인이다" http://omn.kr/1lmb1
​​​​​② 우리에겐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http://omn.kr/1lmwq

덧붙이는 글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11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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