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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았다. 원작 소설과 더불어 워낙 유명한 영화라서 줄거리나 내 감상평은 따로 적지 않아도 될 듯하다. 다만 영화를 보는 동안 내 마음속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는 그 대상을 꼭 안아주고 싶었다. 바로 지영의 엄마였다.

김지영과 언니 김은영은 내가 살았던 것처럼 '여자로서, 여자니까'라는 수식어가 주홍글씨처럼 따라다니는 삶을 살았다. 다행스러운 점은 그녀들이 또 나도 그것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고, 항상은 아니지만 때로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는 것. 이렇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도 계속 변화하고 있다.

모든 가정에 지영의 남편처럼 신식 남편(시어머니 표현)이 있지는 않지만 미세하게라도 남편들은 변하고 있다. 그렇게 되기까지 지영의 엄마와 같은 희생과 노력이 필수불가결한 점이 무척 아쉽다. 회사나 더 큰 사회 집단에서는 그 변화가 더디지만 나는 여자들을 믿는다.
 
 "지영아 엄마가 도와줄게. 너 하고픈 거 해" 영화 < 82년생 김지영 >의 한 장면.
 "지영아 엄마가 도와줄게. 너 하고픈 거 해" 영화 < 82년생 김지영 >의 한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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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영화를 두 번 보았다. 두 번째는 친정엄마와 보았다. 지영이 아프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지영의 엄마가 "엄마가 금방 정리하고 니 근처로 와서 아영이 봐 줄게. 일해. 엄마가 도와줄게. 너 하고픈 거 해"라고 말하자, 지영은 외할머니로 빙의되어 엄마에게 이런 대답을 해준다.

"미숙아, 그러지마. 니가 그 꽃다운 나이에 오빠들 뒷바라지 한다고 청계천에서 미싱 돌리고 얼굴 핼쑥해져서 월급 따박 따박 받아올 때마다 엄마 가슴이 찢어졌었어. 너 미싱에 손 그리되서 왔을 때 엄마 가슴이 얼마나 찢어졌는지 몰라. 그때 마음껏 안아주지도 못하고 고맙단 말도 못했다. 미숙아. 미안하다."

이 대사가 내 죄책감을 건드렸다. 나는 엄마도 지영이 외할머니의 대사에 감동을 받을 거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내가 일하는 동안 쌍둥이 아이들을 돌봐주는 엄마에게 지금까지의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할까 내심 고민하며 영화를 보았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엄마는 그 부분에서는 오히려 지영을 걱정했다. 지영이 엄마와 같은 심정으로.

친정엄마의 버킷리스트 만들기

"선생님, 저는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로 가끔은 행복하기도 해요. 그런데 또 어떤 때는 어딘가 갇혀 있는 기분이 들어요. 이 벽을 돌면 출구가 나올 것 같은데 다시 벽이고 다른 길로 가도 벽이고 그냥 처음부터 출구가 없었던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화가 나기도 하고요."

지영이 본인의 이상을 알고 난 후 신경정신과 의사에게 상담하면서 말하는 내용이다. 영화 보는 내내 훌쩍이던 엄마는 이 부분에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옆에서 휴지를 건네주는 것 말고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영화가 끝나고 엄마에게 물었다.

"내 얘기인 것 같아서. 아직도 그런 생각이 들어서."

엄마의 대답이다. 엄마는 예전에 했던 몸 고생은 다 잊었다고 생각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영화 속의 지영처럼 순간 아주 짧은 찰나에 그런 허무함이 느껴진다고 했다.

나는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엄마의 허무함을 사라지게 할 순 없겠지만 줄여줄 수 있지는 않을까. 영화 속의 지영처럼 글을 써 보라고하면 너무 직접적인 것 같다. 나는 '할머니의 꿈'이라고 검색을 해보았다. '꿈에 할머니가 나와서 좋은 일이 생겼다. 길몽이다'라는 대답이 전부였다. 혹시라도 참신한 생각이 나올까 싶어 강물이와 마이산에게 도움을 청했다.

나 : "할머니랑 영화를 봤는데."
강물 : "무슨 영화?"
나 : "82년생 김지영."
강물 : "엄마 책상에서 그 책 봤는데, 영화도 있어?"

영화 내용을 이야기 해주고, 할머니가 왜 울었는지도 설명을 해주었다. 강물이와 마이산은 완전히 공감하지는 못하지만 대충은 이해하는 듯 했다.

마이산 : "할머니도 소확행이 있어야겠는데."
강물 : "버킷리스트를 적어보면 어떨까? 유튜브에서 봤는데, 104세 할머니가 감옥에 가는 게 버킷리스트 목록에 있어서 경찰이 그 소원을 들어주고 할머니는 수갑 차고 웃고 있었어."

젊은 감각을 이어받고 나는 유튜브에서 할머니의 버킷리스트를 검색해 보았다.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어느 노인정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인터뷰가 나왔다. 굽은 허리가 펴지면 좋겠다, 도통 어디를 다녀보지 않아서 어디로든지 여행을 가고 싶다, 팔순 생일에 제주도에 가고 싶다, 마음 같아서는 해외에도 가고 싶다 등 주로 여행을 가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할머니의 버킷리스트가 가득차게 될 예쁜 수첩 할머니가 버킷리스트, 소확행들을 적을 수 있는 수첩입니다.
▲ 할머니의 버킷리스트가 가득차게 될 예쁜 수첩 할머니가 버킷리스트, 소확행들을 적을 수 있는 수첩입니다.
ⓒ 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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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의 건강에 대해서만 생각을 했지, 소확행, 버킷리스트는 떠올리지도 못했다. 청년과 노인을 가르는 내 고정관념을 먼저 깨야겠다. 나는 강물이와 마이산과 같이 주말에 예쁜 수첩을 하나 샀다. 표지만 봐도 소원이 이뤄진다는 생각이 드는 예쁜 수첩으로. 엄마의 수첩에 어떤 버킷리스트가 쓰여질지 기대가 된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 실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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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아들을 키우고 있는 평범한 아줌마입니다.아이부터 어른까지 온 가족이 다같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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