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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0페이지의 분량을 다 읽고 머리에 남는 것은 세 명의 주인공이었다. 영웅도 아니고 승자도 아니고, 입지전적인 인물도 아닌 인물들. 그들은 손을 대면 금방이라도 부슬거려 떨어져나갈 시멘트 파편처럼 위태롭고 힘겹게 삶을 이어갔던 사람들이었다.

이 소설은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전쟁 속에서 가족이 처참하게 죽는 비극을 겪어야했던 한국 소녀 '준'. 6.25 전쟁에 군인으로 참여했지만, 반복되는 살상과 전쟁의 광기 속에서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미국인 병사 '헥터'. 만주에서 일본인에 의해 부모님을 처참하게 잃고 살아남아 한국에서 목사 남편과 고아원을 운영했던 여인 '실비'.

그들은 전쟁의 야만과 광기 속에서 상처를 입고 비틀거리며 간신히 생명의 끈을 부여잡았던 사람들이었다.

광기의 시간을 거쳐 살아남은 세 사람
 
 이창래 소설 <생존자>
 이창래 소설 <생존자>
ⓒ R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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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은 1950년대 한국의 고아원에서 만나게 된다. 준을 제 딸처럼 보살피는 실비와 유부녀인 실비와 위험한 관계를 맺고 있는 헥터. 헥터는 전후 황폐해진 한국에 남아 고아원을 보수, 유지하는 일을 돕는다. 전쟁에서 많은 사람을 죽인 나름의 '죗값'을 치르는 의식이었다.

세 사람은 뭐라 규정할 수 없는 애매한 관계를 서로에게 그으며 살아간다. 세 사람에겐 공통점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눈 앞에서, 그것도 너무나 잔혹하고 잔인하게 죽는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가슴에 폭탄 하나와 푹 꺼져버린 웅덩이를 가지고 있었다.

세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증오하고 욕망하고 할퀴면서 간신히 삶을 지탱해간다. 마치 세 꼭짓점을 의지해야 간신히 설 수 있는 약하디 약한 볏단처럼.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전쟁을 온 몸으로 겪고, 살아남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만으로 숭고하고 귀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애석하게도 살아남은 3명의 주인공의 삶은 아름답지 않다. 강하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다. 가족을 잃어버리고 자신도 잃어버린 삶은 남은 시간들을 저주하고, 고통의 늪속으로 끌고갈 뿐이다.

이 소설의 시작은 헥터를 찾아나서는 '현재의 준'으로 다시 시작한다. 준은 20년 전에 헤어졌던 헥터를 찾아나선다. 준은 이미 말기 암환자.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가 헥터를 찾는 이유는 따로 있다. 자신의 아들을 찾기 위해서다. 그 아들은 헥터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다. 준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 헥터와 함께 마지막 숙제를 하기위해 떠난다.

전쟁은 사람을 이렇게 부순다

650페이지에 이르는 장대한 분량이지만, 줄거리라는 것이 딱히 없다. 드라마틱한 전개나 반전도 없다. 오로지 세 인물을 둘러싼 사건들과 심리로 소설을 끌고갈 뿐이다. 그럼에도 그 장대한 분량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었던 것은 작가의 치밀한 묘사와 섬세한 표현 등 필력 덕분이다.

작가의 필력 덕분에 책을 잃다보면 작가를 잠시나마 증오(?)하게 된다. 사람을 학살하는 장면 묘사가 너무 집요하고 공포스러워서 이렇게까지 해야할까 싶다. 괴로워서 숨이 가쁠 지경이다.

전쟁의 공포가 사람의 삶을 얼마나 만신창이로 만들 수 있는지 이 소설은 잔인하리만큼 잘 보여준다. 사실,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세대에겐 그 '지옥'이 그저 하나의 개념이고 추상일 뿐이다.

그러나 전쟁을 겪고 살아남은 사람에게 삶은 지옥이다. '하나의 개념'이 아닌 실존이다. 그럼에도 삶은 아름답다고 해야 맞는 걸까. 생존을 미화할 생각은 없다. 지옥같은 삶이다. 지옥같은 삶도 하루하루가 지나다보면 그저 그렇게 지나갈 것이다. 지옥같은 기억을 남긴 채.

위안부할머니, 징용자들, 서산개척단, 삼청교육대... 그들의 전쟁같은 시간들

이 소설은 픽션이지만, 픽션이 아니다. 그 야만의 시대에 어디에선가 '준'과 '헥터' '실비'가 정말로 살아있었을 것 같다. 어쩌면 그보다 더하게 모진 삶을 살아온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 강제징용에 끌려가야 했던 푸른 청년들의 삶. 서산개척단이나 삼청교육대에 끌려가서 지옥의 한 철을 보내야했던 필부들의 삶. 그들에게도 삶은 전쟁이었다. 전쟁은 이렇게 사람에게 남는다.

재외교포인 이창래 작가가 쓴 소설이다. 이창래 작가는 3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교육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가 쓴 이 소설은 한국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있지만 한국에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의 전쟁에 보내는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소설의 원제는 'The Surrenderd'. 'Surrender'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굴복하다' '항복하다'라는 뜻인데, 그렇다면 'Surrendered'는 굴복당한, 항복당한이라는 뜻이 된다. 그런데 한국어 번역서는 '생존자'다. 다시 한번 한국어 사전에서 '생존'을 찾아보면 '죽지 않고 살아있음'이다. 하지만 여기서의 생존은 '죽지 않고 살아 남은' 또는 '죽지 못하고 살아 있음'이 될 것이다.

'생존'과 '굴복'사이의 함수관계를 생각하다보면 서글퍼진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모두 굴복당했거나 항복당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승자는 누굴까.

덧붙이는 글 | 개인 sns에도 올립니다


생존자

이창래 (지은이), 나중길 (옮긴이), 알에이치코리아(RHK)(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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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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