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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사천=고해린 기자] 추억의 비디오테이프를 꺼내어 가족사랑 얘길 들려줄 스물네 번째 주인공은 박영옥(55)·강기갑(69)씨 부부다. 부부는 장전2리에서 '흙사랑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 서랍 속 인터뷰 스물네 번째 주인공 박영옥 씨.
 ▲ 서랍 속 인터뷰 스물네 번째 주인공 박영옥 씨.
ⓒ 뉴스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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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갑씨하고는 광화문에 있는 농촌총각결혼대책위원회 사무실에서 처음 만났어요. 그때 저는 컴퓨터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수리하러 그 사무실에 몇 번 들락거리다가 후원회원이 되고, 농촌총각결혼대책위원회 간사까지 하게 됐죠."

이미 눈치챈 이들이 있겠지만, 박영옥씨의 남편 강기갑씨는 17대·18대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몸담았던 사람이다.

1989년 당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농촌총각결혼대책위원회 간사 일을 하게 된 계기를 묻자, 박씨는 그 당시 수염을 길게 기른 강씨가 마치 예수님 같았단다. 인연은 인연일까. 위원장과 간사 사이였던 그들은 일을 하며 가랑비에 옷이 젖듯 가까워졌다. 

"평소에 강기갑 씨를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죠. 대화도 너무 잘 통했어요. 그래도 좋아하고 이런 사이는 전혀 아니었어요. 같이 일한 지 일 년쯤 됐나? 당시에 만나던 사람과 헤어지고 남편한테 울면서 전화를 했는데, 강기갑씨가 달려왔어요. 서울대 입구였는데, '박 간사, 내가 니를 사랑하는지 몰랐드나!'하고 남편이 고백을 하더라고요.(하하)"

우여곡절 끝 연애를 시작한 서울 여자와 경상도 남자. 둘은 위원회 활동을 하며 31쌍을 결혼시키고 32번째로 결혼했다. 1991년 5월 12일 사천성당에서 식을 올렸는데, 당시 친구, 가족 모두 결혼을 반대했단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혼을 반대하던 어머니와 가족들이 결혼식 날 찾아와 식장이 '울음바다'가 됐다. 그때 박씨는 '이 사람과 함께라면 가시밭길도 같이 걸을 수 있겠다'는 마음이었단다. 당시 위원회 회칙에 따라 부부는 경남 사천으로 와 농사를 짓게 됐다.

"애나콩콩. 제가 언제 농사를 지어봤겠어요? 근데 눈앞에 닥치니까 하고 있더라고요. 손으로 논에 풀을 다 매고. 젖소 송아지 6마리로 농장을 시작했어요. 새벽같이 신문 보급 일도 하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어떻게 했나 싶어요.(하하)"

결혼 생활 얘기를 하는 김에 위기의 순간을 물었더니 '셀 수 없었다'는 박씨. 그중에서도 가장 큰 위기는 남편이 정치를 한다고 했을 때였다. 

"남편이 정치한다고 했을 때, 저녁마다 두 달을 울었어요. '여보, 우리 좀 평범하게 살자'하고 뜯어말렸죠. 남편도 정치를 하면서 쉽지 않았겠지만, '사모님 역할'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심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많이 지쳤었죠. 2009년쯤 한계가 왔어요."

2009년 여러 파도가 박씨를 덮쳐왔다. 운영하고 있던 매실 공장 기계가 고장나 터져버리고, 설상가상 잠시 뱃속에 찾아왔던 다섯째도 잃게 됐다. 

"스트레스가 굉장히 심했어요. 그때는 내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는 책도 보고, 머리도 빡빡 밀었어요. 그러면서 '누구 엄마, 누구 아내, 누구의 무엇'이라는 역할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죠. 애들도 그때 힘들었을 거예요."

박씨는 그 일 이후, '내 마음이 편해야, 가정도 평안하다'는 마음을 갖게 됐단다. 범상치 않은 부모님 밑에서 자란 네 아이들도 지금은 제법 컸다. 첫째는 IT 개발자가 되고, 둘째는 농장 일을 돕고 있단다. 셋째는 임동창 선생이 운영하는 풍류 학교를 다니고, 넷째는 이제 중학교 3학년이다.

"욕심을 부리려면 끝이 없는 게 부모 같아요. 부모가 애들에게 남겨줄 게 결국 내면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남들처럼 교육시키지 않아서 부러워하거나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애들이 자유롭고 구속되지 않는 삶을 살았으면 하죠. 삶이 긴 것 같지만 그렇게 길지 않아요. 나래를 펴라. 얘들아(하하하)."

박씨는 함께 한 지, 30년 가까이 되어가는 남편에게도 당부를 잊지 않았다. 박씨 말로는 '사람은 죽음도 준비해야 한다'는 것.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고, 마음속의 욕심을 버려야 해요. 물론 이건 저 자신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죠."

박씨는 현재 장전2리 이장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시골 마을에 영화관도 짓고, 문화센터도 만들었다. 올해는 해외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무인방송 시스템도 설치했단다. 앞으로도 주민들이 더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드는 게 목표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어떤 책 제목처럼, 그녀도 시간과 함께 누구보다 단단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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