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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이 있는 집으로 이사한 후 우리 가족은 옥상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계속 벌였다. 아내는 목공소에서 나무를 재단해 와서는 야외 테이블과 의자를 만들었다. 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인가 생각했지만 아내는 야생화 화분들을 올려놓았다. 아내는 하고 싶었던 것을 그렇게 하나씩 펼쳐갔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침마다 난 새를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굳이 찾아보려 하지 않아도 집주변 나무와 지붕 위에서 새들이 울어댔다. 깊은 산속에서나 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딱따구리나 물까치 그리고 어치와 같은 새들도 볼 수 있었다. 나는 틈날 때마다 쌍안경과 카메라를 들고 옥상으로 나갔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해가 지기 전 이야기다. 밤이 되면 새들은 어딘가로 숨어들어서 조용했다. 나는 혹시나 잠자리를 찾지 못한 새들을 볼 수 있을까 하늘을 쳐다보곤 했다. 새가 없는 밤하늘도 아름다웠다. 해가 져도 하늘은 푸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었다. 낮보다는 어둡지만 분명 빛이 있었다.

별이었다. 드문드문 떠 있었지만 밝거나 덜 밝거나 한 별들이 반짝이는 걸 내 눈으로 볼 수 있었다. 하늘에 별이 떠 있다는 건 당연한 거였지만 신기했다. 분당에 살면서 별을 본 적이 있었나 생각해 보았다. 없었다. 아파트 불빛으로 환해서 보이지도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별 볼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가끔 보름달이 뜨면 몰라도.

이사한 다음 주가 추석이었다. 태풍이 지나간 뒤라 하늘이 무척 맑았다. 밤에도 맑다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덕분에 한가위 보름달을 마음껏 바라볼 수 있었다. 보름달을 본 기억을 떠올려보니 이번 추석처럼 한참을 구경한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쌍안경으로 달을 보았다. 눈으로 볼 때와는 사뭇 달랐다. 크레이터, 달 표면의 구덩이들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음영은 더 확실하게 보였다. 달을 보다가 별을 보았다.

별들은 빛깔이 조금씩 달랐다. 푸르스름하게 빛나거나 노르스름하게 빛났다. 나는 또 혹시나 하고 쌍안경을 들고 별을 바라보았다. 눈으로 볼 때보다 별이 더 크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옆으로 다른 게 보였다. 눈에는 보이지 않던 작은 별들이 쌍안경으로 보니 나도 여기 있다는 듯 반짝이고 있었다.
 
산등성이에 뜬 달  날씨가 흐려도 구름 사이로 뜨는 달을 기다렸다.
▲ 산등성이에 뜬 달  날씨가 흐려도 구름 사이로 뜨는 달을 기다렸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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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밤하늘에 빠져갔다. 밤마다 옥상에 나가서 하늘을 보았고 하루하루 달라지는 달 모습을 촬영했다. 달은 처음에는 그냥 빛 덩어리로만 찍혔다. 달 표면의 아름다운 음영을 잡아내기 힘들었다. 그래서 달 사진 잘 찍는 법을 이리저리 찾아보았다.

인터넷과 유튜브에 밤하늘 관찰하는 법과 촬영하는 방법이 많이 소개되어 있었다. 큰 소득이 있었다면 별자리를 알려주는 앱을 알게 된 거다. 그 앱을 열고 핸드폰을 밤하늘로 향하면 그쪽에 어떤 별이 있는지 그 별은 어떤 별자리인지 알려주었다.

나는 거의 매일 밤하늘을 보았고, 달 모습을 찍었고, 별자리를 확인했다. 달이 하루하루 변해간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눈에 띄게 달라지는 건 이번 가을에 처음 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달과 일직선으로 놓인 별 두 개를 볼 수 있었다. 별자리 앱으로 확인해 보니 목성과 토성이 분명했다. 태양계 안에 있는 행성들이지만 쌍안경으로 봐도 그냥 밝게 빛나는 작은 점일 뿐이었다.

그래서 천체망원경을 갖고 싶었다. 토성의 고리를 보고 싶었고 목성의 줄무늬와 위성들도 보고 싶었다. 망원경 자료를 찾아보는 한편 아내의 눈치도 살폈다. 한국의 기혼 남자들이 새로운 취미를 가지려면 가족의 암묵적 동의를 얻어야 하는 법이다.

시중에는 다양한 성능과 가격의 망원경이 있었다. 난 인터넷과 유튜브에 올라온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종합해서 기종을 선택했다. 그리고 나는 밤마다 쌍안경을 가지고 옥상에 나갔다. 9월에서 10월에 걸쳐서 거의 매일 달과 별을 보았다. 나는 아내에게 꾸준히 밤하늘을 볼 거라고 시위를 한 것이다.

그런 절차를 거친 다음에 난 당당히 천체망원경을 주문했다. 물론 내 용돈을 아껴서 지출한 것이다. 다음날 천체망원경이 배달됐다는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집으로 달려왔다. 망원경을 옥상으로 들고 나가는데 가슴이 떨렸다. 난 렌즈 영점을 달에다 맞추었다.
   
달이 변하는 모습  천체망원경에 연결한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이다. 크레이터가 확실하게 보인다.
▲ 달이 변하는 모습  천체망원경에 연결한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이다. 크레이터가 확실하게 보인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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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렌즈에 꽉 찬 빛에 눈이 부셨다. 나는 빛에 눈이 적응한 다음에야 달을 볼 수 있었다. 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달은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고 달 표면에는 크레이터, 움푹 파인 구덩이들이 보였다.

지구 그림자에 가린 달의 가장자리도 신비스러웠다. 달을 눈으로 그냥 보면 때론 반달이거나 초승달이지만 천체망원경으로 보니 그 경계 너머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달 관찰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다음에 목성과 토성을 찾아보았다. 달은 커다래서 조준하기 어렵지 않았지만 토성과 목성은 까다로웠다. 천체망원경이 조금만 흔들려도 조준은 빗나가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초점을 맞추다가 처음 발견한 것은 토성이었다.

처음에는 초점이 안 맞거나 흔들려서 겹쳐 보이는 줄 알았다. 그런데 토성의 고리였다. 그만큼 작게 보였지만 둥그런 공 주위를 감싼 고리는 확실하게 보였다. 신기하다는 단어로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감동이 왔다. 토성은 검은 하늘에 (효과음이 들리는 듯) 윙 떠 있었다.

목성도 확인했다. 목성은 태양계에서 가장 큰 행성이라지만 천체망원경으로 봐도 작게 보였다. 하지만 자료에서 본 사진처럼 줄무늬는 선명했다. 목성 바로 옆에서 빛나는 작은 점들도 몇 개 보였다. 혹시 갈릴레오가 발견했다는 목성의 위성들일까.

나는 다음날도 그다음 날에도 목성과 그 주변을 관찰했다. 목성은 매일 다른 위치에서 보였는데 그 작은 점들이 항상 따라 다녔다. 점들은 관찰 시간대에 따라 목성을 중심으로 위치가 조금씩 바뀌었다. 위성들이 분명했다. 그렇게 목성도 검은 하늘에 윙 떠 있었다.
   
천체망원경이 향한 하얀 점  눈으로 보면 저 작은 점만 보이지만 망원경으로 들여다 보면 저 별 옆으로 다른 작은 별들도 볼 수 있다.
▲ 천체망원경이 향한 하얀 점  눈으로 보면 저 작은 점만 보이지만 망원경으로 들여다 보면 저 별 옆으로 다른 작은 별들도 볼 수 있다.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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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계 바깥의 별들은 천체망원경으로 봐도 작았다. 다만 눈으로 볼 때보다 더 많은 별을 볼 수 있었다. 까만 하늘만 보이더라도 거기엔 별이 있었다. 이름 모를 많은 별이 검은 하늘에 하얗거나 노랗거나 파랗게 빛나는 점처럼 펼쳐져 있었다.

별이 작은 점처럼 보이듯이 우주에서 지구를 보더라도 작은 점처럼 보일 것이다. 어쩌면 티끌보다 작아서 보이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안에 우리가 살고 있다. 그 수십억 사람들 사이에 내가 살고 있었다. 내가 나의 모습을 겸허하게 바라본 순간이다.

유명한 사람을 별에다 비유하지만 내가 본 밤하늘의 별은 좀 다른 느낌이었다. 천체망원경으로 본 목성과 토성이 검은 하늘에 윙 떠 있듯이 태양계 바깥 별들도 검은 하늘에 윙 떠 있었다. 분명 빛나고 있었지만 망원경 렌즈 앵글 안으로 들어온 별들은 외로워 보였다.

그래도 마치 효과음이 윙 들리는 듯 존재감은 대단했다. "나는 항상 여기 있었어. 앞으로도 항상 여기 있을 거야." 별들은 그렇게 외치는 듯했다.

내가 지구의 수십억 사람들 사이에서, 작게는 한국의 수천만 사람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름 모를 밤하늘의 별들이 모여 우주를 이루듯,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제 할 일 해 나가는 이름 없는 사람들이 세상을 이루고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런 한 사람이었고 앞으로도 그런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옥상집으로 이사해서 내가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라는 마음가짐이다.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으며 산 세월이 길지만 지금이라도 하늘과 별을 보면서 깨닫는 게 있다는 데에 감사한 마음이다.

덧붙이는 글 | 강대호 시민기자의 글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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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후반전을 위해 하프타임을 보내는 50대 남자. 월간문학 등단 수필가이자 동화 공부 중인 작가. 그리고 여러 매체에 글을 연재 중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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