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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다. 중요한 것은 시련 자체의 냉혹함이 아니다. 그 시련을 대하는 나의 자세다. 그 시련이 가혹한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것은 결국 오롯이 나다. 내가 힘들게 받아들이면 힘든 것이고, 내가 의연하게 받아들이면 별것 아닌 것이다. 깊이를 모르겠는 그 시련이 바로 그대의 힘이다. 김난도 <아프니까 청춘이다> 中

어머니가 선물한 것은 양복 한 벌이 아니라 '꿈'이었다. 맞춤 옷처럼 딱 맞는 양복을 입고 거울에 비춰보니, 무슨 일이든지 잘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결심이 섰고 용기가 생겼다.     

"성인이 되자 어머니께서 양복 한 벌을 사주셨어요. 그때 꿈이 생겼죠. 직업을 갖게 되면, 생이 끝날 때까지 그 분야를 끝까지 파헤쳐 성공하는 꿈이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 꿈을 이루고 싶습니다."

1004컴퍼니를 운영하고 있는 장석규씨(38세·읍내동)는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영월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어린 시절 방황했던 날도 있었지만 수십 년이 지난, 현재의 그는 한 사람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빠, 사업체를 이끄는 대표가 됐다.

그는 지난 2003년 보안회사인 시큐어넷에 입사해 롯데마트 당진점 개소를 앞두고 당진을 찾았다. 그는 26살의 나이에 회사 내 최연소 보안팀장으로 승진해 5년 동안 이곳에서 근무했다. 이후 퇴직을 결심한 그는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1년 동안 창업을 준비했고, 지난 2012년 1004컴퍼니를 문 열었다. 1004컴퍼니는 축제, 행사, 방송, 공연 등을 기획하고 무대, 음향, 조명 등을 대여해주는 공연기획사다.

- 최연소 보안팀장이라는 타이틀을 얻고서도 일을 그만둔 이유는?
"몇 개월만 일을 도와주기로 하고 당진을 찾았는데, 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있더라고요. 당시에는 이미 결혼도 했고 큰아이도 있었을 때라 휴일, 급여 등 근무 조건이 맞지 않았어요. 그래서 내 이름 걸고 사업을 해야 겠다고 생각했죠."

- 창업을 통해 월급쟁이에서 대표가 됐어요. 30대 초반에 기반도 없는 타지에서 힘들었을텐데, 어땠나요?
"처음엔 행사물품 렌탈업체를 운영했어요. 빚을 많이 냈고 경제적으로도 힘들었어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제 영역을 넓혔더니 이 분야에 눈이 떠지더라고요. 그래서 축제나 행사, 방송, 공연 등을 기획하는 일까지 확대했어요.

다행히 이 일이 제 성향과 잘 맞았어요. 새로운 걸 추구하고, 잘하고 싶은 욕심이 많아서, 제가 맡은 행사는 가장 먼저 제 마음에 들어야 하거든요. 행사의 연출, 기획을 맡아 준비하려면 해야 할 것도 많고 머리도 아프지만 성취감이 커요. 경험을 더 쌓아서 평창올림픽처럼 우리나라에서 하는 대형행사 기획과 연출을 맡아 진행해보고 싶어요."


자신의 목표를 막힘없이 이야기하는 그에게서 자신감이 보였다. 하지만 그 뒤에는 애환도 숨겨져 있을 터. 그는 자신과 같은 일을 하는 업계의 삶을 '개미인생'과 같다고 말했다. 행사가 많은 봄, 여름, 가을에는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가며 일하고, 행사가 적은 겨울에는 일이 없어 쉬어야만 하는 모습이 마치 개미 같단다.

한때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는 그는 지난 2017년 메르스 발생 당시 모든 행사가 취소되면서 일이 없어 힘들었던 날들을 회상했다. 석규씨는 "일이 없던 어느 날 등산하다 문득 '여기서 뛰어내리면 죽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며 "어떠한 일도 발생하진 않았지만, 하산하면서 이런저런 상념에 빠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의 경험이 약이 됐다"며 "당시의 시련이 나를 버티게 했다"고 전했다. 

"나는 빵점 아빠"

한편 그는 서른을 앞두고 1년 연애한 당진 출신 아내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이후 두 딸을 낳아 기르며, 단란한 가정을 이뤘다. 

- 29살에 결혼했다고요? 원래 결혼 생각이 있었어요?

"롯데마트 당진점 보안팀장으로 일했을 때 당진에서 나고 자란 아내를 만나 연애했고, 1년 뒤 결혼했어요. 원래 결혼은 30대 초반에 해야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어요. 꿈을 이룬 후 결혼하려 했는데, 식전에 큰아이가 생겼어요. 저는 결혼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아내가 없었더라면 이 일을 할 수 없었을 거예요. 전국적으로 일을 다녀서 아이들도 잘 못 챙겨주는데, 아내가 아빠 역할까지 해주고 있어 고마울 뿐이죠."

- 두 딸에게 석규씨는 어떤 아빠에요?

"저는 '빵점' 아빠예요. 일 때문에 집에 못 들어가는 날이 많죠. 타지에서 축제를 맡으면 사흘은 기본으로 집에 못 들어가요. 쉬는 날에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저도 힘들어 쉬다 보니 시간이 또 가버리더라고요. 아이들은 아빠 직업도 잘 몰라요. 아빠가 무슨 일 하냐고 물어보면 '축구선수', '술 마시는 사람'이라고 답하는 걸 듣고 아차 싶었어요."

"새로운 콘텐츠 필요"

학창시절 내내 육상과 축구 등 운동을 해왔던 그는 부상과 집안 사정으로 인해 운동을 포기해야만 했다. 운동선수라는 꿈은 접었지만, 여전히 취미생활로 축구를 하고 있다. 그에게 축구는 '힐링' 그 자체다. 

- 당진에 축구동호인이 많던데, 축구경기는 어디서 해요? 
"세종에서 진행되는 축구경기에 참여하고 있어요. 세종에 친하게 지내는 선·후배가 많아 이곳에서 취미생활을 즐기게 됐어요. 당진에도 축구를 좋아하고, 경기에 참여하는 동호인들이 많다고 들었지만, 함께 운동할 기회가 없었어요."

- 그럼 쉬는 날에도 축구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건가요?
"쉬는 날에는 주로 아내와 시간을 보내요. 그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바람 쐬러 가기도 하고요. 당진에는 아쉽게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곳들이 적어요. 한 두번만 가도 아이들이 지겨워하더라고요. 그래서 근교로 자주 가는 편이에요.

특히 세종에는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많고, 대전은 차 없는 거리가 조성돼 있어 아이들과 이것저것 볼 수 있는 것들이 많아 자주 찾아요. 사람들은 색다른 걸 원하는데, 당진지역의 행사나 축제는 매년 프로그램이 비슷해 아쉬워요.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당진시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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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당진시대 기자 김예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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