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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로 본 여수 돌벅수 펴낸 엄길수 저자의 모습
 미술로 본 여수 돌벅수 펴낸 엄길수 저자의 모습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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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수가 뭔지 아니?"
"글쎄요." (큰딸)
"벅수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막내아들)


예상대로였다. 대학을 졸업한 큰딸과 고등학생인 막내아들의 답변은 벅수에 대한 어릴 적 내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에라이 벅수야"라고 놀려대던 '멍청이' 이미지 말이다. 반면 더 젊은 세대들은 고장의 벅수는 관심조차 없다. 교육의 부재 탓이다.

'여수지킴이'를 '바보 멍청이'로 부르는 웃픈 현실

문득 지난 9월에 방영된 광주KBS 2TV <전매청> 연등동 벅수편이 떠올랐다. 여수엑스포역에 온 리포터는 여러 명의 택시기사에게 '여수에서 벅수가 뭐냐'고 물었다. 이 질문에 하나같이 "멍청이"로 말해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웃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리포터는 벅수전문가를 찾아간다. 그 주인공은 25년 전 돌벅수를 연구해 석사학위를 취득한 조각가 엄길수씨였다. 벅수에 대해 그는 이렇게 명쾌한 답을 내렸다.

"벅수는 우리 민족의 지킴이입니다. 나무나 돌에 사람의 얼굴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몸통에 이름을 새겨놓은 조형물입니다."

그의 말에 진행자와 시청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2개월이 흘렀다. 약 30여 년간 벅수를 연구해온 그가 얼마 전 돌벅수 책을 출간해 화제다. 미디어넷통이 펴낸 세 번째 책 <미술로 본 여수 돌벅수>가 바로 그것.

이 책은 엄길수 저자가 25년 전 자신이 쓴 논문을 바탕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돌벅수 분포지인 여수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펴낸 책이다.

이 책에 대해 저자의 스승인 이태호 명지대학교 초빙교수는 "여수사람 엄길수의 손길로 다시 태어난 여수 돌벅수는 마을 수호신이자 민중의 자화상 형상"이라며 "여수 사람의 미의식이 반영된 '해학미'와 '자연미'로 보는 엄길수의 시각이 자랑스럽다"라고 호평했다.

또, 원로 조각가 강관욱 교수는 "엄길수는 격동의 시기에 전남대학교에서 만난 나의 제자"라면서 "벅수에 대한 집념과 끈기로 책을 펴고, 아름다운 고향 사랑에 푹 빠져 사는 엄길수가 부럽다. 여수가 그를 사랑하고 자랑하게 되리라 믿는다"라며 제자의 돌벅수 사랑을 추켜세웠다.

여수 돌벅수 만의 독특한 명문 '남정중', '화정려'
 
 전국에 세워진 장승의 명문과 확연히 구별되는 여수 돌벅수 '남정중(南正重) 화정려(火正黎)의 모습
 전국에 세워진 장승의 명문과 확연히 구별되는 여수 돌벅수 "남정중(南正重) 화정려(火正黎)의 모습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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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돌벅수가 남아있는 지역이다. 연등동에 세워진 한 쌍의 돌벅수는 국가 중요민속문화재 224호로 지정된 지 오래다. 조선후기 정조 12년(1788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여수 돌벅수는 전국에 세워진 장승의 명문과 확연히 구별된다.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과는 달리 '남정중(南正重) 화정려(火正黎)라는 여수만의 특색있는 돌벅수가 세워졌다. 

엄길수 저자는 "주먹도끼 시대에서 스마트폰 시대까지, 생활과 예술은 같이 간다. 삶 자체가 미술(美術)이다"면서 "돌벅수는 여수지킴이며 살아있는 미술이다"라며 여수 돌벅수의 의미를 부여했다.

새롭게 제작된 돌벅수에 대한 저자의 지적은 뼈아프다.

"여수사람들은 해학미와 자연미가 넘치는 돌벅수에게 저마다 소원을 빌었죠. 전통 돌벅수는 정 터치 마감으로 다듬었으나 부드럽고 따뜻해요. 반면 요즘 제작된 돌벅수는 전동공구로 표면을 매끄럽게 연마했지만 차가운 느낌입니다. 소원을 빌고 싶은 마음이 안 생겨요.

봉산동 벅수를 비롯해 마을입구에 복원한 돌벅수들은 맛을 전혀 느낄 수 없어요. 벅수가 간직한 인문학적 배경이 없기 때문이죠. 여수만의 특색 있는 돌벅수를 이어가려면 반드시 전문가와 상의해야 합니다."


아래는  <여수넷통뉴스> 창간 8주년 기념식 및 북콘서트를 앞두고 지난 6일 엄길수 저자와 나눈 인터뷰다.

- <미술로 본 여수 돌벅수>를 쓰게 된 계기는.
"여수돌벅수는 풍어와 풍년, 질병,  왜구침략을 막는 수호와 지킴이의 역할을 해왔지만 세월에 마모되고 훼손되고 잊혀가는 것이 아쉬웠다. 조선 실학자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썼던 심정으로 여수 돌벅수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 책을 언제부터 구상했나.
"3년 전 여수넷통뉴스의 대표를 맡게 되어 <미디어넷통> 출판사를 만들었다. 여수를 주제로한 기록물을 만들고 싶었다. 신문사 대표로 발행인 칼럼을 쓰며 독자와 소통하게 되었고, 전공분야인 우리 지역의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시작했다."

- 책 제목이 왜 미술로 본 여수 돌벅수인가.
"미술의 미(美)자는 양(羊)의 큰 대(大)자가 합한 '아름답다'는 뜻글자다. 즉 삶이 반영되지 않는 예술은 없다. 주먹도끼가 삶을 변화시켰듯이 여수 돌벅수는 절박함이 있다. 지역민의 심성이 반영됐다. 여수의 캐릭터로서도 연구해 볼 가치가 크다."

연구논문에서 돌벅수 저서까지 25년 "돌벅수는 민중의 자화상"
 
 자신이 조각한 벅수를 들어보이며 여수 돌벅수를 설명하는 엄길수 저자
 자신이 조각한 벅수를 들어보이며 여수 돌벅수를 설명하는 엄길수 저자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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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벅수에 대한 연구는 언제부터 했나.
"80년 광주민주항쟁으로 좌절이 심했던 시절 역사에 관심이 많아 박물관에 자주 갔다. 구석기 유물관에서 유리 전시장에 진열된 돌도끼를 보던 중 학예사에게 돌도끼도 미술이냐? 물으니 명쾌한 답을 하더라.

돌도끼는 인간 최초의 도구인데 이런 것이야말로 '최초의 미술이다'고 얘기했다. 구석기인들의 돌도끼야말로 사냥이나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는 절박함에서 만들어진 도구로 "삶 자체가 예술이다"라는 깨달음이 전환점이 되었다. 조선후기 호남지방 돌벅수와 여수 돌벅수들을 체계적으로 연구했다. 14곳에 25기의 돌벅수가 있다는 것을 25년 전 논문을 써서 학문적 검증을 마쳤다."

- '南正重(남정중)'과 '火正黎(화정려)'라는 여수 돌벅수만의 독특한 명문의 의미는 무엇인가.
"명문에 나타난 '南正(남정)'과 '火正(화정)'은 중국 上古(상고)의 관직 이름이다. 남정이란 관직은 중이, 화정이란 관직은 려가 맡았다는 뜻이다. '중'은 하늘을 다스렸고 '려'는 땅을 관장했다. 또한 려는 남쪽 바다를 맡은 신으로 알려졌다. 여수사람들은 바다의 수호신에게 지켜달라는 의미의 명문을 사용했다."

- 올해가 '역사의 해'로 의미가 크다.
"역사는 기록이다. 중요민속문화재인 여수 돌벅수를 책으로 기록하고 싶었다.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의 심정으로 여수의 돌벅수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사진기를 둘러메고 다시 현장을 찾아 다녔다. 22년 전 사진과 비교해가며 현재의 벅수를 책으로 펴냈다."

- 벅수의 유래가 궁금하다.
"벅수의 명칭은 법수(法首)가 음운이 변천되어 굳어진 것으로도 볼 수 있고, 각 시대와 지방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달랐다. 지금도 남해안에 벅수골이란 마을 이름이 사용되고 있다. 여수에서도 연등동 벅수골, 봉산동 벅수골, 동산동 벅수골 등 지명이 그대로 남아있다."

미신숭배가 아닌 문화재적 접근 필요한 벅수공원 테러사건
 
 인문학의 부재로 현대화된 여수 돌벅수는 마을곳곳에 전통적인 돌벅수 모습인 해학미와 자연미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텔레토비 마냥 우스꽝스럽게 제작된 모습을 사진에 담고있는 엄길수 저자(우측)
 인문학의 부재로 현대화된 여수 돌벅수는 마을곳곳에 전통적인 돌벅수 모습인 해학미와 자연미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텔레토비 마냥 우스꽝스럽게 제작된 모습을 사진에 담고있는 엄길수 저자(우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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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 재팬' 불매가 활발하다. 일제가 여수돌벅수 말살정책에도 관여했나. 
"여수는 일제 강점기에 역사를 왜곡하는 사례가 많았다. <통제이공수군대첩비>, <타루비>등 핍박을 받았다. 3.1운동이후 문화 정책도 한 몫 했다. 흔히 바보 같은 사람을 두고 '벅수 같다'고 하는데 마을 지킴이를 바보로 만들려는 일제 강점기 문화정책인 식민사관의 숨은 의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수의 수호신이고, 지킴이인 돌벅수를 더 이상은 바보로 만들어서는 안된다."

- 여문 벅수공원 테러사건도 겪었다고 알고 있다.
"2000년 새천년을 맞이했다. 당시 시민사회단체가 여문공원에 허가를 맡아 5월 내가 나무벅수 20기를 세웠다. '남정중'과 '화정려'를 새겨 세우는 등 시민들의 기원를 담아 '여문벅수공원'이 조성되었다. 공원으로 면모를 갖추어 가던 어느날 새벽에 전화가 왔다. 가보니 모든 조각들을 전동톱으로 썰어 빗속에 넘어져 난장판이 되었다. 그 새는 아직도 내 작업실에 보관중이다. 미신숭배라며 특정 종교의 소행이었다. 이제는 여수 돌벅수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 가장 와닿은 여수 돌벅수를 꼽는다면.
"이 책을 쓰면서 올해 다시 여수 돌벅수들을 방문해 보니 어느 것을 꼬집어 말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느꼈다. 여수 역사와 세월을 함께해 오며 우리지역을 지켜왔던 돌벅수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새롭게 제작되고 있는 돌벅수는 전통 돌벅수에 대한 장점이 반영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 마지막 돌벅수 저자로서 여수에 대한 문화적인 조언이 있다면.
"새롭게 창출해 낸 여수 돌벅수가 전통적이지 못해 안타깝다. 조선 후기의 민중들의 자화상으로 이미지를 창출하였듯이 현대 미술인들은 이시대 돌벅수를 창출해내야 하는 중요한 임무를 잊지 않는다면 우리 시대 멋진 돌벅수를 만나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넷통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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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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