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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게나 펼친 페이지, 사막의 모래 한가운데 파스텔 빛의 아름다운 건물이 '폐허'라는 명명에 걸맞지 않게 서 있다. 분명 타버릴 듯 뜨거울 한낮의 태양빛 아래, 말이 없는 피사체가 너무나 아름다워 잠시 눈길을 빼앗긴다. 초현실주의 화가의 그림처럼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실내의 일부를 채운 모래는 상상이 아닌 사막의 실체였다. 얼마의 시간 후에 사구에 덮혀 버릴 이 건물에는 어떤 사연이 숨겨 있을까. 계속해서 호기심을 동하게 하는 묘한 책이다. '폐허'라는 곳이 그런 것이다. 무언가 사연이 숨겨진 곳, 그리하여 신비로움이 존재하는 곳.
 
리차드 하퍼 <세상이 버린 위대한 폐허 60> 표지
▲ 리차드 하퍼 <세상이 버린 위대한 폐허 60> 표지
ⓒ 예문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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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이자 여행 전문가인 리차드 하퍼는 그가 '폐허'라 소개하는 장소의 정보를 ①버려진 시기 ②종류 ③위치 ④버려진 원인 ⑤거주 인구 ⑥현재 상황을 장소 이름, 폐허를 정의하는 부제와 함께 서두에 제공한다. 60곳으로 제한해 소개하지만, 그 존재 형태들과 폐허가 된 시기나 이유들은 다양하다. 폐허가 된 사연들과 함께 제시되는 것은 방치된 현재의 모습들이다. 

보통 폐허란 말이 주는 느낌은 '버려졌으며', 그로인해 '황폐화' 되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특정한 사건으로 사람들이 떠난 장소를 떠올릴 것이다. <세상이 버린 위대한 폐허 60>에 등장하는 폐허의 원인은 무척 다양했다.

자연재해, 전쟁, 쓸모가 사라진 병원이나 요양소·탄광·영화 세트장·테마파크·올림픽 경기장·휴양지·공항· 교도소·기차역 등과 같은 경제적인 이유, 범죄화로 인해 폐허가 되는 등 한두 가지 이유가 아니었다.

60여 곳의 장소 중 인상적이지 않은 곳은 하나도 없었다.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으며 어떻게 버려지게 되었는지, 사진과 함께 소개되는 사연은 드라마틱하기 그지없었다. 페이지를 넘기지 못해 멈추기도 많이 멈추고, 넘기고 나서고 되돌아가기 일쑤였다.

과거의 장소가 폐허가 되는 이유는 대부분 자연재해였다. 그러나, 현대의 폐허는 대부분 전쟁이나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생겨났다. 산업화가 진행된 뒤 사람들은 필요에 따라 참 빨리도 짓고, 소용이 사라진 뒤 버리기도 잘 버렸다. 어찌 보면 현대인들은 살던 곳을 폐허로 만들고는 훌쩍 떠나는 개운치 않은 유목민이었다.

전쟁의 여파로 만들어진 폐허들은 그 자체로 가슴이 아팠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말미 독일군에 의해 마을 대부분의 주민들이 학살 당한 프랑스의 '오라두르 쉬르 글란'의 이야기는 처참했다. 작가는 현재(추도 지역으로 보전되어 있음)뿐 아니라 과거 사진을 나란히 보여준다. 평화롭게 일상을 영위 중이던 마을에 닥친 비극에 애도하는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일본의 '군함도' 역시 전쟁이 만든 비극적인 폐허였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지금의 군함도를 보여주는 사진보다도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이 섬에서 일했던 한국인 500명 중에서 120명이 사망했다"는 기술이 가슴 아프다.

방글라데시 '치타공'에 관한 서술과 사진은 마치 르포 기사를 읽는 듯 생생했다. 치타공은 전 세계의 쓸모를 다한 선박의 해체를 담당하는, 엄연히 기능을 하고 있는 도시였다. 그러나, 작업이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과정과 그 작업을 수행하는 이들의 삶에 대한 기술은 작가가 왜 치타공을 폐허로 인식하고 있는지를 충분히 드러낸다.
 
바다 오염은 까무라칠 정도다. 검은 기름이 파도를 기름찌꺼기로 바꿔놓았다. 진흙은 녹 때문에 붉은 오렌지색으로 변했다. 물이 빠지면 무시무시한 화학약품들로 채워진 웅덩이의 녹색 광택이 드러난다. 매주 한두 척 정도의 선박이 도착하기 때문에 이곳 환경은 회복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결국 지구상에서 가장 오염된 해안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더 믿을 수 없는 사실은 몇몇 어부들이 여전히 이 유독한 잔해들 사이에서 그물을 만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략)
이곳 노동자들의 40퍼센트는 무려 어린이들이다. 그리고 매년 평균 15명의 작업자들이 사망하고 50명 넘게 심각한 부상을 당하고 있다. 작업자 대부분의 팔과 다리에는 사고로 생긴 십자 모양의 보기 흉한 흉터가 있는데, 이를 구슬픈 유머로 '치타공 문신'이라고 한다. 손가락을 잃거나 한쪽 눈을 실명한 사람들도 상당수다. 이렇게 뼈가 갈릴 정도로 힘들고 위험한 작업을 하면서 그들의 받는 한 달 평균 임금은 고작 300달러이다. 이 중 절반 정도는 작업장의 소유주가 운영하는 판잣집 같은 오두막의 월세로 내야 한다. 높은 위험성과 낮은 보수에도 불구하고 25만 명의 사람들이 방글라데시 전역에서 몰려와 이곳에서의 생계를 찾고 있다. - 리차드 하퍼 <세상이 버린 폐허 60> 140쪽 발췌

누군가의 삶이 영위되는 터전을 일방적으로 폐허라 단정하는 것은 현재 진행 중인 그곳의 삶에 대한 모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저 처참한 삶을 달리 어떤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지 그 어떤 다른 말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저자는 치타공 외에도 현존하는 도시인 미국의 자동차 산업의 대명사 격인 '디트로이트'로 소개한다. 디트로이트 역시 쇠락의 길을 걷고 있지만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먼 과거의 폐허는 무너진 건물 잔해와 제멋대로 자란 식물들이 가득해도 아름다웠다. 사연을 감춘 장소는 그 자체로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폐허로 가는 과정 중의 도시의 모습은 섬뜩하고 두려웠다. 아직 신비로움이 덧붙여지지 않은 너무나 실제적인 현재의 몰락 과정은 마치 감춰둔 약점을 공개당한 듯 불편했다.

책에 실린 사진들은 대부분 인상적이다. 어떤 것은 아름다웠고, 어떤 것은 기괴했으며, 어떤 것은 슬펐다. 이전의 영광이 어떠했든 대부분의 장소들은 보살핌을 받지 못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글이 드러내는 드라마틱한 사연들은 생생했으나, 사진이 드러내는 순간의 포착은 애잔하고 안타까웠다. 거기엔 부질없는 허무가 가득했다.

화산재에 뒤덮혀 겨우 지붕만 드러낸 영국령 몬트세렛의 플리머스 법원의 모습은 자연의 무서움을 감각적으로 일깨운다. 잉크를 떨어트린 듯 새파란 빛깔의 바다와 대조를 이루는 낡고 퇴색한 건물이 가득한 군함도의 전경 역시 인상적이다. 모르는 척 눈 감고 있는 상처가 마음 한가운데 저런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을까.

지도에서도 사라져, 아무렇게나 해버린 덧칠로 삭제된 청석면의 마을 위트넘의 지명 표지판 사진은 폐허의 가장 극단적인 모습으로 여겨졌다. 갈 수도 없고, 가서는 안 되는 곳, 일체의 접근을 불허하며 지워버린 그 금기의 표식은 사람의 숨겨진 어두운 이면처럼 불길했다.

저자 리차드 하퍼의 문장은 마치 공포스러우나 아름답기도 한 폐허와 닮아 있다. 장소 자체에 대한 시선은 따뜻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를 바라보는 시선은 냉정하다. 담담하나 폭로적인 기술은 폐허를 바라보는 두 시선을 동시에 드러낸다.

다소 신랄한 문장은 아름다운 터전을 폐허로 만드는 인간의 이기에 고개를 젓는 저자의 모습을 상상케 한다. 그의 글에는 안타까움이 담기지만 폐허가 주는 애잔한 감상은 적당히 통제된다. 비판과 감상을 적당히 아우르며 폐허의 현장과 과거의 사건을 전달하는 기술은 저널리스트로서의 저자의 능력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세상이 버린 위대한 폐허 60>이 소개하는 대부분의 폐허는 생과 사의 순환과 노화에 따른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이 섭리가 아니다. 특히 근대 이후의 폐허에는 인간의 잔인한 폭력성과 끝을 모르는 탐욕이 꼬리처럼 따라 붙어 있다.

때문에 폐허의 이야기는 발전을 거듭한 인류의 감춰진 어두운 자화상에 다름 아니다. 저자가 60곳의 폐허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는 태국 방콕에 버려진 고층 빌딩 '샤톤 유니크'에 담겨진 것이 아닐까 싶다.
 
완성되지 않은 상층부는 습기 찬 기후, 폭풍우 몰아치는 날씨, 대기오염 등으로 매일같이 부서지고 있다. 하지만, 입구 로비를 보면 샤톤 유니크는 최소한 새로운 임대인 몇 명은 확보된 것 같다. 텐트로 보이는 천막, 판지로 된 벽면, 흩어진 몇 개의 방석은 분명 사람이 살고 있다는 증거다. 이 도시에서 가장 비참한 수준의 은신처가 실패한 영광의 상징물 안에 있는 것이다. 이곳의 아이러니는 모든 폐허가 된 방과 무시무시한 발코니가 다시 한 번 번영을 누리고 있는 방콕을 내려다보는 백만 달러짜리 경관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 리차드 하퍼 <세상이 버린 위대한 폐허 60> 265쪽 발췌

화려한 도시의 한복판에 버려진 샤톤 유니크처럼 우리의 삶 속에는 폐허가 포함되어 있다. 인간들은 쓸모가 사라진 것을 버리지만 그것은 여전히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 곁에 남아 있다. 마치 과거처럼 외면한다고 하여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이 폐허들은 생과 사의 어찌할 수 없는 순환을 드러내는 한편, 인류의 과오에 대한 증거물이자 경고문이 되기도 한다. 이 폐허들 속에 담긴 아픈 시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세상이 버린 위대한 폐허 60

리처드 하퍼 (지은이), 김후 (옮긴이), 예문아카이브(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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