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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 되면 마음이 조급해지곤 한다. 많은 사람이 1월부터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운동도 시작하고 외국어도 배운다고들 하지만, 나는 그보다 이른 한 달 전부터 부지런해진다. 올해 하려고 마음먹었던 것 중 못 한 게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해를 넘기기 전에 이루려 부단히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송년 모임이다, 크리스마스다 뭐다 해서 스리슬쩍 물거품 되곤 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12월은 찾아왔다. 이미 바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궁극적으로는 작곡으로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에 전일제 일자리는 맞지 않는다. 프리랜서로 여행가이드 일을 하고 있는데, 열심히 하지 않으면 굶어 죽기 십상이다. 겨울 같은 비수기에는 모객이 쉽지 않다.

이런 내 인생에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기관리지만 그동안 계속 실패해왔다. 목표는 항상 있었다. 6시간만 자고 일어나서 외국어 공부하기, 운동하기, 새로운 투어 프로그램 만들기, 이미 만들어놓은 곡의 믹싱과 마스터링을 다시 하기, 피아노 연습 등... 전혀 다른 성격의, 다양한 일들이 머릿속을 항상 휘젓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무엇이든 강제성이 있는 일에 대해서만 마감일이 닥쳐서 겨우 해치우는 날들이 반복되곤 했다. 이후 시도한 관리방법들도 만족스럽지만은 않았다. 무엇부터 잘못된 것일까.
 
 해야 할 일 리스트
 해야 할 일 리스트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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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나는 항상 하루가 끝날 무렵에 다음날 할 일을 마구 적어대는 사람이었는데, 계획을 세울 당시에는 아주 촘촘하고 구체적으로, 오늘의 나와는 완전히 딴판인 완벽한 누군가를 그려가며 내일을 기대했다.

'아침 6시 기상, 7시 반까지 프랑스어 공부, 8시까지 영어회화 연습, 9시까지 운동...' 그러니 어떤 중요한 전화가 와서 30분 이상 전화기를 붙들고 있게 된다거나, 집의 수도가 얼어버리는 등 무언가가 망가진다거나,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기거나 등의 이유로 내 계획이 조금만 어긋나면 마구 짜증이 나며 예민해졌다.

이를 깨달은 뒤에는 시간과는 관계없이 해야 할 일(To Do) 리스트를 만들어 줄을 쳐가며 관리했다. 나름 잘 되는 것 같았다. 어찌 됐든 하루 동안 작곡 프로그램을 다루고, 외국어도 공부하고, 운동하고, 돈도 벌었으니, 남는 시간은 마음대로 보냈다.

하지만 뭔가 허술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이런 많은 일을 했다는 게 중요하긴 하지만, 솔직히 나 스스로 발전하는 것 같지 않았다. 좀 더 구체적인 목표를 만들었다. 예를 들어 작곡 프로그램을 다루면서 새로운 툴 써보기, 단축키 외우기, 외국어 공부는 매일 공부한 바를 외우고 나의 SNS에 올리기 등의 방법을 택했다.

그러자 재밌게 만들던 음악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외국어 공부 시간보다 공부한 내용을 SNS에 업로드하는 시간이 더 길어질 때는 짜증도 났다(게다가 내 계정에 그 내용을 보러 들어오는 사람도 아주 적다). 모든 일에 그렇게 구체적인 방식으로 계획을 세우면서, 계획 수립에만 하루 30분 이상이 소요됐다. 지쳤고, 다시금 방향을 잃었다. 재미가 없어서 자꾸 유튜브의 시답잖은 영상이나 보고, 프리랜서 여행가이드 일도 게으르게 임하게 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쪽으로 눈이 돌아가기도 했다.

하지 않기로 마음먹자, 할 일을 하게 됐다

이렇게 매일의 생활계획표, 해야 할 일 리스트 관리법에 실패한 나란 사람은, 정말 이번 12월에는 다시 한번 정신 좀 차리자는 생각에서 다른 방법을 고안해냈고, 아직 잘 실천해가고 있다. 이름하여, 하지 않을 일(Not To Do) 리스트!

일상생활에서 나를 게으르게 만들거나 건강하지 않게 만드는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다. 거창한 목표를 가져서 꾸역꾸역 실천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이를 실천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나의 평소 행동과 습관을 교정하기 위함이었다. 최근 언젠가, 가만히 스마트폰을 켜고 앉아서 안 봐도 되는 내용을 연신 보다가 결국 한 시간을 소모해버렸다. 그런 나 자신에 깊은 분노가 치밀어오르면서 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런 행동만 안 해도 내가 한 시간은 벌었겠네'라는 생각을 이제야 하게 된 것이다. 

'아침엔 6시에 꼭 일어나자'는 나자신과의 약속보다, '알람 끄고 다시 잠들지 않기'라는 방식의 약속이 내겐 잘 작동했다. 당위적인 무언가보다는, '하면 안 된다'는 방식이 좀 더 규칙이란 느낌을 부여하는 듯하다. 그리고 나의 구체적인 행동에 대한 지시여서 그런지, 한결 간단하게 느껴졌다.

또한 '1시간 운동' 대신 이미 '시작한 운동을 멈추지 않기'라고만 정하면, 운동강도도 더 높아지고 운동 시간도 짧아져서 다른 일을 할 시간이 많아졌다. 이밖에 쓸데없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남들 이야기를 읽거나 유튜브의 관련 영상을 클릭해서 보나마나 한 것들을 계속 보지 않기로 하자,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고백하자면 이 또한 사실 작심 '일주일'이었는데, 그래도 확실히 스마트폰 의존도가 줄어들었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게시글 한두 개만 읽고도 나 스스로 고개를 내저으며 이를 억제하고 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해서 만든 나의 Not To Do 리스트. 달력에 어떤 항목을 지켰는지 숫자로 표시하고 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해서 만든 나의 Not To Do 리스트. 달력에 어떤 항목을 지켰는지 숫자로 표시하고 있다.
ⓒ 김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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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하지 않을 일' 리스트는 이전에도 조금 성공한 바 있다. 이미 수년 전, 포털사이트의 인기 검색어를 눌러 쓸데없는 기사를 보고 있는 나 자신에 참을 수 없는 한심함을 느낀 적이 있었다. 그때 '인기 검색어 누르지 않기'라는 약속을 스스로와 했고, 지켜냈다. 지금은 검색어에 뭐가 올라와 있든 마우스가 그쪽으로 가지도 않는다. 

하지만 '하지 않을 일' 리스트가 전부는 아니다. 이번 달 안으로 끝내야 할 일에 대한 리스트도 만들어놓긴 했다. 그리하여 아침에 늑장 부리지 않고, 온라인 속 엉뚱한 글에 더 이상 곁눈질하지 않음으로써 생겨난 시간을 100% 할 일에 쏟아부을 것이다. 이번엔 음원 발매 실무, 새로운 여행상품 스크립트 작성 등, 조금 구체적인 성격의 일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약간은 다행이다.

100% 다 해봐도 안 되면, 정말 시간이 부족했던 거겠지 뭐. 그래서 나는 지금으로서는 12월까지 끝내야 할 일을 하는 것보다도 '하지 않을 일'을 잘 지켜나가는 것에 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리하여 2020년부터는 정말 좋은 습관으로 무장한, 또 다른 나로 태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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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만들기와 글 쓰기를 좋아하는 여행 가이드. 포토그래퍼 남편과 함께 온 세계를 다니며 사진 찍고, 음악 만들고, 글 써서 먹고 사는 게 평생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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