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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쪽방의 특징인 것 같다.

서울역 11번 출구 뒤 동자동 쪽방촌, 동대문역 4번 출구 뒤 창신동 쪽방촌, 종로3가역 1번 출구 뒤 돈의동 쪽방촌... 중심지 전철역과 접해 있으면서도 커다란 빌딩이나 상가들에 둘러싸여 쪽방의 존재는 한목에 드러나지 않는다.

남대문 쪽방촌도 그렇다. 남대문경찰서 언덕길을 오르면 바로이지만 그곳에 500명 남짓한 도시빈민들의 주거지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다만, 부동산으로 부를 쌓았던 이들에게는 예외다. 이 곳 쪽방 중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된 양동 '소단위정비지구'의 6개 건물 중 4개는 부동산 개발업체에 이미 팔린 상태다. 돈에 이끌리는 세력들이 냄새를 맡은 것이다.

오래된 소문, 재개발

'양동'은 남대문 경찰서 뒤편 일대를 일컫던 지명으로, 지금은 폐지되어 '남대문로5가동'으로 편입되었다. 그런데 1978년, 건설부 고시에 의해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된 "양동 구역"의 정비계획이 지난 10월 2일,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를 통과(수정 가결)하며 다시 호명되고 있다. 남대문 쪽방이 위치한 지역은 애초 공원으로 개발될 예정이었다.

그러던 것이 이번 정비계획을 통해 '소단위 정비지구'(11지구, 남대문로5가 618번지 일대)와 '소단위 관리지구'(12지구, 남대문로5가 622번지 일대)로 신규 지정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정비지구로 변경된 사유는 다름 아닌 "쪽방 입지"(11지구), "저층주거 다수밀집"(12지구)이라는 점이다.

즉, 이 지역이 쪽방 밀집지역이기에 '2025 서울시 기본계획'에 따라 '공원'이 아니라 정비사업이든 개별 재건축이든 '건축물'을 짓도록 계획을 바꾼 것이다. 향후 토지 등 소유자가 구체 사업계획을 낼 것이기에, 이곳에 무엇을 건설할지 아직은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하지만 정비계획은 '일반상업지역내 건축 가능한 용도'의 건축물을 주 용도로 정하고 있어 이대로라면 주택은 지을 수 없다.

정비계획안은 "공연장, 전시장 등, 도심 내 업무종사자를 위한 아동관련 시설, 도심관광을 위한 게스트하우스, 소규모호텔 등"을 권장용도로 정하고 있다. 물론 권장용도가 강제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비사업의 방향을 예상하기에는 충분하다.

게다가 지난 19일, 문화체육관광부는 물론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중소벤처기업부가 외국인 관광객 유치 등 관광산업 활성화를 2020년 부처별 10대 핵심과제로 발표한데서 드러나듯, 관광산업이 대세인 상황에서 이곳이 어떻게 변할지 예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이처럼 쪽방이 있고, 저층 주거가 다수 밀집하다는 이유로 정비계획은 변경되었건만 주거를 공급할 계획은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기존 계획처럼 공원을 만들든, 변경 계획처럼 관광시설이나 문화시설 따위를 만들든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지가 사라지는 것은 매일반이다.

누가 사는가?

쪽방을 산 회사들은 쪽방 관리자, 즉 이 건물을 전대(轉貸)하여 쪽방으로 세를 놓는 이들과의 승계된 계약이 끝나면 건물을 폐쇄해 버릴 것이다. 이들은 쪽방 주민들과 직접 계약을 한 일도 없으니 상대조차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안 나가고 버티면 관리자들에게 보증금 지급을 미루거나, 반대로 그들에게 퇴거에 필요한 보수를 얹어 주는 방식으로 퇴거를 종용할 수도 있다. 실제 2008년, 길 건너편 동자동 쪽방 주민들이 그렇게 쫓겨났다.
 
2008년, 동자동 쪽방 재개발로 쫓겨난 박 모 씨의 통장. 고시원 원장 명의 휴대폰 번호로 입금된 이주보상액은 5만 원이 전부였다.
▲ 2008년, 동자동 쪽방 재개발로 쫓겨난 박 모 씨의 통장. 고시원 원장 명의 휴대폰 번호로 입금된 이주보상액은 5만 원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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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업자들이 산 쪽방 건물들, 그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2019 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은 2019.12.4~12.14.까지 양동도시환경정비사업 11지구 주민을 대상으로 재개발에 대한 내용만을 간추린 설문조사(약칭, 2019년 조사)를 진행하였다. 그 외의 내용들은 서울시의 '2018 서울시 쪽방 밀집지역 거주민 실태조사'(약칭, 2018년 서울시조사) 원 자료 중 해당지역(11지구) 자료를 뽑아 분석하면 됐기 때문이다.

그 결과, 주민들은 정비지구 내에서만 평균 약 6년 간 거주(2019년 조사)하고 있고, 총 쪽방 거주기간은 9.9년(2018년 서울시 조사)에 달했다. 국내 자가 가구 평균 계속 거주기간(10.2년)과 유사한 수준이다. 열악하지만 그들에게는 '집'이었던 것이다. 개발지역으로 지정된 지 40년도 더 된 곳이다 보니 주민들 대다수(72.8%)는 개발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보원은 주로 동료 쪽방주민이었고, 주민대책에 대해서는 아는 이가 거의 없었다(68.2%).

개발 이후 이주할 곳에 대해서는 아무 계획이 없거나(48%), 쪽방(41%)을 찾아보겠다는 것이 계획의 대다수였다. 만약 개발 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거주지가 생긴다면 돌아오겠다는 응답은 83.1%에 달했다. '동네가 익숙'하거나 '이웃'과 함께 지내기 위해서 등 심리·정서적인 이유(40%)가 가장 컸다. <2018년 서울시조사>에서도 유사한 경향들을 파악할 수 있는데, 11지구 주민들의 고민 중 두 번째를 차지하는 것이 '외로움'(36.2%)이었고, '연락가능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비율이 80.4%에 달했다. 부동산 회사들은 이윤을 위해 건물들을 샀지만, 주민들은 같이 어울릴 사람들이 있어 그곳에 살고 있었다.
 
이주할 곳 주민들 대부분은 개발로 인한 이주대책을 세우지 못한 상태다. 자료 : 2019 양동도시환경정비사업 11지구 주민 설문(2019홈리스추모제기획단)
▲ 이주할 곳 주민들 대부분은 개발로 인한 이주대책을 세우지 못한 상태다. 자료 : 2019 양동도시환경정비사업 11지구 주민 설문(2019홈리스추모제기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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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오고 싶다

영상 활동가 故박종필 감독은 <거리에서>(2007)를 통해 그의 최초작인 <IMF 한국, 그 1년의 기록 실직노숙자>(1999) 속 인물들의 현재를 추적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 찾을 수 없었고, 그들 중 일부는 동짓날마다 열리는 홈리스추모제 때 영정으로 마주해야 했다. 감독의 의도와 무관하게도 <거리에서>는 양동 11지구 쪽방 주민들의 10년 전 모습을 담고 있다.

컴퓨터 기초교실에서 키보드 자판을 익히던 문선 님(가명)은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너무 어렵다"며 좌절한다. 노숙 하다 쪽방에 들어온 지 열흘 됐다던 기수님(가명)은 '쪽방에서 딸을 혼자 키우는 게 너무 힘들다"고 토로한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고민은 달라졌다. 문선님은 더 이상 컴퓨터를 배우지 않고, 기수 님은 딸과 같이 살지 않는다.

<홈리스추모제기획단>은 서울 중구청의 정비계획 변경결정(안)에 대한 의견수렴 기간 동안 쪽방주민들을 가가호호 방문하여 의견서를 모았다. 많은 시간을 쓰지 못한 탓에 전체 207명 주민 중 63명에 대해서만 의견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12월 11일, 서울 중구청에 이 의견서들을 전달했다. 중구청은 의견들을 검토하여 "타당하다고 인정되면 이를 정비계획에 반영하여야 한다"(도시정비법 제15조 1항). 법은 그렇다.

 
 문선 님(가명)이 쓴 의견서
 문선 님(가명)이 쓴 의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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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 님의 의견서
 이*근 님의 의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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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수님은 의견서에 이렇게 적었다. "(...) 임대주택을 구해서 ○○장애인 시설에 있는 하나뿐인 딸과 같이 살고 싶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외진 데가 아니라 근처 친구들이 있는 곳에서 살고 싶습니다."

문선님도 적었다. "수년을 노숙하며 살다 어렵게 쪽방에 들어와 산지가 어언 20여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대책을 받아 보지 못한 것이, 우리 쪽방 생활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한결 같습니다. 이런 상황을 아련하여 헤아려 주시기를 바랄뿐입니다."

많은 주민들의 요구도 비슷했다. 오랜 쪽방살이 훌훌 털고 떠나고 싶을 만도 한데, 붙잡고 싶어 했고 다시 돌아오기를 바랐다.
 
세수 문화제 12월 19일, 양동 11지구 쪽방에서 열린 ‘양동지역 재개발 쪽방 주민 주거대책 마련을 위한 문화제’
▲ 세수 문화제 12월 19일, 양동 11지구 쪽방에서 열린 ‘양동지역 재개발 쪽방 주민 주거대책 마련을 위한 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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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9일, "양동지역 재개발 쪽방 주민 주거대책 마련을 위한 문화제"가 열렸다. 빈곤사회연대가 매달 反빈곤 투쟁 현장을 찾아 여는 '세수문화제'가 11지구 쪽방을 찾은 것이다. 매우 추운 날이었고, 주변의 높다란 빌딩들이 햇볕마저 독점한 탓에 쪽방촌 공터는 더욱 추웠다. 날씨와 오랜 가난 탓에 많은 주민들이 함께 하지는 못했다. 문화제 끝에 함께 만든 현수막에 누군가가 이렇게 적었다.

"막걸리 말고 단결 투쟁"

가난한 이들의 유일한 공간인 한 평 쪽방마저 허락하지 않는, 수탈의 증표에 불과한 부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들과의 싸움이 쉬울 리 없다. 쪽방 주민 그 누구도 돌아오지 못했던 그간의 쪽방 개발사를 볼 때, 서울시와 중구가 어느 편에 설지도 충분히 예상된다. 취권도 권법이라고 막걸리 병을 놓고 싸우든 들고 싸우든 큰 상관이 있겠는가? 익숙한 "동네"가 좋고, 이웃들과 "함께 지내고 싶어" 하는 주민들이니, 이 마음만 잘 붙든다면 길은 열릴 것이다.

 
2019 홈리스추모제 홈리스의 사망은 열악한 복지지원체계에 따른 홈리스 생활의 장기화, 그에 따른 손상과 질병의 심화와 같은 연쇄반응의 결과다. 따라서 홈리스 추모제는 망인의 명복을 비는 것을 넘어, 예견되고 막을 수 있었던 죽음들을 더 이상 용인하지 말자고 사회에 호소하기 위한 자리가 되고 있다.
▲ 2019 홈리스추모제 홈리스의 사망은 열악한 복지지원체계에 따른 홈리스 생활의 장기화, 그에 따른 손상과 질병의 심화와 같은 연쇄반응의 결과다. 따라서 홈리스 추모제는 망인의 명복을 비는 것을 넘어, 예견되고 막을 수 있었던 죽음들을 더 이상 용인하지 말자고 사회에 호소하기 위한 자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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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2019 홈리스추모제'에 함께하고 있는 '홈리스행동'의 이동현 활동가 님이 작성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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