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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즈 목차
1. 강한 독일경제의 비밀, 히든챔피언과 미텔슈탄트
2. 전국이 골고루 잘 사는 연방국가의 파워
3. 치열하게 경쟁하되 과실을 골고루 나누는 사회적 시장경제
4. 새 비전과 실적을 보이는 정치리더십
5. 4차 산업혁명에 앞서가는 독일 현장 방문기
6. 철저하게 잘못돤 과거를 반성하고 국가대통합으로
7. 나치 나라에서 최고 좋은 이미지 국가로
8. 프랑스‧독일, 철천지원수에서 최고 우방으로
 
 
 독일의 과거 수도였던 본 근처 뢴도르프의 아데나워 총리 사저에 있는 프랑스 드골 대통령(왼쪽)과 독일 아데나워 총리 동상 앞에 필자가 서있다.
 독일의 과거 수도였던 본 근처 뢴도르프의 아데나워 총리 사저에 있는 프랑스 드골 대통령(왼쪽)과 독일 아데나워 총리 동상 앞에 필자가 서있다.
ⓒ 김택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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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결 대신 협력 택한 드골과 아데나워의 리더십

나폴레옹의 프로이센 침략, 보불전쟁, 1차 세계대전, 히틀러 파리 점령, 2차 세계대전 등... 근현대사에서 프랑스와 독일만큼이나 전쟁을 많이 하고 희생이 컸던 관계도 없을 것이다. 이들 전쟁을 통해 수천만의 인명 피해와 천문학적인 재산 피해를 내기도 했다. 심지어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프랑스 청년 40%가 사라졌다는 기록도 있다.

1806년 프랑스의 혁명가 나폴레옹 1세는 프로이센군을 격파하고 독일 빌헬름 3세는 러시아로 도망가기도 했다. 이에 보복하듯이 1871년 보불 전쟁에서 승리한 독일 빌헬름 1세 황제는 베르샤유 거울의 방에서 대관식을 치르기도 했다. 히틀러는 1차 세계대전의 독일 항복조인식이 열린 콩피에뉴 숲 객차를 찾아서 객차에 올랐다. 승전국의 복수를 시위했다. 프랑스와 독일의 통치자들은 서로 자존심을 할퀴고 짓밟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철천지 원수였던 프랑스와 독일은 갈등과 대결 대신에 화해와 협력 시대를 구가하게 되었는가? 이에 대한 해답은 위대한 정치리더십에 있었다.

전후 45년부터 55년 10년 동안 프랑스는 1차 및 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으로 독일을 경계하고 두려워했다. 프랑스는 승전국으로 독일에 대한 점령정책이 가장 가혹했다. 자르 지방을 합병했고, 산업지역인 루르 지역의 반환에 반대했다. 또한 독일 건국에서 프랑스는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며 반대했다.

하지만 50년 후반에 프랑스와 독일관계는 극적인 반전 분위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철전지 원수에서 최고 우방국가로의 전환이었다. 이같은 변화에는 크게 2가지가 작용했다. 먼저 외교안보적으로 극한 냉전으로 인한 소련의 위협과 유럽에 대한 미국의 개입 때문이었다. 또한 정치경제적으로 프랑스와 독일은 협력해야 상호 이득이 되었기 때문이다.

먼저 움직인 것은 독일 건국의 주역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였다. 그는 여러 차례 프랑스를 방문했지만 샤를 드골 대통령은 만나주지 않았다. 드디어 첫 대면은 1958년 9월 소련의 후르시쵸프가 '베를린 위기'를 일으키기 전 프랑스 콜롱베르-도제글리저에 있는 드골의 고향 마을에서 만났다. 드골은 자서전에서 아데나워에 대해 "선입관하고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특히 두 정치지도자에게 공통점이 있었다. 문명과 개혁에 대한 신념과 더불어 민주주의를 지키고 전체주의에 대항해 투쟁한 기억들이다. 드골 대통령은 망명 정부의 레지스탕스 운동을 이끌었고, 아데나워는 나치에 의해 2번이나 감옥에 살면서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드골 대통령은 이듬해인 1959년 독일 슈투트가르트를 방문해 '독일 청년에 고한다'는 제목의 강연에서 "(프랑스와 독일 간) 이 높은 장벽의 산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프랑스가 대대손손의 적이던 독일에게 기분 좋게 손을 내미는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드골은 자신이야말로 나치 독일의 역사를 넘어서 독일인에게 사면을 베풀 수 있는 위치에 있고, 그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는 드골 자서전에 나오는 구절이다.

두 노정객은 상호 사저를 방문하면서 화해와 신뢰를 쌓아갔다. 독일의 아데나워 총리는 총리 재임 14년 동안 사저에서 출퇴근했다. 뢴도르프라는 라인강 언덕에 있는 사저에는 방 2칸과 거실, 그리고 파빌리옹(서가)이 전부인 소박한 주택에 드골을 초대해 함께 와인을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이후 아데나워 기념관이 된 사저는 유일하기 드골과 아데나워가 손잡고 있는 동상이 세워져있다.

이를 통해 드골과 아데나워는 유럽공동체라는 EU(초기 ECC)를 건설할 수 있었다. 드디어 1963년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 양국의 우호조약인 '엘리제 조약'에 양 정상이 도장을 찍어 큰 작품을 만들게 된다.

화해의 전통 계속하는 양국 지도자들
 
 1984년 9월 22일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왼쪽)이 헬무트 콜 독일 총리와 프랑스 베르됭의 두오몽 납골당에서 열린 1차 세계대전 베르됭 전투 기념식에서 손을 잡고 서있다. 양국 화해의 상징이기도 하다
 1984년 9월 22일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왼쪽)이 헬무트 콜 독일 총리와 프랑스 베르됭의 두오몽 납골당에서 열린 1차 세계대전 베르됭 전투 기념식에서 손을 잡고 서있다. 양국 화해의 상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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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독일 관계를 대한민국과 일본과의 관계에 비교할 때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존경받는 양국의 위대한 지도자가 국민의 동의와 축복 속에서 화해 작업을 진행했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차이는 프랑스와 독일의 이후 지도자들은 선임자의 철학과 전통을 철저하게 계승하고 더욱 발전시켰다는 점이다. 프랑스와 독일 지도자들은 정파와 이념에 상관없이 프랑스-독일 관계를 최우선으로 삼으면서 상호 협력하고 대화로 문제를 풀어갔다.

대표적으로 이념이 다른 프랑스의 사회당 미테랑과 독일의 기민당 헬무트 콜은 항상 손을 잡고 유럽을 미래로 이끌어갔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통일 시기에 프랑스 미테랑은 독일 통일에 반대했으나 두 정상은 만나 더 큰 유럽의 집을 짓자는 데 합의하면서 미테랑은 통일 찬성론자가 되었다. 또한 현재 프랑스의 임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역시 정파는 다르지만 양국의 이익과 유럽을 위해 가장 긴밀하게 만나고 협력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과 일본은 1965년 조약부터 여러 문제들을 충분히 검토해 돌이킬 수 없는 완전한 조약을 체결하는데 실패했다. 한국은 시작부터 학생 데모와 반대에 부딪쳤고 위안부, 징용배상 문제가 아직까지도 양국간 논란에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은 자신의 선임자가 한 선언이나 약속을 뒤집는 언행을 일삼아 양국 관계를 더욱 나쁘게 만들고 있다. 대표적으로 과거 역사 인식, 신사 참배, 독도 문제 등에서 나타나고 있다.

다행히도 2019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1년 5개월 만에 중국 청두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비록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대해서는 입장 차이를 보였지만 양 정상이 '대화를 통해 풀자'라는 합의에 경색된 한일관계를 풀어가리라고 기대해본다.

지난 11월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5당 대표들이 만난 자리에서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는 "우리가 도덕적 우위에 있기 때문에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 등 많은 전문가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한일 관계에서 이명박 및 박근혜 전 대통령이 보여준 갈등과 대립이 아닌 김대중 및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구한 화해와 협력의 길로 가길" 기대하고 있다.

현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일본 TBS 방송국에서 열린 '일본 국민과의 대화'에서 "과거에 발목을 잡히지 말고 현명하게 풀어가 북일 관계 개선과 동북아 평화 및 협력에 함께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꽉 막힌 한일관계가 해빙돼 더 좋은 이웃으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 나아가 북미 수교보다 북일 수교가 먼저 이뤄진다면 한반도 화해와 협력을 앞당기는데 기여할 수도 있다.

일본은 독일같이 잘못된 과거사에 대해 끊임없고 진정한 사과를 통해서만 피해를 입은 이웃나라와 함께 미래로 전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도 이웃나라 일본을 '통 크게' 활용하는 대인배적인 지도자 모습을 보여줘야 할 시점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일본을 뛰어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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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비전 전략가, 4차 산업혁명 및 독일 전문가. 대한민국 미래(next Korea)는 독일을 뛰어넘어야(beyond German) 다시는 중국, 일본 등에 당하지 않고 부강한 나라로 도약하고, 평화통일, 신문명이 꽃피는 한반도를 꿈꾸는 작가이자 학자. 300회 이상 전국에 특강 강사로 유명. 최근 <세계 경제패권전쟁과 한반도의 미래>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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