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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전은 처음에는 신실 7칸이었지만 봉안해야 할 역대 임금의 신위가 늘어남에 따라 건물도 옆으로 계속 증축되어 마침내 19칸의 긴 건물이 되었다. 남쪽 신문으로는 혼령이, 동문으로는 임금을 비롯한 제관들이, 서문으로는 제례악을 연주하는 악공와 춤을 추는 일무원들이 출입했다.
 정전은 처음에는 신실 7칸이었지만 봉안해야 할 역대 임금의 신위가 늘어남에 따라 건물도 옆으로 계속 증축되어 마침내 19칸의 긴 건물이 되었다. 남쪽 신문으로는 혼령이, 동문으로는 임금을 비롯한 제관들이, 서문으로는 제례악을 연주하는 악공와 춤을 추는 일무원들이 출입했다.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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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가 있다. 평소에는 생각지도 못한 곳을 갑작스럽게 방문하고 싶을 때가. 새해를 이틀 앞둔 날, 나는 종묘로 향했다. 31일은 화요일 정기 휴관이지만 30일 월요일은 제한적으로 문화 해설사를 동반한 출입이 가능했다.

시간 관람제는 2010년 5월 1일부터 시행됐다. 사당의 신성함과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다. 일요일과 평일에는 정해진 시간에 문화 해설사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한국어뿐만 아니라 일본어, 영어, 중국어로도 서비스된다. 매주 화요일은 정기 휴관이다. 토요일과 문화의 날인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명절 및 국경일은 자유 관람이 가능하다. 자유 관람시간에는 신청자에 한해 자원봉사자의 해설을 들을 수 있다.

나는 미리 종묘 홈페이지에서 오전 10시 20분에 입장할 수 있도록 예약했다. 입장료는 1000원이다. 겨울방학이어서인지 부모와 동행한 초등학생이 많았다. 같은 시간대 참가자 수는 서른 명 정도였다.

단아하고 간결한 종묘의 멋
 
 문화 해설사를 따라서 참가자들이 종묘를 돌고 있다.
 문화 해설사를 따라서 참가자들이 종묘를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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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는 태조 3년(1394) 조선 왕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그해 12월에 착공해 이듬해(1395) 9월에 완공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지만 광해군 때에 재건된다. 오늘날에도 600년 된 건물 안에서 일 년에 두 번 제례행사를 치른다(5월 첫째 주 일요일과 11월 첫째 주 토요일).

종묘는 그 가치가 인정돼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다. 유교식 왕실 제례인 종묘제례(중요 무형문화재 제56호)와 제사를 지낼 때에 춤과 함께 연주되는 음악인 종묘제례악(중요 무형문화재 제1호, 세종대왕 작곡)도 2001년 유네스코 인류 구전 및 무형 유산 걸작으로 등재된다.

문화 해설사는 여러 건물 중에서 향대청, 재궁, 정전, 영녕전 순서로 돈다고 한다. 정전과 영녕전에는 신주가 모셔져 있다. 그곳에서 제례가 치러지고 그 외의 공간은 제례를 준비하는 곳이라면서 크게 두 공간으로 나누어서 정리해준다. 관람시간은 1시간 정도이다.

문화 해설사를 따라 지당, 망묘루, 공민왕 신당을 지나 향대청으로 걸어간다. 새벽에 비가 와서인지 쇠락한 정원 나무에 찬 생기가 돋는다. 다행히 흙길 바닥은 질척거리지 않는다. 길 한가운데에 판석이 깔려있다.
 
 박석과 전석으로 된 판석 길은 종묘 전체로 이어진다. 가운데가 신로(神路)다. 신로는 선왕의 혼령들이 걷는 길이다. 그 옆 동축 길은 왕이 다니는 어로(御路), 서축 길은 세자가 다니는 세자로라고 한다. 신로는 사람이 다닐 수 없다. 신로는 외대문 안에서 정전과 영녕전의 남신문 밖까지는 거칠고 널찍한 박석이지만 남신문 앞에서는 상월대 아래까지는 전석으로 설치되어 있다. 어로와 세자로는 재궁으로 이어진 다음 정전과 영녕전 동문 안 상월대 아래까지 설치되었다.
 박석과 전석으로 된 판석 길은 종묘 전체로 이어진다. 가운데가 신로(神路)다. 신로는 선왕의 혼령들이 걷는 길이다. 그 옆 동축 길은 왕이 다니는 어로(御路), 서축 길은 세자가 다니는 세자로라고 한다. 신로는 사람이 다닐 수 없다. 신로는 외대문 안에서 정전과 영녕전의 남신문 밖까지는 거칠고 널찍한 박석이지만 남신문 앞에서는 상월대 아래까지는 전석으로 설치되어 있다. 어로와 세자로는 재궁으로 이어진 다음 정전과 영녕전 동문 안 상월대 아래까지 설치되었다.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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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석 길을 자세히 보면 가운데가 조금 높다. 신로다. 신로(神路)는 선왕의 혼령들이 걷는 길이다. 그 옆 동축 길은 왕이 다니는 어로(御路), 서축 길은 세자가 다니는 세자로이다. 신로는 사람이 다닐 수 없다. 박석과 전석으로 된 판석 길은 종묘 전체로 이어진다.

신로를 길잡이 삼아 단청이 소박한 망묘루 앞에 선다. 망묘루뿐만 아니라 종묘의 모든 건축 처마는 궁궐과 사찰과 달리 오방색을 다 사용하지 않는다. 죽은 자들을 위한 건물은 단아하고 간결하다.
  
 망묘루 단청 처마이다. 궁궐과 사찰과 달리 소박하다.
 망묘루 단청 처마이다. 궁궐과 사찰과 달리 소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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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에서 벌이는 제사를 준비하는 향대청, 조선시대 임금이 제향(祭享)할 때 세자와 함께 머물면서 제사를 준비하던 곳인 재궁(齋宮)을 지나 정전에 발을 들인다.

정전(正殿)은 종묘의 중심이다(국보 제227호). 태조의 묘가 있어서 태묘(太廟)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단일 건물로는 가장 긴 목조건물이다. 조선시대에는 지금의 정전만으로 종묘라 했다(현재는 정전과 영녕전을 모두 합쳐서 종묘라 부른다).
  
선령들은 정말로 흡족해할까
 
 정전은 우리나라에서 단일 건물로는 가장 긴 목조건물이다. 정전 건물 전체 길이는 101m, 하월대는 109m이다.
 정전은 우리나라에서 단일 건물로는 가장 긴 목조건물이다. 정전 건물 전체 길이는 101m, 하월대는 109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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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대에 발을 디디고 정전을 돌아보는 순간 기이할 정도로 신비스러움과 불가사의할 정도로 감도는 침묵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서른 명 정도 참가자가 있어도 아무도 없는 듯 적적하기까지 했다. 아마도 100m가 넘는 맞배지붕이 20여 기둥에 의지해 대지에 낮게 내려앉은 형상 때문이리라.

사람 '人' 자 모양의 홑처마와 지붕, 가운데가 볼록한 기둥이며 그 넓은 월대는 또한 어떠하리. 처음에는 신실 7칸이었지만 봉안해야 할 역대 임금의 신위가 늘어남에 따라 건물도 옆으로 계속 증축돼 마침내 19칸의 긴 건물이 됐다. 신실이 늘어날수록 상하 2중으로 된 월대 역시 규모가 확장됐다(정전 건물 전체 길이는 101m, 하월대는 109m). 바닥 전면에 박석이 치밀하게 깔려 있었다. 사방 담장이다. 확 트인 듯하면서도 폐쇄된 곳이 정전이다.

비 온 뒤의 잿빛 공기도 내 상상을 한껏 부풀렸으리라. 초승달이 걸려 있는 밤이다. 촛불이 켜진 모든 신실 칸 문이 열려 있다. 빛이라고는 달빛을 받은 촛불 그리고 어둠이 제 스스로 발하면서 내뿜는 푸른빛.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인 <보태평(保太平)에 이어 <정대업(定大業)>이 연주되고 무인(舞人)들이 8줄에 맞춰서 일무를 춘다. 그리고 흡족해하는 선령들….

선령들은 정말로 흡족해할까.

조선시대 왕은 총 27분이었지만 정전에 모신 분은 19분이다. 광해군과 연산군은 왕으로 추대되지 못했다. 연산군과 광해군은 영녕전에서도 제외되었다. 영년전에는 태조 4대 조로 추존된 목조, 도조, 환조, 익조와 숙종 때 복위된 단종의 신위 등 34위를 모신다. 아이러니한 것은 광해군이 임진왜란 때 소실된 정전과 영녕전을 복원했다는 점이다.
  
 정전에 들어서면 지붕과 지붕 사이 하늘을 볼 수 있다. 유난히 잿빛 하늘을 이고 있는 종묘 건물들은 그날따라 그 무게감이 더했다.
 정전에 들어서면 지붕과 지붕 사이 하늘을 볼 수 있다. 유난히 잿빛 하늘을 이고 있는 종묘 건물들은 그날따라 그 무게감이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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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예를 거스른 왕이라는 이유에서 거절당했다. 열악한 여건 속에서 조상신들을 위해 종묘를 재건했지만 산 조상인 인목대비에 대한 효와 예가 부족했던 탓이다. 지금은 종묘 밖 경기도 남양주 어디 즈음에서 떠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전에 남아 있는 분들은 나라를 창건한 태조 이성계부터 순종까지이다. 신실 한 칸에 4대까지 모신다. 5대가 들어왔을 때는 선대 신주를 빼서 영녕전으로 옮기거나 땅에 묻는다. 하지만 후대에 업적이 높게 평가받은 왕은 그대로 모신다. 그렇게 해서 19분의 신주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업적을 누가 매기는 걸까. 제일 확실한 것은 신주를 옮겨갈 수밖에 없는 왕은 후사를 두지 못했다. 사도세자처럼 돌아가신 뒤에야 임금이 된 분들이 대표적이다. 정치적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업적이라 함은 후대의 정치적인 영향력에 의해 크게 결정되기 마련이니깐. 그렇다면 지금 웃고 있는 선령들은 정치적인 영향력이 큰 후손을 둔 여유일까.

이곳을 찾았을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다
  
 영녕전 앞에서 문화해설사가 설명하고 있다. 정전이 국보라면 영녕전은 보물이다. 영녕전은 세종 때 종묘에 모시던 태조의 4대 추존왕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와 그 왕비들의 신주를 옮겨 모시기 위해 세워진 별묘로 왕실의 조상과 자손이 함께 길이 평안하라는 뜻이다.
 영녕전 앞에서 문화해설사가 설명하고 있다. 정전이 국보라면 영녕전은 보물이다. 영녕전은 세종 때 종묘에 모시던 태조의 4대 추존왕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와 그 왕비들의 신주를 옮겨 모시기 위해 세워진 별묘로 왕실의 조상과 자손이 함께 길이 평안하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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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전쟁 역사 속에서도 조상들은 사당과 능을 목숨처럼 지켜왔다. 유교 때문이다. 유교는 조선이 문을 열면서 통치 이념과 도덕규범으로 받아들여졌다. 유교의 기본 덕목은 효다. 왕들은 효를 몸소 실천해야 했다. 만백성의 아버지인 왕이 조상을 잘 모셔야 자식들인 백성들이 왕에게 효(충)를 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할 수 있었다.

제례를 잘 치를수록 왕권이 섰다. 정치적으로 종묘는 굉장히 중요했기에 제례도 가장 크게 치러야 했다. 종묘(宗廟)를 '최고의 사당(우두머리 '宗' 사당 '廟' 자다)'이라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야말로 정치적 이념이자 실천이었으며 만백성의 근원의 공간이었으니깐.

비단 정권의 야욕 등 개인의 욕망에서만 역대 왕들이 종묘를 찾았을까.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가운데 자리를 내어준 신로 한쪽을 따라 걸으면서 바람에 쏠리는 잎의 기척을 들으면서 정전 월대의 박석과 박석 사이의 침묵을 느끼면서… 어지러운 세상에 선대의 어진 정치를 본받고자 하는… 어찌 한 나라의 지도자가 백성을 위한 눈물을 남몰래 흘릴 공간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재궁 안 어숙실이다. 왕이 제례를 기다리는 곳이다. 왕이 입고 있는 옷은 십이장복이다.
 재궁 안 어숙실이다. 왕이 제례를 기다리는 곳이다. 왕이 입고 있는 옷은 십이장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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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 물고기가 살지 않는다는 못을 둘러본다. 총 4개의 못이 있지만 사당에서는 연꽃이나 물고기를 키우지는 않는다. 이곳 연못은 그냥 '못'이 된다. 목조 건물이 대부분이어서 못은 방화수 역할을 한다. 다른 짐승도 마찬가지이다. 혼령들의 공간이기에 살아있는 것을 죽일 수도 키울 수도 없다. 유독 밤에는 야생동물들이 자유롭게 드나든다.

살아있는 듯 죽어 있는 듯한 공간 종묘. 산 자들의 찾는 낮에는 묵직한 공기가 감돈다면 죽은 자들의 시간인 밤은 한없이 통통 튀는 생기가 가득 찰지도 모르겠다. 짐승들의 쉼터가 되고 신로를 걷는 선령들이 걸음을 멈추고 아무 곳에나 걸터앉아 수다를 떨지도 모르겠다. 삶의 거추장스러움을 벗겨낼 세월이 흐른 것이다.

핍박받다 죽은 억울한 백성들이 찾아왔을 때는 막걸리 한 사발을 건네며 서로의 애달픔을 보듬어줄지도 모르겠다. 그럴지도 모를 것이다. 아니, 그럴 것이다. 궁궐은 역대 왕들이 살았던 흔적만 볼 수 있는 빈 공간이지만 이곳은 혼령들이 지금도 거주하고 있는 꽉 찬 공간이니깐 말이다.

다시 한번 발걸음해야겠다. 2020년 새해를 맞이하고 5월 첫째 주 일요일 종묘대제가 열리는 그날 밤, 당신들의 수다를 들을 수 있는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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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차노휘는 소설가이다. 2016년부터 도보 여행을 하면서 ‘길 위의 인생’을 실천하고 있다. 2009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얼굴을 보다〉가 당선되었고 저서로는 소설집 《기차가 달린다》와 소설 창작론 《소설창작 방법론과 실제》, 여행 에세이 《쉼표가 있는 두 도시 이야기》 와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장편소설 《죽음의 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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