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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으로 청산해야 할 적폐가 있지만 국민의 약 70%가 거주하는 아파트의 적폐도 만만치 않습니다. 경험해보니 국가 적폐보다 마을(아파트) 적폐의 청산이 더 힘들게 느껴집니다. 4년간 아파트 회장을 하면서 겪었던 파란만장한 경험과 성취한 작은 성공의 이야기들을 시민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편집자말]
아파트의 젊은 엄마로 구성된 놀이터개선위원회의 놀이터 개선 시도는 새롭고 신선한 경험이었다. 비록 눈으로 보이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지금까지 아파트의 모든 일은 동대표들과 관리사무소의 일이었다. 주민들이 직접 나서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놀이터개선위원회를 통한 아파트의 변화는 아파트의 주인인 주민이 직접 제안하고 그것을 입주자대표회의가 받아서 진행한 일이다. 입주민들이 주체가 된 첫 사례라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여기에 더하여 나는 아파트 전체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마을학교' 개최를 추진했다. 마을학교를 추진한 목적은 우리 아파트가 '갈등과 비리의 아파트'에서 '화합과 상식의 아파트'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선포하는 것이었다. 당시까지 우리 아파트는 갈등과 비리로 악명이 높았다.

적폐 세력의 기획자로 온갖 패악질을 부리다 전과자가 되어 쫓겨난 관리소장 후임으로 온 신임소장에게 들으니, 당시 관리소장들 사이에서 우리 아파트는 기피 대상 1호였다고 한다. 우리 아파트에 소장으로 간다니까, 거길 왜 가느냐고 다 말렸다고 한다. 거기 가면 갈등에 휘말리다 몸무게가 쭉쭉 빠지고 결국 얼마 있다가 그만두게 된다고 하면서. 나는 마을학교 개최를 통해서 우리 아파트의 이와 같은 꼬리표를 떼 버리고 싶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음을 선포하고 싶었던 것이다.

또한 마을학교를 통해서 아파트 일에 입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싶었다. 아파트 운영, 공동체 만들기 등에 대한 강의를 듣고 토론하다 보면 반드시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입주민들이 나올 것이라고 봤다. 마을에서도 촛불시민을 만나 그들과 함께 우리 아파트를 참다운 '마을공화국'으로 만들고 싶었다.

이런 생각으로 나는 당시 주민자치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었던 수원시정연구원에 마을학교 제안서를 들고 찾아갔다. 공들여 만든 제안서에 '마을학교' 개최 취지를 다음과 같이 적어 놓았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아파트 공동체'라는 '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로 치면 입법부에 해당하는 '입주자대표회의'는 항상적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불법을 저지른 대통령을 쫓아내는 국민주권이 어느 정도 실현되지만, 마을 단위로 내려오면 몰상식과 비리가 판치는 것이 현실이다. 마을에서 주민은 진정한 의미에서 주인이 아니라, 대상 혹은 객체로 전락한다. 그렇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중요한 모순을 '국민'주권과 '주민'주권의 부조화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제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안은 아파트 공동체에 관심을 가진, 다시 말해서 상식과 공공의 마인드를 지닌 입주민들을 찾아내어 그들을 '주체'로 세우는 일이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한다. 이를 위해 우리 아파트는 '○○마을학교'를 개최하려고 한다. '자치'에 관심이 많은 수원시정연구원의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
 
첫 아파트 마을학교

나의 제안을 들은 수원시정연구원은 흔쾌히 수락했다. 당시까지 연구원은 수원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자치학교를 개최하고 있었는데, 우리 아파트의 경우에는 '찾아가는 마을학교'라는 콘셉트로 추진할 수 있다고 했다. 연구원은 '마을학교'와 관련된 모든 비용 지원은 물론 강사 섭외와 현수막 제작까지 맡아주었다.

연구원과 몇 번의 기획회의를 거쳐 2018년 11월 11일 토요일 저녁 7시에 관리사무소 2층 회의실에서 학교를 열었다. 전단을 돌리고 현수막도 게시했다. 평소 나는 아카데미를 직접 개최해보기도 하고 강의도 했었지만, 내가 사는 마을에서 하는 것이어서인지 많이 긴장되었다. 얼마나 올 것인가, 우리 아파트에 숨어 있는 '촛불시민'은 얼마나 될까. 개최하기 전날 밤잠을 설쳤다.

가장 걱정되는 건 인원이었다. 10명밖에 안 오면 안 하니만 못한데 어쩌나, 은근히 걱정됐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무려 30명이 넘는 주민들이 참여한 것이 아닌가. 누군가는 '1680세대인데 겨우 30명?'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아파트에서 이렇게 많은 인원이 모인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다른 아파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무리 좋은 행사를 한다고 광고해도 이렇게 많은 인원이 자발적으로 오는 건 힘들 것이다. 마을학교에는 첫 회장 임기 2년 동안 '몸통'과 관리소장, 적폐 세력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을 때마다 나를 위로해주고 맛난 음식을 사준 초등학교 동창 2명도 참석해주었다.

나는 입구에 서서 속속 들어오는 입주민에게, 평소 나의 아파트 활동에 큰 관심을 가지고 지지해주었던 아파트 상가 내 농협지점장이 협찬해준 음료수를 하나씩 나누어주면서 인사를 했다. 당시 내가 한 여는 인사말이다.
 
좋은 아파트 공동체는 누가 만들어서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우리 아파트는 최근 5년 동안 극심한 갈등에 시달렸습니다. 제가 첫 번째 회장일 때는 저를 향한 불법 해임투표를 무려 3번씩이나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매월 1~2회 열리는 정기(임시)회의는 거의 아수라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몰상식과 불법이 난무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아파트는 정상화되었습니다. 상식적인 입주민들이 동대표가 되었고, 부족한 점이 있지만 입주자대표회의는 아파트 전체의 유익이 무엇인지를 놓고 심도 있는 토론을 하여 의결하고 있고, 관리사무소는 이렇게 결정된 사항을 제대로 집행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지금 열리고 있는 '마을학교'는 우리나라 아파트 역사상 처음이라고 합니다. 저희 입주자대표회의가 이런 행사를 연 까닭은 이제 우리 아파트는 이제 결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선포하기 위함입니다. 좋은 강의를 듣고 이야기를 서로 나누면서 우리 아파트를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좋은 아파트 공동체는 누가 만들어서 가져다주는 기성품이 아닙니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재정적·행정적 지원을 해준 수원시정연구원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시작이나 계속 함께해주십시오. 고맙습니다.
 
 가장 걱정되는 건 인원이었다. 10명밖에 안 오면 안 하니만 못한데 어쩌나, 은근히 걱정됐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무려 30명이 넘는 주민들이 참여한 것이 아닌가.?
 가장 걱정되는 건 인원이었다. 10명밖에 안 오면 안 하니만 못한데 어쩌나, 은근히 걱정됐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무려 30명이 넘는 주민들이 참여한 것이 아닌가. 시작에 앞서 수원자치분권협의회 노민호 사무국장이 경직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우크렐라를 연주했다.
ⓒ 남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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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전체 분위기를 바꾸다

강의가 시작되었다. 첫날 강의 제목은 '아파트 안에서의 자치실현'이었고, 강사는 10여 년 동안 자치운동을 해온 수원자치분권협의회 노민호 사무국장이었다. 내가 2년 동안 아파트에서 고생한 스토리를 대충 알고 있는 그는 청중들의 눈높이에 맞는 언어를 사용하면서 강의를 풀어갔다.

다소 경직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우크렐라를 직접 연주하며 '과수원길'을 합창하도록 유도한 노 국장은 정말 듣던 대로 대단한 강사였다. 아파트 자치와 주민참여의 당위성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없었다. 첫 번째 강의는 대성공이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강의에는 참여가 저조했다. 아마도 평일 낮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연차를 내고 세 번째 강의인 '아파트 커뮤니티 우수사례 공유'에 참여하였는데, 거기서 얻은 아이디어를 이후 우리 아파트 실정에 맞게 하나하나 구현해 나갔다.

아무튼 '마을학교'에 많은 사람이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그리고 학교를 마치고 상당한 입주민들이 아파트 일에 주체적으로 나선 것은 아니지만, 아파트 전체 분위기를 바꾸는 데는 성공한 것 같았다. 과거 갈등과 비리의 아파트로 돌아갈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주민들도 나의 새로운 시도를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었다. "비록 못 가봤지만, 이런 새로운 시도를 해줘서 너무 고맙다"는 문자를 보낸 입주민이 여럿 있었고 나를 알아보는 입주민도 더 많아졌다. 이렇게 '마을학교'는 보이는, 보이지 않는 다양한 성과로 나타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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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자유연구소(landliberty.or.kr) 소장. 토지 불로소득을 완전히 환수하는 토지공개념과 기본소득, 그리고 통일을 염두에 둔 대안 국가모델에 관심을 갖고 연구와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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