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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간 육아휴직이 곧 끝납니다. 어린 아이를 기르면서 없는 시간을 짜내며, 읽고 쓰던 시간들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지금도 어린 아이들은 계속 태어나며, 어린 아이들을 출산하고 양육하는 엄마들이 있으니까요.[기자말]
엄마가 됐다. 엄마 이름 값을 해야 했다. 애들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이끌어줘야 한다. 기계적으로 해서도 안 된다. 사랑과 책임감을 거뜬히 짊어지고!

하지만 이 헌신적인 엄마 역할이란 것도 참 복잡미묘하다. 시대의 기준에 맞춰 아이를 번듯하게 잘 키우는 게 진정한 헌신일까? 아이 밥상을 차리는 것으로 시작해, 온종일 아이를 위해 노래하고, 밀가루 반죽 놀이를 하며, 책 수십 권을 읽어주면서 목이 쉬어버리는 하루. 과연 이런 24시간이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일이 되어야 하는 일인지 궁금했다.

엄마 이름값은, 역할만 남고 개인이 사라져야 비로소 찬란해졌다. 숨이 막혔다. '나'라는 개인이 사라질 때까지 도대체 아빠는 뭐 하고 있는 걸까. 아빠가 바쁘면 '성공'이고, 엄마가 바쁘면 '방임'이라는 꼬인 공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엄마 이름 값을 해야 했다.
 엄마 이름 값을 해야 했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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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초보 엄마 시절, 나는 구세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 아침마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을 정리할 때면, 아이와 콩으로 마라카스 만드는 건 '해야 할 일'이지만, 하루 10분 책 읽기는 '하고 싶은 일'이었다.

엄마 노릇에만 집착했다. 그 결과 아이의 작은 흠이 눈에 띄면 노심초사했다. 애가 조금만 모자라 보여도 스트레스였다. 다 내 탓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부족해서, 모자라서, 무관심해서. 부족한 투입이 부족한 산출을 나은 거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비합리적 신념인가. 인간은 모든 면이 완벽할 수 없다. 그건 아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공부도 잘 하고, 친구도 잘 사귀고, 건강하고, 잘 먹고, 성격도 밝고, 때로는 조숙하길 바란다면. 나는 욕심을 부리며, 아이에게 당장 기적을 일으키라며 강요했다.

"친구랑 잘 못 놀고 왜 겉돌지."
"편식이 너무 심하다."
"장난이 너무 심해. 양치만 시키면 욕실이 물바다야." 

세 살배기 딸아이가 기적을 행하지 않으면 걱정했다. 하나라도 기대에 못 미치면 아무나 붙잡고 하소연했다. 큰 아이는 옆에서 고스란히 다 듣고 있었을 거다. '나는 엄마 기대에 못 미치는 아이, 엄마 걱정시키는 딸'이라며. 쓸데없는 죄책감을 등에 지고 있었을지 모른다.

결국 '사서 걱정 퍼레이드'에 종지부를 찍었다. 애한테도 나한테도 하등 도움 안 됐으니까. 아이에게 과하게 헌신하다 지쳐 내 취미를 찾은 덕분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면서 시시껄렁하나마 내 생각이란 걸 갖춰 갔고, 블로그에 매일 글쓰는 꾸준함에 안도했다. 

내 일이 즐거우니, 아이에 대한 과한 몰입이 저절로 줄었다. 솔직히 아이에게 들이는 시간이 아깝기까지 시작했다. 오감놀이 기획도 다 접었다. 대신 배짱을 부렸다. 양치질 중에 컵으로 물저지레 하는 게, 2천원 짜리 치약을 세면대에 다 바르는 게, 화분 흙에 하마 피규어 쑤셔 넣는 게 모두 오감놀이라고 우겼다. 

나의 배짱은 쌀독의 쌀을 바닥에 뿌리는 게 오감놀이라고 호응해줬던 숱한 책들 덕분에 더욱 단단해졌다. 게으른 엄마를 합리화해줄 책들을 계속 찾아 읽었고, 스스로를 위해 부지런해졌다. 뱃속의 둘째가 태어나도 아이를 업고 글 쓰고, 아이가 잘 때 읽었다. 살맛 났다. 하고 싶은 대로 사니 신났다. 

엄마의 공부, 방임 말고 모범
 
 엄마의 독서, 방임 아닌 모범입니다.
 엄마의 독서, 방임 아닌 모범입니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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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두 아이가 부쩍 자랐다. 올해로 6살과 4살이다. 그만큼 공부하는 엄마와 호흡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가장 많이 연습했던 건, 단연 '엄마의 독서와 글쓰기' 지켜봐주기다. 아이들은 기필코 자기만의 시간을 사수하려 매의 눈을 치켜드는 엄마를 이해해야만 했다.

큰 아이: "엄마, 같이 미로찾기 만들자."
나: (책 읽으면서) "연재(작은 아이)가 언니랑 정말정말 하고 싶어 하던 걸?"

작은 아이: "귤 까주세요."
나: (글 쓰면서) "연우(큰 아이)야~ 동생이 귤 먹고 싶대."


조금 치사하고 악착 같지만, 4살, 6살이 서로 품앗이 육아를 해주고 있다. 엄마가 책 읽는 동안, 동생은 언니랑 놀아주고(?), 언니는 동생의 귤 껍질을 까주었다. 나보다 애들이 서로서로 더 잘 육아하고 있다.

그렇게 올 겨울, 10kg 귤을 아이들이 서로 까주는 동안 나는 6권의 책을 읽었고, 12편의 글을 썼다. 귤 안 까주고 책 읽고 글 쓰는 이런 엄마. 방임일까 모범일까? 숱하게 고민했다.

애서가답게 그 답도 책에서 찾았다. 오소희 작가의 <엄마의 20년>이다. 작가는 아이에게 모자란 것은 채워주고, 넘치는 것은 덜어주는 것이 엄마의 일이라고 했다.

​나는 나의 두 아이에게 넘치는 건, 물질적 풍요와 교육적 자극이라 생각한다. 이미 과잉 영양에 질 좋은 옷, 그리고 다양하고 풍성한 자연을 경험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질리면 어떡하나 싶을 정도로 책과 문자를 가까이 하고 있다.

​이젠 부족한 걸 채워 줄 차례다. 그건 바로 '생생한 삶'이다. 아이들은 '가슴 뛰며 생생하게 살아가는 어른들'이라는 롤모델을 볼 기회가 적다. 이미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라든가, 너무나 멀고 먼 별 같은 피겨 선수 김연아 정도일까.

​이런 와중에 가장 가까운 어른인 부모마저, 아이를 위해 헌신하고, 아이 양육에 모든 시간을 채우는 걸 보면서 자란다면? 꿈을 향해 매진하는 어른들을 볼 기회가 적을 것이다.

​나는 꿈을 향해 반짝이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런 명분으로 아이들이 매트 위에 장난감 도장 잉크로 진창을 만드는 동안, 책을 읽었다. 방임인지 모범인지는 더 찬찬히 지켜볼 일이다. 엄마와 아이는 같이 자란다. 그래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작가의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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