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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타를 타고 오르거나 내려오는 순례자들도 있다.
 낙타를 타고 오르거나 내려오는 순례자들도 있다.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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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목덜미를 훔쳤다. 지퍼를 야무지게 올리고는 엄지손가락만 한 손전등으로 45도 각도 앞을 비추었다. 앞서가는 사람들의 종아리가 보였다. 타박타박 신발 밑창이 흙길과 부딪치는 소리도 리드미컬하게 들렸다. 나는 지금 시나이 산 정상(Mount Sinai: 2,258m)으로 향하고 있다.

다합(Dahap)에서 세 시간 버스를 타고 하이킹의 시작점인 성 카타리나 수도원(Saint Catherine's: 1500m)에 도착했다. 새벽 1시였다. 열다섯 명으로 구성된 다국적 팀(한국인은 혼자)이다. 다섯 명이 이집트 사람이라 검문소에서 검문이 까다롭게 진행돼 시간이 지체됐다.
 
 시나이 산 주차장. 타고 온 미니 버스를 기다리는데 길 잃은 염소가 우리 주위를 배회했다.
 시나이 산 주차장. 타고 온 미니 버스를 기다리는데 길 잃은 염소가 우리 주위를 배회했다.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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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해서도 곧바로 출발하지 못했다. 화장실을 다녀와서도 베두인 여인이 양손 가득 장갑이나 스카프, 손전등 등을 들고 호객하는 것을 봐야 했다. 현지인 가이드가 왔고 매표가 이루어진 것은 20분이나 지나서였다. 드디어 우리는 손전등 하나씩 들고 밤 산행을 시작하였다.

어둠 속에서도 메마른 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낙타도 올라갈 수 있게 구불구불 산등선을 따라 제법 넓은 길이 닦여 있었다. 산행 끝나고 계산해보니 800m 높이를 네 시간 동안 걷다 쉬다 하면서 올라갔다. 거리는 대략 7km 정도였다.
 
 새해, 시나이 산. 동행이었던 캐나다 출신 스티브와 산 정상에서.
 새해, 시나이 산. 동행이었던 캐나다 출신 스티브와 산 정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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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브와 나는 정상에 있는 암벽 돌출부에 자리를 잡았다. 이집트 청년 도움으로 가능했다. 신발 인증 사진!
 스티브와 나는 정상에 있는 암벽 돌출부에 자리를 잡았다. 이집트 청년 도움으로 가능했다. 신발 인증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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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걸음걸이에 맞춰 스티브가 따라왔다. 그는 미니버스에서 내 옆에 앉았던 캐나다 출신 배낭 여행자이다. 배낭도 제법 무겁고 장갑 등 보온 물품은 챙겨 왔으면서도 손전등은 없다. 내 빛을 얻어 같이 걷고 있다. 그는 그 보답으로 쉴 틈 없이 말을 한다.

십 분이나 걸었을까. 허벅지를 약간 벌리는 형태로 두 계곡이 벌어져 있다. 계곡 사이로 조금 전에 머물렀던 주차장이 환하게 빛난다. 주차장이 조명 역할을 한 덕에 계곡은 햇볕에 타지 않은 속살처럼 수줍게 엎드려있다. 멈춘 걸음을 다시 내디디며 고개를 들어본다. 까만 밤하늘에 고흐의 그림 속 별들이 뭉텅이로 빛나고 있다. 하지만 별만 보고 걸을 수는 없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돌부리에 발목을 접질릴 수 있다.
 
 정상 15분 전에 있는 마지막 베두인 카페. 이곳에서 터키 커피를 마셨다. 돈 주면 담요도 빌려준다.
 정상 15분 전에 있는 마지막 베두인 카페. 이곳에서 터키 커피를 마셨다. 돈 주면 담요도 빌려준다.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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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던 가이드가 잠깐 쉬어가자고 한다. 베두인 카페다. 화장실도 갈 수 있고 음료수 등 군것질 거리도 살 수 있다. 아무렇게 지은 듯한 건물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앉아서 쉴 수 있도록 천으로 깐 의자가 있다. 간간이 카페에서 쉴 때에야 어색했던 일행들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나도 일행들의 얼굴을 익힌다. 어둠 속이라 산행할 때에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 구호는 '다합!'이다. 다른 팀과 섞여 있다가도 다합, 하고 큰소리로 외치면 그 소리를 듣고 일행이 모여든다.

당시 나는 시나이 반도에 있는 다합에서 스쿠버다이빙 다이브 마스터 훈련을 하고 있었다. 한 달을 훌쩍 넘겼다. 하지만 한 달 더 훈련을 해야 한다. 2월 4일. 한국으로 말하면 음력설 하루 전이다. 새해, 나는 시나이 산 정상에서 일출을 보고 싶었다. 묵고 있는 호텔 사장이 운영하는 사파리 여행사에 신청을 했다. 이집트에 머물고 있다면 한 번은 다녀와야 할 산이었다.
 
 위에서 본 베두인 카페.
 위에서 본 베두인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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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이(Sinai)는 성경에서 반도, 광야, 산을 지칭한다. 모세가 자신의 종족을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구출하여 약속의 땅으로 향하는 여정 중에 있다. 신에게 십계명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유대교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에서도 신성시한다.

하이킹의 시작점에 있던 성 카타리나 수도원도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에 수행자가 자주 찾던 곳이다. 530년에 지어졌다. 또한 이곳은 1967년에 일어난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관리하다가 1979년 이집트에 반환됐다. 옛날에도 그렇지만 지금도 굴곡이 많다. 테러의 위험이 상존하기에 검문이 심하다. 하지만 순례자와 여행자의 발길은 끊이질 않는다.

베두인 카페가 나오면 쉬었다가 다시 걷다가 한다. 걷는 동안은 체온이 올라가 몸이 뜨겁다. 바람은 올라갈수록 거칠다. 암산이 별빛 아래 살포시 나신을 드러낸다. 정상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마지막 난코스인 경사 급한 계단 백 개를 오르면 마지막 베두인 카페가 나온다고 한다. 지친 사람들은 뒤로 빠진다. 스티브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가이드 바로 뒤에서 계단을 밟는다.

가이드는 체크무늬 베두인 스카프를 머리에 둘렀다. 감기가 아직 떨어지지 않았는지 간혹 기침을 한다. 하지만 매일 산을 오르는 그의 두 다리는 지칠 줄 모른다. '사막에 사는 사람들'을 뜻하는 베두인(Bedouin). 베두인은 내게 전사와 같은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이들. 이들 몸은 깡말랐다. 하지만 눈만은 하늘의 별들을 몽땅 집어넣은 듯 반짝인다. 척박한 이곳도 베두인의 삶의 터전이다.
 
 하산길. 시나이 태양이 메마른 산 정수리를 축복하고 있다.
 하산길. 시나이 태양이 메마른 산 정수리를 축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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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나이 산 정상에 있는 모세 경당.
 시나이 산 정상에 있는 모세 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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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두인의 삶의 터전이 된 이곳에 일찍이 모세가 그의 동족을 이끌고 왔다. 이집트 왕자로 편안한 삶을 살 수도 있었을 그. 장장 40년을 광야에서 헤맨다. 그는 앞으로 닥칠 그리고 닥쳤던 고난을 견디느라 얼마나 외로웠을까.

땀 한 방울이 또르르 이마로 구르더니 눈 속으로 들어간다. 눈이 시린 나는 실눈을 뜨고 올려다본다. 열 계단 위로 전등 빛이 환하다. 정상 아래 마지막 베두인 카페다.

카페에서 충분히 쉬고 정상으로 올라갔다. 산꼭대기에는 오래된 건물이 있지만 추위를 막아주지는 않았다. 한 시간 사십분 동안 거친 바람을 견뎌냈다. 많은 사람들이 암벽에 붙어, 혹은 카페에서 빌린 담요를 둘둘 말고 일출을 기다렸다. 나와 스티브는 이집트인 도움을 받아 암벽에 걸터앉아서 비교적 괜찮은 조망권을 얻을 수 있었다.
   
 해 뜨기 전 지평선으로 퍼지는 붉은빛.
 해 뜨기 전 지평선으로 퍼지는 붉은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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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뜨자 인증 사진을 남기는 사람들.
 해가 뜨자 인증 사진을 남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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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시가 되자 수평선 같은 지평선에 시뻘건 햇무리가 길게 엎드렸다. 서서히 영역을 넓혀갔다. 수억 년 동안 이글거린 태양 아래 익어서일까. 어둠에 묻혀 있던 암벽과 암산은 달아오를 준비를 했다. 담요를 둘러쓰거나 암벽 틈새에서 추위를 피했던 순례자들은 하나둘 나와 난간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 뺨도 달아오른 몸처럼 붉었다. 어느 순간, 그 중심점에 황금알이 서서히 올라왔다. 

아…
          
▲ 시나이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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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올해 12 간지가 새로 돌기 시작했다. 쥐의 해, 경자년(庚子年)이다. ‘자(子)’라는 말은 처음을 뜻한다. ‘처음’이라는 말은 ‘끝(마무리)’이 있기에 사용 가능하다. 2020년의 끝은 2019년이다. 2020년 또한 2021년에게 1년 뒤 자리를 내줄 것이다. 끝의 시작이었던 2019년 새해 나는 다합에 있었다. 새삼스럽게 시작점인 지금, 그때로 되돌아가 본다. 매년 새해는 시간이 지나도 늘 ‘첫’이다. 그래서 싱그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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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차노휘는 소설가이다. 2016년부터 도보 여행을 하면서 ‘길 위의 인생’을 실천하고 있다. 2009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얼굴을 보다〉가 당선되었고 저서로는 소설집 《기차가 달린다》와 소설 창작론 《소설창작 방법론과 실제》, 여행 에세이 《쉼표가 있는 두 도시 이야기》 와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장편소설 《죽음의 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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