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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재인은요, 간첩이여, 간첩. 그냥 간첩을 동조하는 자가 아니라 문재인 자신이 간첩이라니까."

요즘 4월 총선을 앞두고 전국을 누비며 '국민대회' 부흥강사로 맹활약 중인 전광훈 목사의 말이다. 그의 막말이야 속옷 별명과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로 잘 알려져 있다. 막말 수위가 높을수록, 웬일인지 그를 따르는 대중은 더욱 열광한다.

무려 열세 가지 이상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검찰이 구속 영장까지 청구한 적 있으며 급기야 선관위까지 그를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하지만 일약 '극우 아이콘'으로 떠오른 그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법원의 구속 영장 기각으로 마치 '무죄' 판결이라도 받았다는 듯 외려 기세등등하다.

대체 전 목사가 '대통령 하야 운동'에, 그의 말마따나 '목숨 걸고' 나선 계기는 뭘까? 그의 말을 직접 살펴보자.  

"내가 그 전부터 의심을 많이 했지만 결정적으로 이 구국운동에 나오게 된 동기는 문재인씨가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인간으로서는 해서는 안 될 이 말을 한 거 때문에 내가 목숨을 내놓게 된 거야....(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사전 리셉션 문 대통령의 환영사 영상 중 '내가 존경하는 한국의 사상가 신영복 선생님은'이라 언급하는 장면 대형 화면에 3회 반복 재생)" _(1월 7일 대전 한밭체육관 집회 중 발언 )

전 목사는 전국 주요 도시 집회 때마다 이 대목을 거의 빠뜨리지 않는다. 그는 "'신영복은 대한민국의 간첩의 왕'인데 대한민국 대통령이 존경한다고 했다"며, "여러분 이 X을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라고 묻는다. 그러면 수천여 명의 청중은 '죽여!'라 합창하듯 큰 소리로 외쳐댄다. 이런 섬뜩한 광경은 최근 2주 사이만도 대전, 일산, 울산에서 거듭됐다.

전 목사는 "여러분이 죽이자고 했지, 난 죽이자고 안 했다"며 짐짓 딴청을 부린다. 전 목사 측근 고영일 변호사(기독자유당 대표)는 한술 더 뜬다. "우린 '주여!'라고 한 건데 사탄의 귀에는 '죽여!'라고 들린다"고 말이다. 하지만 전 목사가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 '간첩'이라 단정하고 '총살감'이라 막말까지 쏟아낸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문 대통령의 평창 환영사 맥락
 
 문재인 대통령이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사전 리셉션에서 환영사를 하는 장면
 문재인 대통령이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사전 리셉션에서 환영사를 하는 장면
ⓒ 연합뉴스tv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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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신영복 선생의 무슨 말을 인용하였기에 이처럼 입에 담기조차 힘든 악담을 듣는 걸까? 해당 맥락을 살펴보자.

"겨울 추위는 동계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강원도가 준비한 특산품입니다. 다행히 요즘 강원도가 제대로 춥습니다....(중략)... 오늘 우리도 추위 덕분에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강원도의 추위는 대한민국이 여러분에게 보낸 따뜻한 초대장인 셈입니다. 여러분, 대한민국 강원도 평창의 추위를 제대로 즐겨볼 준비가 되셨습니까? 제가 존경하는 한국의 사상가 신영복 선생은, 겨울철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것을 정겹게 일컬어 '원시적 우정'이라 했습니다. 오늘 세계 각지에서 모인 우리들의 우정이 강원도의 추위 속에서 더욱 굳건해 지리라 믿습니다."

문 대통령의 이 환영사는 딱히 흠잡기 어렵다. 행사에 참석한 각국 정상 중에서도 환영사를 못마땅해하거나 문제 삼은 사람은 없다. 현 정부 출범부터 평창 동계올림픽 이전까지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을 포함한 발사체를 무려 12회나 쏘았다. 남북 관계는 냉전시대로 돌아간 듯 혹한의 겨울이 계속됐다.

이 와중에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렸고 북한이 전격 참여하면서 모처럼 남북 화해의 싹이 움텄다. 신영복 선생이 말한 한겨울의 '원시적 우정'처럼 강원도 추위에서 더욱 굳건한 우정을 다지기 바라는 대통령의 언급은 남북관계 호전을 바라는 중의적 뜻이 잘 담겨 있는 걸로 보인다.

신영복 선생은 이른바 '통혁당 사건'으로 20년 20일을 복역했다. 대학 2년 때 4.19 혁명을 맞아 벅찬 감동을 맛보았던 그는 5.16 군사정변으로 4.19가 짓밟히자 학생운동에 몰두했다. 이후 숙명여대 강사 시절 <청맥>이란 잡지 편집 활동을 하던 중 선배 김질락(통혁당 산하 전위조직 민족해방전선 책임자)에게 포섭됐다. 하지만 신 선생은 통혁당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도 통혁당 최고 책임자 김종태, 이문규 등 핵심간부들과는 만나본 적도 없었다고 한다.

1970년 무기수로 형이 확정된 직후에는 전향서도 썼다. 1988년 8월 14일 특별 가석방됐고 10년 뒤인 1998년 3월에 사면 복권됐다. 출소한 이듬해부터 성공회대학에서 한국사상과 중국 고전, 정치경제학 등을 강의하였고 2014년부터 피부암으로 투병생활하다 2016년 1월 75세 연세로 별세했다.

어리석고 철 지난 '빨갱이 타령' 이제 그만 멈춰야
 
 신영복 교수가 남긴 저서들
 신영복 교수가 남긴 저서들
ⓒ 정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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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상범으로 젊은 시절을 감옥에서 다 보냈으나 더 부드럽고 웅숭깊은 휴머니스트로 변신하였다. 날선 정치적 이념보다는 고전과 삶의 경험에서 우려낸 인간과 세계에 대한 깊은 성찰로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많은 지성인의 존경을 받았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더불어 숲> <강의> <담론> 등 그가 남긴 저서는 지금까지도 널리 읽힌다.

2006년 8월, 신영복 교수의 정년 퇴임식에는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 이학수 삼성전략실 부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이현재 호암재단 이사장, 소설가 조정래, 유홍준 문화재청장, 이소선 전태일 열사 어머니 등 정재계 사회각계 인사가 참석했다. 이는 그가 얼마나 우리 사회에 폭넓은 영향을 끼쳤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출소 이후 신영복 선생이 정치적 발언으로 딱히 구설에 오른 일도 없다. 남북 분단으로 극단의 좌우 대립으로 치닫기 일쑤였던 이 나라 형편에서 신영복 선생의 따뜻한 '어깨동무' 정신은 두루 공감을 일으켰음이 분명하다.

문 대통령이 그를 존경한다고 그게 무슨 특이한 일도 색안경을 끼고 볼 일도 아니다. 신영복 선생이 통혁당 관련자로 옥고를 치렀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존경해선 절대 안 된다면 박정희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육사 중대장 시절 박정희는 남로당 군 총책 이재복에 포섭돼 남로당에 가입해 활동하였다. 그러다 1948년 숙군 과정에서 발각돼 1심 무기징역, 2심 징역 10년 선고와 동시에 형집행 정지로 석방된 바 있다. 이런 박정희를 존경한다는 사람들 역시 다 '간첩들'일까?

나아가 자유한국당 유니폼이 빨간색이니 그 유니폼을 입은 자는 '빨갱이들'일까? 터무니없는 소리다. 남북분단 비극이 낳은 이 어리석고 철 지난 '빨갱이 타령'은 이제 그만 멈춰야 한다. 전광훈 목사를 비롯한 일부 기독교인이 예수의 원수 사랑과 화해, 용서의 가르침과는 동떨어진 냉전 이데올로기에 여태 사로잡혀 있는 거 같아 안타깝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뉴스>에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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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이자 팟캐스트 '솔샘소리' 진행자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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