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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을 예방한 하태경 새로운보수당 책임대표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을 예방한 하태경 새로운보수당 책임대표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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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통합 논의에 속도가 붙었다. 보수적 시민단체들과 자유한국당·새로운보수당이 결성한 국민통합연대가 지난 9일 보수통합 6대 원칙에 합의하고, 13일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이를 수용했다.
 
같은 날 하태경 새보수당 책임대표는 '황교안이 수용한 6대 원칙 속에 새보수당 유승민의 보수재건 3원칙이 반영돼 있다'며 환영했다. 박근혜 탄핵 정국 때 갈라진 보수진영이 3년 만에 '헤쳐 모여'를 시도하게 된 것이다.
 
보수통합 6대 원칙은 ① 대통합의 원칙은 혁신과 통합이다 ② 시대적 가치인 자유와 공정을 추구한다 ③ 문재인을 반대하는 모든 세력의 대통합을 추구한다 ④ 청년의 마음을 담는다 ⑤ 탄핵이 장애물이 돼서는 안 된다 ⑥ 새로운 정당을 만든다로 정리된다. 보수재건 3원칙은 ① 탄핵의 강을 건너자 ② 개혁보수로 나아가자 ③ 낡은 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짓자다. 이 3원칙이 6대 원칙의 ①, ⑤, ⑥에 반영돼 있다.
 
친박세력과 우리공화당을 의식해 박근혜 탄핵에 대해 애매한 입장을 피력해온 황교안 대표가 '탄핵이 장애물이 돼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수용한 것은, 빅텐트(포괄정당)로 불리는 보수 대통합의 실현을 위해 박근혜로부터 한걸음 살짝 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탄핵의 강을 건너자는 유승민의 입장도 일정 정도 후퇴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는 박근혜 탄핵에 찬성표를 던졌다. 그랬던 그가 지난 2019년 11월 7일 바른미래당 변혁그룹 비상회의 때 '탄핵의 강을 건너자'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탄핵은 역사의 평가에 맡기고 이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차원"이라고 풀이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수의를 입고 법정에 출석하는 모습이 지금도 여전히 뉴스 화면에 보도된다. 이것은 역사의 평가에 맡길 문제가 아니라 법정에서 잘잘못을 가려야 할 문제다. 탄핵을 찬성했던 유승민이 '역사의 평가에 맡기자', '잘잘못을 따지지 말자'고 하는 것은 그 역시 촛불혁명의 대의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황교안뿐 아니라 유승민 역시 '2016년 이전의 보수'에 대한 미련을 충분히 털어버리지 못한 것이다.
 
그런 한계가 있다 해도 일단 통합을 이뤄내기만 하면, 일반적인 경우에는 총선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다. 통합이 되면 정치적 가용자원이 늘어나므로 표를 끌어들이는 구심력도 강해질 수밖에 없다. 대중 역시, 조금이라도 규모가 더 큰 정치집단에 시선을 보내기 마련이다.
 
하지만, 통합이 항상 순기능만 하는 것은 아니다. 통합은 일반적인 경우에는 득표율을 제고시키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저감시키기도 한다. 지금처럼 민중의 정치 역량이 고조돼 정치체제가 요동쳤던 1987년 6월항쟁을 전후한 시기의 정당 통합 사례에서 이를 체감할 수 있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은' 통합, 대히트 치다
 
민주주의를 향한 한국 민중의 열망과 전진은 1980년 5·18 광주학살에도 꺾이지 않았다. 노동자·학생, 민주화 진영의 투쟁은 변함없이 이어졌다. 이런 도도한 흐름을 무력으로 억압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고려대 학생위원장으로서 4·19혁명에 참여하고 박정희 정권 때 4선 의원을 지낸 뒤 전두환 정권 때 정치규제 대상자가 된 이기택(훗날의 민주당 총재)이 그때의 일을 회고했다. 정치규제를 받은 뒤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객원연구원을 하며 <한국 야당사> 등을 집필한 그는 작고 1년 뒤인 2017년에 발행된 회고록 <우행(牛行), 내 길을 걷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두환 정권은 규제조치를 취한 지 2년이 지난 1983년 2월부터 1985년 3월까지 4회에 걸쳐 단계별로 이들의 정치활동을 허용하는 이른바 해금조치를 단행하였다. 당시의 정치적 상황이나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 등으로 억압 정치의 한계를 느끼고 유화 정책을 펼친 것이었다."
 
전두환 정권의 핵심인 노태우는 결이 좀 다른 분석을 내놓았다. 1984년 11월 30일 해금조치의 배경에 관해 그는 <노태우 회고록> 상권에서 '야권 강경파와 온건파의 경쟁을 부추겨 야권 전체를 민주정의당(민정당)의 위성 세력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억압 정치의 한계를 느낀 결과이든 야댱 분열전략의 결과이든, 이 같은 해금 조치는 야당 내의 민주화 진영이 1985년 2월 12일 제12대 국회의원총선거를 겨냥해 통합을 모색하도록 만드는 계기가 됐다.
 
전두환 정권은 야권이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총선에 임하도록 하고자 선거 2개월 보름 전에 해금조치를 실시했지만, 야권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통합 작업에 뛰어들었다. 전두환 독재에 제동을 걸자는 공동의 목표 하에 이들은 신속히 통합을 이뤄냈다.
 
김대중계와 김영삼계가 단결하고, 이들이 다시 이철승계·신도환계·김재광계와 단결하는 작업이 발 빠르게 진행됐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듯한 통합의 결과로 신한민주당(신민당)이라는 통합 야당이 1985년 1월 18일 등장했다. 총선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12대 총선 선거 결과. (위키피디아 갈무리)
 12대 총선 선거 결과. (위키피디아 갈무리)
ⓒ 위키피디아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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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통합은 대히트를 쳤다. 총 276석 가운데 과반수인 148석을 집권당인 민정당이 가져가고 67석을 통합 야당인 신민당이 가져갔다. 외형상으로는 민정당의 승리 같지만, 속을 열어보면 그렇지 않다. 민정당의 득표율은 35.2%이고, 신민당의 득표율은 29.3%였다. 전국구(비례대표) 의석의 3분의 2를 제1당에 몰아주는 선거제도 때문에 민정당의 전체 의석이 늘어났을 뿐이다. 민정당의 패배가 분명한 선거였다.
 
살벌한 군부독재 하에서 신생 야당이 절대 열세를 극복하고 그 정도 성과를 거둔 것은 상당부분 통합의 힘이었다. 유권자들이 신민당에 표를 찍어준 것은 그들이 통합된 힘으로 전두환에 맞설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2·12 총선은 재야세력과 신민당의 직선제 개헌투쟁에 활력소가 됐고, 이것이 상당 정도로 밑바탕이 되어 1987년 6월항쟁이 국민의 승리로 끝날 수 있었다. 2·12 총선 직전의 야권 통합은 한국 현대사의 발전에 밑거름이 된 사건이다.

위기 몰린 보수가 친 '빅텐트'... 철퇴 가한 국민들
 
6월항쟁에 깜짝 놀라 직선제를 수용하고 부분적 민주화 조치를 받아들인 민정당. 수세에 몰렸던 그들도 정신을 가다듬은 뒤 보수통합이라는 무기를 들고 나왔다. 6월항쟁 이듬해의 총선 결과에 충격을 받고 그런 대처법을 선보였다.
 
민정당은 6월항쟁 6개월 뒤의 1987년 대통령선거에서는 김대중·김영삼 분열 덕분에 승리했다. 하지만, 1988년 13대 총선에서는 299석 중 125석밖에 얻지 못했다. 6월항쟁 이후 민주화 열기가 식지 않고 노동운동이 한층 거세지는 속에서 총선에서마저 참패했으니, 민정당 정권은 민중혁명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89년 9월 4일자 <경향신문> 기사 '개혁이 없으면 혁명이 일어난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노태우 정권은 혁명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런 고민 끝에 그들이 내놓은 해법은 상당히 엉뚱했다. 국민들의 변화 열망을 수용하는 게 아니라 인위적인 정계개편으로 대응하고자 했던 것이다. 1990년 1월 22일 민정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이 바로 그것이다. 이 3당 속에는 민주화 진영의 통일민주당도 들어 있었다. 황교안 대표가 말하는 빅텐트를 노태우 정권이 이때 실현시켰던 것이다.
 
민정당 정권은 김기춘 검찰총장(재임 1988~1990년)을 선봉장으로 내세워 공안정국을 조성하고 이를 통해 국민들의 민주화 운동을 억압하려 했다. 동시에, 3당 합당보다는 3당 야합으로 더 많이 불린 보수 대통합을 통해 정치권의 반(反)보수화에 제동을 걸고자 했다.
 
3당을 엮어 민주자유당(민자당)이라는 빅텐트를 친 보수 지도부는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 당연히 승리할 것으로 예상했다. 1988년 총선 개표 시점을 기준으로 할 때, 세 정당의 의석 수는 민정당 125석, 통일민주당 59석, 신민주공화당 35석, 도합 219석이었다. 299석의 73.2%를 점했던 것이다. 이들 셋이 하나로 통합했으니 14대 총선에서도 쉽게 승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그들의 통합에 철퇴를 가했다. 국민들이 만들어놓은 13대 총선 결과를 인위적이고 무원칙적으로 변형시킨 통합의 주역들에 대해, 국민들은 그들의 의석을 빼앗는 것으로 응수했다. 14대 총선으로 민자당 의석은 149석이 됐다. 219석이 149석으로 줄어든 것이다.
 
 14대 총선 선거 결과. (위키피디아 갈무리)
 14대 총선 선거 결과. (위키피디아 갈무리)
ⓒ 위키피디아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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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인한 후유증을 보수 진영은 오래도록 털어버리지 못했다. 민자당 계열 정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한 것은 그로부터 16년 뒤인 2008년 제18대 총선 때다. 1996년 제15대 139석, 2000년 제16대 133석, 2004년 제17대 121석에서 알 수 있듯이, 보수 진영은 3당 합당 당일의 의석 수는 물론이고 과반수 의석도 오랫동안 회복하지 못했다. 시대적 가치인 민주화를 그런 식으로 저지하려 한 보수 진영에게 국민들이 대응을 했던 것이다.
 
1985년의 통합은 성공했고, 1990년의 통합은 실패했다. 1985년 통합을 이룬 정치세력은 극도의 열악한 상황에서 선거를 치렀다. 1990년 통합을 이룬 쪽은 극도로 유리한 상황에서 선거를 치렀다. 그런데도 결과는 정반대였다.
 
이런 차이가 생긴 이유 중 하나는 시대 흐름에 대한 태도에 있다. 1985년 통합은 시대적 가치인 민주화 흐름에 순행하는 것이었다. 반면, 1990년 통합은 그에 역행하는 것이었다.
 
제아무리 거구의 장사라도 군중이 달려들면 어쩔 수 없다. 통합으로 몸집을 불린다 해도 시대 흐름과 맞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6월항쟁을 전후한 두 개의 통합이 하나는 성공하고 하나는 실패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바른미래당 집단탈당 선언한 유승민  바른미래당 유승민 이혜훈 하태경 지상욱 정병국 의원 등이 3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집단탈당 선언을 한 후 나서고 있다. 유승민 의원 왼쪽으로 이준석 전 최고위원도 보인다.
▲ 바른미래당 집단탈당 선언한 유승민  바른미래당 유승민 이혜훈 하태경 지상욱 정병국 의원 등이 3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집단탈당 선언을 한 후 나서고 있다. 유승민 의원 왼쪽으로 이준석 전 최고위원도 보인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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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의 6대 원칙과 유승민의 3원칙에서 알 수 있듯이, 보수통합의 추진 세력은 아직도 과거에 대한 미련을 털어버리지 못하고 있다. 유승민도 '박근혜 탄핵이 잘됐다'고 명쾌하게 말하지 못하고 그냥 '그 강을 건너자'고만 말하고 있다.
 
또 6대 원칙에서는 지금의 시대적 가치가 '자유'로 규정돼 있다. 이 '자유'는 신체의 자유가 아니라 경제의 자유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세계 전역에서 대기업 중심의 신자유주의가 퇴조하고 있다. 또 일자리가 줄어드는 4차 산업혁시대에는 기본소득과 복지 확대가 불가피하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 중심의 '경제적 자유'를 최고의 시대적 가치로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1985년 통합의 주역들은 시대 흐름을 타는 통합을 해서 '빅히트'를 쳤고, 1990년 통합의 주역들은 시대 흐름에 벗어난 통합을 했다가 된서리를 맞았다. 어떤 통합이 성공하고 어떤 통합이 실패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두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황교안 대표와 유승민 의원은 6대 원칙과 3원칙을 다시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성공적인 통합을 위해 두 사람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은 지난날의 보수와 완전히 절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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