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사회

포토뉴스

 
지난 13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 씨의 분향소가 마련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추모객들이 추모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13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 씨의 분향소가 마련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 추모객이 영정을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 법을 제정하든 대책을 세우든 어떤 행위를 한다고 하더라도 저희에게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여러분들과 함께 김용균씨를 위로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고 김용균씨와 함께 일했던 동료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 했다. 띄엄띄엄 힘겹게 뱉어내는 동료의 눈물섞인 한탄에 시민들은 고개를 푹 숙이거나 한숨으로 답했다.

지난 11일 충남 태안군 원북면 태안화력 9·10호기에서 운송설비점검을 하던 협력업체 직원 김씨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목숨을 잃었다. 태안화력발전소의 협력업체인 한국발전기술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지 3개월도 안 된 그는 10일 오후 10시쯤 운용팀 과장과의 통화를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겼다. 6시간 만에서야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됐다. 혼자 일하다 사고를 당해 그가 언제 어떻게 사망하게 됐는지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24살 비정규직 청년의 참담한 죽음에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었다. '고 김용균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13일 오후 7시 서울 광화문 세월호광장에서 김용균(24)씨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제를 열었다.

영하에도 촛불 든 시민들 "나는 너다"

 
지난 1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 씨를 추모하는 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고 김용균씨 추모제 ⓒ 신지수
 
수십여 명의 시민들은 영하의 날씨에도 광장에 모여 '나도 김용균, 나는 너다'를 이야기했다. '죽음마저 외주화한 차가운 세상 속에 노동자는 하나둘씩 쓰러져 갑니다', '언제까지 일하다가 죽어야 합니까' 등을 적은 손팻말을 들기도 했다.

인터넷망 설치 수리 비정규직 노동자 최영렬씨는 "일을 하다 옥상에서 떨어지면 관리자에게 보고한다"라며 "관리자의 첫 마디는 '남은 일은 어떻게 할 거냐, 내일 출근 할 수 있냐'다"라고 했다. 최씨는 "원청이 실적으로 지표로 압박하고 착취하는 구조 속에서 하청업체 관리자들은 하청 노동자에게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라고 덧붙였다.

청년노동자 단체 '청년전태일' 김재근 대표도 "20대 때 일하던 회사와 돈 주는 회사가 달라서 진짜 사장이 누군지도 모르고 일했다"라며 "퇴직금을 받지 못했을 때 비로소 하청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라고 했다.

청년정치공동체 너머 신민주 대표는 "20살부터 5년 동안 알바를 전전하며 살았다"라며 "정규직 전환은커녕 심각한 화상을 당한 채 응급실에 실려갈 때 '가게에 민폐나 끼치는 주제에 버릇없게 산재를 요구하냐'는 말을 들었다"라고 했다.

신 대표는 "우리의 일상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너무나 밀접하게 닿아 있다"라며 "소득주도성장을 바탕으로 좋은 일자리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말은 우리 삶과 너무 멀고, 위험하고 불안정한 일자리는 너무나 가깝다"라고 했다.
 
"구의역 기억하겠다고 했지만...죽음 반복"

 
지난 13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 씨의 분향소가 마련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추모객들이 추모하고 있다. ⓒ 연합뉴스
 
 참석자들은 김씨의 죽음이 '구의역 김군'과 닮아 있지만 바뀌지 않는 현실이 답답하다고 했다. 지난 2016년 5월 서울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홀로 수리하던 비정규직 노동자 김아무개(19)군은 기차와 안전문 사이에 끼여 숨졌다. 스크린도어 점검은 2인 1조로 하는 게 원칙이지만, 인력부족으로 김군은 혼자 구의역 플랫폼에 올라야 했다.

고 김용균씨도 마찬가지였다. 노조에 따르면, 현장 노동자들은 지속적으로 2인1조 근무를 주장해 왔지만, 경쟁입찰 때문에 비용을 줄여야 했던 협력업체는 이를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결국 김씨는 10일 밤 홀로 작업장에 내몰렸고 참변을 당했다.

신민주 대표는 "구의역 참사를 기억한다, 스크린도어에 붙어 있던 포스트잇을 기억한다"라며 "문재인 대통령은 구의역 참사를 기억하겠다고 했지만, 위험의 외주화는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홀로 추모제에 참석한 최아무개(32)씨도 "죽음이 반복될 때마다 정치인들과 우리 사회는 재발방지를 이야기 하지만 달라지는 게 없었다"라며 "시민으로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죄책감과 미안함이 든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닦았다.

더는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도 나왔다. 김씨의 소식을 접한 뒤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친구들과 함께 추모제에 참석했다는 대학생 임혜영(20)씨는 "고인이 제 선배가, 제 친구가 될 수 있었다"라며 "내가 김용균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임씨는 "문재인 대통령께 면담을 요구하는 게 고인의 마지막 사진이다"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만나주기만 했어도, (노조가 요구해온) 2인 1조가 지켜지기만 했어도, 고인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했다. 임씨는 "같은 사회를 사는 청년이자 대학생으로서 더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라며 "가만히 있지 않겠다"라고 다짐했다.

기가 막혀서 나왔다는 임경자(58)씨도 "일하다 죽는 일이 너무 많아서 이제는 충격적이지도 않다"라며 "촛불과 추모에서 끝낼 게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가 바뀌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라고 했다. 추모제 참석자들은 "위험의 외주화를 끝내야 한다"라며 "문재인 대통령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만나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서울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고 김용균씨 추모제 ⓒ 신지수
   
세월호 광장에 차려진 분향소... 눈물의 분향

1시간 30분 정도 이어진 추모제가 끝난 뒤, 시민들은 바로 자리를 뜨지 않았다. 세월호 광장 한 켠에 마련된 분향소 앞으로 긴 줄이 이어졌다. 안전모와 마스크를 쓴 채 '나 김용균은 화력발전소에서 석탄 설비를 운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든 고 김용균씨의 영정사진 앞에서 시민들은 고개를 들지 못 했다.

분향을 끝내고도 한참 동안 눈물을 멈추지 못 한 엄미경(68년생)씨는 "두 아이의 엄마로서 청년의 현실이 너무 가슴 아프다"라며 "기성세대로서 미안하고 부끄럽다"라고 말했다. 엄씨는 "자꾸 반복되는 청년들의 죽음에 누군가는 대답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은데..."라고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였다.

그는 "우리가 몇 년 전 겨울에 나와서 촛불을 들었던 것은 정권이 바뀌면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었다"라며 "하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는 현실이 너무 가슴아프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청년들이 더 이상 죽음을 당하지 않는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생각만 하지 말고 실천해야겠다 생각했다"라며 "그 첫 시작이 이곳에 나온 일이다"이라고 했다.
댓글26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오마이뉴스 사회경제부 신지수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