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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태 마메든샘물 대표는 10년 넘게 하이트진로의 횡포에 맞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유성호

가스버너로 밥 해먹고, 잠은 트럭 짐칸에서

19일 서울 서초구 남부터미널 인근 하이트진로 빌딩 앞에는 낡은 1.5톤 포터 트럭이 서있었다. 트럭은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거칠게 벗겨져 녹슨 철이 드러나 보였다. 검은 햇볕가리개로 칭칭 둘러싸인 트럭 짐칸은 보기만 해도 답답해 보였다.
 
트럭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하이트진로음료를 비판하는 카랑카랑한 남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울 강남 한복판, 말끔한 빌딩과 낡은 트럭은 그렇게 불편한 동거를 하고 있었다. 주변 가로수에는 빨간색 바탕에 장문의 글이 적힌 현수막 8개가 어지럽게 걸려 있었다. '하이트진로의 범죄 행위'이라는 단어가 유독 눈에 띄었다.
 
"아침 7시부터 현수막 걸기 시작하면 한 12시쯤 끝나요"
 

낡은 트럭의 주인은 김용태(59)씨다. 그의 일과는 아침에 일어나 현수막을 거는 것부터 시작된다. 현수막 8~9개를 혼자서 내걸려니, 오전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하루 일과는 현수막을 걸었다 내리는 게 전부다.
 
불볕 더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는 19일 서울 서초구 하이트진로 본사 앞에서 김용태 대표가 숙식을 해결하며 농성 투쟁을 벌이고 있는 트럭 짐칸 온도계는 3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유성호
 
김용태 대표는 연일 불볕 더위에 힘들어하는 자신을 응원하기 위해 시민들이 꽁꽁 얼린 생수를 갖다준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유성호

가스 버너로 밥을 해먹고, 잠은 트럭 짐칸에 있는 작은 텐트에서 잔다. 웬만한 일이 없으면 이곳을 떠나지 않는다. "하이트진로음료에게 사과를 받기 위해서"다. 하이트 측과의 악연을 이야기하자, 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는 잘 나가는 생수업체 사장이었다. 지난 2000년 6월 마메든샘물이라는 회사를 차리고, 충남 지역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은 번창했다. 2005년 김씨가 공급하는 생수를 받는 대리점은 11개까지 늘었다. 2006년 회사 연 매출은 60억 원이 넘었고, 언론에도 유망 기업으로 소개됐다.
 
사업이 한창 날개를 펴나가던 2006년 1월, 하이트진로음료(옛 석수) 직원들이 김씨를 찾아왔다. 이들은 김씨에게 "마메든 샘물 상표를 떼고, 자기들의 석수 상표를 달고 판매할 것"을 요구했다. 김씨가 나날이 성장하는 회사 브랜드를 포기할 이유는 없었다. 단호히 거절했다.

'상표 떼라'는 요구 거절하자...
  
ⓒ 유성호
 
그때부터 '보복'이 시작됐다. 하이트 측은 김씨와 거래하는 대리점을 접촉했다. 대리점주들이 거절하기 힘든 좋은 조건을 걸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하이트진로음료는 계약 초기 1년간 대리점 판매 물량의 절반을 무상 지원하고, 생수 공급 가격도 30% 낮추는 조건을 내밀었다. 계약해지에 따른 소송비도 절반을 지원해준다고 했다. 김씨의 거래처를 끊으려는 속셈이었다.
 
대리점주들은 이 조건을 거절하지 못했다. 2008년 7월, 마메든샘물과 대리점 계약을 맺은 11곳 가운데 9곳이 하이트진로음료로 넘어갔다. 한때 자살시도까지 했던 김씨가 정신을 차리고 대리점들을 설득했지만 소용없었다. 거래처가 무너진 김씨 회사는 폐업 위기에 몰렸다.
 
"사실 한번 대리점 관계를 맺으면 다른 회사로 옮기기 어려워요. 그런데 조건이 터무니없다 보니까... 우리랑 계약 파기해서(하이트진로음료와 계약 맺으면) 집 한 채 값을 버는데, 안갈 수가 없어요. 우리 회사를 죽이려고 그런 거죠."

 
김씨는 지난 2010년 4월 공정위에 하이트진로음료를 고발하면서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다.
 
공정거래위원회, 서울중앙지법, 국회, 청와대 등을 돌며 시위를 했다. 김씨가 끈질기게 문제를 제기한 끝에 공정거래위원회는 2013년 7월 하이트진로에 대한 시정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하이트 측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정위의 시정 명령에 불복해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김씨는 지난 2014년 9월 1일부터 이곳 하이트진로 빌딩 앞에서 농성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딸 결혼식 날도 시위... 사위도 여기서 처음 봐"
 
현수막에 적힌 하이트진로의 갑질행태를 설명하고 있는 김용태 대표.ⓒ 유성호

하이트 측이 가처분신청 등을 제기하면서 시위를 막으려 하는 와중에도 독하게 자리를 지켰다. 둘째 딸이 결혼을 하던 날도 잠깐 식장에 들렀다가 다시 복귀했다. 상견례도 이곳에서 했다.
 
"2015년 4월 4일, 강남역 지나서 어딘가 예식홀이 있어요. 딸이 강남 예식장에서 결혼할 때도, 옷 갖고 오라고 해서 입고 갔다가 돌아와서 또 시위했어요. 결혼식 하는 거 잠깐 보고 다시 여기로 복귀했어요. 사위도 여기(시위 현장)에서 처음 봤어요"

 
김씨는 트럭 짐칸에 쳐진 텐트 안에서 잔다. 텐트 속 1평 남짓한 공간이 김씨의 침대다. 텐트 높이가 1m도 안 된다. 키 177cm인 김씨가 허리를 굽혀야 겨우 앉을 수 있다. 텐트 주변에는 가스버너, 집기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오랫동안 이 곳에 머물면서, 허리에 문제가 생겼다.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로 그의 허리 상태는 좋지 않다.
 
"안에 있으면 허리를 못 펴고 구부정하게 앉아 있어야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허리 병이 생겼어. 의사가 양반자세로 절대 앉지 말라고 하는데, 그럴 수 있나요. 그렇다고 마냥 누워 있는 것도 쉽지 않아요."

 
굳세게 버티는 김씨에게도 여름은 고역이다. 트럭 짐칸의 텐트는 여름 한낮, 최고 온도가 50도까지 올라간다. 날씨가 제법 선선해진 19일 오후에도 텐트 안 온도는 35도를 훌쩍 넘겼다.
 
"겨울보다 여름이 더 힘들어요. 겨울은 추워도 꽁꽁 싸매고 있으면 되는데, 여름은 그게 아니잖아요. 밤에는 차량 소리가 시끄럽기도 해서 잠을 제대로 못 자요. 하루 3~4시간 정도 잘까?"
 

더위를 식힐 만한 도구는 손선풍기가 전부다. 흐르는 땀을 씻을 곳도 마땅치 않다. 수건을 물에 적셔서 온 몸을 닦는 것이 그만의 '샤워법'이다. "짬을 내서 사우나라도 다녀오면 어떻겠냐"고 묻자 김씨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김씨는 이곳에서 끝을 보겠다고 했다. 그가 시위를 접는 조건은 하나. 하이트진로음료의 공개 사과다.
 
"제 삶은 이 사건으로 종지부를 찍을 거 같아요. 저(하이트진로음료)들이 사과하지 않는 이상, 저는 죽는 그날까지 여기 있을 거예요. 힘없는 백성들은 너무나 비참한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에요. 그런 현실을 조금이나마 알리고 바꿔야죠. 저런 악질 행위를 하는 대기업 횡포를 알리고, 공개 사과를 받아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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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경제부 소속입니다. 주로 땅을 보러 다니고, 세종에도 종종 내려갑니다.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