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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1일 지구 반대편 남대서양에서 갑작스럽게 침몰해버린 스텔라데이지호. 2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폴라리스쉬핑
 

지난 3월 31일, 제 2의 세월호 참사라고 불리는 스텔라데이지호 참사가 2주기를 맞는 날이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2017년 취임 이후 1호 민원으로 스텔라데이지호 참사를 지정하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2년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는 최근까지 진행되었던 심해수색과 유해수습까지 잠정 중단된 상태이다. 여전히 실종자 가족들의 속은 타들어 가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우리를 멀리 떠나버린 스텔라데이지호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남대서양 한가운데서 갑작스럽게 침몰하다>

길이 311m의 초대형 선박 스텔라데이지호는 브라질 구아이바를 출발해 중국 칭다오로 항해하고 있었다. 26톤의 철광석을 실은 광석 운반석이었던 이 배에는 당시 필리핀 선원 16명, 한국인 선원 8명으로 총 24명의 선원이 타고 있었다. 그러다 2017년 3월 31일, 스텔라데이지호는 갑작스럽게 남대서양 한가운데에서 침몰하게 된다. 31일 23시 20분경에 스텔라데이지호의 보유선사였던 폴라리스쉬핑에 카카오톡 메시지로 선박의 2번 포트 침수 사실을 알린 뒤 연락이 두절되었다. 이후 당시 배에 탑승하고 있던 필리핀 선원 2명만 구조되었으며, 한국인 선원 8명을 포함해 나머지 선원 22명은 실종 상태다. 2년 전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는 지금도 남대서양 한가운데 가라앉아 있다. 

 
31일 23시 20분경 침몰 당시 스텔라데이지호의 보유선사였던 폴라리스쉬핑에 전달된 카카오톡 메시지.ⓒ 폴라리스쉬핑
 
 
<노후 개조 선박은 시한폭탄이었다>

스텔라데이지호가 왜 갑작스럽게 침몰하였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많은 이들이 스텔라데이지호 선박의 노후화를 가장 큰 위험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는 1993년 일본에서 건조된 유조선을 광탄선으로 개조한 선박이다. 오래된 배라도 제대로 수리하고 정밀하게 검사를 받으면 위험이 적을 수 있다. 그러나 폴라리스쉬핑에 근무했던 선원들은 스텔라데이지호의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으며, 이전부터 크고 작은 사고가 많았다고 증언했다. 일본 해상법전문 변호사인 토다 미치히로는 "1990년대에 100척 정도의 철광석 운반선이 침몰해서 많은 선원들이 650명 이상의 선원들이 목숨을 잃었다. 엄청난 사고였다. 그런 위험한 해상운송을 이런 오래된 유조선을 개조한 운반선으로 하겠다는 발상 자체 가 애초부터 안전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 한다.
 
유사한 침몰 사고 선박이라고 일컬어지는 세월호도 청해진해운이 1994년 6월 일본에서 건조한 카페리선을 2012년 10월 경 중고 선박 시장에서 사들여와 2013년 2월까지 증개축을 한 뒤, 2013년 3월 15일 첫 출항을 하였다. 또한 2014년 12월 1일 러시아 서베링 해에서 좌초되었던 대형어선인 501 오룡호 또한 선박의 심각한 노후화가 주된 침몰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한편, 필리핀 생존자 A씨의 구조 당시 인터뷰를 보면 "배 밑 부분이 V자로 갈라졌다",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선체가 흔들렸다"고 이야기 한다. 필리핀 생존자 B씨는 "뭔가 진동하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저희 측 1등 항해사도 배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을 했다. 가끔 배가 균형을 못 잡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라고 얘기 한다. 배가 갈라져 침몰했다는 것이다. 생존자들은 당시 25년이 된 대형 탄광선 스텔라데이지호의 선체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필리핀과 필리핀 선원 생존자 A씨는 사고와 관련해서 말하지 않기로 선사 (폴라리스 쉬핑)과 합의하였다고 이야기한다. 생존자들이 선사 본인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도록 돈을 주고서 입을 틀어막은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폐선 시켜야 할 노후 개조 선박이 27척이나 있다. 그중에 사고회사였던 폴라리스쉬핑에는 아직도 16척이나 존재하며, 여기에는 약 1000명 정도 되는 많은 선원들이 배가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 생명을 담보로 근무를 하고 있다. 언제 사고가 날지도 모르는 노후 개조 선박이 버젓이 운항이 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한편, 대한민국의 화물선 안전 점검은 '한국선급'이라는 곳에서 하는데, 전에 세월호 또한 이곳에서 점검이 이뤄졌다. 중요한 사실은 이곳의 사외 이사들이 선박회사의 회장들이라는 사실이다. 안전점검이 제대로 이뤄진다는 보장이 없으며,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꼴이라고 할 수가 있다.
 
<사라진 구명벌의 행방>

 
남대서양 스텔라데이지호 사고 해역에서 필리핀 승무원이 타고 있던 구명벌(구명뗏목).ⓒ 폴라리스쉬핑
 

스텔라데이지호의 또 다른 미스테리 중 하나는 사라진 구명벌이다. 스텔라데이지호에는 자동으로 펴지는 탈출용 고무보트인 '구명벌' 2개가 있었다. 이 중 하나는 필리핀 선원들이 타고 있다가 발견됐고, 나머지 하나는 지금껏 발견되지 않고 있다. 실종된 선원들이 타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실제로 사고 발생 10일째 미 해군 P8초계기가 바다 위 사진을 찍었는데 그 사진에 구명벌로 보이는 물체가 찍히기도 했었다. 4월10일 미 해군은 해상 300미터 상공에서 내려다보면서 오렌지색의 물체를 발견한다. 이후 우루과이 해경을 통해 우리 정부에 공문을 보냈는데, "1차 수색으로 오렌지색 구명벌로 보이는 물체를 발견했는데, 기름띠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현재 확인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외교부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렸다. 그러면서 "오늘 밤 사진을 확보할 예정이다. 내일 공개하겠다"고 했지만 외교부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 사진을 공개하지 않았다. 미군의 공문 내용을 접수한 폴라리스쉬핑은 다음 날인 4월10일 해당 사진에 대해 "구명벌이 아닌 기름띠로 확인됐다"며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그러자 대다수 언론은 선사의 말을 단정적으로 보도하면서 '구명벌'은 기름띠 사진이 돼 버렸다. 이것이 실종자 수색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에 실종자 가족들은 스텔라데이지호 탑재 구명벌과 실제 기름띠 사진을 공개하며 선사의 주장을 반박했다.
 
<미흡한 정부의 초기 대처>

그러나 가족들의 뜻과는 반대로 정부의 수색 작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수색작업에 앞서 실종 선원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해류 분석이 필수적이다. 구출된 필리핀 선원 두 명이 탄 구명벌이 발견된 곳은 사고 지역과 상당히 떨어진 곳이었다. 바다는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해류의 흐름과 시간 등을 가정해 선원들의 위치를 찾아야만 수색의 실효성을 거둘 수 있다. 가족들이 사고 초기 정부에 해류 분석을 요구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해수부가 수색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우루과이 해역 해류 분석은 거리가 멀기 때문에 1년은 걸린다"며 해류 분석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그러나 SBS 《그것이 알고 싶다》와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실에서 전문가에게 의뢰한 결과, '1년이 걸린다'던 해류 분석은 단 3일 만에 끝났다. 당시 전문가 분석에 따르면, 4월9일 해류 좌표와 미 해군 초계기가 구명벌로 추정한 물체를 발견한 지점이 거의 일치했다. 해수부가 실종 선원들을 찾는 데 소극적이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고 발생 한 달 후 선사는 수색 축소와 가족들이 머물고 있던 상황실 폐쇄를 통보했다. 대통령 선거날인 지난해 5월9일 외교부도 선사의 요청이라며 수색 종료를 통보했다. 선사가 계약한 구조선 2척이 철수했고, 외교부는 '집중 수색'을 중단하고 침몰 해역을 지나가는 선박들이 실종 선원과 물체를 찾아보는 '장기 수색' 체제로 전환했다. 사실상 수색에서 손을 뗀 것이다. 가족들은 새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 선사와 외교부가 서둘러 수색을 끝내려 한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실종 선원 가족들은 5월10일 청와대에 문재인 대통령 앞으로 '1호 서한문'을 전달했다.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와 수색 연장을 촉구하는 온라인 서명 명단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1호 민원'이다. 청와대는 관계 부처에 수색과 구조에 필요한 종합적 조치를 지시했다. 정부는 이 조치에 따라 6월17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 있던 싱가포르 국적 2400톤 선박을 사고 해역으로 출발시켰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이 실시한 표류예측시스템 시뮬레이션 결과, 선원의 표류 가능성이 있다고 설정된 수색구역은 배가 침몰한 남대서양 해역 내의 가로 300km, 세로 220km, 총 2만8600㎢ 정도의 해상이었다. 대략 세 척의 배를 활용해 약 22일에 걸쳐 수색할 수 있는 구역이다.
 
해수부는 이를 토대로 침몰 지점 인근 해역 3만㎢에 대한 수색을 벌였다. 하지만 '2차 수색'에서도 구명뗏목 등 실종자 흔적을 찾는 데는 실패했다. 7월11일 해수부는 침몰 해역 인근에서 실종자 수색을 벌이던 정부 수색선박과 선사 수색선박의 수색 종료를 선언했다. 정부가 사고 해역에 투입한 2400톤급 수색선박의 계약 기간이 이날 종료되면서 내린 조치다. 선사인 폴라리스쉬핑이 투입한 수색선박도 이날 함께 철수했다. 사고 당시부터 5월10일(1차),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인 6월26일부터 7월11일(2차)까지 수색에 나섰지만, 구명조끼 2개 등 배에서 나온 물품 몇 개 외에는 건진 것이 없었다. 가족들은 줄곧 '부유물 식별'을 강조해 왔다. 배 안에는 구명조끼, 방수복, 구명튜브 등 물에 뜨는 물품이 100여 개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배가 가라앉아도 구명조끼와 안전모 등 부유물이 발견돼야 하는데도 수색작업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수색구역 설정을 제대로 못했거나, 수색을 제대로 안 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가족들은 나머지 구명벌이 발견되지 않는 한 선원들이 살아 있을 가능성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구명벌에는 비상식량과 낚시도구, 응급의료장비 등 생존 장비가 탑재돼 있는 데다, 현지에 종종 비가 내려 식수가 보급되기 때문에 장기간 생존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실종된 지 너무 오래되어서 선원들의 생존 가능성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2016년 12월에 그리스 선박에 화재가 발생해서 선원들이 구명정을 타고 탈출했는데 그때 버려진 구명정이 양쪽 문이 열려있는 상태에서 14개월 동안 표류했는데도 끄떡없었다. 게다가 내부를 보니 선원들이 먹다가 버린 물병까지 잘 보존되어 있었다. 스텔라데이지호가 침몰한 남대서양의 기후는 폭풍우가 적기 때문에 생존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고군분투했던 지난 2년과 극적인 수색재개>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사고 초기, 정부의 공식 입장은 세계 어디에도 심해 3000m에서 수색할 수 있는 기술이 없다는 것이었다. 평범한 시민이었던 실종자 가족들은 그 말을 믿었다. 하지만 에어프랑스 477편 추락사고의 수색 과정을 살펴보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09년 5월 31일 승객과 승무원 228명을 태우고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프랑스 파리를 향해 출발한 에어프랑스 477편이 추락하였고, 이후 프랑스 정부가 '레모라 6000'이라는 로봇 잠수정을 투입해 약 2년 뒤 심해 3900m 지점에서 블랙박스를 찾아내었다. 즉, 스텔라데이지호가 침몰해 있는 남대서양 심해 3000m 지점도 충분히 수색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2009년 6월 1일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국제공항을 이륙한 항공기 에어프랑스 447편이 대서양에서 추락하였다. 이후 프랑스 정부가 ‘레모라 6000’이라는 로봇 잠수정을 투입해 약 2년 뒤 심해 3900m 지점에서 블랙박스를 찾아내었다.ⓒ 에어프랑스
 

실종자 가족들은 2017년 가을부터 사고 원인을 규명할 수 있는 스텔라데이지호 블랙박스 수거를 요구해왔다. 2018년 2월부터 10차례에 걸쳐 실종자 가족들과 정부가 머리를 맞대었고, 지난해 4월 19일 외교부와 해양수산부, 박완주 의원 등이 주최한 '스텔라데이지호 심해 수색장비 투입 검토 공청회'가 국회에서 열렸다. 공청회에서는 심해수색의 현실성과 가능성이 충분히 있음이 논의 되었으나, 공청회 이후에도 정부는 국내에서 심해 수색을 한 전례가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2017년 가족들이 국회에서 뛰어다니며 호소한, 심해 수색을 위한 예산 편성 요구가 무산된 것도 '(심해 수색) 전례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정부는 심해에서 선체를 절단 할 수 있는 기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 우즈홀 해양연구소에는 선체 절단용 기계가 존재했다. 심해 6000m에서도 무인 잠수정을 이용해 선체 절단이 가능하다고 우즈홀 해양연구소 연구원들은 말했다.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가족대책위원회 허영주 대표는 "우리가 어디까지 정부를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다"라고 이야기 했다.
 
지난해 8월 14일 국무회의에서 스텔라데이지호에 대한 심해 수색이 결정되고 예산이 편성되었지만, 산 너머 산이었다. 심해 수색 자체가 워낙 특수한 분야여서 전 세계에 이를 진행할 수 있는 업체가 몇 안 되었던 것이다. 단 한 군데 업체도 응하지 않자 가족들은 충격을 받았다. 편성된 예산 53억원이 적은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는 지난해 10월 23일~11월 5일 추가 입찰을 진행했다. 허영주 공동대표가 "이런 낮은 가격에 다시 입찰에 응할 업체가 과연 나오겠는가?"라며 낙담했다. 1년간 국회와 주무 부처인 외교부와 해수부를 쫒아 다닌 보람도 없이 입찰 자체가 무산될 위기였다. 추가 입찰 종료 마지막 날까지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날 오후에 날아든 소식. 미국 휴스터에 본사를 둔 심해 수색 업체 오션인피니티가 입찰에 응했다. 가족들 처지에서는 기적 같은 소식이었다. 정부는 유일한 입찰 업체인 오션인피니티와 계약을 맺었다.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들은 오션인피니티가 신생 업체라는 점을 걱정했다. 허영주 대표는 "우리는 단 한 번밖에 기회가 없다. 2차, 3차 수색을 기대하기 힘들다. 이번 기회를 반드시 성공시켜야 우리 선원들의 사고 원인과 생사를 확인할 수가 있다. 그래서 가장 잘하는 업체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다행히 이런 걱정을 씻을 소식이 날아들었는데, 오션인피니티가 아르헨티나 인근 해역에서 실종된 아르헨티나 해군 잠수함을 수색하는데 성공했다는 소식이었다. 이후 실종자 가족들은 오션인피니티에 대한 믿음을 갖기 시작했다. 이후 지난해 12월 28일, 한국 정부와 오션인피니티의 계약이 체결되었다. 오션인피니티는 다른 업체보다 더 많은 심해 수색 전문장비를 보유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여러 번 수색 작업을 같이 한 '시베드 컨스트럭터호'와 공동 작업이 성공률을 더 높일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2년 전 남대서양에서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의 흔적을 찾기 위한 '오션 인피니티'사의 심해수색이 시작되었다. ⓒ 폴라리스쉬핑
 

오션인피니티가 맡게 된 스텔라데이지호 수색의 가장 큰 목표는 배의 상태 확인과 블랙박스라 불리는 VDR(Voyage Data Recorder – 선박항해기록장치) 수거, 그리고 구명벌 확인이었다.심해에 가라앉아 있는 스텔라데이지호의 상태가 어떤지에 따라 VDR을 어떻게 회수할지 결정할 수 있었다. 한편, 블랙박스 회수는 사고원인 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필수적인 요소였다. VDR에는 사고 직전의 배 상태와 침몰 당시 선원들의 대처 상황이 12시간가량 음성 기록으로 남아있다. 스텔라데이지호의 VDR은 선교와 선교 옥상(컴퍼스 데크)에 각각 하나씩 있는데, 이 두 개를 회수하면 침몰 원인과 선원들의 탈출 여부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것이다.
 
허영주 대표는 "심해 4000m 이상 되는 곳에 1년 이상 잠겨 있던 VDR도 데이터 복구가 가능하며, 방수에 실패해 젖어 있어도 분석할 기술이 있다"고 밝혔다. 또한 복구 작업은 데이터를 손상하지 않을 숙련된 기술자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VDR 수거는 오션인피니티가 맡겠지만, 분석에는 또 다른 전문기관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VDR이 제대로 회수되어 전문 분석 기관을 통해 분석되어야 향후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사고의 원인을 찾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이다.
 
<심해 3000m에서 올라온 진실, 블랙박스>

 
심해 3000m에서 스텔라데이지호의 블랙박스인 VDR(Voyage Data Recorder ? 선박항해기록장치)가 발견되었다. ⓒ 외교부
 

지구의 반대편 우루과이에서 3000킬로미터 떨어진 해상으로 '오션 인피니티'사의 심해 수색선 '씨베드 컨스트럭터 호'가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서 출항한 것은 지난 2월 8일이었다. 만 6일을 달려서 사고해역에 도착한 수색선은 스텔라데이지호가 침몰 전 마지막 신호를 보냈던 지점을 중심으로 수색에 들어갔다. 4일 만에 수심 3천4백 미터 깊이의 바다에서 스텔라데이지호의 선체 일부를 발견했고,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항해기록저장장치인 VDR(블랙박스)을 발견해 수거했다. 이후에는 실종자의 유해로 보이는 사람의 뼛조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스텔라데이지호 수색에 있어 갑작스런 장애물이 나타났다. 바로 오션 인피니티 사가 심해수색을 철수한 것이다. 왜 유해까지 발견한 심해수색선이 수색을 더 진행하지 않고 철수하게 되었을까.
 
먼저, 심해수색선이 철수하게 된 배경에는 그 배에 탑승한 정부 책임자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작업을 책임져야 할 외교부는 실종자 가족들의 수색선 승선 요구를 끝내 거부해서 그 배에는 해수부 산하 연구기관의 연구원과 실종자 가족 대표만 동승했다. 다시 말해, 현장에서 책임지고 작업을 지시하고, 감독할 정부 책임자가 없었던 것이다. 수색선 책임자는 유해 수습은 계약사항이 아니고, 유해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장비가 필요하다면서 철수했다고 이야기 하지만, 정부의 책임 있는 답변을 기다리다가 철수한 점도 있다. 정부는 이후 과정에서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스텔라데이지호 수색에 대해 해당 부서의 관료들의 태도는 마지못해 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현재로선 배의 침몰 원인을 밝힐 유일한 단서인데, 데이터 분석을 맡은 영국 업체에선 몇 달이 다 되도록 소식이 없는 상황이다. 대책위는 정부도 작업이 중단된 걸 알고 있다며, 그 이유를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주무부처인 해수부는 구체적인 진행 상황을 모른다고 답했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블랙박스 데이터 추출이 아직 안 된 상태인 것을 확인했다. 세부적인 상황은 저희도 자세히 확인하지는 못했다"라고 이야기 했다. 대책위는 수색 과정에서 유해가 발견됐는데도, 정부가 시간 끌기를 하고 있다며 빠른 수습을 요구했다. 허경주 대표는 "사람의 뼛조각이 발견된 이상 당연히 수습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요청했지만, 정부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검토해보겠다는 입장만 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블랙박스 회수 과정에서 또 다른 문제도 있었다. 외교부가 스텔라데이지호의 항해기록저장장치(VDR), 일종의 블랙박스 회수 사실을 하루가 지나서야 실종 선원 가족에게 알려준 것이다. 실종 선원 문원준(22)씨의 아버지 승용씨는 18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18일 오전 7시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해외 언론에서 스텔라데이지호 선체 일부가 발견됐다는 보도를 접하고 외교부에 곧바로 문의했다"며 "그로부터 3시간이 지나서야 외교부가 '블랙박스를 회수했다'는 답변을 문자로 보내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부가 'VDR을 회수한 사례는 세계 2번째'라고 성과로 발표하면서 정작 가족은 뒷전이었다"며 "2년 동안 심해수색을 미뤄오던 정부가 블랙박스 회수 사실조차 가족의 요청에 따라 알려주는 등 여전히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했다.
 
대서양 한복판에서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를 심해수색 한 것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고, 그 심해수색을 통해서 VDR을 수거한 건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었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이후 2년이 다 되어 가는 시점에서 이뤄진 진전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왜 선박이 침몰했는지 밝혀지지 않았고, 그동안 실종자 가족들이 애타게 기다리던 심해수색은 어이없이 중단되고 말았다. 하지만 가족들은 이러한 답답한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며 진상규명을 기다리고 있다.
 
<여전히 싸우고 계신 실종자 가족들>

2017년 3월 31일 스텔라데이지호가 침몰한 이후부터, 가족들은 실종자들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움직였다. 수색을 요청해도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수색 재개에 소극적이었던 정부, 아무리 호소를 해도 들어주지 의원들을 가족들은 더 이상 믿을 수 없었다. 이에 가족들은 촛불집회에 나가 세월호 가족 등 시민사회와 연대하기 시작했다. 세월호 가족들은 스텔라데이지호를 '제2의 세월호'라고 말했다. 선박에 문제가 있음에도 무리한 운항을 강행하고, 침몰 이후 생존자 또는 실종자 구조를 위한 정부와 선사 차원의 선제적 노력이 없었다는 이유였다. 세월호 가족들은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고에 깊이 공감하고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실종자 가족들은 길거리에서 투쟁하고 있다. 세월호 천막이 철거되고 리모델링을 거치는 동안에도 여전히 가족들은 매일같이 광화문 광장에 나오셔서 스텔라데이지호 서명운동을 진행하셨다. 광화문 광장에서 만난 1등 항해사 故 박성백 씨의 부친 박홍순 아버님은 "나는 우리 아들이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아들은 길도 잘 알고 스쿠버도 잘했기 때문에. 또 구명벌 잡고 있었기에 분명히 살아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아들의 생존을 기원하셨다.
 
 
광화문 세월호 광장이 철거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가족들은 서명운동을 받으시고 있다.ⓒ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협의회
 
광화문 광장에서 만난 1등 항해사 故 박성백 씨의 부친 박홍순 아버님과 어머님. 답답한 2년이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포기하지 않으시고 아들이 돌아오기를 바라시고 계셨다.ⓒ 윤태은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첫 날인 5월 10일, 가족들은 대통령이 공약한 '청와대 중심의 재난대응 컨트롤타워 구축'과 함께 스텔라데이지호 상황대책위 설치, 심해수색장비 투입 및 철저한 사고원인 규명을 요구하는 '새정부 1호 서한문'을 전달했다. 심해수색장비 투입을 위한 노숙농성을 시작하기도 했다. 칠순이 넘은 실종자들의 부모들도 길거리로 나서 투쟁했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이후, 실종자의 부모들은 매일같이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의 서명을 받고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맞은편에서 1인 시위를 하며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수색과 심해수색장비 투입을 촉구했다. 2017년 국정감사를 앞둔 시점에서 가족들은 100여명의 국회의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심해수색장비 투입을 위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더불어 심해수색장비 투입과 진상규명을 위한 10만인 온·오프라인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스텔라데이지호 10만인 국민서명 전달 기자회견.ⓒ 미디어오늘
 

그 결과, 마침내 심해 3000m에서 블랙박스를 찾아 올렸고, 아직은 부족하지만 침몰원인과 사라진 구명벌을 비롯한 미스테리들을 해결하려고 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던 답답한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뤄진 조금의 진전 속에는 실종자 가족들의 절실하고 피나는 노력과 시민사회의 끈끈한 연대가 있었다.
 
<스텔라데이지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재 스텔라데이지호 참사 실종자 가족협의회는 정부에게 크게 세 가지를 요구하고 있다. 첫 번 째로 정부는 스텔라데이지호 심해수색 과업을 완수할 것. 두 번째는 미발견 구명벌 2척의 행방을 확인할 것. 세 번째로는 3D 모자이크 영상 구현으로 사고원인을 명확히 조사하라는 내용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1호 민원으로 지정되었던 스텔라데이지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세월호 참사와 함께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나가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과제임이 분명해보인다.
 
여전히 가족들은 우리 시민사회의 많은 약자들과 함께 연대하고 있다.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들은 광화문광장 촛불집회에서 세월호 가족들을 만났고, 세월호 가족들은 광화문광장에 있던 세월호 아빠방을 내주었다. 그렇게 이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버티고 있다. 아직도 가족들은 광화문 광장에서 모두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기다리고 있다. 2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난 지금, 규명되지 않은 진실들을 밝히고 제대로 된 책임자 처벌이 이뤄져야 할 때이다.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제 2의 세월호 참사라고 불렸던 스텔라데이지호 참사를 넘어 다시는 제 N의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모두가 안전하고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아직도 가족들과 많은 이들이 스텔라데이지호와 함께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