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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와 악의 평범성
일방적인 주장이 뒷받침된 자신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았다는 단순한 이유로 법전에도 없는 "갑질"은 과연 정당한 주장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주장하는 것인지를 심각하게 생각해 볼 때입니다.
영업에서 고객과의 응대방안과 고객으로써 합리적인 요구를 하는 문제는 영업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많은 갈등과 숙제를 안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 또한 마땅치 않는 것도 사실일 것입니다.
빵집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경우 고객과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과는 표면적으로는 나타나지는 않으나 "갑"과 "을"의 관계를 강요 받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고객의 입장에서는 사소한 아트바이트생의 실수조차도 용납하지 않으려하는 경향을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한나 아렌트의 저서가운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언급하고 있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은 결국 "결여된 사고를 바탕으로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태도"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정당화된 것 처럼 주장을 하고, 더욱 무서운 사실은 "누구나가 마음속에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인식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양식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유대인 600만명을 죽여 놓고도 아무런 죄의식이나 양심의 가책없이 받아 들이는 "아돌프 아이히만"은 평범한 사람이었고, 단지 상부의 명령에 충실하게 따라서 죄가 없다는 논리 앞에서는 분노에 앞서 측은하기까지 합니다.
어떤 점들이 고객을 분노하게 하는 것일까요?. 배려의 부족에 기인한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 아니면 자신의 요구에 따라주지 않았다는 무시당한 기분, 계산의 착오에 따르는 인격모독성 발언등등...
모두 주관적인 견해이며, 본인 자신도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나는 '갑'이고 너는 '을'이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순간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갈까요? "고객이 왕"이라서, 아니면 "넌 이 불평등을 받아 들인다는 전재하에서 여기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고객의 요구가 정당하다면 합리성을 바탕으로 설득하고 이해를 할 수 있지만, 이게 아닌 이상은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슬프기도 합니다.
자신의 아들이 또는 딸이 내가 대하는 아르바이트생이라고 생각한다면, 고객의 입장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단순한 실수도 가족의 품안에서 이해하려고 했을 것임이 자명한데도, 그들은 타인이라는 이유로 , 또는 자신을 배려해 주지 않고, 요구사항을 들어 주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인격모독에 가까운 말을 서슴없이 뱉어 내고, 뒤돌아서서 이(빨)를 보이는 이중적인 태도는 단지 나이가 어리다는 단순한 이유를 무기로 삼아, 인간은 평등하다는 대명제를 무시하고 있는 범죄라는 사실을 알고 하는 것인지가 혼란스럽기까지 합니다.
강자 앞에서는 약하면서도 자식이나 동생에 가까운 아르바이트생 앞에서는 왜 당당하고 자신의 지위나 자신이 침해 당한 부분에 대한 법적인 대응을 이야기 하고자 할까요?
"나는 고객이니까 영업하는 사람은 내 말에 따라야할 의무"가 있으며, 또한 고객으로써 존중받아야할 이유와 근거는 어느 법전에도 없는 내용이고, 굳이 있다면 모든사람에게 해당되는 사항이며,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대접 받고 싶다면, 먼저 상대방을 존중하고 대접해 주어야 그에 대한 응답으로 돌아 오는 것입니다.
"악의 평범성"의 무서움은, 자신의 고민이나 사고 없이 강요받은 것에 근거하여 누구나가 저지를 수 있는 범죄라는 사실이 몸서리가 쳐지도록 무섭고 잔인하다는 것이며, 결국 고민없이 한 순간적인 대처가 자신에게도 "독"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해와 배려는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닌 상대방의 몫"이고 서로가 존중해 주어야하는 기본적인 가치이며 더불어 사는 삶의 지혜가 아닐까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