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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 그리고 윷놀이
 
아주 오래전, 문득 창밖에 보이는 푸른 하늘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엽서를 보낸 친구가 있었다.
 
그렇게 별 것 아닌 일로 눈시울이 뜨거워질 때가 종종 있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지난날을 떠올릴 때도 그렇다. 가버린 시간, 돌아오지 않는 그 시간 속의 사람들…… 평소 잊고 살다가도 특별한 날이 되면 마치 빚쟁이처럼 기억 속으로 찾아와 눈물 한 방울이라도 뽑아가려 한다. 예를 들면 설날……

제사 지내려 큰집에 가야 하는데 잠에 취해 꼼짝 않는 나를 아버지는 등에 업으셨다. 얼어붙어 미끄러운 논두렁길을 피해 눈 쌓인 논으로 사박사박 걸어가시던 아버지의 그 따뜻한 등에 달라붙어 나는 전혀 춥지 않았다. 그때가 아직도 잊히지 않고 떠오르는 것은 그 따뜻함, 그 든든함을 이제 어디서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려니 한다. 모든 것들을 그 때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지만, 시간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모든 것들을 가차 없이 몰수해가고, 우리는 불가피하게 차갑고 이기적인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설 하면 떠오르는 풍경, 윷놀이.
 
  윷놀이는 설날에만 하던 놀이가 아니었다. 마을에서 누구네 할아버지가 세상을 뜨거나 누가 회갑잔치를 열거나 하면 그 집 마당에는 늘 술판과 함께 윷판이 벌어졌다. 두꺼운 자리 위에 숯으로 동그랗게 그림을 그려 놓고 낯술에 불콰하게 취한 사내들이 큰 소리로 떠들며 윷놀이를 하곤 했다.
 
 사실 그들이 윷놀이를 하던 풍경이 내겐 크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그 화폭 속에는 내 그림자조차 남아 있지 않으니까. 그런데 자꾸 떠오르는 이유는 그 화폭 바깥에 서 있던 내 모습이 그립고, 그 때의 '내'가 시간과 함께 사라져가는 게 아쉬워서인 것 같다. 나와 함께 하던 그들을 영원히 볼 수 없게 되면서 그 시절의 나 역시 지워져 가고 그 때의 내 가족 형제들의 모습도 지워져가고, 모든 게 아쉽고, 두렵고, 불안하고......
 
 들어가기
 
 설을 맞아 윷놀이의 어원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설에만 윷놀이를 한 것은 아니지만, 윷놀이가 설을 대표하는 놀이로 알려져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 

 많은 학자들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윷놀이(및 한국어)의 어원을 찾으려 했지만 제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이유를 논하기엔 내 시야가 좁다. 나는 그저 우리가 매우 오랫동안 한자를 써왔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실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한국어와 중국어가 비록 다른 계통의 언어라지만 우리는 수천년 동안 한자를 사용해 왔기 때문에 한자음과 한국어 비교연구는 우리말의 어원을 밝히는 데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우리 말 뿐 아니라, 몽골어, 만주어, 터키어, 중앙아시아 여러 언어는 물론 그 너머까지 깊이 연관되어 있다. 대부분의 경우 그 연관성이 한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한자음이 변화되어 온 과정을 이해한다면 보이지 않던 관계가 서서히 보이게 될 것이다. 
 
 윷을 한자로는 저(摴)라고 하는데 같은 음을 가진 저(樗)를 쓰기도 한다. 훈몽자회에 摴蒱, 樗蒲 두 가지가 다 기록되어 있고, 현대 중국어에서도 摴蒱, 樗蒲 두 가지를 다 쓴다. 따라서 摴와 樗의 음을 분석해 보면 한국어 '윷'과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훈몽자회와 윷 한국어의 음의 변천과 한자음의 변천을 비교해보면 그 상관관계를 알 수 있다. ⓒ 한유수
   


상고음 - tʰio / tʰrjag
중고음 - ÿhio / ÿhj¡
한국중세음 - tjʌ(뎌, 훈몽자회)
한국현대음 - ʨʌ
현대 중국 방언 - sju(광주)
현대중국표준어(보통화) - tʂu(現代)


상고음 - lha/t'i̯o/tʰrjag
상고후기 - tʰɯa/t'ĭɑ
한국중세음 - tjʌ(뎌, 훈몽자회)
근대 - ʧʰiu
한국현대음 - ʨʌ(저)
방언 - ʨʰy(모평) / pfu(만영) / sju(광저우)
현대중국표준어 - tʂu

 과거의 음을 재구해서 찾아낸 음은 학자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그 음은 모두 참고할 가치가 있다(학자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겠다). 당시에도 많은 방언이 존재했고, 자음과 모음을 다른 방식으로 발음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ㄷ(ㅌ)/ㅊ/ㅈ/ㅅ/ㅇ'의 형식으로 일정한 규칙성을 갖고 변화했다.


 摴의 중고음인 ÿhio와 ÿhj¡ 발음은 윻에 가깝게 발음되고 이는 우리말의 윷, 윳과 하나의 계통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상고음 tʰrjag의 ㄱ받침을 적용하면 '육'이 되어 윷의 한국어 방언인 유끼, 유꾸와도 비교 가능하다. 중국 광저우 방언에서 받침이 생략된 슈(sju)발음의 받침을 살리면 윷의 한국어 방언인 숫과 가깝다. (중국어 표준어와 중국의 일부 방언에서 받침이 생략되는 것을 감안하면 역으로 받침을 추가해서 비교가능하다)

가. 摴 : /ÿhio/, /ÿhj¡/(중고음) ------ 한국어 : /juk'i/(유끼, 한국어 방언), /juk'u/(유꾸, 한국어방언), /juʨ̚/(윷)
나. 摴 : /sju/(광저우 방언) ------ 한국어 : /sus̚/(숫, 한국어방언)


樗의 상고음인 lha는 tʰrjag음에서 초성과 받침(종성)이 생략되어 타락>락>라의 변이형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받침을 되살리면 '락'의 발음이 된다. 그리고 근대 현대 모음이 유(iu), 우(u) 등으로 난 것을 참고하면 '룩/륙'으로 재구할 수 있다. 한국어에서는 ㄹ받침을 초성에 쓰지 않으므로 눅/뉵으로 발음하거나 욱/육으로 발음하게 되는데 눅/뉵으로 발음하면 윷의 한국어 방언인 '누끼', '뉴끼', '눗'과 비교 가능하다. '욱/육' 등으로 발음하게 되면 摴음에서 살펴본 것처럼 '유끼', '유꾸', '윷'과 비교된다.

 위의 예에서 보듯, 摴와 樗의 변이음의 형태가 한국어의 여러 변이형과 기본적으로 일치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훈몽자회에 나타난 반치음 (ᅀ)의 형태를 추가로 비교해보자. 대부분의 학자들이 반치음 (ᅀ)을 'z(/ʦ/)'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중세음 'ᅀ+윳' 또는 'ᅀ+웃'은 /ʦjus̚/ 또는 /ʦjus̚/으로 표기할 수 있다. 현대 한국인의 발음 습관에 따르면 쭛/쯋 또는 줏/쥿에 가까운 발음이 된다. 그리고 이 역시 한자음 摴와 樗의 '듀/쥬' 식의 변이음으로 포괄할 수 있기 때문에 윷의 중세표기인  'ᅀ+윳' 또는 'ᅀ+웃' 역시 한자음과 대동소이하다고 볼 수 있다.
 
한자발음과 한국어 윷의 음의 변화 비교 한국어 자모의 변이와 한자음 자모의 변이가 거의 유사하게 변했다. ⓒ 한유수
   
 윷은 놀이이자 도박
 
 윷을 뜻하는 저(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노름, 도박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훈몽자회에도 역시 도박(賭博)으로 풀이되어 있다. 이 역시 우리말과 비교 가능하다. 도박을 뜻하는 순 우리말은 '내기'이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樗의 상고음 lha의 받침(종성)이 생략되기 이전의 발음을 '락'으로 볼 수 있으며 우리 말에서는 ㄹ을 쓰지 않으므로 락>라기>나기의 발음이 된다. '나기'는 바로 '내기'의 옛말이다. 이는 놀다, 도박하다의 의미를 가진 몽골어 문어의 'nakata-'와도 유사한데, 'nakata-'의 어근을 'naka'로 본다면 동일한 음이라 할 수 있다.(몽골에서는 대개 naɣa로 표기하지만 복잡한 발음기호 수를 줄이기 위해 naka로 표기하였다. 앞으로도 가능한 같은 방식으로 표기할 예정이다)
 
樗(摴) = 윷(누끼, 뉴끼, 유꾸, 유끼) = 나기(내기) = naka(몽골어)
 
 정리하자면 윷은 내기, 즉 도박이다. 따라서 윷판에는 크건 작건 간에 얼마간의 돈이 오갔고, 그러다 보니 고함소리가 난무하고 툭하면 논쟁이 벌어지곤 했다.  따라서 설을 맞아 전통놀이를 즐기는 것은 좋지만, 돈을 걸고 놀다보면 서로간에 얼굴을 붉히고 싸우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윷'의 어원과 관련해 더 고찰할 내용들이 있지만 분량을 고려해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나가기
 
 그 어떤 것도 당연한 것은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시려는 듯, 아버지는 서서히 나이 들어가셨고, 어린 나를 업고 가시던 아버지의 꼿꼿하던 등도 언제부턴가 구부러졌다. 다리는 가늘어지고 쇠약해져 걸음조차 걷지 못하게 되시다가 나중에는 점점 바닥으로 가라앉으셨고, 이제는 사라져버린 "윷"의 반치음처럼 아버지도 과거 속에 묻히셨다. 아버지께서 어린 시절의 나처럼 작아지셨을 때 나는 아버지께 따뜻한 등을 내어드리지 못했다. 과거를 생각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은 과거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오히려 아름답지 못하고 후회스러운 일들이 너무 많아서, 되돌아가 돌려 놓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그 바람이 실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설날에도 눈앞에 먹구름이 끼고 장마비가 내린다.
 

 본문에서 언급한 받침의 생략, 한자음의 변이 등, 몇 가지 개념은 분량상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 일부 독자에겐 어려웠을 수 있습니다. 이후에 기초부터 차근차근 설명해나갈 예정이니 관심을 갖고 읽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