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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산의 부장들〉에 대해선 다양한 관점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에 관해선 이견이 있기 힘들다고 생각된다. 〈남산의 부장들〉에 등장하는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했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건 박정희로 분한 이성민과 김규평(실존인물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으로 분한 이병헌이다. 
 
이성민, 박정희의 재림
 
〈남산의 부장들〉속 이성민은 박정희의 완벽한 재림이었다. 이성민은 끊임없이 측근들 사이의 파워게임을 유도하는 노회한 독재자, 토사구팽의 화신, 아무도 믿지 않으며 누구나 의심하는 신경증환자, 직언과 이견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독선주의자, 죽음까지 파고드는 삶으로서의 권력을 추구하며 손아귀에서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권력을 움켜쥐려고 안간힘 쓰는 추레한 절대권력자, 그리고 술에 취한 채 홀로 앉아 '황성옛터'를 읊조리는 고독하고 지치고 무기력한 초로의 사내를 참으로 놀랍게 재현했다.
 
이성민의 연기는 히틀러의 최후를 그린 영화 '몰락'(DER UNTERGANG)에서 히틀러 최후의 순간들을 연기한 브루노 간츠의 연기에 필적할만 하다. 브루노 간츠는 정복자, 철혈 독재자, 파괴자, 학살자, 순교자, 정신병자, 탐미적 퇴폐주의자, 자애로운 지도자로서의 히틀러를 완벽히 재연한다. 모든 사람들 위에 군림하던 초인은 최후의 순간에 구부정한 허리에 눈에 띄게 손을 떠는 노인, 이미 궤멸된 사단들을 이동시키려는 정신착란자, 근거 없는 낙관과 바닥 모를 절망 사이를 전력질주하는 조울증 환자, 떨리는 손으로 멀어져가는 세계제국의 자취를 움켜쥐려는 가련한 정복자, 애견의 안락사에 가슴 아파하는 소시민이다.
 
단언컨대 박정희를 연기한 배우들 가운데 이성민 보다 위에 있는 배우는 없었을 성 싶다. 강철 같은 배우 이성민으로 인해 스크린 속에 재림한 박정희를 만날 수 있었던 건 축복이다. 
 
완벽한 너무나 완벽한 이병헌
 
〈남산의 부장들〉속 이병헌의 연기는 인구에 길이 회자될만하다. 이병헌은 혁명동지였고, 존경하는 상사였으며,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던 대통령 박정희를 살해할 수 밖에 없었던 감정의 내밀한 변화와 동요를 너무나 섬세하게 표현한다. 타는 얼음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이병헌의 연기는 정말 압권이다.

특히 좋았던 건 이병헌이 박정희가 경호실장과 단둘이 술을 먹던 안가에 잠입해 벽장에 숨어 둘의 대화를 도청하는 장면이다. 이 씬에서 이병헌은 정말 놀라운 표정연기를 선보인다. 혼자 남은 박정희가 황성옛터를 나직히 부르며(인생의 허무와 무의미를 경험한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로) 외롭고 늙고 지친 사내의 모습을 보일 때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보였던 이병헌은 박정희가 전화기 너머의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자신을 비난하자 무언가 결심한 듯 결연한 표정을 짓는다. 이병헌은 입을 다물고 표정만으로 말을 했다. 그리고 표정으로 하는 말이 입으로 하는 말 보다 더 크고 명확함을 이병헌은 증명했다.
 
박정희를 연기한 이성민과 김재규를 연기한 이병헌, 이 두사람의 연기를 볼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남산의 부장들〉은 관람할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