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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마르코 광장에서 본 아드리아해의 낙조가 한 폭의 그림 같다.
 산 마르코 광장에서 본 아드리아해의 낙조가 한 폭의 그림 같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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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로 가는 수상버스 안. 아내와 나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을 화제 삼아 이야기를 나눕니다.

"당신, '베니스의 상인'에서 나오는 샤일록 생각 나?"
"안토니아한테 돈 빌려준 고리대금업자! 선박을 담보로 잡고, 갚지 못할 땐 살 1파운드를 베기로 한 그 사람?"
"맞아. 안토니오는 친구 바사니오 결혼자금을 대주느라 샤일록한테 돈을 빌렸지! 배는 파선되었고, 목숨을 잃을 위기에서 안토니오를 구한 바사니오의 아내 포샤의 빛나는 지혜!"
"남장을 한 재판관 포샤가 한 말이 생생하죠!"
"'그렇다면, 증서에 있는대로 살 1파운드만 베세요!'라고 했지!"

우리는 포샤가 "1파운드 살은 베되, 한 방울의 피도 흘려서는 안 돼요!"라면서 샤일록을 옴짝달싹 못하게 했던 감동의 재판을 다시 생각하며 웃음을 짓습니다.

베네치아인들의 의지

 '물의 도시'라는 말이 어울리는 베네치아.
 '물의 도시'라는 말이 어울리는 베네치아.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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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버스가 느릿느릿 이동합니다. 아드리아해의 바닷바람이 귓불을 스칩니다. 배는 도시를 향해 미끄러지듯 들어갑니다. 빛바랜 색깔로 채색된 건물들이 영화에서 보는 중세시대의 정취가 그대로 묻어납니다. 도시 전체가 건축박물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118개의 작은 섬, 150여 개의 운하, 400개 이상의 다리로 이루어진 '물의 도시' 베네치아. 바다 위의 신기루처럼 다가섭니다.

아드리아해 위에 건설된 고색창연한 도시 베네치아는 한때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고, 활발한 교역활동을 통해 힘과 부를 쌓았습니다. 또한 위대한 예술작품을 꽃피워 수세기 동안 이웃나라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1500년 전, 바다 위에 도시를 세우겠다는 발상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거기에는 이민족(異民族)의 침입에 대한 생존의 전략이 숨어있습니다.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는 5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민족에 쫒기고 쫒긴 난민들은 보다 안전한 곳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석호(潟湖)로 둘러싸인 지금의 베네치아 작은 섬들로 옮겨왔습니다. 석호는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깊이가 낮은 늪과 같은 곳을 말합니다.

이곳 베네치아는 북쪽의 포강과 남쪽의 아드리아해가 만나는 독특한 지형을 갖고 있었습니다. 포강에서 내려온 모래와 흙으로 북쪽에는 삼각주가 만들어지고, 아드리아해에서 밀려드는 조수 간만의 차로 남쪽에는 넓은 갯벌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강이 만든 삼각주와 바다가 만든 넓은 갯벌은 이곳 사람들의 새 주거지가 된 것입니다.

베네치아는 처음 갯벌이 적고 땅이 단단했던 토르첼로섬에서 시작했습니다. 차츰 인구가 늘어나면서 다른 섬들로 옮겨가게 되고, 레알토섬을 비롯하여 12개 섬까지로 영역을 넓히면서 베네치아는 도시로서 기반을 닦게 되었습니다.

세력이 넓어진 베네치아는 해상무역으로 14∼15세기에 전성기를 맞습니다. 힘이 커진 베네치아는 섬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거대한 나무말뚝을 세우고 각종 건축물을 건설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세운 수백만 개의 말뚝은 근대까지 이어지고, 자연섬과 인공섬을 합해 모두 118개의 섬을 가진 거대한 물의 도시가 탄생한 것입니다.

베네치아의 도시 형성과정을 보면, 이민족들의 침입에 막다른 곳까지 쫓겨 와 생존을 위한 처절함으로 도시를 건설하였습니다. 그 처절함은 나중 독립공화국으로 성장하고, 한때 지중해를 호령했던 베네치아의 영광을 얻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름다운 산마르코 광장

 산 마르코 광장이다. 세 방향으로 대리석 주랑에 둘러쌓여 있다.
 산 마르코 광장이다. 세 방향으로 대리석 주랑에 둘러쌓여 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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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 없는 시가지를 걷는 관광객들. 수많은 인파가 베네치아를 찾았다.
 차 없는 시가지를 걷는 관광객들. 수많은 인파가 베네치아를 찾았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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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합니다. 바닷물 속에 박혀 우뚝우뚝 솟은 말뚝이 보입니다. 백향목이라는 나무말뚝입니다. 바다에 박힌 말뚝은 뱃길의 길잡이가 되고, 선착장에 쓰이기도 합니다. 낮은 갯벌에 수많은 말뚝을 박고, 돌을 쌓아 다져 인공섬을 만들었는데, 그 재료는 백향목이었다 합니다. 말뚝이 예사로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일행은 산 마르코 광장으로 향합니다. 리알토 다리를 지나 광장으로 이어지는 길이 인산인해입니다. 엄청난 사람들로 붐빕니다.

 베네치아 대운하 모습이다.
 베네치아 대운하 모습이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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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대운하는 중심부를 S자 모양으로 관통하는 3.8km의 대동맥입니다. 대운하 중앙에 리알토 다리가 있습니다. 처음 놓일 때는 목조였지만, 16세기말 당대 최고의 건축가 안토니오 디 폰테가 대리석으로 세운, 세계에서 가장 멋진 다리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아치형다리 위에는 귀금속과 가죽제품을 파는 상점들이 사람들의 눈길을 붙잡습니다.

다리를 건너며 아내와 일행이 말을 주고받습니다.

"차 없는 거리라 좀 붐벼도 걷기는 편하네요."
"차가 없으니 신호등도 주차장도 없고! 또 당연히 배기가스도 없을 테고!"

차 없는 거리를 걷다가 문명의 이기라는 자동차가 거추장스런 존재라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베네치아는 자동차 대신, 배가 사람과 물건을 실어 나릅니다. 거미줄처럼 얽힌 수로에 작은 배가 교통수단이라는 사실이 이색적입니다.

 종탑 위에서 본 산 마르코 광장.
 종탑 위에서 본 산 마르코 광장.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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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우리는 배네치아 중심부 산 마르코 광장에 도착합니다. 직사각형의 네모반듯한 광장은 주변의 모든 건축물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1797년 나폴레옹은 베네치아를 함락시켰습니다. 그는 베네치아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 칭찬하였습니다. 정말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광장 동쪽으로 두칼레 궁전과 산 마르코 대성당이 있습니다. 대성당은 성인 마르코의 유해를 알렉산드리아에서 이곳으로 옮겨와 안치하기 위해 지었다고 합니다. 정면의 아치와 지붕의 5개 둥근 돔, 그리고 천사와 성인의 조각상으로 장식된 첨탑들이 그 위용을 자랑합니다. 벽면의 황금빛 모자이크 장식, 대리석 조각의 문양은 동서문화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건축미술사에서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합니다.

 산 마르코 대성당이다. 성 마르코의 유해가 있다.
 산 마르코 대성당이다. 성 마르코의 유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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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칼레 궁전. 역대 베네치아 공화국 총독의 관저였다.
 두칼레 궁전. 역대 베네치아 공화국 총독의 관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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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칼레 궁전은 베네치아공화국 총독의 관저였습니다. 궁전은 베네치아의 오리엔트양식과 결합된 고딕양식의 조형미가 뛰어납니다. 궁전 중앙 꼭대기에 한 손에는 칼을, 다른 한 손에는 저울을 든 '정의의 여신'과 베네치아의 수호신으로 알려진 날개 달린 사자상이 수백여 년 동안 아들리아해를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골목 저 골목을 다녀봅니다. 미로 같은 좁은 골목이 흥미롭습니다. 중간 중간에 다리를 건너기도 하는데, 어디가 어딘지 모를 지경입니다. 무턱대고 걷다가는 길을 잃기 십상입니다. 좁은 골목 수로에는 곤돌라 정거장이 있습니다. 곤돌라는 '흔들리다'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는데, 귀족들이 자신의 부를 과시하던 수단이었고, 발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이방인들을 태우고 관광을 안내하는 용도로 바뀌었습니다.

베네치아의 낙조... 그리고 어두운 그림자

 베네치아의 좁은 수로. 곤돌라가 운송수단이다.
 베네치아의 좁은 수로. 곤돌라가 운송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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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시 광장으로 나왔습니다. 베네치아 최고의 높은 종탑 쪽으로 사람들이 길게 줄서있습니다.

"여보, 우리도 저기 종탑에 올라가볼까?"
"줄이 너무 긴데!"
"시간적으로 잘 하면 종탑에서 낙조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 그럼 우리도 어서 줄을 서자구!"

'아름다운 베네치아에서 낙조를 볼 수 있다?' 우리는 큰 기대를 갖습니다. 표를 사는 데, 30여 분을 기다립니다. 종탑은 승강기를 타고 오릅니다.

 산 마르코 광장 종탑 위에서 아내가 인증샷을 남겼다.
 산 마르코 광장 종탑 위에서 아내가 인증샷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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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탑에서는 베네치아가 한눈에 펼쳐집니다.

"세상에, 이런 별천지가 있다니! 바다와 붉은 건물들, 낭만과 멋이 함께 있네! 우리 올라오지 않았으면 후회할 뻔했지요. 여보, 저기 노을을 봐! 어떻게 저런 조화를 부릴 수가 있지! 이곳에서 수백 년 전 갈릴레이가 천체관측을 할 때도 지금 우리와 같은 감동을 느꼈겠죠!"

아내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이곳 종탑에서 갈릴레이가 천체관측을 했다는 문구가 보입니다.

해 저문 광장에 성당의 종소리가 울립니다. 두 손을 모읍니다.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돌아가는 길에서 두칼레 궁전과 피리지오니 누오베 감옥을 연결하는 특별한 다리를 만납니다. 사람들은 이 다리를 '탄식의 다리'라고 부릅니다. 궁전에서 재판을 받고 나오던 죄수들이 다리를 건너 감옥에 들어갈 때, 탄식을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두칼레 궁전과 피리지오니 누오베 감옥을 연결하는 '탄식의 다리.'
 두칼레 궁전과 피리지오니 누오베 감옥을 연결하는 '탄식의 다리.'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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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도시, 낭만이 있는 아름다운 베네치아. 죄수들이 탄식의 다리를 건널 때 내쉰 한숨만큼이나 베네치아에 걱정의 소리가 들립니다. 베네치아는 일 년 중 6개월 가량, 바다의 수위가 높아질 때마다 침수의 위험에 직면한다고 합니다. 해마다 침수의 횟수가 늘어납니다. 이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의 상승과 오랜 세월에 걸쳐 지반이 침하된 것이 원인입니다.

베네치아의 탄식을 잠재울 묘안은 없는 걸까?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서 안토니아에게 닥친 위기의 순간을 슬기롭게 넘기게 한 재판관 포샤의 번뜩이는 지혜와 같은 것 말입니다.

슬기로운 지혜를 모아 오늘의 베네치아가 후손들에게도 영원히 물려지기를 기대합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2월 29일부터 1월 6일까지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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