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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포 평화의 소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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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위안부의 날'을 기념해 세워진 기림비, '김포 평화의 소녀상'

김포 평화의 소녀상은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 있는 위안부 기림비 '못다 핀 꽃'과 마찬가지로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인 8월 14일에 세워졌다.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은 1991년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날을 기념해 2012년 열린 '제1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 연대 회의'에서 8월 14일을 '세계 위안부의 날'로 정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6년 6월 20대 국회가 개원하면서 매년 8월 14일을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지정했다.

김포 한강 신도시 중앙공원 금빛수로분수대 앞 위치한 김포 평화의 소녀상은 위안부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평화와 인권이 실현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세워졌다.

김포 평화의 소녀상은 해방과 동시에 분단의 아픔을 겪게 된 우리 현대사에서 증오와 갈등의 접경지 김포시가 앞으로는 평화문화와 통일의 중심도시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건립했다. 소녀상 뒤에는 일본군 '위안부'를 주제로 한 벽화들이 전시돼 있다.

오산 평화의 소녀상

 오산 평화의 소녀상
 오산 평화의 소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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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평화의 소녀상은 2016년 8월 14일 제5회 세계 위안부의 날에 맞춰 건립됐다. 오산에서는 2015년 8월 오산시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으로 추진위원회가 발족했고 시와 공동으로 건립을 추진했다.

55개의 단체와 1000여 명의 시민이 힘을 모았다. 오산 평화의 소녀상 왼쪽 어깨에는 오산의 상징인 까마귀가 함께 조각돼 있다.

화성 평화의 소녀상

 화성 평화의 소녀상
 화성 평화의 소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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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평화의 소녀상은 2014년 '세계 위안부의 날'에 맞춰 제막했다. 평화의 소녀상을 세운 전국 지자체 중에는 고양과 거제, 성남, 수원에 이어 화성시가 다섯 번째다. 화성시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해외 자매도시 및 우호 도시와 연계해 해외 평화의 소녀상 건립에도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다. 화성시는 캐나다 토론토와 중국 상하이에도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하는데 앞장섰다.

캐나다 토론토 한인회관 앞에 있는 토론토 평화의 소녀상 건립은 '화성시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가 추진했다. 처음 화성시에 서는 화성시의 자매도시인 캐나다 버나비에서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추진했지만, 일본계 캐나다인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에 굴하지 않고 대신 토론토에 건립을 추진했다.

그 결과 2015년 11월 18일 토론토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토론토는 일제강점기에 화성에서 일어난 '제암리 학살사건'을 세계에 알린 스코필드 박사가 활동하던 곳으로 화성시와 상당한 인연이 있는 도시다. 스코필드(rank W. Schofield) 박사는 100년 전 조선의 독립을 돕고 일제에 맞서 싸우다가 강제 추방당한 선교사다. 화성시는 중국의 용정시와 프랑스의 리무쟁주 등에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한 화성시는 '한중 평화의 소녀상'을 2016년 10월 23일 중국 상하이(上海)에도 건립했다. 화성시에 따르면 '한중 평화의 소녀상'은 화성시 동탄 센트럴파크와 캐나다 토론토의 한국 평화의 소녀상에 이어 화성시민이 세운 세 번째 소녀상이다. 상하이 '한중 평화의 소녀상'은 상하이 사범대학에 위치해 있다.

화성시는 일제강점기 일본 순사를 처단할만큼 경기도에서 가장 격렬하게 3.1운동을 벌인 항쟁지로 화성시 향남읍 제암길 50에는 제암리 3.1운동순국기념관이 있다. 그리고 제암리 3.1운동 순국유적지 주변 3만7000㎡ 부지에 '화성시 독립운동 역사문화공원' 조성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367억 원을 들여 조성하는 독립운동 역사문화공원은 독립운동기념관, 독립운동가 추모공간, 교육장, 주민쉼터 공간으로 구성된다. 기념관에는 일제강점기 화성지역 모습과 독립운동가, 만세운동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일제가 제암리 학살사건을 일으킨 이유, 독립운동에 미친 영향 등을 설명하는 자료를 전시하기로 했다.

그리고 화성시는 3.1 만세운동길을 복원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화성시는 1919년 4월 3일 우정읍 주곡리에서 출발해 장안면 석포·수촌리를 거쳐 장안면사무소와 우정읍 쌍봉산에 이르는 만세길 31㎞ 전 구간을 복원해 역사테마길로 조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제암리 학살사건은 1919년 4월 15일 일본 군경이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제암리에 와서 기독교도와 천도교도 30명을 교회당 안으로 몰아넣은 뒤 문을 잠그고 사격하는 만행을 한 후 증거를 없애기 위해 방화한 사건이다.

화성시와 더불어 성남과 수원도 해외 위안부 기림비 설립에 주도적으로 협조한 지자체다.

성남 평화의 소녀상

 성남 평화의 소녀상
 성남 평화의 소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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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평화의 소녀상은 성남시청의 주도로 평화의 소녀상으로는 경기도에서 두 번째, 전국에서는 다섯 번째로 세워졌다.

비문에는 "호국보훈의 고장 성남시민들이 일본군 위안부라는 아픔의 역사를 기억하며 다시는 부당한 권력에 의한 반인도적 범죄행위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촉구하고, 평화와 인권이 존중되는 동북아 협력의 시대를 열어 나가려는 결의를 담아 건립하였다"라고 적혀 있다.

성남시민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고 성남시의 지원도 뛰어나다. 성남시는 2014년 평화의 소녀상 설치 후 지킴이 활동 정례화, 위안부 피해자 특별전, 성남시내버스 220번 버스 의자에 소녀상 설치·운행 등 위안부 할머니 문제에 사회적 관심을 높이고자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외국에 위치한 평화의 소녀상에도 적극 손 내밀고 있다. 호주에서 최초로 세워진 시드니 평화의 소녀상 건립에 후원했으며 미국 글렌데일시에 '평화의 소녀상' 철거 논란이 벌어지자, 성남시는 특사단을 파견하여 '평화의 소녀상' 보호에 앞장선 바 있다.

수원 평화비(평화의 소녀상)

 수원 평화비(평화의 소녀상)
 수원 평화비(평화의 소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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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민들은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을 촉구하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인권과 명예회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2014년 3월 1일부터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2014년 5월 3일 4020명의 시민과 133개 단체의 성금으로 수원 평화비(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했다. 매월 첫째주 수요일 낮 12시 수원 평화비 앞에서는 일본군 성노예 문제해결을 위한 수원 수요문화제가 열린다.

수원 평화나비를 비롯한 수원 시민들은 유럽의 첫 평화의 소녀상인 독일 비젠트시 히말라야 공원 건립에도 앞장섰다. 2015년 9월 수원시와 독일 프라이부르크시가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에 합의했으나, 일본 측의 거센 반발로 무산되면서 수원시민들이 직접 모금활동을 벌였다.

2017년 3월, 수원 추진위원회와 독일 현지인들로 구성된 '독일 평화의 소녀상 수원시민 건립 추진위원회'는 독일 레겐스부르크시 인근 비젠트 지역에 '독일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했다.

청소년들이 힘을 모은 평화의 소녀상도 있다.

평택 평화의 소녀비

 평택 평화의 소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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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평화의 소녀상 건립에는 평택지역의 청소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성공을 이끌었다. 은혜고등학교 디베이트 동아리와 지리동아리, 청옥중학교 2학년 2반 학생일동, 평택시고교학생회장단연합, 평택시청소년문화센터 자치조직, 평택청소년차세대위원회, 서정청소년문화의집, 평택YMCA 청소년소나기, 평택청년회, 북부청소년문화의집, 안중청소년문화의집, 원평청소년문화의집 등 많은 청소년들이 건립기금에 힘을 보탰다. 또한 송탄제일고등학교와 청옥중학교, 제일중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배지 판매 수익금을 건립 기금에 기부했다. 소녀상도 평택시청소년문화센터 앞마당에 있다.

뿐만 아니라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재능을 기부했다. 임봄 시인은 헌시 <나비야 가자>를 썼고, 채미경 작가는 '평택 평화의 소녀상'이라는 캘리그라피를 제공했다. 또 소녀상 뒤편에는 희망솟대가 자리잡고 있는데 이 또한 웃다리문화촌 희망솟대 어르신들이 제작해 기부했다.

평택청년회 소속 '평택평화나비' 회원들은 '내 손으로 만드는 소녀상 미니블록' 크라우드 펀딩으로 소녀상 건립기금을 후원했으며, 나머지 수익금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위원회와 나눔의 집에도 전달했다. 평택 평화의 소녀상 건립에는 평택지역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 82개, 평택시민 758명이 참여했다.

안양 평화의 소녀상

 안양 평화의 소녀상
 안양 평화의 소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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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일 98주년 3.1절을 맞아 '안양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안양 중앙공원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건립에 안양의 10여 개 고등학교 학생들을 포함한 1186명의 시민들과 88개의 단체들이 모금에 동참했다. 소녀상 기단석 바닥 왼편에는 이지호 시인의 시 <그날에>가 적혀 있다.

양평고등학교 '위안부' 소녀상

 양평고등학교 ‘위안부’ 소녀상
 양평고등학교 ‘위안부’ 소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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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고등학교 인권동아리 'JR 가디언'이 2016년 4월 16일부터 12월 31일까지 교내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 설립 운동을 펼쳤고 245명의 양평고 교사, 학생, 시민들이 후원자로 참여해 양평고등학교 교정에 2017년 3월 수박 작가가 제작한 기림비를 세웠다.

의미 있는 장소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은 무엇 무엇이 있을까.

양평 평화의 소녀상

 양평 평화의 소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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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성노예로 끌려가 피맺힌 고통을 겪은 소녀들의 삶과 아픈 역사를 기억하며 우리는 일본정부에 사죄를 촉구한다. 전쟁과 폭력에 의한 반인도적 범죄행위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통한의 세월을 보낸 할머니들의 생애를 증언하고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운다."

'양평 평화의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가 밝힌 소녀상의 건립 목적과 이유다. 양평 평화의 소녀상은 48개의 시민단체와 522명의 군민들의 후원금으로 제작됐다.

양평 평화의 소녀상은 제98주년 삼일절을 맞아 양평물맑은시장공원 3.1만세터에 자리잡고 있다. 양평물맑은시장은 1919년 3월 24일 당시 갈산면 장날에 모인 1400여명의 군민들이 독립선언문을 제창하며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짖은 피맺힌 역사의 현장이다. 양평군은 항일의병의 현장과 위대한 독립운동가 몽양 여운형 선생의 생가 등 광복과 관련된 역사적 전통이 있는 곳이다.

광명 평화의 소녀상

 광명 평화의 소녀상
 광명 평화의 소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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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 평화의 소녀상은 38개의 단체와 1535명의 개인 후원자들의 힘으로 2015년 8월 15일 광복 70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 노동과 자원의 수탈현장인 광명동굴 입구에 건립됐다.

제막식에서는 일제강점기 광명동굴에서 일했던 장원화 광부가 소녀상에 꽃을 바치기도 했다. 광명동굴 입장료 수입금의 1%를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의 쉼터인 나눔의 집에 기부하고 있다.

2017년부터 광명시 청소년으로 구성된 '광명 평화의 소녀상 지킴이'가 활동하고 있다. 2017년 8월에는 소녀상 주변에 '평화를 위한 소녀의 꽃밭'을 조성했다. 꽃밭에는 구절초, 부처꽃, 벌개미취, 층꽃 등 할머니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던 시절, 고향 들판에 흔히 피어 있던 우리나라 토종꽃들을 심었다. 소녀상 뒤에는 고 김순덕 할머니의 그림 <못다 핀 꽃>에 나오는 자목련나무 한 그루가 봄이 되면 꽃들을 활짝 피워 소녀상을 위로한다.

인천 평화의 소녀상

 인천 평화의 소녀상(좌)와 인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노동자상 ‘해방의 예감’
 인천 평화의 소녀상(좌)와 인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노동자상 ‘해방의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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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평화의 소녀상이 위치한 부평공원은 과거 일본군이 주둔했던 장소였다. 2002년 부평공원이 되기 전까지는 미군부대가 주둔했던 장소로 오랫동안 군부대가 차지했던 곳이다.

이 때문에 평화의 소녀상과 연관성이 짙다. 2016년 10월 29일 건립된 인천 평화의 소녀상은 김창기 작가의 작품이다. 평화의 소녀상 옆에서는 인천작가회의 회장인 문계봉 시인의 헌시가 당시 '위안부'로 끌려가 고초를 당해야 했던 소녀를 위로한다.

평화의 소녀상 옆에는 인천 일제강점기 징용노동자상인 '해방의 예감'이 서 있다. 2017년 8월 12일 건립한 징용노동자상은 일제강점기 시절, 현재 부평공원 일대에 일본군이 건설한 남한 최대규모의 병기장인 '조병창'을 중심으로 자행된 인권유린과 노동착취를 주제로 제작됐다.

일제는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한 이후 연인원 800만 명에 달하는 우리 국민을 전쟁을 위한 강제노역에 동원했다. 인물상은 당시 '조병창'을 경험한 지영례 할머니와 이연형 할아버지의 증언을 모티브로 제작했다.

일본군 '위안부'를 피하기 위해 경험해야 했던 조병창에서의 처참한 노동현장과 일본 제국주의 치하에서 이뤄졌던 조선인 노동자들의 참혹한 상황을 부녀(父女)의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소셜미디어에 포스팅되었으며 월간 아트래블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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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 구보 <사색여담> 시리즈 저자 <그렇게 여행자가 된다> <상처 위를 거닐다> <여행, 그 너머에 있을 무언가> <아파야 보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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