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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사소한 말들이 귀에 턱 걸릴 때가 있다. 가령, 이런 말. 

"OO 알지? 걔는 무슨 남자가 그렇게 야비한지 몰라." 

나도 언젠가 비슷한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제와 불편함을 깨달았을 뿐. 나는 불편해졌으나 그 자리의 '프로불편러'가 되지 않기 위해 말을 아끼며(내 용기없음에 자학하며), 혼자 그 말을 곱씹었다. 

남자가 야비한 것은 이상하지만, 여자가 야비하면 괜찮다는 말일까. 이거, 여자에게 너그럽다고 좋아해야 하는 것인가. 물론 그럴 리 없다. 여자는 원래 그런 인간이라는 낙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테다. 남자에게도 좋을 것은 없다. 모름지기 남자란, 하며 보다 빡빡한 기준이 들이대질 테니까. 

용기 없는 나를 불편하게 하는 말은 많고 또 많다. 최근에 들은 말만 해도 수두룩. 이 말은 어떠한가. 

"나는 여자들이랑은 말이 안 통하더라고. 이상하게 남자들이랑만 말이 잘 통하더라." 

여성이 한 말이었다. 뭔가 모르게 불편함에 내 속이 꼬이기 시작했다. 불편함의 정체를 몰라 더 답답할 때, 우에노 치즈코의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를 만났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여자가 여성 혐오를 자기 혐오로 경험하지 않고 넘어가는 방법이 있다. 바로 예외적 여자가 되어 자기 이외의 여성을 타자화함으로써 여성 혐오를 전가하는 방법이다." 

우에노는 말한다. 자기 자신은 보통의 여자와 다르다고 규정하면서, 이 예외를 통해 평범한 여성에 대한 멸시를 재생산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녀 자신이며, 이렇게 특권적인 예외를 둠으로써 차별 구조는 온존되고 지속적으로 재생산된다고. 

나는 그런 말을 하는 태연하게 하는 그녀가 불편해졌고, 그런 그녀에게 아무 말 하지 못하는 내 스스로가 못마땅해졌다. 나 또한 그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불안감도 있었다.

정말이지 나이로 사람을 규정짓고 싶진 않지만, 저 말들은 모두 기성세대로부터 나왔다. 다음 세대는 부디 기존의 가치관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특정 성별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의 자유를 위해서. <인권연대의 청소년 인권특강>은 그런 면에서 좋은 길라잡이가 될 듯하다. 
 
 <인권연대의 청소년 인권 특강> 책표지
 <인권연대의 청소년 인권 특강> 책표지
ⓒ 철수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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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강 '아는 페미니즘? 하는 페미니즘!'의 저자 김홍미리는 페미니즘은 관찰하는 게 아니라 '행동하는 것', 아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성 평등에 찬성한다고 말하면서도 '요즘의 페미니즘', '한국의 페미니즘' 운운하며 자신을 분리시키는 태도는,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정해진 색깔이 있지 않아요. 그리고 나를 빼고 세상이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페미니즘도 나를 포함해서 움직이는 세계예요. 같이 움직이면 되거든요. 같이 움직여서 성에 따른 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데 동참하면 됩니다."(p41)

종종, 이름 때문에 남자인 줄 알았다는 말을 듣곤 한다. 대개는 어떠한 의미도, 악의도 없지만, 그때마다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상대의 성별을 먼저 파악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저자는 짚는다. 성은 우리의 정체성을 강력하게 규정하며, '나'는 나이기 전에 '남성', 혹은 '여성'으로 존재한다고. 

페미니즘은 이렇게 성에 따라 사람을 구별하고 삶의 방식을 정하는 시스템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며, 이것은 남자와 여자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저자는 강조한다. 이는 낙후된 과거와 미래와의 싸움이며, 곧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이다. 

책에 인용된 바에 따르면, 양성평등 캠페인 히포쉬(He For She)에서 엠마 왓슨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연하면서도 핵심적인 말로 여겨져, 뒤늦게 그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페미니즘은 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다. 여성과 남성이 차별 없이 평등해지자는 말이다. 왜 남자들은 남자답다는 말에 갇혀 살아야 하는가.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 바로 페미니즘인데 왜 남의 이야기하듯이 하는가."(p41)

이 책 <인권연대의 청소년 인권특강>은 페미니즘에 국한되지 않는다. 6명의 필자가 인권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건넨다. 그 시작을 여는 것은 1강 '왜 장애인 인권을 말해야 할까?'이다. 김형수는 100세 시대에 장애는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님을, 장애인 인권은 바로 나의 인권이라는 것을 설득력있게 설명한다. 

2강은 전술한 페미니즘 강의이며, 3강은 '인권의 눈으로 살펴본 우리 사회의 불평등'이다. 사람을 존중하는 문화와 시스템이 부족한 한국의 현실을 짚는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구석은 불편해도 자주 들여다보아야만 할 것이다. 알아야 고칠 수 있으므로. 또한 인권이란, 자기 자신을 믿고 긍정하고 사랑하기 위한 도구라는 설명이 인상 깊다. 

4강은 박흥식의 '고전과 영화로 배우는 인권 이야기', 5강은 이문영의 '톨스토이를 통해 살펴보는 인권과 평화', 6강은 서민의 '기생충 학자가 보는 남녀 이야기'다. 어느 꼭지 할 것 없이 유익함뿐만 아니라 유쾌한 재미를 선사한다는 것을 꼭 덧붙이고 싶다. 

어른이 봐도 손색없는 책이다. 스스로 깨여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기존의 가치관에서 쉬이 벗어나기 힘든 어른에게도 각성할 계기가 될 듯하다. 그러나 역시, 청소년에게 더 권하고 싶다. 이런 말 하면 꼰대 인증인지는 몰라도, 미래 세대는 지금과 다르길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물론, 미래 세대 운운하기에 앞서 나부터 돌아볼 일이다. 불편러가 되지 않기 위해 입 다무는 나는 과연 정의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 오늘도 나의 고민은 계속된다. 앞서 언급한 엠마 왓슨의 연설 중 한 대목을 재인용하며 글을 맺는다. 
 
"내가 아니면 누가? 지금 아니면 언제! If not me, who? If not now, when?"(p40)

인권연대의 청소년 인권 특강 - 장애, 페미니즘, 불평등, 고전 공부, 평화, 남녀로 바라본 인권 이야기

김형수 외 지음, 철수와영희(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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